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신문이나 매체를 통해 올해의 책이 발표되지요. 한 해 동안 나온 좋은 책 중 빠뜨린 건 없나 살펴봅니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선정 2019 올해의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2019년에 놓치셨다면 2020년에 찾아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 창비)

'‘결정장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우물쭈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너무 많이 고민하는 나의 부족함을 꼬집는 간명한 말 같았다. 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많은 대화에서 수없이 사용했다. 혐오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 참석자 중 한분이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저자는 대학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평소 혐오표현을 쓰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인데, 많은 장애인들이 참석해서 듣고 있던 자리에서 ‘장애’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의식조차 못했다고요. 우리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요.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한다고요.

차별은 나쁜 겁니다. 우리가 다 그걸 알지요.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외국인이라고 차별하지 않아요. 단지 칭찬할 뿐이지요. 우리말이 유창한 외국인에게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고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이걸 상대가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나요? 내가 굳이 한국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한국인이 된다는 말이 칭찬일까요? 장애인에게 따스하게 말을 건넵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그럼 장애를 가진 현재는 희망이 없다는 건가요?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은 하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된 건 아닐까요? 타인을 차별할 뿐 아니라 때로는 우리 자신을 차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 결과는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굳이 타인들이 노골적으로 차별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차별적인 구조가 유지된다. 차별을 받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부족하고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지도 않는다.’

(66쪽)

건강하게 일을 하며 잘 살면 좋겠지만, 인생은 뜻대로만 풀리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약자가 되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야 할 때도 있어요. 우리는 모두 약자로 태어나 약자를 향해 갑니다. 태어나면 한동안 우리는 부모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하고요. 나이가 들면 역시 타인의 도움에 의지해 한동안 살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질병을 얻고 장애를 얻어 갈 겁니다. 시력, 청력, 기억력 다 나빠질 거예요. 약자들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훗날 스스로가 약자가 되었을 때, 그 고통이 너무 커집니다. 차별하는 사람이 줄어야 차별받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내가 차별하지 않고 살아야 차별당하지 않을 겁니다.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어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믿음은 필요하다.

문제는 부정의한 상황을 보고도 이 가설을 수정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긴다. 세상이 언제나 공명정대하다는 생각을 바꾸는 대신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왜곡하여 이해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행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가 안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기에 그런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정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바로 그 믿음 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공정하게 만들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그러니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혹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세상이 부정의하다고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대신 비난의 화살은 부정의를 외치는 그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에게 뭔가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은 꽤 자주 있다. 왕따나 괴롭힘, 성폭력, 가정폭력 사건 등 수많은 사건들에서 우리는 종종 피해자를 먼저 의심한다. 차별에서도 마찬가지다. 차별의 부당함을 보기보다 차별의 부당함을 외치는 소수자의 흠을 찾고 비난한다. 그렇게 차별은 계속되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168쪽)

차별을 왜 없애야 할까요? 불평등한 세상은 살기 너무 고단하기 때문이죠.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도록 종용하거든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차별을 당하는 개인에게 지웁니다. 그래서 삶이 불안하지요.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어떤 이유로건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원치 않게 소수자의 위치에 놓였을 때 그 사실을 부정하며 고통을 감내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보다는,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189쪽)

책을 읽는 이유, 조금 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해롭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공부에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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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수정 2020.01.31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처 의식조차 못했던 말들인데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좀 더 상대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이야기 해야겠어요~

  2. 김주이 2020.01.31 0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고 저도 하나 보태봅니다.
    벙어리 장갑이 아니라 엄지 장갑^^
    저도 기사에서 보고 아차한 표현 입니다.

    흔하게 쓰는 표현인데 다시 생각하면 더 좋고 바른표현들로 바꿔야하는 단어들이 있는것같아요.

