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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오늘 하루도 설레는 마음으로

by 김민식pd 2020. 4. 16.

연애에 있어 고수와 하수를 나누는 제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한 가지 매력을 보고 사랑에 빠지면 고수, 꼼꼼히 하나하나 따져보고 다 좋은 데 딱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 사람을 못 만나면 하수입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매력에 빠져봤어요. 그 덕분에 20대의 인생이 풍성해졌지요. 사람에게는 다양한 매력이 있습니다.

20대에는 사람을 볼 때마다 설렜는데요, 나이 50줄이 되니 책을 볼 때마다 설렙니다. 왜 그렇게 많이 읽냐고 묻는 이도 있는데요. 다 읽고 싶으니까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날 수는 없어요. 대신 읽고 싶은 책은 다 읽고 살고 싶습니다. 연애는 때로는 상처가 되지만, 독서가 상처가 되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이만큼 안전하고 풍성한 취미도 없어요. 

예스24에서 만드는 잡지 <채널예스>를 즐겨 읽습니다. 좋은 책을 소개받는 잡지인데요. 책소개에 있어 듀오라고 보면 됩니다. 이제껏 여기 지면을 통해 참 많은 책을 만났고 만족스러웠어요. 심지어 소개비도 안 받는! 네, 무료잡지가 이정도 퀄리티라면, 이건 귀한 선물인거죠. 

http://ch.yes24.com/Article/View/40254

 

날자, 날자꾸나 | YES24 문화웹진 채널예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흰부리와 통키는 소소한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으로, 서로 부리를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두 마리 닭을 통해 배웠다. (2019. 11. 06)

ch.yes24.com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 코너를 읽다가 <묘생만경>이라는 이야기에 꽂혔어요. 음, 재밌겠는데? 결말이 어떻게 된 걸까? 그러다 <묘생만경>이 실린 작품집을 찾아 읽었습니다.

<마음의 지배자> (김현중 작품집 / 온우주)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겸손해졌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었는데, 나는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채널 예스가 아니었으면 존재도 몰랐겠네? 8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다 기가 막히게 재밌었어요. 저자 소개를 보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덜미를 잡혀 끝까지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작가의 목표라는데요. 완전 성공하셨습니다. 실은 제가 요즘 책상에 읽을 책이 쌓여 있어, <묘생만경> 한 편만 일단 읽어보려 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어, 다른 책들은 다 미뤄두고 이 책만 읽었어요. 곶감 빼먹듯 하루 한 편씩 아껴 읽었어요.

놀라운 건, 이 새로운 작가가 SF의 형식을 가져와 이야기를 만든다는 겁니다. 책의 표제작인 <마음의 지배자>를 보면 초능력을 쓰는 아이가 나오는데요. 때로는 투시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염동력을 쓰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초능력을 얻게 된 계기는 급훈입니다. 

'마음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교실 앞 칠판 위에 걸린 급훈을 보며 마음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법을 익혀갑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초능력을 갖게 된 아이의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테마인데, 아마 내가 어린 시절에 이런 황당한 바람을 갖고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설을 쓰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학교생활에 애로를 느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

이 이야기의 진짜 테마는 이것이다. 정말 특별한 존재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과연 그를 지켜줄 수 있을까?'

어려서 초능력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요. 스무살이 넘어 포기했어요. 쉽지 않겠더라고요. 대신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류비셰프>를 읽고, 시간을 정복하는 걸로 꿈을 바꿨어요. 시간을 정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더군요. 책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일 (=독서)를 할 수 있어요. 자투리 시간을 정복하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독서였죠. 독서를 통해 간접 체험의 양을 늘려, 직접 체험을 통해 겪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 그게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어요.

책에는 <그의 지구 정복은 어떻게 시작됐나>라는 어느 외계인의 지구 침공기가 나옵니다. 정말 유쾌하면서도 재미난 작품인데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것을 쓰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다. 단편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서 잡지 <판타스틱> 창간호부터 3호까지를 선물로 받았었는데, 3호에 실린 배명훈 님의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재미난 SF 단편이 쓰일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이상한 충격이지만-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재미있는 SF 단편이 쓰일 수 있고 쓰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소설을 읽고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떤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 같다.'

(127쪽)

 

저 역시 그래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새로운 재미의 가능성에 눈을 떴어요. 연극 동아리하는 후배를 만나면 연극의 재미에 맛을 들이고,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후배를 만나면 시네마테크 나들이에 재미를 들이지요. 책도 그래요. 책을 통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맛봅니다.    

오랜만에 목차 옆에 점수를 매겨봅니다. 예전에 스티븐 킹의 단편선을 읽을 때 자주 했던 일이에요. 그런 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때는 점수가 높은 단편부터 또 읽어요.

묘생만경猫生晩景 007 
마음의 지배자 159 2
그의 지구 정복은 어떻게 시작됐나 193
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 129
물구나무서기 165
피노키오 215
부안 왕손이 239 1
뱀과 소녀 283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 편을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1. 부안 왕손이 2. 마음의 지배자 3.묘생만경

 

(책을 읽으신 분은 이 글에 댓글로 본인의 순위를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순위와 비교해보고 싶네요.)

언제까지나 책 소개글을 읽을 때마다 설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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