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집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사는 게 이게 뭐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로 집에만 있기 답답한데요. 수십 년 동안 호텔에만 갇혀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요? 이 사람의 삶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을 것 같아요.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페이스북에 어떤 분이 독서일기를 올렸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 책을 주문했어요. 택배로 도착한 책을 보고 놀랐지요. 720쪽이 넘어가는 벽돌책! 책 욕심이 너무 많아 사놓고 안 읽고 쌓여있는 책도 많거든요. 이렇게 두꺼운 책은 읽을 엄두가 안 나지요. 서가에 그냥 꽂아두었다가, 코로나가 터진 후, 할 일도 없고 벽돌책에 도전할까 싶어 잡았다가 훅 빨려들었어요.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은 제정 러시아 시대 황제일가와 교류하는 귀족입니다. 시골에 영지와 저택이 있지만,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머물며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화려한 생활을 합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귀족사회가 무너지고 공산국가가 되었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많은 귀족들은 처형을 당하지만 알렉산드로 백작은 혁명에 동조하는 시를 쓴 덕분에 목숨을 건집니다. 간신히 총살을 면하고 살았다 싶은 순간, 이런 판결이 나옵니다.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시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자,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공간이지만, 이제 손님으로 묶는 게 아니라, 허름한 하인용 다락방에서 유폐된 죄수로 지내야 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누구도 만날 수 없을 때, 어떻게 할까요?

‘그는 책상에 앉아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아버지가 몹시 좋아했던 이 책을 읽겠노라고 백작이 자신과 처음 약속한 것이 분명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번 달엔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데 전념할 거야!‘라고 선언할 때마다 인생의 어떤 악마적인 면이 문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뜻밖의 곳에서 어떤 연애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도의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거래하는 은행가가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혹은 서커스단이 마을에 오기도 했다.
어찌 됐든 인생은 유혹할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백작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고독을 그에게 제공하는 상황이 마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책을 손에 꼭 들고 한 발을 농의 구석에 댄 채 의자를 뒤로 젖혀서, 의자가 뒷다리 두 개로만 균형을 이룬 기울어진 자세로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42쪽)

인생은 갖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지요. 때로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게 또 삶에 대한 예의기도 하고요. 아무런 유혹이 없을 땐, 멋진 책 한 권의 유혹에 넘어가도 좋아요.

저자 에이모 토울스는 예일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20대에 그는 전업 작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나 봐요. 금융계로 진로를 바꿔 투자전문가로 20년 동안 일합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장편소설 <우아한 연인>이라는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요. 이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걷습니다. 20년 동안 투자전문가로 일하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는 유폐된 소설가가 살고 있었던 거지요. 결국 20년의 기다림 끝에 그는 나이 50에 작가로 성공하게 되고요.   

영화광인 저는 소설의 중반부에 러시아 정보 관리가 백작과 함께 헐리우드 영화를 공부하는 대목이 재미있었어요. 미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영화 산업 때문이라고요. 대공황이 일어나 프롤레타리아가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였지만, 누구도 도끼를 들고 대저택에 쳐들어가 부르주아를 타도하자고 하지는 않았던 거죠. 대신 가까운 영화관에 몰려가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 현실의 곤궁함을 잊었어요. 

’뮤지컬 영화는 ‘손에 넣을 수 없는 행복에 대한 백일몽으로 빈곤 계층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안된 달콤한 과자’였다. 공포 영화는 ‘노동자의 공포를 예쁘장한 소녀들의 공포로 대체한 교묘하기 짝이 없는 손재주’였다. 버라이어티 코미디는 ‘말도 안 되는 마약’이었다. 그리고 서부극은? 그것은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기만적인 선동이었다. 악은 가축들을 훔치고 약탈하는 집단들에 의해 대표되는 반면, 선은 다른 사람의 신성한 사유 재산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외로운 개인으로 묘사되는 우화였다. 결론은? ‘헐리우드는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세력이다.’

(464쪽)  

코로나로 인해 우울한 시절, 100년 전 혁명을 겪는 격동의 러시아에서 종신 연금형을 받고도 신사의 품격을 지켜가는 이야기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보면 어떨까요?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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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짱 2020.06.24 0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즈드라스트부이쩨
    (안녕하세요)

    허거더어억 ..럴수럴수 이럴수가
    <모스크바의 신사> 벽돌책 사놓고도
    엄두가 안나 읽지 않았는데
    이 맘을 어찌 아시고 이책을
    딱 소개해 주시다니...

