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 왕과 신하가 살았어요. 왕은 항상 맛있는 걸 먹었지만 신하는 그럴 수 없었죠. 맛있는 건 왕이 독차지했고 신하는 맛이 없는 것도 불평 없이 먹어야 했어요. 왕은 훌륭한 궁전에 살면서 늘 한가롭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신하는 그럴 수 없었어요. 나라의 재정 관리를 위해 경제학을 배워야 했고, 다른 나라와의 교섭을 위해 외국어를 배워야 했어요.
생각해 보면 우리 인류는 신하와 비슷하고, 침팬지와 고릴라 같은 유인원은 왕과 닮았어요. 유인원은 삼림이라는 궁전에서 살았어요. 그곳엔 먹을 것이 풍부했고 육식 동물로부터 공격받을 위험도 적었죠. 반면 초기 인류는 나무가 듬성듬성한 초원에서 살았어요. 먹을 것이 부족하고 육식 동물로부터 공격받을 위험도 컸어요.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여러모로 궁리를 해야 했습니다. 왜 인류는 결국 쾌적한 삼림을 떠나 불편하고 위험한 곳으로 향했을까요?
신하는 스스로 원해서 신하가 된 게 아니에요. 왕이 되고 싶었지만 왕보다 힘이 약했고, 싸움에서 이기지도 못했어요. 울며 겨자 먹기로 신하가 된 거죠. 우리 조상도 숲속에서 계속 살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건조화가 진행되며 삼림의 크기가 줄어들었어요. 힘이 약하고 나무에 잘 오르지 못했던 인류의 조상은 유인원에게 패해 삼림에서 쫓겨났어요. 그리고 쫓겨난 우리의 조상은 대부분 죽음을 맞이했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어요.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어디서나 살 수 있었기에 가까스로 살아남았어요. 우리의 조상은 약했지만, 아니 약했기 때문에, 유인원이 갖지 못한 특징을 진화시켜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의 후예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고요. 이런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어요.

<절멸의 인류사> (사라시나 이사오 / 이경덕 / 부키)

코로나라는 위기가 닥쳐오고, 가장 심대한 타격을 받은 나라들은 서구 선진국들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막대한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오히려 바이러스 앞에 쩔쩔매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책에서 이런 대목을 만났어요.


'19세기 빅토리아 왕조의 시대에도 지브롤터의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위생 상태가 나쁘고 특히 마실 물이 부족했다. 유복한 집에서는 우물을 파거나 저수지에 빗물을 받아 사용했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당연히 유복한 사람들보다 더러운 물을 마셔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망률이 높았다.
그런데 어느 해 지브롤터에 심각한 가뭄이 닥쳤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유복한 사람들이 일부라도 살아남았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유복한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살아남았다.
이 결과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단순화해서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해 보자. 더러운 물을 마셔도 죽지 않는 ‘강한 사람’과 더러운 물을 마시면 죽는 ‘약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유복한 집이나 가난한 집에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절반씩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난한 집에는 강한 사람의 비율이 증가했다. 가난한 집에서는 늘 더러운 물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약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유복한 집에서는 변함없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비슷한 비율로 살고 있었다. 늘 깨끗한 물을 마시기 때문에 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약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가뭄이 찾아오기 직전에는 가난한 집에는 강한 사람이 살고 있었고 유복한 집에는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절반씩 사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뭄이 닥쳐오자 유복한 집이나 가난한 집 모두 더러운 물을 마셔야 했다. 그러자 가난한 집에 사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기에 별로 죽지 않았다.
그런데 유복한 집에는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기에 약한 사람은 대부분 죽고 말았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보다 유복한 사람 쪽이 더 많이 죽었다.' 

(161쪽)

위기는 진짜 실력을 드러내주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성숙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아요. 고릴라나 오랑우탄이 숲 속의 왕이었다면, 우리는 가난한 신하였어요. 가난한 인류는 수렵채집으로 식량을 구했어요. 운 좋게 사냥에 성공하면 배터지게 먹고, 실패하면 쫄쫄 굶어요. 사자는 사냥을 하면 먹이를 입으로 물어서 나릅니다. 사냥감을 가지고 돌아가면, 새끼 사자들이 서로 먹으려고 다퉜겠지요. 강한 개체는 경쟁에서 이겨서 더 강해지고, 약한 개체는 영양 빈곤으로 결국 도태됩니다. 우리 선조들은 다른 전략을 선택해요. 두 다리로 서서 두 팔로 식량을 나릅니다. 수렵채집으로 마련한 음식을 손으로 날랐기에 어린 아기부터 늙고 병든 부모까지 모실 수 있었어요. 나보다 공동체를 우선했기에, 가난한 인류는 함께 살아남은 거죠.  

절멸의 인류사, 위기의 시간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윤리나 도덕이 아닌 과학의 역사와 절멸의 역사를 통해 처절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고난의 시기에도 끝끝내 이겨낸 선조들의 지혜를 엿봄으로써 어려운 시기를 헤쳐 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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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짱 2020.07.15 0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영상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갑자기 이런 문구가 생각나네요.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것이다'

    인류사를 읽다보면 인간은 원래 약한 존재이지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고 실행한거 같아요.
    두 다리로 서서 두 팔로 식량을 나른다는 생각은...
    이런 틀에 얽매이지 않은 유연한 사고가
    인류를 발전시켜 여기까지 오게한 원동력 같기도 해요.

