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치새를 잡는건 마음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라는 걸 기억해."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대사다. 새총을 선물로 받은 딸에게 변호사인 아빠가 하는 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새를 잡는 건 괜찮지만, 그 바람에 죄없는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피하라는 뜻이다. 초등학생인 우리 민지의 필독서인데, 웬지 대한민국 검사님들이 꼭 보셔야할 책 같다. ^^

딴따라 우파의 노조 위장취업기 2. 딴따라와 여검사
그러니까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12년 5월 21일, MBC 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전원 기각되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장재훈 교섭쟁의국장, 그리고 나는 유치장에서 기각 소식을 들었다. 사실 나는 영장 실질 심사 과정을 지켜보며 영장 기각을 기대하고 있었다.
구속을 촉구한 검사 기소 이유 중 압권은 권재홍 앵커 자해공갈 사건이었다.
"며칠 전 MBC에서는 노조원들의 불미스러운 폭력사건이 있었습니다. 5월 16일, 방송을 마치고 퇴근하는 권재홍 앵커를 기자 4~50명이 가로막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권재홍 앵커가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권재홍 앵커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뉴스데스크 진행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조합원들의 폭력사태를 방조한 데는 노조 집행부의 책임이 큽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대한민국 검찰의 무공이 경천동지할 수준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심지어 조합원이 쏜 '장풍'을 폭력의 증거로 내놓는 수준이었단 말인가!
노조 측 변호사가 바로 나섰다. "지금 검사님이 말씀한 사건의 진실을 알기란 간단합니다. 판사님께서는 잠깐 네이버에 '권재홍 장풍'이라고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노트북에 뭔가를 입력한 판사님은 순간, 풋! 하고 터져나오는 폭소를 참느라 고생 좀 하셨다. 엄숙한 법정에서 보기 힘든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한 검사님께 감사라도 드려야하나? 순간 나는 검사님이 우리를 풀어주려고 일부러 쇼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역시 노조에 위장 취업한 나의 정체를 아시는 거야! 그래서 일부러 풀어주시려고 저런 자살골 플레이를 하시는 거야!'
당연히 그날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다섯명 전원에 대해 영장을 기각했다. 그런데 집요한 검찰이 2주만에 다시 영장을 칠 줄이야. '역시 법의 양심은 살아있구나!' 하고 만세를 부르며 유치장을 나온 우리는, '역시 검찰의 앙심도 죽지 않았구나!' 하며 치를 떨며 유치장에 다시 갔다.
권재홍 장풍이 안 먹혔는데, 왜 2차 영장을 날린걸까? 6월 7일, 법원에서 영장 심사 중 검사님 말씀.
"한 여자 아나운서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나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으며,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겠다며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이 글을 보면 MBC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이 성향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노조 집행부 전원 구속으로 파업을 중단시키는 것이 책임있는 법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나는 다시 입이 딱! 벌어졌다. 결국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두 앵커의 몸개그와 개드립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서비스 플레이였단 말인가? 배 모 아나운서의 게시판 글이 떴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드디어 오랜 시간 노조에서 암약하던 내가 활약할 차례로군.' 노조 집행부에서 1년 넘게 암약해온 보수 우파 비밀 공작원이 꿈이 무엇인지 아는가? 북의 지령을 받고 남한의 방송을 장악하려는 종북좌파를 색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이 100일 가까이 진행되는 데도 전혀 불순 분자의 폭력 책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나만 헛고생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무렵 배 아나의 글이 떴다. '역시 폭력을 조장하는 불순분자가 있었군!' 이제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어 폭행의 배후를 찾아내면 나는 임무를 완수하는 거야! 즉각 노조 부위원장이라는 나의 직함을 이용해 탐문 수사에 나섰다. 마침 폭행이 일어났다는 아나운서 국은 내가 담당하는 편제부문 소속 부서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를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배 아나가 제보한 사건의 전모를 알아봤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폭행 사건이라 할 만한건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나운서들이 조직원 보호에 앞장서느라 그러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노조 부위원장인 내게는 알려 줄 텐데? 답답해하는 내게 한 후배가 그랬다. "얼마전에 서점 옆에서 선배 하나가 늦게 온 후배더러 '일찍 일찍 다녀.' 하면서 어깨를 몇번 친 적이 있죠. 아마 그걸 가지고 폭행이라 그러나봐요." MBC 조합원들의 집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은1층 회사 로비다. 로비 뒤에는 서점이 하나 있는데, 수업 듣기 싫은 아이들이 교실 뒤에 모여있듯, 집회 참석에 가장 열의가 적은 멤버들이 모이는 곳이 서점 앞이다. 거기서 누가 다른 사람더러 '일찍 일찍 다녀!'하고 훈계를 했다는 건, 화장실 담 뒤편에서 담배 피우던 고교생 하나가 다른 후배더러 '마, 공부 좀 열심히 해!'하고 잔소리하는 거랑 같다. 그냥 자기들끼리 개그하는 거지.
