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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by 김민식pd 2020. 3. 23.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몸이 아플 때지요. 예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빨간불에 신호 대기 중인데 뒤에서 냅다 달려온 차가 들이받았어요. 정말 황당한 사고였지요. <글로리아>라는 주말 연속극을 녹화하는 날 출근길에 난 사고였어요. 바로 입원을 해야 할 상황인데, 통증 주사 한 대 맞고 회사에 나가 녹화하고 밤샘 편집을 했어요. 아파도 내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허리가 아프니까 참 서러운게 남들 보기엔 멀쩡합니다. 혼자 힘들어요. 누워도 아프고, 서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밀려오니까 죽을 것 같더군요. 이럴 땐 고통이 내 삶을 지배하는 느낌이에요. 고통의 노예가 된 것 같지요.

<아파서 살았다> (오창희 / 북드라망)

오창희 선생님이 쓰신 평생의 투병기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남산강학원에서 만났어요. 그때 뵌 기억으로는 몸이 불편한 분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어느날 다른 책에서 선생님이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을 보고, '어? 내가 아는 그 오창희 선생님이 맞나?' 했을 정도예요. 이렇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심합니다. 아니 우리가 애써 아픈 몸을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자는 어린 시절 찾아온 류머티즘으로 평생을 고생합니다. 요즘도 관절의 변형은 진행 중이고 통증도 수시로 찾아온대요. 왼쪽 팔꿈치는 누가 반갑다고 힘주어 잡기라도 하면 바로 '악!' 소리가 나고요. 손가락은 장갑을 끼기 어려울 만큼 변형이 되었다고요.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고 칠팔 년 만에 걸을 수 있게 된 적이 있는데요. 제가 뵌 건 아마 병세가 호전되었을 때 였나 봐요. 

'처음 류머티즘에 걸렸을 때는 그걸 떼어 버리기 위해 십 년간을 분투했다. 어쩔 수 없어 함께 살기로 마음을 바꿔 먹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이 병과 이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피하고도 싶었고 대충 뭉갤 수 있으면 그러고도 싶었다. 그렇지만 눈만 뜨면, 아니 잠자는 시간마저도 잊을 수가 없고, 살아 움직이는 한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 어찌해 볼 재간이 없었다. (...)

류머티즘에 감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정말 이놈이 싫다. 그런데 "만약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살았을까?"라거나, "안 아팠다면 삶이 더 만족스러웠을까?"라고 자문했을 때, "그렇다"라고 답할 자신은 없다. 그러니 내 삶은 재앙처럼 닥쳐 온 류머티즘이란 놈이 나를 지금 여기까지 밀어붙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걸 부정하는 건 내 삶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13쪽)

교통사고가 나고 한동안 괴로웠어요. '그날 아침에 전철로 출근했다면?' '다른 차선에서 신호대기를 했다면?' '뒷 차 운전자가 과속만 하지 않았다면?' 나중엔 허리가 아픈 것보다 정신적 분노 때문에 더 괴롭더군요.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몸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때문에 마음까지 다치지는 말자고요. 오창희 선생님도 비슷한 결심을 하셨나봐요. 수술 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음 공부를 시작합니다. '수유+너머'에 찾아가 카프카를 읽어요. 집에서 가깝고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이유로 감이당을 선택한 후, <동의보감> 강좌를 듣습니다. 질병으로 아픈 몸을 돌보며, 또 그 몸을 돌아보는 공부를 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모든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류된다면서 하루 중 3분의 2를 자기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할 때 그 사람은 노예라고 말했다. 시간은 돈보다 더욱 귀중하고, 한가로운 시간이야말로 무의식이 비로소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146쪽)

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자칫 우리는 노예의 삶을 살기 쉽습니다. 저자가 류머티즘 투병일기를 쓴 것은 스승이신 고미숙 선생님 덕분이랍니다. 공부가 부족해 책을 쓸 자신이 없다는 저자에게 "공부가 다 되고 책을 쓰는 사람은 없어요. 책을 쓰면서 공부를 하는 겁니다."라는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다고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부족함을 알기에 매일 글을 씁니다. 부족함을 채워가는 방법은 공부고요, 글을 쓰는 것만큼 좋은 공부도 없어요.

'혹시라도 지금 류머티즘을 앓고 있거나 다른 난치병을 앓고 있는 분이 특별한 치료법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선택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치유에 초점을 둔 것도 아니거니와 책을 쓴 당사자인 나는 여전히 류머티즘을 앓고 있고 앞으로도 이 병이 나을 가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안에, 비록 지금 앓고 있는 병 자체를 낫게 할 힘은 없어도 그것을 내 삶에서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선택권은 있다. 이러한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이 저마다의 '류머티즘'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이 책은 주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그 점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14쪽)

코로나라는 몹쓸 바이러스가 어느새 우리 곁에 찾아왔어요. 완전 퇴치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요. 어쩜 우리는 앞으로도 이름모를 바이러스와 싸우며 살아가야겠지요.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로 인해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도,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누려온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하루하루에요.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공부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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