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피디로 일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리얼리티 프로는 진짜 리얼인가요?” 답변하기 참 난감하다. 세상 모든 것을 진짜와 가짜, 둘 중 하나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나쁜 짓도 살짝 하는 좋은 사람일까, 남들이 볼 때만 좋은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일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카메라로 찍는 순간, 출연자가 하는 행동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남이 찍은 내 사진을 보면 화들짝 놀란다. ‘누구세요?’ 내가 찍은 셀카와 우연히 찍힌 모습은 사뭇 다르다. 카메라를 의식할 때, 나는 최대한 선한 표정을 짓는다. 부지불식중에 찍힌 사진을 보면, 탈모가 심하고 배 나온 아저씨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헐? 사람들이 보는 평소 내 모습은 이런 거였어?’ 그동안 난 셀카에 속고 살았다.
요즘 사회적 관계망에 바디 프로필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와, 저게 배야, 빨래판이야.’ ‘헐! 저 나이에 저 몸매가 가능해?’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울해진다. 다들 나보다 잘 지낸다. 밥은 맛집에서 먹고, 커피도 핫플레이스에서 마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다 선남선녀다. 페친들의 근황에 비해 내 삶은 얼마나 비루하고 초라한가. 혼자 우울하고 말면 그나마 다행이다. 좌절은 때로 분노가 된다. 주식으로 돈을 벌어 ‘플렉스’했다는 친구의 새 차 사진에는 이 악물고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다 애꿎은 연예인의 근황 기사에는 분노의 댓글을 단다. “돈 많은 부모 만나 외제차도 타고 좋겠네.” “저거 다 성형빨인거 아시죠?”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 이런 말도 안 되는 캐스팅이라니, 피디가 돈 먹은 듯.”
분풀이 할 대상을 찾아 온라인 뉴스 세상을 헤맨다. 각자의 우울이 모여 다수의 분노가 된다. 뉴스는 가짜라도, 분노는 진짜다. 현실을 도피한 이들의 사이버 테러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등지는 이유가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열 명인데, 그중 한 두 명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나쁜 거다. 그런데 내가 만나는 사람이 다 나쁜 놈이라면, 내가 나쁜 거다. 무분별한 분노에 물드는 순간,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된다. 우울에 중독되고, 분노가 전염되는 스마트폰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이 생기면, 나는 휴대전화를 끄고 산을 오른다. 혼자 묵묵히 걷는다.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니 바위틈에 뿌리내린 나무가 보였다. 하필 흙도 없고 물도 없는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다니 네 팔자도 참 박복하구나. 부드러운 흙이 있고, 뿌리 옆으로 물이 흐르는 숲에 사는 나무가 얼마나 부러울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 ‘나무도 질투를 할까?’
식물의 씨앗은 자신이 살아갈 자리를 선택할 수 없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든, 새똥에 섞여 떨어지든, 그냥 떨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잎을 피운다. 물이 귀하고 흙이 부족한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그래서 불행할까? 물 많고 흙 많은 숲에 떨어진 씨앗은 그냥 썩어 죽어버린다. 아름드리 울창한 나무 아래 떨어진 씨앗은 부모의 그늘에 가려 맥을 추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는 기를 쓰고 씨앗을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모의 그늘 아래서 자식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걸 나무는 안다. 맛있는 열매로 씨앗을 감싸 동물을 유혹하거나,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날개를 달아주어 멀리 떠나보낸다.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경쟁자가 없는 천혜의 환경을 만난 덕에 살아남았다.
바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울창한 가지를 뻗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 덕분에 쉬어간다. 빼곡하니 하늘을 가득 메운 이파리들을 보면 겸손해진다. 햇볕 한 줌 놓치지 않으려고 나무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성실한 나무에게 나는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운다.
(어제 소개한 <랩걸>을 읽고 나무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책에서 얻은 배움을 삶에서 얻은 질문에 연결해 써 본 글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사진 속 나무들이 잘 자라줘서 고맙네요.
오늘 아침 읽은 책에 무인도에 3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싫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가긴 싫고 영리하게 특별한 물건을 가져가는 건 모르겠고 저는 이 세 가지를 가져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1. 책
2, 3. 제 방에서 키우는 식물 두 종류.
식물 두 종류를 방생해서 잘 살게 하고, 즐겁게 책 읽다가 하늘로 가고 싶습니다.
덕분에 아침부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피디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아마 나무도 옛날엔 질투를 하지 않았을까요?
질투해보니 별 볼일 없고 나만 손해더라고
깨달았기에 있는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유전자가
대를 이어 자손에게 전해져서 지금 우리가 만나는
나무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의연하게 늠름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아요.
나무는 우연히 찍히든 정성들여 찍든 한결같은
모습이어서 참 부러워요. 얼짱각도가 뭔가요?
할 정도로 굴욕샷이 없어요. 비결 좀 전수받고
싶네요.
질투하지 않고 일단 성실하게 살아보면 비결
알 수 있겠지요? ㅎㅎ
와.. 모든 글이 좋지만 오늘 글은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좋아요. ㅋㅋ 뭔가 표현이 참 이상하게 됐네요.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들, 나무에 대한 은우로 풀어내신 이야기, 너므 절절히 와 닿는 진짜/가짜에 대한 현대인들의 고민.. 그걸 이렇게 짧게, 잘 풀어서 표현해내시는 피디님 능력에 오늘도 크게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조건을 들어보니 너무 과분한 제안이라, 깜짝 놀랐어요. 고민 끝에 현재로서는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사양하겠다고 했어요. 연락 주신 분이 놀랐어요.
"이건 정말 좋은 기회에요, 피디님.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잘 맞는 일이라 생각하는데요."
부족한 게 많아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나중에 아내에게 혼났어요. 정년 연장의 기회를 왜 거절하냐고. 글쎄요, 저는 교수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저는 되고 싶은 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많지.
재미난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책도 쓰고 싶고요. 여행도 다니고 싶어요. 물론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좋지요. 하지만 반드시 교수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블로그를 통해 매일 나만의 수업을 한다고 생각해요. 매년 책을 내며 논문 집필도 하고요. 그 책을 보고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불러주시면, 저자 특강을 하지요.
교수가 되면, 학교라는 공간에 갇힐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듣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저는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아요. 삶의 즐거움, 특히 공부의 즐거움은 자발성에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특강을 할 때, 아쉬운 점이 있어요. 제가 드리는 조언이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프립>이라는 공간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이곳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할 수 있지요. 서핑, 베이킹, DIY, 홈취미 등 다양한 취미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성장시켜 가는 곳인데요.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어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을 엽니다.
