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클럽 멤버가 올린 독후감에 답글로 쓴 편지를 모아봤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제 나름의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스무명의 비공개 모임에서 회원 전용으로 올리는 사적인 대화도 있지만, 그 중에서 블로그로 가져와 다시 나누는 글도 있어요. 이렇게 하면 사적인 대화를 할 때도 더 공들여 글을 쓰고, 블로그 글감도 늘어나고, 1석2조. ^^)
안녕하세요, 김민식입니다. 와! 아침에 일어나 밤사이에 올라온 독후감을 읽는 게 제 삶의 새로운 낙이 되었어요. 트레바리를 시작하기를 정말 잘 했네요. 매번 리뷰를 읽을 때마다 책의 핵심을 콕콕 집어서 복습해주시는 일타 강사님을 만난 기분이에요. 과목은 시간관리, 교재 저자는 류비셰프, 거기에 매 시간마다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그 과목에 대해 자신이 파악한 핵심을 일러주십니다. 이거 완전 꿀인데요?
'책을 읽는 초반, 시간통계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장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틀에 꽉 짜여진 삶을 살면서 과연 행복했을까?,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던 걸까?’ 였다.'
이 대목을 읽으며 생각해봤어요. 그러게요. 어쩜 무척 팍팍한 삶인데, 나는 왜 스무살에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을까? 당시 제 인생이 너무 꿀꿀했기 때문이지요. (꿀이, 한 글자면 행복인데, 두 글자면 불행이네요? ^^)
당시 내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기에 탈출하기 위해 뭐라도 시도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제 앞에 류비선생이 나타나서 딱 길을 제시한 거지요. 만약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보며 '뭘 이렇게까지 시간관리를 해야 하나?'라고 느끼신다면 다행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살만하다는 뜻이에요. 이미 여러분은 행복한 시간으로 하루하루 채워가고 있는 겁니다. 만약 제가 류비셰프를 나이 50이 넘어 처음 읽었다면, '에이, 무슨 인생을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 난 이제 그냥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하고 안 읽고 넘겼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책은,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맞는 책이 있고, 맞지 않는 책이 있는 거죠.
평소 혼자 책을 읽을 때는 내게 맞지 않는 책은 읽다 말거나 아예 집어들지도 않았겠지만, 트레바리 독서모임을 하며 함께 읽을 때는 의무감에 끝까지 읽게 되고, 그냥 중도 포기했다면 놓쳤을 결말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이게 독서 모임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만나서 하는 사적인 독서모임도 있는데요. 서로 추천해주는 덕분에 혼자라면 찾지 못한 보물을 만나기도 하거든요.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해 죄송하다고 리뷰를 올리신 분이 있었는데요.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저도 완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을 반드시 정독으로, 숙독으로, 완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람을 못 만나는 사람은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럼 부담이 생겨 새로운 만남이 힘들어지거든요.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꼭 꼼꼼히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면 책을 집어 드는 마음이 더 쉽게 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완독에 대한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원들의 독후감을 읽다 문득 깨달았어요. 아, 내가 1980년대 말에 류비셰프를 만난 건 행운이었구나.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대학생 때 1년에 200권의 책을 읽었냐고 묻는데요. 1989년에는 도서관 말고 딱히 갈 곳이 없었고, 무협지나 대하소설을 읽는 것 말고는 딱히 재미난 게 없었어요. 그랬던 시절이지요. 류비셰프를 만난 당시 저는 삶에 별 의욕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고... 요즘처럼 다양한 미디어나 엔터테인먼트가 있는 시절도 아니었고. 그래서 저는 마음만 먹으면 류비셰프처럼 살아볼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내가 지금 20대로 살면서 이 책을 읽었다면 류비셰프의 삶이 거의 서커스 수준의 놀라운 기교처럼 보였겠구나 싶어요. 지금은 우리의 집중을 방해하는 무수한 기술들이 혼재해 있는 시대니까요. 역시 삶에서 중요한 건 운입니다. 제가 독서광이 되고 시간 관리의 습관을 만든 건 시절 인연이 작용한 덕인 거죠.
요즘은 이렇게 살기 참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어쩌면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과학자의 삶에 대해 책을 읽는 건 고고학 연구인지도 몰라요. 화석처럼 되어버린 시대의 삶에서 무언가 지식과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책을 보면 류비셰프의 5가지 삶의 원칙이 나옵니다.
1.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는다.
2. 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
3.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
4. 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
5.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서 한다.
직장 생활할 때는 이런 원칙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기 싫어도 일을 했고, 시간에 쫓기며 일을 했고, 피로하고 심지어 아파도 일을 했거든요. 잠은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잤고요. (드라마 촬영할 때.) 즐거운 촬영이라고 시작했는데 시청률이 망하면 부담감에 괴로워지기 일쑤였어요.
은퇴를 하며 류비셰프의 다섯 원칙을 되새겨봅니다.
1.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는다. (정규직이여, 안녕....)
2. 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 (블로그 연재도 주2회로 줄였습니다. ^^)
3.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 (피로를 느끼기 전에 미리 쉽니다. ^^)
4. 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 (저는 일곱 시간이면 충분한 듯...)
5.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서 한다. (홀수달에는 일하고 짝수달에는 여행을 다닙니다.)
피디란 결국 시간관리하는 직업입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방송을 만들 것인가. 제게 주어진 시간이란 배우의 시간, 스탭의 시간입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작가/배우/촬영진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늘 그 고민을 하며 살았어요.
'더 이상 연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라고 물어보면 웃으며 '네, 이제는 특집 인생을 살려고요.'라고 합니다. '특'강과 '집'필을 하며 사는 인생. 정규 편성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는 매주 방송을 마감하느라 힘들었어요. 이제 특집만 합니다. 즉, 내가 하는 일을 내 일정에 맞춰서 하는 거죠.
퇴사를 하고 요즘 저는 하루 24시간의 주인으로 삽니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지금 저의 시간의 가치는 더 커졌어요. 그때는 하루 중에 버리는 시간도 많았거든요. 일례로 저는 매일 3시간씩 출퇴근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전철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겸해서 통근을 하기도 했지요. 이제는 통근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침실에서 나와 다섯 걸음을 걸으면 일터입니다. (죄송합니다, 염장 아닙니다. ^^ 여러분도 곧 이렇게 사실 겁니다.)
퇴사하고 깨달았어요. 내 시간의 가치는 은퇴 후에 극대화되는구나. 주위를 둘러보니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후회와 불안 속에서... '아, 회사를 더 오래 다녀야 하는데 승진 경쟁에서 밀려 너무 빨리 잘렸네...' '아, 기나긴 노후 동안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퇴사 후의 외로움이 가져다주는 불안과 공포를 설렘과 즐거움의 시간으로 바꿔보자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외로움 수업>까지 썼는데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가치는 더 커집니다. 류비셰프의 삶에서 배워 우리도 노후의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잡지 인터뷰하며 건진 사진을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이렇게 실물보다 훠얼씬 잘 나온 사진은 귀하거든요. 자꾸 써먹어야해요. ^^)
![](https://blog.kakaocdn.net/dn/XOYJo/btsLSom3S3O/yBhCOsIKai6ZYt69dcRpX1/img.jpg)
'공짜로 즐기는 세상 > 중년의 시간관리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비셰프 대신 쓴 답장 (16) | 2025.01.27 |
---|---|
시간의 주인이 되자 (19) | 2025.01.20 |
신뢰 자본과 자유의 의미 (12) | 2024.10.14 |
수능을 마친 고3 여러분에게 (14) | 2023.12.04 |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게 소원입니다. (13) | 202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