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 피디9 음란마귀, 독서광이 되다 X 김민식 PD, 독서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 꼬꼬독 1,2화가 올라왔어요. 제 1화 '음란마귀가 독서광이 되다' 음란마귀인 저는 야한책을 읽으려고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야한책을 찾아서 읽다 보니 어느새 1년에 200권씩 읽는 독서광이 되었습니다. 음란마귀인 저는 어쩌다가 방송국 PD가 되었을까요? 음란마귀에서 다독가로, 책이 바꾼 저의 인생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영상을 끝까지 봐주세요! 제 2화 '책 읽는 습관은 어떻게 만들까?' 저는 드라마 PD가 굉장히 멋진 직업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PD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입니다. 작가가 대본을 써주고 배우가 연기를 하고 카메라 감독이 촬영을 해주지 않으면 저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 2019. 7. 3.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담담하게 1996년에 MBC 예능 PD로 입사한 후, 10년을 일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연출은 즐겁지만 아쉬움이 하나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잘나갈 때는 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시청률이 떨어져 조기 종영을 하거나 프로그램이 막을 내려야 휴가를 쓸 수 있습니다. 2007년, 때마침 MBC 드라마국에서 사내공모를 하기에 직종 전환을 신청했어요. 면접 등의 공모 절차를 거쳐 옮겼는데, 가보니 텃세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어떤 드라마 PD 선배는 이렇게 물었어요. “너는 뭐가 만만한 거냐? 내가 만만한 거냐, 내가 하는 일이 만만한 거냐?” 드라마로 옮기고 참 힘들었어요. 사람 때문에 힘든 것도 있었고,욕심만큼 잘 되지 않아 힘들기도 했어요.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성과의 괴리 탓에 힘들지요. 일 때문에 힘들 때, 일을 .. 2019. 5. 20. 우리 남매는 이러고 놉니다 동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의 추천사를 올렸습니다. 오빠로서 동생에게 준 영향은 미미하지만 그나마 둘을 꼽으라면 영어 공부와 블로그, 두 가지입니다. 동생은 제가 살아온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어요.공대를 다니던 오빠가 영어책 한 권 외우더니 갑자기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 대회에 나가 상을 타는 걸 봤지요. 동생은 본선 대회장까지 쫓아와 응원을 해줬어요. 동생이 직장 생활을 하다 염증을 느끼고 사표를 냈을 때, 저는 200만원을 찔러주며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어요. (90년대엔 저 돈이면 나름 여행 경비 충당이 가능했어요.) 영어에 자신이 없던 동생에게 "영어는 스물 넘어 시작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어."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줬어요. 캐나다 어학 연수를 다녀온 동생은, 해외 생활에 자신을 얻어 .. 2018. 1. 12. 우리는 버팔로를 잡는 인디언이다 최근 종영한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SF라는 장르를 좋아해서 SF 번역가로 일했던 나로서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정말 반갑다. 예전에 ‘조선에서 왔소이다’라는 환타지 시트콤을 연출한 적이 있는데, 연출력이 부족했는지, 흥행에 참패를 겪었다. 시청률 저조, 제작비 초과, 광고판매 부진의 PD 삼거지악을 저지르고, 방송 4회만에 종영 결정이 내려져 12부작인데 7부에서 막을 내렸다. 당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MBC에서 당신이 가장 연출료가 비싼 피디인거 알아? 1년 동안 시트콤 일곱 편 만들었으니까, 편당 연출료로 따지면 1천만원이 넘는 셈이잖아.” 아내의 농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타임슬립 시트.. 2013. 6. 11.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