<김민식 PD와 함께, 읽고 쓰기 대작전 본부>
격주로 4번에 걸쳐 모임을 진행합니다.
글쓰기에 관한 4권의 책을 읽으며, 3가지 질문에 답을 찾습니다.
- 왜 써야 하는가.
<매일 아침 써봤니?>
- 무엇을 쓸 것인가.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보고서의 법칙>
- 어떻게 쓸 것인가.
<나는 말하듯이 쓴다>
4권의 책을 통해, 여러분 각자의 글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그 답을 찾는 행복한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서모임 때 제가 소개한 책은
가까운 친구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생각에 빠졌을 때 찾았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였죠
올 여름 나의엄마의 건강이 의료진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면서
퇴원이 가능할 수 있을까 또다시 가장 어려운
인생의 숙제를 하게 되면서 이 책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첫 모임이 있는 9월 10일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간이지만
첫 책이 피디님 책이기에
일단 무조건 시작해볼까 합니다
작년에 하고 싶은 걸 찾아 용기내었던
아들을 이젠 제가 따라합니다
등록 먼저 했습니다
1년 전, 대학에 인문학 특강을 갔다.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졸음을 참지 못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수준 이하의 강의를 하는 바람에 괜히 학생들의 시간만 빼앗은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담당 교수가 민망해하는 나를 위로해줬다. 요즘 대학생들이 많이 힘들다고. 스펙도 쌓고 과제도 하고 알바도 해야 해서 잠이 부족하다고. 외부 강사 특강은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고, 취업 추천서와도 관계가 없어 그 시간에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이도 있다고. 위로삼아 하신 말씀에 나의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로구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농땡이를 피우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를 혼내는 방법이 뭘까? 칠판에 문제를 적고 풀이 과정을 알려준 다음, 졸고 있는 학생을 불러내는 거다. 반 아이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겠지. 요즘은 이런 방법 안 통한다. 자던 아이도 칠판 앞에 불러내면 답을 척척 적는다. 선행학습을 통해 이미 다 배웠기 때문이다. 따끔하게 혼내주려던 교사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엎드려 잔 아이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수업 시간에 자는 건, 이미 아는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밤늦도록 학원에서 공부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자는 거다. 이제 선생님은 함부로 아이를 불러내지도 않고, 잔다고 혼내지도 않는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기른다.
얼마 전 다시 강의 요청이 왔다. 연기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전공 수업이었다. 드라마 피디가 오디션을 볼 때 무엇을 살피는지, 촬영 현장에서 배우와 감독이 협업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느라 대여섯 명만 강의실에서 듣고 나머지 학생들은 동시에 온라인 수업을 받았다. 그날 한 학생은 의자 위에 두 다리를 올려 양반다리를 한 채, 등을 뒤로 기대어 노트북 화면만 쳐다봤다. 눈앞에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는 대신,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강사와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해야 하지만, 영상 시청의 경우, 훨씬 마음이 편하다.
대학 강의실의 경우, 교단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권위가 생긴다. 수십, 수백 명의 학생이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독점에서 권력이 발생한다. 온라인 수업의 경우, 1대1의 대등한 관계다. 가르치는 사람의 아우라가 사라진다.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오랜 세월 수능 인강을 들었다. 인기 수능 강사의 경우, 수업은 강연이 아니라 공연이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유익하다. 대학에 올라와 받는 온라인 수업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교수란 사람이 마이크를 어떻게 켜는지도 몰라 헤맨다. 이제 대학 교수들의 비교 대상은 설민석이다. 이 경쟁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사교육으로 인해 서비스 생산자와 소비자로 왜곡되었다.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 입시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은 버림받는 신세다. 여기에 코로나가 터졌다. 교수는 서투른 유튜버가 되고, 학생은 재미없는 채널을 강제 구독하는 시청자가 되었다. 그것도 수 백 만원 씩 내면서. 온라인 수업 탓에 학생과 학부모가 겪는 불만에 대해 목소리가 크다. 가르치는 사람도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환경과 기술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많은데, 소비자 불만에 대응하느라 정작 자신의 어려움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교단의 권위에 기대어 가르치는 시대가 끝났다. 유튜버와 경쟁하는 교사는 이제 새로운 문법을 배워야 한다. 잘 나가는 유튜버는 이렇게 말한다. ‘요리/주식/운동/맛집 탐방, 내가 해봤더니 재밌더라. 당신도 하면 된다.’ 대학 교수도 같은 어법을 구사하면 어떨까? ‘전공공부, 내가 수십 년간 해보니까 즐겁더라. 공부를 하면, 여러분도 나처럼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돈도 벌고 잘난 척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이 좋은 걸 안 할 이유가 없다!’ 교육자들에게 시련의 시대가 왔다. 아이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힘들긴 해도 학교에서 불러주시면, 갑니다. 많은 학생들이 강연 도중 잠이 들어도, 어느 한 사람, 내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 (B.C and A.C)
바뀐 모습중 하나가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 일텐데요.
온라인 수업은 초기에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급하게 진행되다보니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만
좋은 방향으로 계속 발전할거라 봅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거의 장점이 많은거 같더라고요.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만나 서로 얼굴보며
수업듣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어요.
배우고 싶은게 많아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말이죠 ㅠ.ㅠ 흐규흐규
○ 문의 : (02) 3412-3970
○ 열린도서관 위치 : 서울시 강남구 일원로 115 삼성생명빌딩 B동 203호 (3호선 일원역 2번 출구)
※ 본 프로그램은 마스크 착용, 발열체크, 손소독제 사용 등 방역 관리 지침을 준수합니다. ※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소수 인원 모집합니다. ※ 프로그램 신청 시 홍보용 사진 촬영 및 사용에 동의하시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 프로그램 관련 공지사항은 문자로 발송되오니 회원가입 시 입력된 휴대폰번호 확인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이후로 달라지는 교육에 대해 걱정이 많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교육의 방향이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괴리가 크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합니다. '先生'이라는 한자어를 생각해 볼 때, 이런 호칭에 알맞은 사람이 되어 진정으로 앞선 삶을 살아서 후세에게 지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를 바랄뿐입니다. 또 어찌보면 바로 이런 시대에 모두가 先生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해 봅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이유.
글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니까 잠을 잔다고 하셨지요. 반만 맞는 거 같아요.
