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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어떤 작별 인사 이용마 기자의 삶을 다룬 다큐가 나옵니다. 지난 여름, 제작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고인의 삶에 대해 인터뷰를 해달라고요. 문득 난감했어요. '이용마 기자가 떠난 후, 나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회사를 떠나 칩거중이라고 촬영을 피하고 도망다녔어요. 담당 피디의 전화를 피했더니, 문자가 왔어요. '^^ 아이고 형님, 형하고 나하고 무슨 원수도 아닌데 못할 말이 어디 있어요. 통화 좀 합시다요~~~' 내가 기억하는 이용마 기자의 삶에 대해 말해달라는 후배의 요청을 끝끝내 떨칠 수 없었어요. 결국 촬영에 응했지만, 살아남은 자로서 부끄러운 마음 한가득입니다. 피디가 물었어요. "이용마에 대한 김민식님의 생각이 점점 바뀐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더보기
스무살의 내가 보낸 편지 신문 칼럼으로 난리가 났을 때,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었죠.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인터넷을 하지 않으셔서 글의 반응을 모르셨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을 꺼내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죠. “완아. (어머니는 저를 도완이라는 아명으로 부르십니다.) 네가 예전에 쓴 칼럼은 항상 엄마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는데, 이번 글은 헷갈리더라. 책을 많이 읽는다는 칭찬인지, 아버지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는 비난인지.” “엄마,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렇게 딱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좋은 일을 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는 거죠. 엄마 아빠, 둘 중 누가 좋고, 누가 나빴는지 제가 감히 어떻게 판단하겠어요. 다만 아버지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어머니에게.. 더보기
고독을 선택한 이유 2013년 무렵, 저는 참 외로웠어요.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다 파업에 앞장선 후, 정직 6개월, 대기발령, 교육발령 등 징계를 받았지요. 경영진에 미운털이 박혀 피디로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읽은 책이 있어요. 2005년에 나온 책인데요. 부제가 ‘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였어요. 저자이신 최재천 교수는 이 책에서 고령화 사회란 모두가 외로워지는 세상이라고 하셨어요. 직장을 나와 은퇴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부부가 같이 해로하면 좋겠지만, 초고령 시대에 누군가는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노후에 홀로 지내는 시간도 길어져요. 긴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삶을 이모작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아가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어요. 수렵채집부터, 농업, 공업에 이르.. 더보기
나무도 질투를 할까? (오늘 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예능 피디로 일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리얼리티 프로는 진짜 리얼인가요?” 답변하기 참 난감하다. 세상 모든 것을 진짜와 가짜, 둘 중 하나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나쁜 짓도 살짝 하는 좋은 사람일까, 남들이 볼 때만 좋은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일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카메라로 찍는 순간, 출연자가 하는 행동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남이 찍은 내 사진을 보면 화들짝 놀란다. ‘누구세요?’ 내가 찍은 셀카와 우연히 찍힌 모습은 사뭇 다르다. 카메라를 의식할 때, 나는 최대한 선한 표정을 짓는다. 부지불식중에 찍힌 사진을 보면, 탈모가 심하고 배 나온.. 더보기
되고 싶은 건 없고, 하고 싶은 건 많고 예전에 대학에서 제안이 왔어요. "피디님, 방송사에서 오래 일하셨는데, 이제 새로운 도전은 어떠세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희 학교 교수직을 제안하고 싶습니다만..." 조건을 들어보니 너무 과분한 제안이라, 깜짝 놀랐어요. 고민 끝에 현재로서는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사양하겠다고 했어요. 연락 주신 분이 놀랐어요. "이건 정말 좋은 기회에요, 피디님.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잘 맞는 일이라 생각하는데요." 부족한 게 많아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나중에 아내에게 혼났어요. 정년 연장의 기회를 왜 거절하냐고. 글쎄요, 저는 교수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저는 되고 싶은 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많지. 재미난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책도 쓰고 싶고요. 여.. 더보기
요즘 시대 학교 풍경 (오늘 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1년 전, 대학에 인문학 특강을 갔다.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졸음을 참지 못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수준 이하의 강의를 하는 바람에 괜히 학생들의 시간만 빼앗은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담당 교수가 민망해하는 나를 위로해줬다. 요즘 대학생들이 많이 힘들다고. 스펙도 쌓고 과제도 하고 알바도 해야 해서 잠이 부족하다고. 외부 강사 특강은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고, 취업 추천서와도 관계가 없어 그 시간에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이도 있다고. 위로삼아 하신 말씀에 나의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로구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농땡이를 피우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를 혼내는 방법이 뭘까? 칠판에 문제를 적고 풀이 과정을 알려준 다음, 졸고 있는 학.. 더보기
아끼는 게 실력이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더니, MBC 시사교양 피디로 일하시는 박건식 선배가 댓글을 다셨어요. '이 글을 그대로 한겨레 칼럼에 기고해보세요.' 짠돌이로 사는 찌질한 이야기라 감히 신문에 쓸 생각은 없었는데요.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의 조언이니, 용기를 내어 원고를 보냈습니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을 보는 전국의 독자들은 '방송사 피디라는 사람이 참 궁상맞게 사는구나...' 하실 거예요. 이 글에 대한 다른 반응도 있는데요. 그건 글의 끝에 붙여둡니다.) 둘째 딸이 중학교에 올라가자 코로나가 터져 온라인 개학을 했다. 스마트폰도 없는 아이인데, 원격 수업은 어떻게 듣지?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 태블릿 피씨라도 구하려고 보니 유명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상당했다. 나중에.. 더보기
인생을 즐겁게 사는 기준 얼마 전 블로그에 '슬기로운 클럽 생활'을 올리면서 제가 어쩌다 12만원대 저가형 태블릿을 사게 되었는지 글을 올렸지요. 그때 댓글이 올라왔어요. '아이에게 노트북을 사줄 형편은 안 되고'라는 글을 보고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피디님은 방송사 직원이고, 부인도 커리어우먼이고, 베스트셀러 저자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실 것 같은데 형편이 안 된다고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음.... 좋은 질문이군요. 회사에서 후배랑 점심을 먹으면 밥은 제가 삽니다. 후배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그러죠. '괜찮으면 회사 휴게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그러고는 회사로 돌아와 전용 머그컵에 사무실에 비치된 녹차를 타서 마십니다. "형, 제가 살 테니까 그냥 커피숍으로 가시죠?" "정 사고 싶으면 나중에 내가 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