당연히 나는 이게 노조원 폭행 사건의 전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배 아나운서 정도 되는 공인이 저 정도의 일을 침소봉대해 게시판에 글을 쓰고, 기자 정신의 화신인 이진숙 홍보국장이 그걸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내가 알아내지 못한 진짜 폭행 사건이 일어났던 게 분명해... 아무리 알아내려 해도 알 수 없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검찰이 법원에서 배 아나의 글을 인용할 때는 만세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천라지망과 같은 검찰의 정보망에 폭행 사건이 걸려들었군.' 이제 남은 건 그 폭행 사건의 범인과 피해자를 검찰이 찾아내어 세상에 까발리면 된다. MBC 노조가 얼마나 부도덕한 집단인지 밝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검찰에게 주어진 것이다. 제보자나 목격자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제보자는 누구나 다 아는 뉴스데스크의 앵커! 얼마나 공신력이 큰 인물인가. 배 아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만 봐도 게임 오버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검찰은 배 아나가 말한 폭행 사건에 대해 전혀 수사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그냥 배 아나의 글을 핑게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뿐이다. '이건 아니지! 폭행 사건이 있다잖아. 그걸 조사해보면 되잖아. 검찰이 그 사건을 밝혀내지 못하면, 기껏 용기를 내어 노조원의 폭행을 고발한 배 아나의 진심은 어떻게 되는거냐구!'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불현듯 날아온 미모의 여검사의 일격!
"피의자 김민식은 서늘한 간담회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김재철 사장의 퇴진 없이는 파업을 절대 풀지 않을 거라 말했습니다. 사실이지요?"
난 예쁜 여자가 말을 걸면,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본다. 한심한 놈이라고 흉봐도 소용없다.
이어지는 검사님 말씀.
"네, 파업이 100일이 넘었지만, 이들에게는 보다시피 파업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죄질이 극히 나쁘고, 재범의 우려가 농후합니다. 조합원들을 일터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파업 현장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합니다. 집행부 다섯명 전원을 반드시 구속하여 법질서의 엄중함을 보여줘야합니다."
구속의 위기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와! 저 이쁜 검사님도 내가 진행하는 서늘한 간담회를 들으시는 거야? 그럼 저 미모의 검사님이 나의 안티팬 1호? 나의 방송을 즐겨 들으시고 나를 오래 오래 곁에 두려고 구속영장을 친 거야? 그럼 이건, '아름다운 구속'? 아, 놔, 이 놈의 인기란...'
하지만 미모의 검사님이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반드시 당신만은 잡아넣고 말겠어.'라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고나 할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중간첩 놀이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나보다. 노조의 불법 파업을 막고, 민주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신념 하에 노동조합에 위장취업했는데, 어쩌다 종북좌파로 몰려 구속영장까지 받게 된거지? 어쩌지? 이제라도 나의 정체를 고백해야하나?