많은 아이들이 몰라도 잡니다. 안 자고 들어도 모르는 경우도 있고요,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에 몰라도 잡니다. 저 포함 아주 많은 제 주변 아이들이 그래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커밍아웃 기분이네요 ㅜㅡ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공부를 해야하는 이런 교육시스템에서는 해결 방안을 찾기가 힘들거 같아요.
Mbc 파업 때 피디님 페북 라이브 방송을 보며 피디님 글들을 첨 접한 이후 블로그 글들을 늘 ‘눈팅’만 하다 댓글을 답니다. 좋은 글 항상 잘 보고 있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공짜로 읽고 배우고 즐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글도 정말 와닿습니다. 효율성 위주의 한국 교육에 정말 큰 시련이 온 것 같습니다. 좋은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한국에 있더라면 김민식 피디님 강연도 참가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 아쉽습니다. 늘 전자책으로 한국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피디님 책과 피디님께서 리뷰해주시는 추천 도서들이 너무 읽고 싶어서 처음으로 리디북스와 밀레의 서재를 들락날락하고 있어요. 감사해요.
세대교체를 위해 49세에 조기퇴직을 했어요. 시골 도서관을 즐겨 이용하며 텃밭을 가꿉니다.
눈빛 초롱하던 아이가 수업시간 절반을 학원숙제나 다른 공부하게 학생들에게 달라고 했어요.
후배교사들에게 도움 주는 사회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직 놀고만 있어요.
많이 미안합니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더니, MBC 시사교양 피디로 일하시는 박건식 선배가 댓글을 다셨어요. '이 글을 그대로 한겨레 칼럼에 기고해보세요.' 짠돌이로 사는 찌질한 이야기라 감히 신문에 쓸 생각은 없었는데요.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의 조언이니, 용기를 내어 원고를 보냈습니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을 보는 전국의 독자들은 '방송사 피디라는 사람이 참 궁상맞게 사는구나...' 하실 거예요. 이 글에 대한 다른 반응도 있는데요. 그건 글의 끝에 붙여둡니다.)
둘째 딸이 중학교에 올라가자 코로나가 터져 온라인 개학을 했다. 스마트폰도 없는 아이인데, 원격 수업은 어떻게 듣지?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태블릿 피씨라도 구하려고 보니 유명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상당했다. 나중에 등교 개학하면 안 쓸 물건인데 굳이 비싼 걸 사야하나? 한참 고민하다 12만 원대 저가형 태블릿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온라인 개학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주문한 태블릿 피씨는 언제 와?” 갑자기 난감하다. “음....... 그게 실은 워낙 저렴한 제품이라, 해외배송인데, 확인해보니 오는데 2주가 넘게 걸린다고.” “뭐? 당장 내일 모레 개학인데 어떻게 할 거야?” 눈물을 머금고 내 노트북을 아이에게 빌려줬다. 태블릿이 오면 아이가 “우와! 이거 내 꺼야? 고마워, 아빠!”하며 돌려줄 줄 알았다.
택배로 도착한 태블릿을 본 아내와 딸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거 얼마짜리라고?” “12만원.” “응, 딱 그만한 가격일 것 같아.” “아니 뭐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을 기대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이건 너무한데? 이건 그냥 당신 써. 아이는 당신 노트북으로 계속 수업 듣고.” 딸도 옆에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엉엉,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태블릿.
이러한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더니 댓글이 달렸다. ‘아이에게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라는 글을 보고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피디님은 방송사 직원이고, 부인도 커리어 우먼이고, 베스트셀러 저자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실 것 같은데 형편이 안 된다고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후배랑 점심을 먹으면 밥은 내가 산다. 후배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그런다. “괜찮으면 회사 휴게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그러고는 회사로 돌아와 전용 머그컵에 사무실에 비치된 녹차를 타서 마신다. “형, 제가 살 테니까 그냥 커피숍으로 가시죠?” “정 사고 싶으면 나중에 내가 퇴직하고 찾아오면 그때 밥을 사주면 된다. 밥을 굶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면 커피 값은 아낄 수 있잖아?” 후배는 속으로 구시렁거릴 거다. ‘저 형은 왜 저렇게 궁상맞게 살까?’
짠돌이로 사는 덕에 즐겁게 산다. 돈을 쓰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불행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20대에 첫 직장을 그만 둘 때나, 40대에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할 때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한다. 돈 때문에 괴로움을 참고 살지는 않는다.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란 결국, 아낌없이 돈을 쓸 형편은 안 된다는 뜻이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산다. 내일 당장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 가족, 지위, 재산,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세로 살기에 무언가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 없다. 최악을 각오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면 최선의 삶을 살게 된다.
나의 가장 큰 취미 중 하나가 자전거 여행이다. 나는 24년 된 자전거를 탄다. 낡은 자전거를 끌고 주말마다 춘천, 양평, 강화도 등 서울 근교 여행을 다닌다. 몇 년 전 추석에는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를 한 적도 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전거를 바꾸자는 유혹이었다. 꾹 참고 견뎌낸 덕에 지금도 24년 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돈을 벌고 싶을 때 버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운이 좋아야 돈이 벌린다. 돈을 쓰고 싶을 때 참는 게 진짜 실력이다. 운이 좋아 들어온 돈도 안 쓰고 모아야 늘어난다. 운 좋게 큰돈이 들어왔을 때, 소비 수준을 그에 맞춰 올려버리면, 나중에 고생한다. 돈을 버는 게 실력이 아니라, 아끼는 게 실력이다.
(글을 본 여동생이 메시지를 보냈어요.
'오늘 오빠 글을 읽으며 순간 아빠가 보여서 흠칫했어.
같이 사는 여자는 참 싫어할 모습이야.
열심히 사는 나를, 아내가, 딸들이 왜 싫어하나 궁금해지면 참고해...'
아버지 흉을 보면서,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간 아들의 이야기... 네, 사는 건 이래서 참 어렵군요. ^^)
24년된 저의 애마랍니다. 전국일주를 위해 뒤에 짐받이를 달고 배낭을 맸어요. 한때는 날아다니는 스포츠카였는데, 이제는 늙은 주인을 태우고 다니는 트럭이 된 느낌? 잔 고장이 없어 열흘을 전국을 뛰어도 단 한번도 속 썩인 적이 없어요. 이런 친구 버리면, 저 벌 받습니다. 올 가을에도 또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나려고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끼리 다정한 동행이 되기를~
How can people ride a bike so long?