    • 아리아리짱 2020.01.31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엄지 장갑'
      맞네요! 엄지 장갑!
      덕분에 엄지 '척'인 표현
      깨닫습니다! ^^

  3. Mr. Gru [미스터그루] 2020.01.31 0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별이 선입견 때문에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떨 것이라는 지레 짐작하고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각자의 개성과 생각, 환경이 다르니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은 아프든 아프지 않든 피부색이 어떻든 우리와 같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신 표현을 할 때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듣는 사람을 생각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가족이든 친한 친구든 모르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해당이 됩니다.

    최대한 표현을 좋게 하되 만약 듣는 사람이 차별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사과를 합시다.
    세상에 나만 소중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꼬꼬독 위라클편에서 처럼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먼저 틀안에 가두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견해 감사합니다~!

  4. 미듬헤븐 2020.01.31 0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습관처럼 쓰는
    불평등한 언어들이
    우리자신을 겨냥하거나 타인을 겨냥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도 그 말을 듣고 살기에
    오늘 하루 제가 쓰는 말을
    좋은 말,축복의 말들로 채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책소개를 통해
    오늘도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5. 아리아리짱 2020.01.31 0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 민식pd님 아리아리!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차별적 사고에
    젖어 있음을 많이 깨닫게 하는 책이었어요!
    타인에게 주는 편건과 아픔이 자신에게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음을 늘 자각해야겠습니다.

  6. GOODPOST 2020.01.31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해한 사람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

    나를 돌아봅니다. 차별을 생활에서 하고 있지 않는지?
    오늘도 인생공부를 배웁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위해서. 감사합니다.

  7. 열정나총 2020.01.31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저부터 차별 없이 세상을 봐야겠네요 !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8. 꿈트리숲 2020.01.31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신문에서 올해의 책 소개부분 캡쳐해뒀는데요. 리스트 중에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있었어요. 선량한과 차별주의자가 좀 상반된다 싶어 기억에 남습니다.

    결정장애... 아무런 의심없이 고민없이 쓰고 받아들이고 했어요. 무심결에 사용한 말에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조심해야겠다 싶어요. 작가님 말씀처럼 무해한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읽고 평생 배워야겠습니다.^^

  9. 오달자 2020.01.31 1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히들 쓰는 언어가 상대방에게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대부분은 인지 못하고 살아가는 요즈음,
    경각심을 일으키는 책이네요.

    이래서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워야하나봅니다.
    오늘도 귀한 책 소개 감사드려요.

  10. 더치커피좋아! 2020.01.31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안에 내면화 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

    이렇게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맞는말 같아요..

    스스로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고
    인정할줄 아는 사람이 되면,
    남들을 보는시선,대하는 자세도
    따뜻하게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를 인정하는 하루.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하루
    되세요~^^

    피디님도 파이팅~!

  11.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1.31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이 글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군요
    나도 모르게 상처주고 차별했고 문득
    안희정지사 미투 사건의 댓글들도
    떠오릅니다
    이 책은 꼭 읽어야겠어요
    타인에게 상처주지않는 저도 좀 더 무해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12. 나겸맘 리하 2020.01.31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명저자의 책 속에도 '결정장애'라는 단어가 들어간 챕터가 있었어요.
    저 역시 그것을 별다른 저항감없이 읽고 서평도 썼는데요.
    '장애'라는 단어를 아무 단어와 연결지어 쓰면 안된다는 인식 부재의 결과네요.
    차별받기 싫은 만큼 타인을 차별하지 않아야겠고요.
    타인의 시선으로 내 가치를 낮게 평가하여 스스로를 차별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일도 삼가야겠습니다.
    차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 곱씹게 됩니다.

  13. 보리랑 2020.01.31 17: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한테 좋은 의도로 말했는데 어떤 때는 정색을 하더라구요. 부지런히 깨어나야 노년이 외롭지 않을 듯합니다

  14. renodobby 2020.02.01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며 살아가는 요즘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인거 같습니다.
    오늘 서점가서 읽어보고 티스토리에 리뷰 작성해야겠네요😊

  15. 섭섭이짱 2020.02.03 0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정말 이 문구는 마음속에 새겨서 항상 되뇌이도록 해야겠어요.
    이 책도 읽을 책 목록에 저장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