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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좋은 친구의 기준

by 김민식pd 2020. 4. 3.

‘낙타와 펭귄’처럼 서로 다른 두 여자가 있어요. 한 여자는 솔직하고 ‘앗쌀합니다’. 다른 여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가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립니다. 아, 저 언니, 재밌네. 아, 저 친구, 흥미롭네. 두 분 ‘교환일기’를 씁니다. 한 사람은 20권의 책을 낸 베테랑 작가, 임경선이구요. 또 한 사람은 뮤지션에, 작가에, 팟캐스트 진행에, ‘책방 무사’라는 독립서점 주인까지 하는 팔색조 요조입니다. 둘이서 고시랑고시랑 수다떨 듯 나누는 대화가 교환일기라는 편지의 형식을 빌어 책이 되어 나왔어요. 일과 사랑, 삶, 돈, 자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얻어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매일의 고통과 싸움에 이르기까지, 두 분의 이야기가 책에서 펼쳐집니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 문학동네)

나이 들수록 우정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어려서는 연애만 관심이 있었는데, 100세 시대는 연인과 가족만으로 버티기는 힘들어요. 편하게 함께 나이들어가며 일상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눌 친구도 필수입니다. 요조와 임경선, 두 사람이 친하다고 하면 주위에서 놀랜답니다. 서로 안 맞을 것 같은데? 하고요. 

‘우리가 막역한 사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놀라워했다. 마치 어떻게 낙타와 펭귄이 친구가 될 수 있냐는 듯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표정을 짓곤 했다. “정말 의외네요”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7쪽)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에 조금씩 스며드는 과정이 참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입니다. 언니인 임경선 작가는 연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왕이면 다음 세 가지 유형의 남자를 두루 겪어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봐.
첫째, 아주 ‘어른’인 남자. 실제로도 나이가 나보다 위인 경우가 많겠지. 차분하고 지적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유능해.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내가 절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그를 통해 내가 한 명의 여자로서 더 성숙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해.
둘째, 친구 같은 ‘또래’ 남자. ‘어른 남자’ 앞에서 긴장했다면 ‘또래 남자’는 그저 편하고 재밌지. 세대 차도 느껴지지 않고 공통관심사도 많아서 같이 즐겁게 노는 일이 가능하지.
마지막으로 셋째, 매력적인 ‘연하’ 남자. 어느 순간 ‘또래 남자’가 나에게 라이벌의식과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만 같고, 여자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해주지 못하는 속 좁은 모습을 보여서 좌절하게 될 때, 연하 남자는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허세를 내세우지 않아서 좋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뻔하거나 속물처럼 느껴질 때 연하 남자의 순수함과 열정에 감동하게 되고.‘
(242쪽 정리)

책을 읽으며 혼자 큭큭거리고 웃었어요. 아니, 이건 그냥 다 만나 보라는 이야기잖아! 여행을 많이 다녀본 친구 중에서 여행 가서 심하게 데인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아시아는 지저분해서 싫고, 유럽은 비싸서 싫고, 미국은 위험해서 싫고, 단점만 늘어놓은 이가 있어요. 나는 가 봤는데, 너는 가지 마라. 하고 미리 산통을 깨는 사람? 이런 사람보다는 여긴 이래서 좋고, 저긴 저래서 좋아 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좋은데요. 임경선 작가님이 그런 친구 같아요. 연상, 또래, 연하 이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는 남자는 없으니 일단 연애를 해보고 볼 일이라는 말씀이잖아요.



<난 이런 사람들이 싫어요>라는 글에서 요조는 두 가지 타입의 사람들을 경계한다고 해요. 극단적인 사람들, 즉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또 하나는 빈정대고 조롱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유는 그런 태도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요조가 말하는 너그러움의 기준도 있어요.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을 다들 조심하라고 하지만, 저는 어떤 사람하고의 우정과 사랑을 확인하는 데 남 뒷담화만큼 좋은 건 없다고 봐요. 
아니 세상에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화를 참고 있나요. 친한 사람들과 투덜투덜하면서 풀어야죠. 
그리고 아부하고 가식적으로 구는 사람도 예전에는 좀 피곤하고 싫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것도 하나의 노력으로 보이고, 어쨌든 애쓰는 거잖아요. 마음에 없는 소리라는 게 너무 티가 나더라도 아부하고 가식적으로 구는 그 사람의 노력이라는 걸 가상하게 보게 되고, 그래서 칭찬해주어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하곤 해요.‘

(118쪽)

이 대목 읽으면서, 아, 요조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저도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조는 언니인 임경선 작가에게 무엇이든 물어보고요. 임경선 작가님은 시원시원하게 대답도 잘 해줘요. 직장인과 프리랜서, 어느 쪽이 더 낫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는군요.

‘아무래도 직장생활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일을 배울 수 있는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적게는 7년, 많게는 10년 정도는 다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경험해봄직 해.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에서 조직관리와 사내 정치의 비중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독고다이’ 기질, 예민하거나 완벽주의자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업무 경험을 살려 차라리 혼자서 스스로를 책임지는 프리랜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자기 실력이 액면 그대로 드러나니까. 개인적으로는 남의 회사에 다니지 않고도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대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사회라고 생각해. 수명이 점점 길어질 앞으로의 시대는 그 누구나가 언젠가 한 번쯤은 프리랜서의 계절을 반드시 겪게 될 테고 말이야. 하나의 직업만이 아닌 두세 개의 직업을 거치게 될 확률도 높겠지.‘

(138쪽)

참 현명한 조언 아닌가요? 스승이 될 수 없는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던데, 두 사람의 우정을 설명하는 좋은 비유 같아요. 제게 이 책을 소개해준 친구도 귀한 정보를 알려줬다는 점에서 스승이기도 하고요. 좋은 책이 그렇지요. 친구 같고, 스승 같아요.
   
가끔 글쓰는 후배들이 악플 때문에 힘들어 하면 임경선 작가는 이렇게 물어본대요. 

‘만약 네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무언가를 판단(비판)하는 사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냐고. 그럼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다들 이렇게 대답하더라? 억울하게 욕먹는 한이 있더라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196쪽)

책을 읽으며 우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같은 점을 공유하는 사이도 좋지만, 서로 다른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관계 또한 참 멋진 우정이라는 걸 책에서 배웠어요. 두 분의 즐거운 수다를 엿듣다 문득 제가 평소 갖고 있던 고민에 대한 답을 얻은 기분이에요. 현명하고도 따듯한 친구를 책으로 만났네요.  

https://youtu.be/yHwjG2yFG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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