When I ride a bicycle, my ass is really painful.
I bought a coution so it lowers pain a bit.
The shop owner said that you will get used to it.
Nevertheless, I like my bicycle.
I think it's my friend already.
I hope I use it for a long time like you.
If I were you, I wouldn't want to change the bicycle regardless of money.
It's not just a bicycle.
It has a lot of memories I guess.
I hope it doesn't break down forever.
Have a good day my mentor!
Thank you for reading my comment~!
저는 한겨레 신문을 보며 피디님 글을 꼭 읽는 사람 중 한명이에요. 간혹 왜 안나오지하며 기다리기도 하구요^^
오늘자 신문을 보니
어. 이건 블로그에서 읽은건데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새글을 읽어보고싶은 맘이 있어 잠깐 그랬지만 좋은 글은 나눠서 읽어야하니 한번 더 읽으며 신문을 덮었네요.
자기반성도 하면서 그래도 바뀌긴 쉽지않아서 걱정이지만
점점 나아지겠죠.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단점을 알기에, 나는 그것보다는 조금은 나아지려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PD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 전 블로그에 '슬기로운 클럽 생활'을 올리면서 제가 어쩌다 12만원대 저가형 태블릿을 사게 되었는지 글을 올렸지요. 그때 댓글이 올라왔어요. '아이에게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라는 글을 보고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피디님은 방송사 직원이고, 부인도 커리어우먼이고, 베스트셀러 저자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실 것 같은데 형편이 안 된다고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음.... 좋은 질문이군요.
회사에서 후배랑 점심을 먹으면 밥은 제가 삽니다. 후배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그러죠. '괜찮으면 회사 휴게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그러고는 회사로 돌아와 전용 머그컵에 사무실에 비치된 녹차를 타서 마십니다.
"형, 제가 살 테니까 그냥 커피숍으로 가시죠?"
"정 사고 싶으면 나중에 내가 퇴직하고 찾아오면 그때 밥을 사주면 된다. 밥을 굶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면 커피값은 아낄 수 있잖아?" 후배는 속으로 궁시렁거리겠지요. '저 형은 왜 저렇게 궁상맞게 살까?'
짠돌이로 사는 덕에 즐겁게 삽니다. 돈을 쓰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불행을 감내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사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수도 있는 거지요.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란 결국, 아낌없이 돈을 쓸 형편은 안 된다는 뜻입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삽니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고 믿기에, 오늘 제 삶이 행복합니다. 저는 내일 당장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직업, 가족, 지위, 재산,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제 가장 큰 취미 중 하나가 주말 자전거 여행인데요. 20년 넘은 낡은 자전거를 끌고 춘천이며, 양평을 다니고 있어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새 자전거를 사고 싶은 유혹이 찾아왔어요. 꾹 참고 견뎌냈지요. 지금도 저는 20년된 자전거를 탑니다. 여행을 즐기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돈을 벌고 싶을 때 버는 건 실력이 아니라 운입니다. 운이 좋아야 돈이 벌립니다. 돈을 쓰고 싶을 때 참는 게 진짜 실력입니다. 운이 좋아 들어온 돈도 안 쓰고 모아야 늘어납니다. 운 좋게 큰 돈이 들어왔을 때, 소비 수준을 그에 맞춰 올려버리면, 나중에 고생하기도 합니다. 돈을 버는 게 실력이 아니라, 아끼는 게 실력입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궁상맞은 이야기지만, 나름의 개똥철학이라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The person who is happy without spending money.
I think I need to be the person.
There are a lot of things to make me happy without money such as reading books, visiting your blog, and just sleeping etc.
처음에 피디님의 책과 만나면서 저와 다르다는건 짠돌이 개똥철학이었고
지금도 변함없습니다.말 그대로 개똥철학이고 함께 사시는 아내분은 그 철학을 어떻게 이해하실까도 몇번인가 생각나더군요. 피디님은 좋은점도 많은데 혼자서만 아주아주 잘 노시는분같아요 ㅋㅋㅋ
돈을 쓰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은 돈을 벌기위해 불행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은 특히나
개똥철학입니다.돈을 벌기위해 일을 하지만 그 일이 사회에 기여하고공부하면서 할수있는것보다 더
할때 성취감과 그에따른 보수가 나와 사고싶고 먹고싶고 가고싶은곳에 갈수있는 에너지가 되는게
돈을 벌고 일하는게 저에게는 사는이유이고 즐거움입니다.
저도 그 철학이 옳다고 생각해요.
소비를 많이 하고 나면 뒤돌아서서 마음이 허..하더라고요. 매번.
집 안에 널려있는 새 물건들은 저를 참 불편하게해요.
성향적으로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집 안이 아주 심플하답니다 ^^
빈 공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래야 그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저도 돈 벌기에 매여서 불행을 감내하지 않을 겁니다.
피디님. 화이팅!! ~^^
나는 여행광이다. 대학 졸업반이던 1992년에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30년 가까이 매년 해외여행을 다녔다. 인도 네팔 배낭여행, 탄자니아 세렝게티 사파리, 남미 파타고니아 트레킹까지, 해마다 연차를 소진하며 여행을 다니는 게 삶의 낙이다. 여권을 갱신하러 구청에 갔더니 접수처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신원조회에서 걸리는데요?” 영문을 몰라 경찰서에 문의해보니, 대법원 재판에 계류된 상태라 여권 발급이 불가하다고 했다.
2012년 문화방송 파업 때, 노조부위원장으로 일하던 나를 검찰은 업무방해죄로 기소했다. 재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사님은 제가 불법 폭력 파업을 선동하는 종북좌파라고 주장하지만, 저는 자유민주주의자입니다. 언론사 직원인 내게 가장 소중한 자유는 언론의 자유고, 공영방송사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믿습니다.”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한 낙하산 사장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검찰은 내게 징역 2년형을 구형했다.
2014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은 무죄를 판결했다. 문화방송 파업은 언론의 자율성을 지키고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는 언론사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책무와 관련이 깊고, 그 의무를 지키기 위한 파업은 업무방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방송 독립을 지키는 노력에 있어 새로운 판례가 확립될 것이다.
이제 나는 여권이 없어 출국도 못한다. 사회적 관계망에 올라오는 해외여행 사진을 볼 때마다 배가 아팠다. ‘제발 내 눈에 여행 사진 좀 안 보였으면 소원이 없겠네!’했더니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 이제 누구도 당분간 해외여행을 다니기 힘들게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상한 방식으로.
