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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이토록 유쾌하고 명랑한 독서

by 김민식pd 2020. 3. 20.

'코로나의 시절,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라는 꼬꼬독 피디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찍어 보낸 사진입니다. 나갈 일이 없으면 집에서 책을 읽으며 버티는데요. 이럴 때, 좋은 책은 독서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책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기 좋은 책, 바로 책 소개하는 책이지요.

 

<유쾌하게 떠나 명랑하게 돌아오는 독서 여행> (서민 / 인물과 사상사)

 

2012년 MBC 파업이 한창일 때 노조 사무실에서 <인물과 사상> 잡지를 읽고 있었어요. 표지 인물이 당시 노조 홍보국장이던 이용마 기자였고요. 이용마가 지나가다 보고 “아니 왜 그걸 보고 있어.”하며 민망해 했는데요. 차마 말은 못했지만, 당시 저는 서민 선생님의 서평을 읽고 있었어요. 힘든 시절, 저는 <인물과 사상>에 서민 선생님이 연재하신 책 소개 글을 읽으며 즐거움과 위로를 얻었어요.

이 책은 총 3장으로 나눠져 있어요.

첫 번째 여행, 이상한 나라에서 책 읽기

두 번째 여행,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꾸진 않겠지만

세 번째 여행, 읽고 쓰며, 명랑하게 삽니다.

 

두 번째 장에서는 페미니즘에 관련한 책을 이어서 소개해주시는데요. ‘책 한 권이 사람을 바꾸진 않겠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다보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걸 희망하기에 선생님도 꾸준히 읽고 글을 쓰는 것이겠지요. 정희진 선생님이 쓰신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서민 교수님은 충격을 받습니다.

‘내가 평온하게 여겼던 일상이 남성 중심적인 인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쓰던 ‘미망인 未亡人’은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듯, 그러니까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당연히 따라 죽어야 함을 내포하고 있다. 아내를 잃은 남성에게 이런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미망인’은 여성을 차별하는 단어다.’

(121쪽)

정희진 선생님의 책 <혼자서 본 영화>를 이어 읽는 서민 교수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책은 손바닥에 들어올 만한 작은 크기고, 200쪽 남짓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금방 읽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책 한 줄 한 줄이 저자의 통찰로 이루어져 있고, 그 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알껍데기를 한 층 벗겨낸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직도 까야 할 껍질이 워낙 많다 보니 언제쯤 날아오를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비상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뿌듯하다. 이렇게 정리하자. 정희진은 혼자서 영화를 보지만, 그로 인해 독자들이 각성한다.’

(124쪽)

문득 패러디를 하고 싶은 글이네요. '책 한 줄 한 줄이 저자의 풍자와 해학으로 이루어져 있고, 심오한 유머를 한번에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뱃가죽이 알싸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많이 웃었던 것이다. 무슨 기생충학자가 이렇게 웃기나, 코미디피디로서 자괴감이 들지만, 이렇게 정리하자. 서민은 혼자서 개그를 치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독자들이 즐겁다.'

책을 읽다 눈을 비비고 다시 읽은 대목도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리 좋은 아들은 아니었다. 외모 콤플렉스로 매사 자신감이 없었고, 키도 작은데다 몸도 약해 여자애들한테도 맞고 다녔다. 게다가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못했으니,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으리라.

그 당시 아버지들이 다 그렇듯, 내 아버지 역시 체벌을 주훈육 수단으로 사용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물으셨다. “민아, 너 마지막으로 맞은 게 언제지?” 난 대답했다. “지난주 목요일이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럼 오늘 맞자.”

(289쪽)

서민 교수님은 고3 때 공부를 잘 했어요. 그 시절, 공부하느라 밤 10시가 넘어서 오는 아들을 붙잡고 서민 교수님의 아버지가 한 말씀. “너처럼 밤늦게까지 공부해서 1등하는 거, 누가 못하냐? 내일부터 10시까지 와라.” 밤 11시에 들어갔다가 맞으셨다고요. 맞은 서민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묘하게 위로가 됩니다. 아니, 서울대 의대를 간 분도 맞았는데, 나같은 내신 7등급이 맞는 건 당연한 일이었구나!

책을 소개받기 위해 읽은 책이지만, 서민 선생님의 개인사가 나올 때 더 반갑습니다. 유명한 보쌈집에 혼자 갔다가 1명은 안 받는다고 쫓겨나요. “큰 거 시킬 테니 봐주세요.”라고 했는데도. 억울한 마음에 집에 전화해서 하소연했더니 흥분한 아내가 그 집에 전화를 걸어서 따지셨다고요. 정말 부럽습니다. 우리집 마님은 이럴 때 저를 혼내시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왜 비싼 집에 가서 수모를 당해. 그냥 싼 데 가면 되지.” 아내가 제 편을 안 들어주고 혼낼 때마다 내 못난 외모 탓에 아내에게 존중을 못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 그냥 존경합니다.

서민 선생님은 이름 덕을 보신다고 해요. <서민적 글쓰기>란 책이 잘 팔린 이유가 이름 덕이라고요. 리뷰 중에 이런 글도 있답니다. “서민을 위한 글쓰기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 이름이 서민이라니, 낚였다.”

<유쾌하게 떠나 명랑하게 돌아오는 독서여행>, 코로나로 인해 뒤숭숭한 주말에 읽었어요. 유쾌하고도 명랑한 독서! 제목도 참 잘 지었네요. 찔리는 대목도 많았지만, 웃긴 부분이 더 많았어요. 역시 서민 선생님은 해학의 대가이십니다. 다음 책도 기대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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