    근데, 수십 년 동안 호텔에만 갇혀 살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해보니 요즘은 핸펀과 와이파이만
    있다면 잘 버틸지도 모르겠네용

    그러고보니 미국의 영화산업처럼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초 시행한
    3S 정책이 있었던게 오버랩되네요.

    서울의 신사 김민식피디님이
    재밌다고 적극 소개해주신 <모스크바 신사>
    이번주 이책의 유혹에 넘어가 독서에 빠져보렵니다

    스빠시~~~바~~~
    야 류블류 바스~
    다자프뜨라~~~~~!

  2.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6.24 0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20쪽 벽돌책 자동적으로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데
    코로나에 장마가 시작될거라는 오늘
    피디님의 훅 빨려들었다는 ,
    멋진 책 한 권의 유혹이란 표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
    일단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 놓으려구요

  3. 보리랑 2020.06.24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아돌아온듯한 피디님의 삶은 빛나는 작가의 탄생을 위한 주춧돌인듯요.

    영화가 음모라니~~ 😱 우리딸들 영어 잘하라고 영화 많이 보여줬는디요. 요즘 한국영화 넘 잼나지만 우리는 선방한듯한데, 요즘은 넷플릭스가 글로벌로 무력화시키는 중??

  4. 꿈트리숲 2020.06.24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 GENTLEMAN IN MOSCOW 제목을 보니
    문득 ENGLISHMAN IN NEW YORK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At night a candle's brighter than the sun
    태양을 볼 수 없는 암흑의 시기 로스토프 백작은
    초 한자루로 책과 함께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시와 비웃음을 견디면서요.
    러시아 신사의 품격,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피디님 설명 들으니 마치 뉴욕의 영국 신사
    생각이 났습니다^^

    갇힌 삶을 비관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나의 쓰임새를 찾고 나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벽돌책... 돈전해보고 싶습니다.

  5. 아리아리짱 2020.06.24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헐리우드는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세력이다'
    에 묘한 공감이 갑니다.
    특히 헐리우드의 서부극에서 인디안들은 미개인이고, 야만인이라는
    백인의 관점에서 그려진 영화에는 참담하기 까지 합니다.

    백인 그들이 개척이라는 허울아래 남의 땅에 침입해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인디언들을 쫒아내고 죽이는 약탈자였는데 말이죠!
    이 벽돌책 도전해봐야 겠습니다. ^^

  6. 쭌강사 2020.06.24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항상 같은일(강의, 서류정리)만 해서 지루했었는데...
    본 포스팅을 읽고 있으니 빠르게 몰입되는게 벽돌책이라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책 읽을꺼 많이 밀렸는데 더 속도를 내봐야 겠어요~

  7. 2020.06.24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인대문의 2020.06.24 1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Your blog is tempting.
    I always be tempted by your writings.
    + Your interesting videos.
    So I praise myself.

    Thank you so much~!

  9. 슈블리 2020.06.24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
    작가님 책보고 블로그에 글쓰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이 책을 봐야겠어요.^^

  10. Laurier 2020.06.24 1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 전 정약용 선생님의 글 속에서도 느꼈고 오늘 글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진정으로 시간을 견딜 줄 아는 사람들은 곁에 다 책이 었었네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때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고 하죠. 저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가장 힘든 시기에 아무 책이나 꺼내서 내용도 모른 채 읽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괴로운 생각을 하노라면 전혀 책 내용이 뭔지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며서 활자를 그냥 따라가다 보니 저도 모르게 빨려드는 묘한 매력이 있어 시간이 또 금방 가고 괴로운 일도 잊혀지더라고요. 책은 참 그렇게 신비합니다. 요즘은 자꾸 책을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놓고 밀리고 있는 중이라 이 책까지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또 읽어봐야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11. 아빠관장님 2020.06.24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자는 그 시간을 디딤돌로 삼았네요.
    저 역시 지금의 이 시간을 지우고 싶은 시간이 아닌, 디딤돌로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 중입니다!
    조만간 피디님께 염치 불고하지만,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저서에서 언급하신 일명 '들이대기'릍 하겠습니다!^^;;

  12. 작은습관의힘 2020.06.25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저는 엄두도 못내지만 좋은 책 소개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소개해주시니 욕심나네요. 한창 바쁘다가 간만에 이 곳에 들릅니다. 언제나 영혼의 샘물이 되어주시는 분!~~복 받으소서!~~ㅋ

  13. 시드니 2020.07.02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책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두번 읽었어요 항상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