드라마 피디로 일할 때는 새벽 3시에 촬영을 마치고 집에 왔다가 아침 6시에 일어나 다시 나가는 통에 아이들과 놀 수가 없었다. 드라마를 마치면 휴가가 나오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너무 바빠 시간이 없었다. 밤 10시가 넘도록 학원 앞에서 기다렸다가 파김치가 된 아이를 데려올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애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붙어 지내면 원이 없겠네!’ 이제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에 온라인 수업에, 온 식구가 집안에 갇혀 지낸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상한 방식으로.
매년 여행을 다니던 시절에는 그게 행복인줄 몰랐다. 살아보니 좋은 시절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는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먼 훗날에는 그리워질지 몰라. 기왕에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면 순간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코로나19의 종식이 더 빠를까, 2012년 검찰이 시작한 소송의 마무리가 더 빠를까? 대법원 판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건 잘 알고 있다.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 한 가지를 알려드릴까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믿고 맡기는 것이다. 국민배심원단, 1심 법관, 그리고 고등법원 판사들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문화방송의 2012년 파업은 무죄라는 것이다. 그 판단을 믿고 존중하면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숱한 해고자가 나오고 백여 명이 징계를 받으면서도 문화방송 노조원들은 170일 동안 싸웠다. 언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모두가 권력의 눈치를 살피던 그 엄혹한 시절에 법관들이 언론노조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주는 용기 있는 판결을 내렸다. 많은 이들이 고난의 시간을 보내며 귀한 승리를 일구어냈다.
나와 함께 노동조합 집행부로 일했던 이용마 기자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다 끝내 피고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용마의 꿈은 언론의 공정성을 지키는 노동조합의 의무를 인정받는 것이었다. 언젠가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그의 영전에 찾아가 꽃 한 송이 바치고 싶다. 이용마의 꿈은 이루어진다. 온당한 방식으로.
한때 제가 회사에서 온갖 징계를 다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대기발령, 출근 정지, 정직 6개월 등등. 동료들은 해고 빼고 모든 징계를 다 받아봤다고 저를 징계의 제왕이라 부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회사를 잘 다닙니다. 직장생활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좌절에 대처할까? 최근에 쓴 책,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를 가지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책은 제가 2011년 MBC 노조부위원장이 되고 난 후, 7년간의 싸움을 기록한 책인데요. 4개의 장으로 이뤄져있습니다.
1부. 회사를 사랑한 딴따라
어려서 춤추고 노는 거 좋아하던 딴따라가 어쩌다 예능 피디가 되었을까요? 저는 제가 방송사 피디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을 하다 외대 통역대학원에 갔습니다. 신입생 환영회를 갔다가 마음에 드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몇 번 데이트 신청도 했는데 매번 거절당했죠. 거절당한다고 상처받지는 않습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거든요. 어느 날 그 후배가 대학 시절 TV 방송반 활동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럼 너도 방송사에 지원하지 그랬어? 아나운서나 기자를 하면 참 잘 어울릴 텐데 말이야.” 점수 따려고 그냥 한 말이죠. 그런데 후배가 진지하게 말을 받았습니다. “선배는 방송사 입사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그게 어려워?” “저와 같이 방송반 하던 선배들이 몇 년을 준비했는데, 방송사 취업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 그래?” 문득 ‘그 어렵다는 방송사 시험에 내가 붙으면, 점수를 좀 따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MBC에 지원했는데 한 번에 붙었습니다. 아마 면접에서 1년에 책을 200권씩 읽는다는 얘기가 먹혔나 봐요. MBC에서 예능 피디로 일하면서 그 후배와 결혼을 했습니다. 예능 조연출 때, 주 평균 노동시간이 100시간 정도였어요. 월요일 아침에 캐리어 끌고 출근하고요, 편집실 쇼파에서 자고요. 일요일 점심에 퇴근해서 빨래 돌리고 다음날 출근합니다. 신혼여행 갔다 와서 저는 매일 야근과 밤샘 편집을 했어요. 결혼하고 한 달째 되던 날, 처음으로 아내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편집을 서둘러 마치고 퇴근해서 강남의 유명한 식당에서 아내와 둘이 앉아 데이트를 하는데,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불안하죠? 네, 회사 선배에게 걸려온 전화였어요. 급하게 회의를 소집했으니 다시 여의도 회사로 오라고요. 아내 표정이 어두워지더군요. ‘설마 메뉴 다 시켜놓고 혼자 내빼는 건 아니겠지? 바람맞은 여자처럼 오늘 이 레스토랑에서 나 혼자 저녁을 먹는 건 아니겠지?’ 아내를 보며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내가 MBC에 온 이유가 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데, 내가 지금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저 사람을 바람맞히는 게 맞나?’ 전화기에 대고 말했습니다. “지금 가족 모임 있어서 나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다시 출근하기는 어렵습니다. 선배님이 회의를 하시면, 제가 내일 아침에 작가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겠습니다.” 연출 선배가 어이없어 했죠. “민식 씨,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민식 씨와 일 못 해.” “그럼 부장에게 가서 보고하십시오. 김민식과 일 못 하겠으니까 다른 조연출을 배정해달라고요.”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씩 웃었죠. “걱정 마. 안 들어가도 돼.” 신혼인 아내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회사와 가정 사이에 선택이 필요하다면, 나는 당신을 택하겠다.’ 다음 개편 때 바로 잘렸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쫓겨났는데요, 하필 낮은 시청률 때문에 맥을 못 춰 다들 기피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시트콤 《논스톱》이었죠. 새 프로그램 맡고는 미친 듯이 일을 했습니다. 팀에서 한 번 쫓겨나면 선배 잘못인지, 내 잘못인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두 번 쫓겨나면 내가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절대 쫓겨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일했죠. 신인이던 조인성 장나라 등이 출연한 《뉴 논스톱》이 대박이 나고요. 저는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을 탑니다. 쫓겨 간 프로그램이 제 출세작이 되었지요. 고분고분 참고 순응하는 대신 괴로움에 스스로 안녕을 고한 덕에 즐거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살다가 나를 괴롭히는 인간을 만나면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양반은 내게 또 어떤 행운을 안겨줄까?’ 시련이 닥쳐오고, 결단을 내릴 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누구를 더 사랑하는가, 회사 상사인가, 가족인가?
