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현자의 잠언, 긴즈버그의 말들

by 김민식pd 2020. 3. 25.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를 보면, 첫 장면에서 체구도 자그마하고 백발이 된 할머니가 헬스 기구를 이용해 근육 운동을 하고 플랭크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악물고 버티며 건강을 지켜야겠다, 라는 강건한 의지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악명도 높아요. “마녀, 괴물, 대법원의 수치!”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긴즈버그의 말> (루스베이더 긴즈버그 / 헬레나 헌트 / 오현아 / 마음산책)   

1933년생인 긴즈버그는 대학 입학하고 동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습니다. 1956년 하버드 대 로스쿨에 입학하는데요. 로스쿨 원장이 신입 여학생들을 환영한다며 불러서는 물어봅니다. 남학생 자리를 빼앗으면서까지 하버드대 로스쿨에 들어온 이유를 말하라고요. 남편이 뉴욕에서 일자리를 구하자 남편을 따라 컬럼비아대 로스쿨로 편입하지요. 공동수석으로 졸업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해요. 유대인에, 여성에, 엄마에, 당시로서는 차별이 심해 일하기 힘든 조건이었지요. 이후 컬럼비아대 로스쿨이 후원하는 스웨덴 민사소송 연구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젠더 차별에 반대하는 스웨덴 사회의 분위기를 접하고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모교에 첫 여성 교수로 부임하고요. 역대 두 번째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됩니다. 사회적 약자로 살아오던 긴즈버그는 이제 대법원에서 성소수자, 이민자 등 약자를 대변하는 전사가 됩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지독한 노력을 통해 권력과 재력을 얻은 이들은, 기득권 사회에 들어가 그 일부에 포획되기 쉽습니다. 그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이제는 좀 누려야겠다, 고 생각을 하고, 강자 행세를 하지요. 하지만 이 분은 그렇지 않아요. 약자의 편에 서서 외롭고 힘든 싸움을 이어갑니다. 

‘변호사가 되어 사무실을 개업하고 단지 실력만 좋다면 기술자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전문직 종사자가 되고 싶다면 자신 너머의 일, 지역사회의 눈물을 닦아주고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31쪽)

내가 배운 것을 통해 세상에 이바지하는 것이 일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고, 그 재미와 의미를 나누는 일, 그게 궁극의 공부입니다.

‘내 남편은 로스쿨 교수였는데 자원봉사자를 찾을 때면 꼭 남학생들의 손이 먼저 올라갔다. 동료 교수 가운데 한 분이 남편에게 충고했다. “손을 가장 먼저 든 학생을 지목하지 마세요. 잠시 기다리면 손을 드는 여학생이 있을 겁니다.” 이 발언의 진의는 남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반면 여자는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는 것이다.’
(51쪽)

평생을 싸우며 살아온 사람인데, 그의 말은 투사라기보다 현자의 그것 같아요.

‘차별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 쉽다. 개인적 능력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72쪽)  

‘“여성의 권리”라는 표현은 다소 문제가 있다. 인간의 권리다.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모든 인간의 권리다.’

(100쪽)

‘네 자신을... 교사라고 생각하라. 그래서 화를 내지 마라. 역효과만 낳을 따름이다. 누군가를 돼지 같은 성차별주의자라고 부르는 순간 당신은 그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다.’

(149쪽)

싸움은 나의 생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평생을 약자의 편에서 싸워왔지만 나이 80이 넘어서도 그 싸움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경솔하거나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는 못 들은 척하는 게 최선이다. 화를 내거나 불쾌한 티를 내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148쪽) 

책의 끝에 나오는 이다혜 기자님의 글도 인상적입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목소리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세상을 바꾼 언어들을 말하고 들어보기를 원한다. 법정에서 반대파를 설득하고 오늘의 세상을 어제보다 평등한 곳으로 바꿀 힘을 지닌 단련된 언어가 갖는 단단함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조금이라도 더 닮고 싶다. 이것이 언어가 지닐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끝으로 책읽기에 대한 긴즈버그의 말을 소개할게요.

‘자랄 때... 가장 기분 좋게 남은 기억 가운데 하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128쪽)

이 책을 읽으며 참 행복했어요. 영화에서 본 인물의 생각을 글로 볼 수 있어서요. 책에 나오는 구절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 오늘의 낭송입니다.
고맙습니다!

####### 추가 공지#######

매년 책을 낼 때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가 강연을 했는데요. 이번엔 코로나로 인해 강연회가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온라인 강연회를 엽니다. 이름하여 <세바시 방구석 북토크>! 아래 링크로 신청해주시면, 다음주에 랜선 번개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https://ww.sebasi.co.kr/class/242

 

[세바시 방구석 북토크] 김민식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연사소개 김민식 |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매일 아침 써봤니?’,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저자, MBC 드라마 PD, 책 유튜브 채널 '꼬꼬독' 진행자 강의소개 집에만 계시기 답답한 여러분을 위해 세바시가 '방구석 북토크'를 준비했습니다!코로나 바이러스로 바깥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요즘입니다.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매일 집에만 있다보니 조금 답답한 마음도 듭니다. 그래서 세바시가 준비했습니다. 이름하여 '방구석 북

ww.sebasi.co.kr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