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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904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 글을 기고할 때, 내 소개는 이렇다. 시트콤 애호가 겸 연출가, 드라마 매니아 겸 PD, SF 덕후 겸 번역가. 나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를 오가며 산다. 무언가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미친듯이 좋아한다. 이렇게 재미난 것이라면, 나도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덤빈다. 그러다보니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산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직접 만들어 본 것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소비자로서 내 눈은 스크린 위의 영화 '매드맥스'를 보고 있는데, 현실에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카체이스 장면은 못 찍는다. 이런 괴리의 사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저런 걸작을 만들 자신이 없으니 그냥 포기하자. 뭐, 이런 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고 일단 덤비고 본다. SF 소설을 즐겨읽.. 2015. 6. 16.
마음껏 독서할 기회 요즘 청년들에게 취업이 참 어렵습니다. 이른 나이에 퇴직한 중년들에게도 일이 없어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90세까지 사는 시대라 하니 기나긴 노년을 어떻게 버틸지도 걱정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가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이 있답니다. '이제 가문이 망했으니, 네가 참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구나!' 네, 죄를 지은 아비가 덤으로 출세길이 막힌 아들을 약올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뻐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글 공부를 했지요. 어떻게 하면 시험관의 눈에 드는 글을 쓸까 고민도 많이 했을 겁니다. 정약용이 보기에 가문이 망했으니 아들은 이제 그런 출세를 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겁니다. 그냥 읽고 싶은 책을 마음.. 2015. 4. 17.
낭송의 발견 요즘 블로그에 새 글이 뜸했습니다. 새 드라마 방송 시작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거든요. 드라마 연출을 시작하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에도 독서를 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게 책읽기는 숨쉬는 것처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거든요. 책을 읽지 않고 일만 하다보면 내 속에 무언가가 고갈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바쁠 때는 어떻게 독서를 하는가? 오늘은 농축적이고도 집약적인 독서 방법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요즘 저는 짬만 나면 하루 15분씩 책을 낭송합니다. 낭송은, 단순히 소리내어 읽는 낭독은 아니구요, 그렇다고 책을 완전히 외우는 암송도 아닙니다. 정좌하고 앉아서 논어나 금강경 같은 동양 고전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 2015. 3. 26.
세계문학전집 읽기 어렸을 때, 학교 교사이던 어머니가 일직을 하러 일요일에 학교에 가면 나는 따라 가서 교무실이나 빈 학교 교실을 누비며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로 손님이 왔다. 문학 전집을 팔러다니는 방문 판매원이었다. 국문과를 나온 국어 교사인 어머니는 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외판원을 붙잡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셨다. 어머니는 충동 구매에 약한 편이라 세일즈에 주로 넘어가는 편이었고, 결국 며칠 뒤 우리 집에 세계 문학 전집이 배달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책장 빼곡이 꽂힌 한국 문학 선집과 세계 문학 선집을 보면서 '저 돈이면 내가 라면땅을 몇 개나 사 먹을 수 있을까?' 하면서 아까워했다. 독서광인지라 다른 집에 놀러가면 서재 구경을 좋아한다. 그런데 웬지 전질로 책을 꽂아둔 사람은 책을 읽.. 2015.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