2부. 딴따라의 싸움이 시작되다
이 책 2부에서는 예능 피디가 파업에 앞장서게 된 과정이 나옵니다. 저를 피디로 뽑아준 MBC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장가도 들었으니까요, 이 얼굴에. 2011년에 MBC 노조 집행부를 새로 뽑는데, 예능과 드라마 피디를 대표할 부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예능 출신 드라마 피디인 제가 맡아주면 좋겠다고요. 회사가 너무 고마워서 빚 갚는 마음으로 맡았습니다. 2012년에 파업이 시작되었죠. 170일간 파업을 했는데요. 가장에게는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6개월간 월급을 못 받는다고 생각해봐요. 그런데도 왜 했느냐. MBC를 향한 제 사랑이 너무 지극한 탓입니다. 직장 생활의 기준은, 돈이냐, 일이냐 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윗사람 눈치를 살피고요, 아랫사람 괴롭혀서라도 성과를 내려고 합니다. 기자도 그래요, 높은 분들 심기에 거슬리는 보도를 하지 말라고 하면 취재를 아예 안 하고, 바른말하는 출연자를 자르라고 하면 바로 자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심지어 양심도 팔아요. 자,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을 판 사람이 회사 상사의 말만 들을까요? 누구든 돈만 주면 다 들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돈 받고 갑질 비리 눈감아 주고, 돈 받고 배우 캐스팅하고, 돈 받고 뉴스 내줍니다. 방송사 피디로 입사했다가 비리 사범이 되어 회사를 떠난 사람, 많이 봤어요. 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못 정한 탓입니다. 돈을 받고 힘센 자의 뒤를 봐주고, 돈 받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람, 뭐라 부르죠? 네, 용역 깡패입니다. 반대로 돈 한 푼 안 받아도 좋으니, 옳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은 참 언론인이 됩니다. 결국 인생의 모든 문제는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돈보다 회사를 더 사랑하는 피디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MBC가 망가질 때,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남들에게 정권의 하수인이라 손가락질 받는 용역깡패가 되기보다는, 좋은 언론사라고 칭찬받는 회사에 다니고 싶었거든요. 회사를 너무 사랑한 결과,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3부. 딴따라, 버티기는 계속된다
2012년 MBC 노조는 언론장악에 반대해 170일간 파업을 했습니다. 이용마, 최승호, 박성제 등 해고자도 여럿 나왔지요. 끝내 파업에서 졌고요. 2012년 대선이 끝나고 다들 멘붕에 빠집니다. MBC 정상화 약속을 어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거든요. 여러분은 좌절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책을 읽고 저자 강연회를 찾아다닙니다. 2013년 초, 법륜 스님이 출판 기념회를 하신다기에 달려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제 직업은 드라마 피디입니다. 작년 한 해, MBC 노조부위원장으로 파업에 앞장섰습니다. 그 바람에 구속영장 두 번, 정직 6개월, 대기발령 등 파란만장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저는 언론과 방송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파업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대선 결과를 보니, 제가 한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노력인가 싶어 괴롭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상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을 내려야 할까요?”
법륜 스님이 이런 답을 주셨어요.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이 어디에서 출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긍정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노력한 사람은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래,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뭐’ 하고 가볍게 마음을 돌이킵니다. 그러나 세상을 부정하고 ‘이런 세상에서는 죽어도 못 살겠다. 괴로워서 못 살겠다. 반드시 바꿔야만 해’라고 마음먹은 사람은 그 시도가 실패하면 좌절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쌓입니다. 이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데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긍정하고, 다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래야 상처가 깊지 않습니다.”
캬아, 정말 멋진 말씀 아닙니까?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싸움이라면, 졌다고 너무 크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요. 저는 상처를 다스리고 싶었습니다. 패배의 괴로움이 너무 크면 그 분노가 자신을 다치게 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향하거든요. 드라마를 보면 많이 나오지요. 좌절당한 사랑 때문에 결국 괴물이 되는 사람.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4부. 다시 싸워야 할 시간이 온다
마지막 4부는 유배지에서 몇 년을 버티던 제가 2017년에 다시 싸우기 시작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직장 생활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협력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 개인으로서는 상대방이 협력을 할 때, 배신을 하면 이익이 큽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하고 배신을 선택합니다. 둘 다 배신을 하면 최악의 경우가 됩니다. 개인에게 유리한 선택이 공동체로서는 최악의 수가 됩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필승 전략을 소개합니다. ‘팃포탯’이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입니다. 처음엔 무조건 ‘협조’를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의 이전 행동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즉 상대방이 ‘협조’하면 나도 ‘협조’하고, 상대방이 ‘배신’하면 ‘배신’으로 응징합니다. 선하게 게임을 시작한 후, 상대방의 호의에는 호의로, 악의에는 악의로 대응한다는 ‘상호성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지요. 직장이든 국가든 공동체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입니다. 때로는 이런 신뢰를 악용하는 이들이 나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웃으며 용서하면 모든 일이 다 좋아질까요? 그럼 피해를 감내하며 싸운 이들은 그걸 보고 좌절합니다. ‘부당한 손해를 감수하며 싸운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부역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죠. ‘나쁜 놈들이 오면 부역하고, 착한 놈들이 오면 화합을 외치면 되겠구나.’ 이렇게 가면 조직은 갈수록 망가집니다. 2017년, 제가 혼자서 싸우기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이 싸움을 말렸어요. 어차피 놔두면 좋아질 텐데 왜 굳이 힘들게 싸우느냐고. 여러분, 그냥 둬서 좋아지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응징이 필요합니다. 호구가 될 것이냐, 투사가 될 것이냐. 다 함께 사는 길은 후자라고 믿습니다.
좌절이 오잖아요? 일단 복수를 다짐하고 즐겁게 사세요. 언젠가 기회가 오면 당한 만큼 갚아주면 됩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는 건,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당한 만큼 반드시 갚아줘야, 다음에 똑같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많이 무서웠습니다. 인사위 불려갈 때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즐겁게 싸우고 싶었어요. 7년간의 유쾌한 싸움의 기록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직장 생활을 하며, 좌절을 겪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김 민식pd님 징계의 제왕 !!
1년에 책을 200권 읽으신분 !
좌절이 올때 책을읽고 저자강연회를 찾으시는 pd님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좋은자세가 있다는 법륜스님의 답변을 pd님의 강연을 통해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하며 눈에 눈물이 고이는것은 직장생할을 하며 좌절을 이겨내려고 버티고있는 내마음을 pd님은 오랜기간 이겨내시느라 애쓰시면서 결국은 승리한 pd님의 그 깊고깊은마음을 어찌 헤라릴수 있을까?