"실은 저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조에 위장취업한 보수 우파입니다." 라고?
검찰의 오버플레이 때문에 십수년 간 MBC내에서 암약해온 나의 정체가 여기서 드러나게 생겼군. 어쩐다?
딴따라 우파의 구속 위기, 3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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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Zzeany 2019.07.03 06: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안녕하세요~ (ㅎㅎㅎㅋㅋㅋㅋ: 유튜브 틀어놓고 웃는 중)
유튜버에 도전하신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일단 구독, 좋아요~ 눌렀습니다!
들으면서 쓰려고 했더니, 안되네요. 듣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쓰고 들을께요~
작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매일 글쓰기와 15분걷기(??) 등의 매일아침 루틴이 무너져버렸어요. 그런데 요즘, 어떤 일을 하든 글쓰기가 정말 중요하구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현명했더라면, 그래도 꾸역꾸역 글을 썼을텐데 말이지요.
글쓰기=나를 표현 이 삶이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미리 그 길을 가시고 알려주신 PD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_^
오늘도 글쓰기가 있는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최수정 2019.07.03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 가는줄 모르고 1,2화 시청했습니다.앞으로도 꼬꼬독 기대할께요!!!
해님 2019.07.03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즐겁고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섭섭이짱 2019.07.03 0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우선 좋아요 꾸우욱~~~~~ 누르고
독서을 하면 왜 좋은지와
습관의 중요성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앞으로의 영상도 기대기대됩니다 ^^
꿈트리숲 2019.07.03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메라 너머 보던 모습과 얼굴만 클로즈업 된 화면은 전혀 다른 느낌이네요. 촬영하실때 방청객 말고 카메라만 뚫어지게 보신 이유가 이거였어요. 나를 보며 조곤조곤 책 이야기 들려주는 느낌. 오늘 아침 온 가족 몰입 시청했습니다.ㅎㅎ
"엄마! 작가님, 야한 얘기 좋아하셨대, 알아?"
"당근, 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잖아~~ 저 웃음 소리 중 하나가 나야" ㅋㅋ
이번달 꼬꼬독 녹화는 딸과 함께 현장 웃음소리 넣으러 갑니다.~~
정현옥 2019.07.03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꼬꼬독! 정말 잘 보았습니다. 구독.좋아요.클릭.
pd님의 매일 블러그에 나왔던 책들과 글들이 언어로 나오니
더 쏙쏙 복습하는 느낌입니다.
근데,,영상보다는 글을 읽으면서,,느끼는 상상과 감동이 더 깊은것 같네요.
새로운 도전! 응원하며,,항상 긍정의 에너지를 얻고 삶을 시작합니다.
더욱더 성장하시길..감사합니다.
챙호쉔솨 2019.07.03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블로그에 좋은 내용 올려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7월 17일에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하는 강연도 신청하였는데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
멋진 mom!! 아자!! 2019.07.03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습관도 반복되면 복리처럼 그 결과가 곱절로 불어난다... 넘나 가슴에 와닿네요^^ 좋은습관에게 자리를 내어줄 나쁜습관 ᆢ 후~ 무지 많아요^^;; 그래서 3주째 미라클모닝 도전중입니다 저의 일상은 3주만큼 변화되고 발전하고 있는중입니다^^ pd님의 좋은 정보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리아리짱 2019.07.03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꼬꼬독 재미있게 봤습니다.
습관의 복리 효과!
명심하겠습니다! ^^
보리랑 2019.07.03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란총각 직접 들으니 더 리얼하네요 ㅎㅎㅎ
2019.07.03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순한양 2019.07.03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우연히 작가님의 유튜브강연 45분짜리하고 연달아 18분짜리 강연들었습니다. 너무 재밌고 유익한 강의여서 프로필도 찾아보고 폭풍 검색하고 블로그 폰에 만들고 구독합니다. 좋은글 많이 읽고 저 또한 앞으로 20대가 될 아들에게 추천 할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