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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역사 공부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by 김민식pd 2020. 6. 19.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게임을 잘 하는 방법은 시간을 더 들이는 겁니다. 더 많은 시간을 쓸수록 점점 더 레벨이 높아지고 기술이 좋아집니다. 여기로 가면 죽는구나, 이 단계에선 이 아이템을 선택하는 게 더 유리하구나. 끊임없이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게임입니다.

인생은 게임이 아닙니다. 단 한번 밖에 플레이할 수 없어요. 선택이 어려운 건,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남들 인생 게임의 기록을 봅니다. 수천년 동안 기록된 역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린 선택의 결과가 나와 있어요. 그걸 보고 배우는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같아요.

역사 공부를 시작하기엔 쉽지 않습니다. 주제와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지요. 시간으로 나누면,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 지역으로 나누면, 서양사, 동양사, 중국사, 일본사. 주제로 나누면 철학사, 예술사, 문학사 등등 너무 넓고도 깊은 세계라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간단하게 하루에 딱 한 페이지씩만 볼 수 있는 역사책이 나왔어요.


<1페이지 한국사 365> (심용환/비에이블)


<단박에 한국사> 시리즈를 낸 심용환 작가님의 저서입니다. 매일 하나씩, 365개의 역사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의 뿌리인 한국사에 대해 쉽고 재미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에요. 요일별로, 사건, 인물, 장소, 유적, 문화, 학문, 명문장 등 일곱가지 주제로 묶었어요.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도 좋고, 그냥 책 페이지를 설렁설렁 넘기다 흥미로운 제목을 만나면 바로 읽어도 좋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남겨진 명문장을 찾아 읽는 게 좋았어요. 오늘은 정약용의 글을 소개합니다.


'사대부의 집에서 한 번 벼슬길을 잃게 되면 집안이 탕진되어 유리걸식하며 천한 무리에 섞이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그 이유의 하나는 자포자기하여 경전과 사서를 포기하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놀고먹으며 습관을 고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음풍영월로 어려운 운자를 넣어 시의 우열을 겨루어서 한때의 헛된 명예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런 것이야 물결에 떠가는 꽃잎과 같아서 곧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근본과 근원이 없는 학문이 어떻게 크게 떨칠 수 있으랴.

또한 의복과 음식의 근원이 되는 것은 오직 뽕나무와 마를 심고 채소와 과일을 심는 것이며, 부녀자는 길쌈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 공손하고 성실하게 경전을 정밀히 연구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과일나무와 채소를 심어 가꾸는 데에 힘을 다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도를 지키며 일을 줄이고 경비를 절약하면 집안을 보존하는 어진 큰아들이 되리라.'

(316쪽)


정약용이 1810년 유배지였던 강진 다산초당에서 아들에게 보낸 글이랍니다. 정조 사후 풍비박산난 집안을 '폐족'이라 지칭하는데요. 수입이 줄면, 당연히 지출도 따라서 줄여야 합니다. 예전의 소비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면 집안이 탕진의 길로 가지요. 시련과 고난이 닥쳐와도 자포자기하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며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라고 합니다. 
회사에서 힘든 시절을 겪던 저는, 정약용의 글을 보며 마음을 다스렸어요. 수천년 한국사를 압축한 책을 통해 수많은 위인의 삶을 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고민해봅니다.

책과 함께 하는 날들이 하루하루 선물처럼 느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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