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펼쳤더니 무언가 팔랑거리며 떨어졌어요. 예쁘게 물든 단풍잎인데요. 몇 년 전에 여동생이 준 것이에요.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떨어진 꽃잎을 주워와 말리고, 낙엽을 책갈피에 꽂아 보관하고는 했어요. 둘째 딸이랑 제부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아이가 미역 줄기를 건져오고, 조개 껍질을 줍더군요. 사람들은 왜 낙엽과 조개껍질을 모으는 걸 좋아할까요?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 신소희 / 심심)

25년간 우울증 환자로 고생한 저자가 숲을 산책하며 마음을 치유한 과정을 책에 담았는데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흥분을 느끼게 한다. 소위 '채집 황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채집 수렵 생활자였던 과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열매가 가득 달린 산사나무나 산딸기 관목은 조상들의 칼로리 섭취를 늘려주었을 것이며, 따라서 식용이 가능한 식물에 긍정적 반사 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었으리라. 그리하여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할 때마다 뇌 내의 보상작용이 촉진되고 그러한 채집이 습관화된 것이다. 내가 오늘날 낙엽을 주워 모으며 느끼는 기분은 그러한 본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 뿌듯한 감정의 진화적 근거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행동이 내 뇌의 화학적 균형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나는 화사한 낙엽 카펫 옆을 서성이며 마법 같은 항우울 효과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햇살이 따스하다. 눈부신 빛깔들 속에서 보낸 몇 분이 기분을 돋워주어 정말로 입안에 상큼한 맛이 느껴질 것만 같다.'

(36쪽)

요즘 코로나 탓에 제가 즐기던 취미 활동 (탁구 동호회 / 도서관 나들이 / 해외 여행)이 중단되었어요. 예전에는 기분이 울적할 때 산악회를 찾아가 버스를 타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아요. 이제는 혼자 조용히 동네 뒷산을 찾아 걷습니다.

'숲속이나 들판을 산책하는 것은 삶이 대체로 괜찮게 느껴질 때도 할 수 있는 일이며, 일상적 우울감과 언젠가 닥쳐올 까칠하고 고된 나날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이 한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 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

(25쪽)

선릉역 옆에 있는 최인아 책방에 갔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호선 선릉역, 87년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부터 그렇게 많이 들은 이름인데, 정작 선릉에는 한번도 안 가봤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보니 꽤 넓은 녹지가 강남 한복판에 조성되어 있더군요. 왕릉이 자리잡은 덕에 개발 붐을 피한 거죠. 산책삼아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강남 한복판에 숲이 있고, 계곡이 있고, 산이 있더라고요.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아, 이런 것이 야생의 위로로구나...'   

이 책의 추천사에서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생의 위로>는 자연에서 위안을 느끼는 인간 본연의 생태적 습성에 기초를 둔다. 책 자체로 밖에 나가지 않아도 자연을 간접 체험하게 하는 최고의 매뉴얼이다. 더 큰 미덕은 책이 자연을 만나고자 하는 동기를 되살아나게 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하루 10분, 일주일에 한 시간, 분기에 하루 정도는 온전히 자연과 만나 '야생의 위로'를 즐기시길 바란다.'

(7쪽)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더 위축됩니다. 이럴 때 저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우선 책을 펼쳐보고요. 책에서 찾은 답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벼운 실천을 하지요.

이번 주말에도 가까운 숲을 찾아 야생의 위로를 느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경험이 또 짠돌이 여행일지가 되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즐거운 주말 맞으시어요~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섭섭이짱 2020.07.03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아니 어쩌어엄 이렇게 이쁠수가~~~~
    어머머머머 이건 꼭 종이책으로 사야돼~~~"

    하고는 책 표지만 보고 있어도 기분 좋을거 같아
    우선 소장용으로 사놓고는.......
    아직 읽지는 ㅋㅋㅋㅋㅋ

    맞아요. 우울할때 숲길 거닐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어제는 서울 도심에 있는 그 산길을 쭉 걸었는데....
    대도시에 이런 숲길들이 있다는건 정말 축복이다라고 생각을 했네요...

    오늘도 글로 위로 받는
    항우울제 김민식피디님
    글 읽으며 하루 추울바아알합니다.

    주말에 즐거운 숲여행 하시며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

    🌲🌳🌲🌳🌲🌳🌲🌳🌲
    🌷🌺🌼🌸🌻🌱☘️🍀🌱


    • 섭섭이짱 2020.07.03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야생의 위로> 를 읽고
      숲속을 거닐며 위로 받을때...
      이 노래를 같이 들으면
      마음의 위로가 두배세배 될거 같아
      이 노래를 소개해봅니다...

