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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78

못난 아비의 육아법 (오늘 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어려서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우리 집 식구 중에 아버지에게 안 맞은 사람은 없다. 다 맞았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를 짊어진 장남이라 특히 많이 맞았다. 맞다 맞다 맞아 죽을 거 같아 도망친 적도 있다. 아버지는 매를 들고 동네 어귀까지 쫓아오다 포기하셨다. 다음부터 나는 옷을 홀딱 벗고 매를 맞았다. 맞으면서 고민했다. 맞아 죽는 편이 나을까, 쪽팔려 죽는 편이 나을까. 맞아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 보다. 팬티 바람으로 달아난 적은 없다.초등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통째 외우는 게 방학 숙제였다. 하루에 한 과씩 외우는데, 검사를 하다 실수하는 날에는 또 매를 맞았다. 그때 나는 영어 공부가 죽도록 싫었다. 아버지가 영어 교사였는데, .. 2020. 9. 8.
늙은 아비를 위한 에버랜드 오랜만이네, 에버랜드. 처음이다. 너랑 T-익스프레스를 타는 건.무섭다고 한번도 안 타더니, 친구들이랑 같이 오니까 용기를 내는구나. 너랑 오면 늘 드래곤만 탔지. 어린이용 롤러코스터. 레일이 짧아서 2바퀴를 도는 드래곤. T-익스프레스가 끝나갈 무렵, 너는 물었지. "아빠, 설마 이것도 2번 도는 거야?" 너의 겁먹은 표정에 아빠가 웃음을 터뜨렸지. 미안... 너는 친구들이랑 썬더폴즈를 타러간다고 했다. 셋이서 놀다오라고 등을 떠밀었지. 중학생이 되었으니 아빠보다 친구가 더 좋을 때란 걸 안다. 네 언니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으니 벌써 20년 가까이 단골이다.풍광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아빠는 매번 올 때마다 재밌단다.동행이 달라지거든.세 살난 민지에서, 열 살난 민지, 다시 다섯 살 민서에서, 열 두.. 2020. 8. 27.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학교에서 진로 특강 요청이 오면, '미래형 인재와 창작의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합니다. 다가올 미래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활약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남이 시킨 일을 하는 건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따라가기 힘들어요. 미래형 인재가 되는 길은 창작의 즐거움을 익히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딸 민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알투스의 서재'라는 곳에서 글쓰기와 그림을 배웠어요. 어린 시절에 창작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민지는 자신의 손으로 그림책을 완성했어요. 힘들지만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해요. 공교육의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선생님이 있어요. (이현아 / 카시오페아) 초등학교 교사인 이현아 선생님은 서점에 갔다가, 문득 수많은 어린이 책들이 .. 2020. 5. 26.
나의 덕질 친구 민서가 요즘 많이 심심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 개학은 밀리고, 예비소집은 취소되고, 학원도 휴강이에요. 매일 집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이럴 때 뭘하고 놀면 좋을까요? 제 삶의 즐거움은 덕질에서 나옵니다. 민서에게 를 소개하고, 를 함께 봤어요. 아이가 눈을 빛내며 영화에 몰입하는 모습은 벅찬 감동을 줬어요. 덕후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거든요. 그 기쁨을 아이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매일 저녁 보드게임을 합니다. 류미큐브를 할 때 민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삽입곡을 유튜브로 틀어요. 문득 궁금하더라고요. "지금 듣는 노래는 뭐야?" "스티븐 유니버스." "어떤 내용이야?" "음..." 아이가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빠,.. 2020.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