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정실에서 근무할 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참 부끄러웠습니다. 4월이 되었는데도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방송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잃은 엄마 아빠들이 몇년 째 길위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싸웠지만, 신문과 방송은 철저하게 눈과 귀를 막았지요. TV에 나오는 뉴스보다, TV에 나오지 않는 뉴스가 더 아플 때가 있어요.

2017년 MBC 파업 때 회사 농성장으로 '416합창단'이 찾아오셨어요. 그분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셨죠. 기자와 피디들에게 더 좋은 방송을 만들어, 다시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요. 그분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416합창단 지음 / 김훈 김애란 글 / 문학동네)  

책에 나오는 김훈 작가님의 글을 옮겨봅니다.

'내가 안산에 갔을 때,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은 울면서 일상의 고통을 말했다. 저녁때 동네에 나가서 축구하고 돌아온 아이의 머리통에서 풍기던 땀냄새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아들 잃은 어머니는 말했다.

또다른 어머니는 죽은 딸이 하이힐을 좋아해서 엄마 것을 신고 멋진 폼을 잡으면서 방안을 걸어다녔다고 말했다. 아침에 학교 가는 아이들 먹이느라고 된장찌개 끓일 때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났다고 말하는 엄마도 있었다.

416합창단의 이미경씨(고 이영만군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 갈 때 매일매일 베란다 창문에서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오후 10시 30분에 베란다 창문에서 아이를 마중했다고 말했다. 이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일상의 사소함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눈물겨운 것인가를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로 한국 사회의 야만적 속성들은 낱낱이 드러났는데, 그중에서 못 견딜 일은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재수없는 소수자(the unlucky few)로 몰아붙여서 구박하고 소외시켜서 다수자의 안락을 도모하려는 사회적 태도였다. 416합창단은 그 야만적 현실 속에서도 슬픔과 그리움, 희망과 사랑을 노래했다.'

(61쪽)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눈앞이 뿌얘졌어요. 마스크로 얼굴을 푹 감쌉니다. 대롱거리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네요. 416합창단은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러요. 일산 정발고등학교에서 열린 세월호 4주기 추모음악회에 대해 어머니가 남긴 글이 있어요.

'저는 학교로 공연 갈 때 가장 긴 여운이 남아요. 

학생들을 보면 교복 입은 우리 아이가 

금방이라도 저한테 올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이 고인 적도 많습니다.

-인태범 (2학년 5반) 어머니 정경희'

(125쪽)

요즘 어머니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노래로 함께 하십니다. 자식 잃은 어머니들을 찾아가고요. 활동일지를 보면 '비정규직 고 김용균 제2차 범국민 추모제' '고 문중원 기수 추모 촛불문화제' 등이 보입니다.

'1월 19일 공연시간이 다 되어 영상으로 첫 시작을 열었습니다.

공연 때 자주 보게 되지만, <너를 보내며> 영상이 시작되면 합창단원들은 훌쩍이기 시작합니다. 매번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을 함께 느낍니다. 시작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흐릅니다.

우리는 늘 울대가 막혀서 무대에 서는

세계 유일의 합창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 시민단원 이재홍'

(215쪽) 


세월호 아이들과 그 엄마 아빠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삽니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글로 마무리하렵니다.

 

'권력과 자본이 모든 걸 앗아간다 해도 한 인간으로부터 끝끝내 뺏어갈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나는 세월호 유족들을 보며 배웠다. 지금도 세월호 유족분들은 합창뿐 아니라, 연극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남기려 노력하고 계신다. 그 세상이 설사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걸 앗아간 형편없는 세계라 하더라도 말이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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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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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nodobby 2020.04.21 0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벚꽃 보면서 신나다가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특히 올해는 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세월호 6주기에 대한 관심이 더 떨어진것 같아서 마음이 유독 아팠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라는 못된 사람들도 많고 언론도 점차 외면하는 것 같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4월 16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2.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4.21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난 비극 앞에서 세월호 리본을
    다는 하찮은 것 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정혜신님이 그게 어떤 의미인지아
    느냐고 물었어요
    세월호 유가족 형제 중 동생을 잃은 형이
    그 사건 후 자살 충동이 수 없이 들고
    자살 충동이 강하게 들던 어느 날
    지하철 문이 열리고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여러 개 단 여학생들을 보자
    턱없이 내가 살아봐도 좋겠다는
    나도 모르게 목숨을 구하고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일이라고 했어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송승미 2020.04.21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늘 아침 pd님 글을 읽으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재수없는 소수자"라고 우리 사회의 야만적 속성에 대해서 쓴
    김훈 작가님의 글을 보며 아....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정의로웠으면 좋겠다고 바래봅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4. 꿈트리숲 2020.04.21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이라는
    글에서 저도 목 울대가 콱 막히는 기분입니다.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렇지 않다면 아픈 곳, 슬픈 곳,
    힘든 곳을 찾아가서 노래로 그들을 위로하겠다는
    416 합창단의 고마운 마음이 잘 느껴지네요.

    불행은 재수없는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오늘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5. 아리아리짱 2020.04.21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걸 앗아갓 형편없는 세계에
    그래도 좋은 영향을 남기려 애쓰는 유가족들의
    몸부림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세월호 원인규명과 처벌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
    두 번 다시 이런 재난이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

  6.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4.21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7. 김주이 2020.04.21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너무 슬프네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합니다.
    정말로...

  8. 아빠관장님 2020.04.21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
    제가 이럴진대...

  9. 노랑킹콩 2020.04.21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짧은 글귀들 만으로도 눈물이 고이는데..
    이 한권을 다 읽을때쯤에는 눈물을 얼마나 흘릴까요
    그동안 세월호말만 들어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흘러 마주하려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잊지 않으려해요. 그게 그 분들을 위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이젠 마주해볼께요. 용기내어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10. 휘게라이프 Gwho 2020.04.21 15: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출첵~ 정성스러운 글 정독하고 갑니다 :-)

  11. 오달자 2020.04.21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년 4월이면 그 때 그 뉴스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둬야했었나...

    두 번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12. 오달자 2020.04.21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년 4월이면 그 때 그 뉴스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둬야했었나...

    두 번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13. 섭섭이짱 2020.04.22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벌써 6년이나 지난 그날..
    아직도 그날의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그날
    잊지 않아야할 그날..

  14. 미테 2020.04.22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용기를 내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미리 손수건을 준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