좌절로 괴물이 되지않고 승리한 김 민식pd님의 인간승리 !!! 존경하고 존경합니다.
김 민식pd 7년간의 싸움을 한 내면세계는 어떻게 말로 다할수 있을까요???
괴물로 되지않고 인간승리하신 김민식pd님의 삶을 진하게 응원합니다. 화이팅 !!!
첫 직장에서 치과 외판 사원으로 일했는데, 방문 영업은 쉽지 않았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딱 세일즈맨 티가 났다. 치과에 웃으면서 들어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손님이 많은 치과에 가면, 바쁘다고 귀찮아했다. 손님이 없는 치과에 가면, 오라는 손님은 안 오고 잡상인만 꼬인다고 싫어했다. 돈 벌기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외판원으로 일하려면 두 가지 양극단의 자세가 필요했다. 하나는 ‘자뻑’이요, 또 하나는 겸손이다. 내가 파는 의료기기 제품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안고 일했다. ‘아, 이 좋은 기계를 안 쓰시다니! 이것만 있으면 시간도 벌고 돈도 벌 텐데!’ 이런 마음이 있어야 영업 뛸 때 발걸음이 가볍다. 나는 물건을 팔러 다니는 게 아니라, 바쁜 치과 원장님들을 도와드리러 다니는 거다. 자부심에는 부작용이 따를 때도 있다. 상대방이 자꾸 거절하면 좌절이 쌓이고, 강한 자부심은 격한 분노로 바뀌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제품을 소개해주는데 왜 만나주지도 않는 건데? 사람의 호의를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자부심 강한 세일즈맨이 분노의 화신이 되는 건 순간이다.
명함에 찍힌 회사 로고를 보자마자 호통을 치는 의사도 있었다. “너네 건 안 써!” 고객과 말싸움을 하면 영업사원의 필패다. 전문가를 만나면 배우겠다는 자세로 몸을 낮춘다. ‘이 의사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구나.’ 공손하게 여쭤본다. “저희 제품 쓰시다 불편하신 점이 있으셨군요? 혹시 어떤 점인지 알려주시면 본사에 알려 다음 제품 개발할 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면, 신제품이 나왔을 때 주문하는 원장님도 있다.
자부심과 겸손이라는 양극단의 자세는 드라마 피디로 일할 때도 요긴했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나의 자긍심은 하늘을 찌른다. ‘정말 죽이는 대본이 하나 있는데, 내가 특별히 당신에게 기회를 한번 줄까 한다.’ 미친 자존감이 있다면, 초특급 스타에게도 섭외를 시도할 수 있다. ‘이 정도 대본이라면, 출연료를 깎아서라도 하고 싶을걸?’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 요긴한 건, 자신감보다 겸손한 태도다. “이 좋은 대본을 잘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배우와 카메라맨과 편집기사 등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며 배우는 자세로 일한다.
방송가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잘나간다고 오만하지 말고, 안 나간다고 비굴하지 말라.’ 좋은 기회를 만나면 누구나 뜰 수 있다. 잘나간다고 마냥 잘나가는 것도 아니다. 막 나가다 한 방에 훅 간다. ‘무명의 신인이라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톱스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코로나19와 싸우는 한국 정부와 시민의 대응을 전하는 외신 보도를 보면, 내 나라 내 이웃에 대한 자부심이 차오른다. 당국 주도하에 빠르게 양산된 진단키트, 세계적 유례가 없는 드라이브스루 검사 시스템, 사재기 혼란 없는 높은 시민의식, 국경 폐쇄나 봉쇄령 없이 검역에 대처하는 정치적 역량 등 난세에 영웅이 난다더니, 감염병 세계적 유행을 맞아 한국의 활약이 돋보인다. 문득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한국인이라서 미안합니다. 이토록 작은 나라가, 높은 시민의식과 뛰어난 의료전문가의 역량에 국가의 품격까지 갖춰 여러분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벅차오르는 ‘국뽕’의 감동은 여기까지다.
위기의 순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이 또한 극복해내리라는 자신감.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과도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 만용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칩거의 시대에 세상은 좁고 할 일은 없다. 이 시간을 잘 견디는 것이 진짜 능력이다. 세계적 유행이 끝나기 전에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겸손한 자세로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감염의 고리를 끊자. 차오르는 자긍심을 안고 다시 겸손해져야 할 시간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마스크쓰면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라 기피하던 영국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이미지가 투명,깨끗,첨단,
민주로 이 번 기회에 많이 바뀌고 있다는
소식을 런던사는 친구가 전해주더군요
영국 사람들은 코로나 대처 중 인상적인 건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박수쳐주라고
한대요
그들의 여유와 배려가 돋보였어요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스스로 안전을 위해 바이러스 감염 되지않도록
주의해야겠지만 확진자가 다녀간 곳의
피해는 자가격리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지속될 터 나와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유발할 터이니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성을
잊지않는 한 주 보내겠습니다
인터뷰에서 기자님이 물었어요. 새 책,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를 쓰게 된 동기냐 무어냐고. "책을 쓸 때는 가버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 생각했는데, 책을 낼 무렵 다시 보니,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위한 책이었다."고 답했습니다. 긴 세월, 좌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을 살다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을 한 편 두 편 모았습니다. 책을 낸 후, 블로그 단골 손님들의 리뷰를 찾아읽습니다. (댓글로 매일 만나는 분들의 독서일기를 읽는 것 또한 제게는 감동입니다.) YES24에서 서평 공모 이벤트를 했는데 '주간우수작'에 뽑힌 리뷰가 있습니다.
'2012년, 10살이었던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저녁상 앞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때 아빠가 할머니에게 하셨던 한 마디가 생각난다. "MBC파업 했잖아." 파업이 뭔지도 모르고 뉴스에서 뭔가 소동이 일어난 것 같은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밥이 맛있어 허겁지겁 먹고 방에 들어가 미미 인형 갖고 놀았던 기억이 책의 파업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떠올랐다. 내가 읽었던 이 책의 이야기가 전개되던 그 순간에 나는 인형 놀이를 하고 있었다.'
