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노년과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

by 김민식pd 2020. 3. 9.

몇 년 전, 아버지가 나무에 오르셨다가 떨어지면서 크게 다치신 적이 있어요. 팔순의 노인이 수술비만 하루 900만원이 넘게 나오는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걸 보고 아버지의 임종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다행히 몇 달 간 요양병원에서 재활에 힘을 쓴 결과 건강하게 퇴원을 하셨어요. 그 몇 달 간, 부모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아니, 준비가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고민이 생기면 책에서 답을 구합니다. 그 고민에 답이 되는 책을 만났어요.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권혁란 / 한겨레출판)

저자의 어머니는 90이 다 되어 화장실을 나오다 쓰러집니다. 모시고 살던 일흔 살의 큰 오빠가 정신을 잃은 어머니를 업고 뜁니다. 심근경색으로 진단받고 스텐트 시술을 받는데, 엄마가 시술받은 그 옆 종합병원에 늙은 오빠도 입원을 합니다. 엄마를 병원에 업고 뛴 지 일주일 만이에요. 큰 오빠의 병명은 뇌졸중. 엄마와 아들이 졸지에 중환자가 됩니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병원에 나란히 입원시킨 새언니도 늙기는 매한가지에요. 무릎과 허리가 성치 않아요. 한 집에 살던 세 사람이 다 환자가 되어 누가 누구를 간호할 형편이 아닙니다. 결국 살구나무 꽃이 환하게 핀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시게 됩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장수하셔서 90이 넘는다면 자식도 나이 60이에요. 늙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부양하기 쉽지 않지요. 예전처럼 형제가 많던 시절도 아니고, 가족이나 친척이라는 사회관계망이 작동하는 시대도 아니거든요. 아픈 부모를 누가 모실 것인가, 자칫 갈등이 될 수도 있어요. 아픈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를 두고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느라 문가에 서 있는 요양원 원장이, 나는 오빠보다 고맙다.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인사하는 요양사 아주머니가 언니들보다 낫다. 아주 아프지는 않지만 늙고 정신이 흐려진 사람을 돌봐주는 분들에게 절을 올리고 싶을 만큼 감사하다.

어르신들을 한 번만 일으켜 세워보면 안다. 다리와 허리가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한 걸음 뗄 때마다 옆에서 얼마나 힘을 주어야 하는지, 욕창으로 괴로운 분의 등허리를 들어 올려 일으킬 때 등줄기에서 얼마나 땀이 나는지, 제 손으로 밥을 먹지 못하는 분들에게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이는 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속이 터지는지. 그분들은 오줌통을 비우고 기저귀 가는 일을 매일 하는 사람들이다. 내 엄마여도 변은 변이고 병은 병이다. 자식들이 각자 한 달씩 아니 일주일씩이라도 해보면 안다. 내 부모를 돌보면서 나라도 짜증을 낼 거라는 걸, 화를 내고 집어치우고 싶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요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선다. ‘내 엄마를 부탁합니다. 당신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답니다.’

(39쪽)

저도 그랬어요. 아버지가 쓰러지고, 수술을 받고 누워계신데 당장 간병할 사람이 없었어요. 퇴원하고도 보살필 사람이 없어 요양병원으로 모셨어요. 요양병원에서는 8인실을 쓰셨는데, 간병인이 매일 아침 8명의 노인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았어요. 병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환자 8명을 돌보는 그 분 역시 노인이었어요. 중국에서 온. 퇴원하던 날, 아버지에게 그랬어요.

“아버지, 중국 동포들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어린 아이는 조선족 입주 도우미가 돌봐주고, 노인은 조선족 간병인이 돌봐주시고, 고령화 사회에서 저분들 아니었으면 큰 일날뻔 했어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늙을 것이고 우리 부모들을 요양원에 보낼 것이고 우리도 가게 될 것이다. 누구도 생의 마지막과 보살핌을 자식에게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고 한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단독자로 살아가다 죽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자식들도 천천히 늙을 것이고 우리 세대의 사람들을 요양원에 보내야 하는 것으로 마음을 아프게 앓을 것이다. 부모를 지고 간 지게에 내가 오를 것이고 그 지게를 내 자식이 지게 될 것이고 그 아이 또한 지게를 지게 될 것이다.’

(121쪽)

저자의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장례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족이 모여 상의를 하는데 장남인 큰 오빠가 말문을 엽니다.

“나는 엄마 안 묻을 겨. 그렇게들 알고 있어.” 엄마 무덤을 만들지 않겠다고 큰오빠가 단호하게 말했다. “못 묻어. 땅에. 산소 안 할겨. 니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우리 아들들 내 며느리들 평생 나처럼 제사나 지내게 할 수 없어. 우리도 이젠 못 가, 아버지 산소에도.”

(181쪽)

종갓집 큰아들로 태어나 살면서 평생 제사를 지내며 차례 상을 차리고 손님을 맞으며 산 장남 내외가 고개를 떨굽니다. 장남 장손의 무한 책임과 봉제사의 고리를 당신 대에서 단호하게 끊어주겠다는 큰오빠의 결심이 지극하게 현명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합니다. 이제 관혼상제의 풍경이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매년 명절이 되면 차례를 지내는 대신,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다닙니다. 제사 지내고 차례 올린다고 아내와 딸들을 고생시킬 생각은 없어요. 돌아가신 조상님보다 저는 살아계신 아버님이 우선입니다. 아버님을 모시고 즐거운 여행을 다니는 게 제 나름의 명절맞이입니다.

구순 엄마와의 마지막 2년을 섬세하게 기록한 이 책은 언젠가 늙은 부모와 이별을 겪게 될 자식들에게 공부가 될 것입니다. 그 큰 아픔을 직접 몸으로 살아내기 전에, 미리 글로써 채비할 수 있다면 그것도 복입니다. 부모를 먼저 보낸 아픔에 아직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말로써, 글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작가가 대신 아름다운 글로 풀어내주거든요. 이 책을 통해 온기를 얻고 용기를 얻을 거예요. 노년과 죽음을 대비하는 지혜는 덤이고요.

우리는 모두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할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이 필요한 모두에게 너무나도 좋은 책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