      요즘 장안에 화제이자 무한재생하며
      듣는 저의 최애곡~~~~~~

      도레미파솔라시...미도미도..
      채송화쌤이 부른 노래.....
      (원곡은 신효범)

      🎵🎶🎼🎵🎶🎼🎵🎶🎼

      <사랑하게 될줄 알았어 - 전미도>

      널 처음 사진으로 본 그날
      구십구년 일월 삼십일일
      그날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나 하나만 기다려준 너를

      오늘도 습관 같은 내 전화
      따스히 받아 주는 너에게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너를 너무 사랑해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시간 속에 희미해지는 사랑에
      그대가 흔들린대도
      그땐 내가 잡을게요 그대처럼

      너무 편한 사이가 싫어서
      너무 오랜 사랑 힘들어서
      아픈 눈물 흘리는 널 돌아선
      못된 내 마음도 기다려준 너를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시간 속에 희미해지는 사랑에
      그대가 흔들린대도
      그땐 내가 잡을게요 그대처럼

      얼마나 힘들었을까 못난 내 눈물도
      따스히 감싸준 너를
      오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시간 속에 희미해지는 사랑에
      그대가 흔들린대도 내가 잡을게요
      아무 걱정 마요 내 손을 잡아요
      처음 그날처럼 우리

  2. 시골초아놀이터 2020.07.03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고싶은 책리스트에 올려놓고 순서를 기다리는 책
    야생의 위로 보니 반갑네요~~

  3. 귀차니st 2020.07.03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4. 김주이 2020.07.03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책이 정말 예쁘네요^^
    진짜 녹지보면 마음이 힐링되는데,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는지 궁금하네요.
    PD님도 즐거운 금요일, 행복한 주말되세요^^

  5. 아리아리짱 2020.07.03 0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자연은, 숲과 나무 열매들은 늘 위로와 사랑입니다.^^

  6. 달빛마리 2020.07.03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글을 쓰셨네요. ‘야생의 위로’ 에서 피디님이 올려주신 글에 완전 공감합니다.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동네 뒷산이라도 갈 수 있음에 감사해요.
    읽을 책 목록이 점점 길어지네요 :)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또 봬요!

  7. Laurier 2020.07.03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는 은근히 주변에 작은 공원들이 많이 있어서 다행이예요. 얼핏 보면 공원은 하나도 없고 삭막한 빌딩만 있는 것 같지만 주변에 가볼만한 공원들이 꽤 많이 생겨나서 다행입니다. 책 표지를 보니 예전에 루소가 산책을 하면서 나뭇잎을 하나하나 스케치하고 다닌 책이 생각납니다. 산책은 정말 피로한 일상에 산소를 제공해 주는 것 같아요. 요즘 코로나로 인해 산책조차 힘들지만 가까운 공원이라도 다녀와야겠어요. 오늘 날은 덥지만 상쾌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8.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7.03 1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생의 위로> 책 제목도 커버도 너무 좋네요ㅎㅎ

  9. Mr. Gru [미스터그루] 2020.07.03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 feel happy and alive when I take a walk along the stream near my house.
    Nature has mysterious power.
    There are a lot of complicated universes.
    I like to observe them.

    I hope you have lots of place and time to enjoy taking a stroll.

    Thank you.
    Have a very nice weekend~*

  10. 보리랑 2020.07.03 1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선릉 옆에 2년 살아도 선릉이 있는 줄도 몰랐네요. 대학 갓 졸업하고 내가 번 돈으로 살고 연애도 하니 잠시 우울을 잊고 살 때라 자연이 그립지 않았나 봐요. 지리산이 그랬던 것처럼 남산 산책로가 위로가 되니 감사합니다.

  11. 아빠관장님 2020.07.03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저 내일 야생에게 위로좀 팍팍 받으려 떠납니다! 세아이와 갯벌 체험 갈려고요! ㅋ

    절 위한 책 소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12. 꿈트리숲 2020.07.03 1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개 껍질 묶어 그녀에 목에 걸고~~

    이거슨 채집황홀을 경험한 고대 인류의
    DNA가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증거군요^^
    전 DNA가 다 사라졌는지 모으는 건 별로라
    하지만 보는 건 아주 좋아라 합니다.
    자연을요. 오늘도 초록 자연 뭉텅이로 보고
    오느라 댓글 출근이 이리도 늦었네요 ㅎㅎ

    야생의 위로는 우리가 자연과 교감하는 동물이었음을
    알게 해주면서도 그걸 지키지 않으면
    삶이 고달플 것이라는 경고도 주는 것 같아요.

    블로그에서 위로 받는 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과
    교감하는 21세기 인류임을 임상했습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삶의 재미 하나가
    빠지는 것 같거든요 ㅋㅋ

  13. 나겸맘 리하 2020.07.04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릉역 바로 옆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저는
    사생대회. 소풍때마다 가는 선릉이 싫었어요.
    가깝다는 이유로 수십번 갔던 그곳이
    어렸을 때는 정말 재미도 멋도 없다고 느꼈거든요.

    근데 나이 들어가니 힐링 장소로는 최고라 여겨집니다.
    친정에 갈 때면 어머니랑 같이 산책하면서
    낙엽도 줍곤 하죠.
    자연에서 위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거예요.^^
    야생의 위로만큼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위로는
    흔치 않으니까요. 잘 즐겨 보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4. 슬아맘 2020.07.07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릉역을 수없이 지났어도 가보지 않았는데
    얍 꼭 가봐야 겠네요.
    야생의 위로 받고 오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15. 자유오리 2020.07.10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이 한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 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

    이 대목 방금 한시간 전의 저입니다. 내천을 따라 걸으며 여름이 되어 우거진 초록을 보며 위로받고 왔습니다. 목이긴 하얀 학같은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며 다른 세상같은 느낌이 들어 사진을 들이댔는데...찍지는 못하였네요. 산책하면서 김민식 PD님 세바시 강연을 죽~들었습니다.
    다음주 온라인 특강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위로가 되는 글과 말씀 감사합니다.
    (어쩜 이렇게 달변이신지...꼬꼬닥도 구독 눌렀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