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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공부하는 즐거움

by 김민식pd 2020. 4. 22.

<칠곡가시나들>이란 영화를 인상 깊게 봤어요.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어려서는 딸이라고 집에서 공부를 안 시키고,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한글을 깨칠 기회조차 잃어버린 할머니들이 나이 70이 넘어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손수 읽고 쓰는 과정이 나옵니다. 이분들이 연필로 서툴게 쓰는 시가 한 편 한 편 다 마음을 울렸는데요. ‘배움의 발견’이 인생에 주는 기쁨을 새길 수 있는 영화였어요. 오늘 소개할 책의 주인공도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어요.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 김희정 / 열린책들)

다만 이 저자는 1986년생 미국의 역사학자입니다. 세계 최고의 명문이라 할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딴 분인데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요. 아버지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였고, 어머니는 약초 요법 치유사이자 동네 산파였어요. 아버지는 공교육, 현대 의학 등을 불신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녀들을 학교에도, 병원에도 안 보내요. 책을 읽다보면 일하다 다친 아이를 병원으로 보내는 것을 무슨 죄악인양 취급하는 모습을 보고, 이 정도면 아동학대 아닌가 싶었어요.
책의 저자인 타라 웨스트오버는 7남매 중 막내로 자라며 집에서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거나 아버지의 일터인 폐철 처리장에서 일을 합니다. 기초 교육 과정을 모두 건너뛴 채 혼자 대입자격시험을 준비하고, 17세에 대학에 합격하면서 기적과 같은 배움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결국 하버드대 방문 연구원을 지냈고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까지 받아요.
이 책은 저자의 인생을 회고한 책인데요. 기껏해야 30대 중반의 저자가 자서전을 썼다는 게 의외였어요. “인생을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무슨 회고록이야” 그런데 이 책은 2018년에 나오자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버락 오바마,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같은 이들이 찬사를 받습니다. 저자의 삶이 너무 드라마틱하기 때문이지요.

‘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본 적 없던 소녀가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기까지.’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대신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일하다 다치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넘기는데요. 그래도 아버지는 끊임없이 일을 시킵니다. 한국이라면, 10대에 공부하는데 방해될까봐 방청소나 정리도 안 시키는데 말이지요. 이 아버지는 반대에요. 아이가 책을 읽는 걸 보면 끊임없이 잔일을 시킵니다. 책을 읽고 바깥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된 아들이 대학에 가겠다고 집을 떠나면서 일손이 딸렸거든요. 그래서 딸이 책도 못 보게 합니다. 세상에 뭐 이런 부모가 다 있나 싶어요. 어린 시절 하도 공부하란 소리만 들어서 대학 입시가 끝난 후에는 책을 쳐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도 있거든요. 뭐든 과한 게 문제인 것 같아요. 타라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건, 먼저 집을 나가 대학을 다니던 오빠였습니다. 집에 갇혀 사는 동생에게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라고 권유합니다.

“집을 떠날 생각은 없니?”
“떠나서 어디로 가게?”
“학교. 이제 떠날 때가 됐어, 타라. 오래 머물수록 떠날 확률은 점점 낮아져.”
“합격 못 할 거야.”
“넌 할 수 있어.”
“입학시험만 통과하면 돼. 진짜 쉬운 시험이야.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196쪽)

저와 동생은 다섯 살 차이입니다. 어려서 부모의 영향 아래 있던 제가 삶이 바뀐 건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후였어요. 이후 저는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고등학생 동생에게 말했지요.
“아빠처럼 나도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한데,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이유는 딱 하나야. 집을 탈출할 유일한 기회는 서울로 대학을 가는 것뿐이거든.”
학교를 다니지 않은 저자는 책이라도 읽으며 세상을 공부하고 싶었는데요. 그것도 쉽지는 않아요. <레미제라블>을 읽었는데,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 인물이고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구분이 안 됐다고 해요. 두 사람 모두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허구의 이야기와 사실에 근거한 배경의 차이를 구분할 능력이 없었던 탓입니다.
예전에 송강호와 유아인이 주연한 영화 <사도>의 평을 쓰면서 누가 ‘사도세자가 마지막에 죽는 장면’에 대해 언급했더니 누가 댓글로 욕을 했대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쓰면 어떻게 하냐고. ㅠㅠ 사도세자를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허구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거죠. 
타라 웨스트오버가 대학에 입학해서 수업 시간에 돌아가며 교과서를 읽는 장면이 있는데요. 교재에서 처음 보는 단어를 접하고 교수님에게 물어봐요. “이 단어를 모르겠어요. 무슨 뜻이에요?” 그랬더니 갑자기 강의실 분위기가 싸해져요.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본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지요. 친구가 그래요. “그런 걸 가지고 농담하면 안 돼. 농담할 주제가 아니잖아.”
저자가 처음 본 단어는 ‘홀로코스트’였어요. 미국 극우파 중에는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마치 일본인 중에 2차 대전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는 것처럼. 타라가 그 단어를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녀가 부적절한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 거지요. 어느 날 교수님이 물어요.

“학생 동네의 학교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안 가르쳤나요?”
“아마 가르쳤겠죠.” 내가 말했다. “그런데 제가 다니질 않았어요.”
“학교에 왜 다니지 않았나요?”
나는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다. 부모님이 공교육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다 끝내자 교수는 아주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라도 해야 하는 사람처럼 두 손에 깍지를 꼈다. “계속 도전을 해보세요. 그렇게 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는 거예요.”
“도전을 하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케임브리지라고 들어 봤어요?” 처음 듣는 단어였다. “영국에 있는 대학이에요.” 그가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 중 하나지요.”

(360쪽)

저, 이 대목을 읽다가 전율했어요. 홀로코스트를 대학에 와서 처음 알게 된 학생에게 교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라는 거예요. 케임브리지에 간 타라는 역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합니다.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달 동안 나는 지도 교수와 매주 만났다. 한 번도 읽을 책을 지정받은 적이 없이, 내가 읽겠다고 요청하는 것만, 그것이 책이 됐든 글 한 페이지가 됐든 내가 원하는 것만 읽었다.’

(374쪽)

이호선 선생님의 <세바시> 강연,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좋아지는 법>을 보면, 나이 들어 새롭게 발견한 배움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어려서 공부가 효도라면, 나이들어 스스로 하는 공부는 취미이자 자기계발입니다. 더 윤택한 삶을 위해, 윤택한 노후를 위해 공부를 하라는 말씀이 와 닿았는데요. 100세 시대, 매일매일 공부의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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