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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by 김민식pd 2020. 4. 21.

주조정실에서 근무할 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참 부끄러웠습니다. 4월이 되었는데도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방송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잃은 엄마 아빠들이 몇년 째 길위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싸웠지만, 신문과 방송은 철저하게 눈과 귀를 막았지요. TV에 나오는 뉴스보다, TV에 나오지 않는 뉴스가 더 아플 때가 있어요.

2017년 MBC 파업 때 회사 농성장으로 '416합창단'이 찾아오셨어요. 그분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셨죠. 기자와 피디들에게 더 좋은 방송을 만들어, 다시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요. 그분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416합창단 지음 / 김훈 김애란 글 / 문학동네)  

책에 나오는 김훈 작가님의 글을 옮겨봅니다.

'내가 안산에 갔을 때,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은 울면서 일상의 고통을 말했다. 저녁때 동네에 나가서 축구하고 돌아온 아이의 머리통에서 풍기던 땀냄새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아들 잃은 어머니는 말했다.

또다른 어머니는 죽은 딸이 하이힐을 좋아해서 엄마 것을 신고 멋진 폼을 잡으면서 방안을 걸어다녔다고 말했다. 아침에 학교 가는 아이들 먹이느라고 된장찌개 끓일 때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났다고 말하는 엄마도 있었다.

416합창단의 이미경씨(고 이영만군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 갈 때 매일매일 베란다 창문에서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오후 10시 30분에 베란다 창문에서 아이를 마중했다고 말했다. 이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일상의 사소함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눈물겨운 것인가를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로 한국 사회의 야만적 속성들은 낱낱이 드러났는데, 그중에서 못 견딜 일은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재수없는 소수자(the unlucky few)로 몰아붙여서 구박하고 소외시켜서 다수자의 안락을 도모하려는 사회적 태도였다. 416합창단은 그 야만적 현실 속에서도 슬픔과 그리움, 희망과 사랑을 노래했다.'

(61쪽)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눈앞이 뿌얘졌어요. 마스크로 얼굴을 푹 감쌉니다. 대롱거리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네요. 416합창단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러요. 일산 정발고등학교에서 열린 세월호 4주기 추모음악회에 대해 어머니가 남긴 글이 있어요.

'저는 학교로 공연 갈 때 가장 긴 여운이 남아요. 

학생들을 보면 교복 입은 우리 아이가 

금방이라도 저한테 올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이 고인 적도 많습니다.

-인태범 (2학년 5반) 어머니 정경희'

(125쪽)

요즘 어머니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노래로 함께 하십니다. 자식 잃은 어머니들을 찾아가고요. 활동일지를 보면 '비정규직 고 김용균 제2차 범국민 추모제' '고 문중원 기수 추모 촛불문화제' 등이 보입니다.

'1월 19일 공연시간이 다 되어 영상으로 첫 시작을 열었습니다.

공연 때 자주 보게 되지만, <너를 보내며> 영상이 시작되면 합창단원들은 훌쩍이기 시작합니다. 매번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을 함께 느낍니다. 시작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흐릅니다.

우리는 늘 울대가 막혀서 무대에 서는

세계 유일의 합창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 시민단원 이재홍'

(215쪽) 


세월호 아이들과 그 엄마 아빠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삽니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글로 마무리하렵니다.

 

'권력과 자본이 모든 걸 앗아간다 해도 한 인간으로부터 끝끝내 뺏어갈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나는 세월호 유족들을 보며 배웠다. 지금도 세월호 유족분들은 합창뿐 아니라, 연극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남기려 노력하고 계신다. 그 세상이 설사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걸 앗아간 형편없는 세계라 하더라도 말이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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