    그런거볼때 코로나 바이러스도 전세계 의학 전문가들이
    합심해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을 하고 있으니
    곧 방법을 찾을거라 봅니다.
    우리는 지혜를 모아 해결을 하는
    호모사피언스(지혜로운 사람)의 후손이니까요 ^^

    우리모두 힘든시기 잘 이겨냅시다.
    아자아자 파이팅~~~

    오늘도 좋은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p.s) 절멸의 뜻이 헷갈려서 다시 찾아봤어요.

    절멸(絕滅) : 아주 없어짐. 또는 아주 없앰.

    ‘멸종(滅種)’은 “생물의 한 종류가 아주 없어짐.
    또는 아주 없애 버림.”이라는 뜻이고,
    ‘절멸(絶滅)’은 “아주 없어짐. 또는 아주 없앰.”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뜻을 살펴보면, ‘멸종’에는 ‘절멸’과 달리
    아주 없어지는 주체나 대상인 ‘생물의 한 종류’의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2. 2020.07.15 0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나겸맘 리하 2020.07.15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번 한겨레 칼럼에서
    절멸의 인류사 소개해 주셨을때
    정말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늘은 또 다른 흥미진진한 이야기네요.

    효율을 높이고 경쟁력을 극대화했던 강점들이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오는 이 시간들 속에서
    해결해 낼 유일한 방법은 공동체의식이군요.
    잉여음식을 두 팔에 담아 남은 가족에게 먹이던
    가난했지만 지혜로운 인류의 마음으로
    살아봐야겠습니다.

    위기에 진짜 실력이 드러나려면
    평상시 맞닥뜨리는 문제에서
    자신만의 해답과 교훈을 찾아야 되는거겠죠?!

  4. 꿈트리숲 2020.07.15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관심이 생겼었는데,
    피디님 블로그에서 또 만나는 인연이 이어지네요^^
    절멸, 멸종, 인류사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멸종에서 살아남는 비밀을 알 수
    있겠다 생각했더든요.
    멸종한 이유를 알면 살아남을 방법을 알게될테니까요.

    절멸의 인류사 역시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죠? 약해서 살아남은 인류처럼 강대국이 아니어서
    오히려 코로나 위기를 더 잘 극복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오버랩됩니다.

    약하고 가난하면 거기서 버티어내는 면역력이
    생성되어 위기에 더 강해질 수 있겠다 싶어요.
    지금이 바로 약이 아닌 자연적으로 면역키울
    좋은 시기라는 거죠?^^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 달빛마리 2020.07.15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은 코로나 사태가 현실이 아닌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미세먼지에 민감해 마스크를 쓰고 다닐 땐 유별나다는 듯 쳐다보더니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을 보기가 어렵네요. 서서히 병드는 것은 괜찮고 코로나는 무서운가 봐요..

    피디님이 오늘 소개해 주신 책은 의식의 전환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맥락은 다르지만 ‘부족해서 채울 수 있다’ 그것이 지혜이든 건강이든 사랑이든 말이죠.
    우리 모두가 하루 빨리 암흑의 시간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6. 김주이 2020.07.15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는다는 묘한 반전이 마음에 드네요.
    세상 어디에도 한쪽 측면으로만 기울어진 것은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얻는것이 있으면 잃는것도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글을 읽으면서 부족했던 나의 많은 것들이 나를 더 강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긍정적인 사고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 아리아리짱 2020.07.15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피디님 아리아리!

    평온함 보다 위기에 견뎌내는 힘으로
    더 강해지고 살아남는 다는 진리를
    한 번 더 되새깁니다.
    오늘도 약한 나에게 그래도 견뎌주어 고맙다며
    셀프 '쓰담쓰담' 합니다.

  8. Laurier 2020.07.15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론과 실전은 크게 다르니까 이론적으로 보호받으며 살아남았던 사람들과 실전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았던 사람들의 차이가 클 것 같아요. 면역력이라는 것도 너무 높으면 오히려 자신의 몸을 공격한다는 말도 있고, 지금 코로나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만 이것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성이 생기면 좋으련만 점점 변이가 생겨서 참 힘들어지고 있네요. 그럼에도 PD님 말씀처럼 인류가 함께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겠죠? 오늘도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글 감사합니다~

  9. 작은습관의힘 2020.07.15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지만, 결국 나중엔 강한 자만 살아남은거 아닌가요? 결국 강한 자가 되기 위해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적응하며 살아남아야하는거겠죠? 이제 역사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는 말이 정말 앞으로도 막막하고 답답하지만 살아남는 자가 되기위해 더 지혜를 모아 함께 갑시다!~~ㅠㅠ

  10. 인대문의 2020.07.15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 learn ways to survive every day from your writings.

    Thank you today as well~!

  11. 보리랑 2020.07.15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ne.ness 우리는 하나다라는 관점에서 헌신하는 많은 분들이 계셔서 희망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12. 아빠관장님 2020.07.15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기는 진짜 실력을 드러내주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
    예전 글에서도 읽고 캬야~ 했는데, 이번에도 카야~ 하게 되는 문구입니다. 지금의 시대가 위기의 시대라 그런가봅니다. 하지만, 위기속에 기회가! 있다죠!!!!!!!^^

  13. 부산남자 2020.07.15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발 하리리의 호모 사피엔스 생각나네요. 그 분의 다른 책 읽고 있는 중!

  14. 에스멘 2020.09.10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면 읽고 써야할 것들이 계속 쌓여갑니다..책 내용과 코로나 내용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잘 쓰냐하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