2012년 제가 MBC 파업을 할 때, 미미 인형을 갖고 놀았다는 이 리뷰의 저자,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이길래 개인과 개인간의 싸움을 다루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읽다보니 이 책이 말하는 싸움의 기술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 간의 싸움만이 아니라 더 큰 힘을 가진 집단 혹은 권력자와의 싸움도 포함이다. 집단이나 큰 힘을 가진 사람을 상대로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을 때 더 공감가고 힘이 날 것 같다. 책에서 알려주는 싸움의 기술 본질은 개인과 개인이나 개인과 집단, 권력자나 똑같다.
싸움을 즐겁게 하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즐겁지 않은 상황, 두려운 상황에서도 즐겁게 극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서평을 읽으면서 먹먹했어요. 흔히 저자가 독자를 위로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독자가 저자를 위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버린 친구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친구를 대신해 누군가 보낸 답장을 받은 기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책을 내면 항상 저자강연회를 합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나, 후일담 등을 들려드리고, 책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지요. 코로나로 인해 모든 행사가 취소되어 독자를 만날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온라인 저자 강연회를 하기로 했어요. '당당하고 우아하게 좌절하자'가 주제입니다. 온라인 방청 사연을 받아 주말 동안 살펴보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좌절의 사연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드리면 좋을까. 이 또한 공부가 되기를 바라며 책을 다시 찾아보고 있어요.
온라인 강연회에 자리가 아직 좀 남았네요. 목요일 저녁에 시간 되시는 분, 랜선 북토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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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혜 2020.10.13 0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행이 최고~^^
은쥐맘 2020.10.13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서평이 좋아 리디북스에서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어요. 스마트폰이 좋은건 출퇴근시 두꺼운책을 손에 들지 않아도 책을 읽을수있는 거네요. 무려 읽어주기도 하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보내세요.
보리랑 2020.10.13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빛나던 모습이 경이로와 셔터를 막 눌렀는데 잊고 살았네요. 셀카가 뽀샵이라는걸 알고 다시는 프사로 쓰지 않았어요 ㅎㅎ 분노의 세상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지키도록 건강한 경계를 칠 수 있게 모범이 되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인대문의 2020.10.13 0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속 나무들이 잘 자라줘서 고맙네요.
오늘 아침 읽은 책에 무인도에 3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싫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가긴 싫고 영리하게 특별한 물건을 가져가는 건 모르겠고 저는 이 세 가지를 가져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1. 책
2, 3. 제 방에서 키우는 식물 두 종류.
식물 두 종류를 방생해서 잘 살게 하고, 즐겁게 책 읽다가 하늘로 가고 싶습니다.
덕분에 아침부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피디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오달자 2020.10.13 0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윗틈에 자라나는 나무처럼 주어진 환경탓을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책 한권에도 수만가지의 진리를 깨우치는 피디님의 삶에 대한 태도도 본받아야겠습니다.^^
달빛마리 2020.10.13 0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글을 읽으니 갑자기 <도덕경>이 생각나요.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과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요. 카톡과 sns만 하지 않아도 삶이 한결 자연과 가까워 지는 기분이에요.
언젠가부터 사진 찍는 일이 반갑지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나이듦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아서였다는 것을 루이스 헤이의 책들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충분히 멋지세요! ^^
슬아맘 2020.10.13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PD님 등산도 하시는 군요 ^^
얼마전 오른 백운대를 소재로 글을 적어 주시니
더 정감이 가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섭섭이짱 2020.10.13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SNS 게시물을 보다보면
'나는 누구?' '여기 어디' 를 느끼는데요.
제가 아는 곳과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팔로워 수.. 하트 수 , 구독자 수, 좋아요 갯수...
모든게 숫자로 표현되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집계되다보니
숫자가 모든것보다 우선시 되면서
자극적이고 혹하는 글이나 사진들을 올리고
다시 또 숫자가 많아지면 더더 자극적인걸 올리고....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리더라고요.
남과 비교하며 분노하기 보다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거에 더 시간을 쏟아야할거 같아요.
오늘도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를 얘기해주시니 이 곡이 떠오르네요
오늘 이곡을 픽해봅니다.
🎵🎶🎵🎶🎵🎶🎵🎶🎵🎶
< 가시나무 - 조성모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
섭섭이짱님! 안녕하세요!:)
저는 그런 현상을 보면 우리의 삶을 갉아 먹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SNS를 자제하고 있습니다ㅎㅎ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보다 조금 더 크고 무거운 책이라는 네모를 들고다녀요. 저를 더 살아있게 해주는 네모요ㅎㅎ
아리아리짱 2020.10.1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피디님 아리아리!
나무!
나는 나대로 뿌리내린 이 자리에서 무심히 살아갈 뿐이다.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10.1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영감을 주는 글이에요 ㅎㅎ
아빠관장님 2020.10.13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는 내내 글으 소재가 바뀔 때마다,
참 깊고 많은 생각을 하게하네요...
'세상 어떻게 살까?'
'어떻게 SNS를 활용해야 할까?'
'고민이 있을 때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 어떻게 기를까?
등이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꿈트리숲 2020.10.13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나무도 옛날엔 질투를 하지 않았을까요?
질투해보니 별 볼일 없고 나만 손해더라고
깨달았기에 있는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유전자가
대를 이어 자손에게 전해져서 지금 우리가 만나는
나무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의연하게 늠름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아요.
나무는 우연히 찍히든 정성들여 찍든 한결같은
모습이어서 참 부러워요. 얼짱각도가 뭔가요?
할 정도로 굴욕샷이 없어요. 비결 좀 전수받고
싶네요.
질투하지 않고 일단 성실하게 살아보면 비결
알 수 있겠지요? ㅎㅎ
김주이 2020.10.13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식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책이네요.
나무가, 식물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네요.
묵묵히 씨 뿌려진 그 곳, 자리를 지키며 빗물 해빛 모든 것들을 열심히 흡수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요.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나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제 나무를 볼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모험생띠띠 2020.10.14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위 틈의 나무를 보시고
이렇게 좋은 생각의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피디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에가오 2020.10.14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들 늘 감사해요~^^
㏂㏘ 2020.10.15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실한 나무에게 나는 인생을 배운다.
한결같은 나무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싶어요.
옥포동 몽실언니 2020.10.16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모든 글이 좋지만 오늘 글은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좋아요. ㅋㅋ 뭔가 표현이 참 이상하게 됐네요. 생각하지 못 했던 부분들, 나무에 대한 은우로 풀어내신 이야기, 너므 절절히 와 닿는 진짜/가짜에 대한 현대인들의 고민.. 그걸 이렇게 짧게, 잘 풀어서 표현해내시는 피디님 능력에 오늘도 크게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20.10.17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