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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는 삶

by 김민식pd 2019. 12. 13.

 

책을 낼 때, 저자 소개에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는 게 취미이자 직업인 사람’이라고 씁니다. SF 소설을 원서로 읽다 번역가가 되었고, 영어 리스닝 공부하느라 시트콤을 보다가 시트콤 피디가 되었어요.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일단 열심히 해보고 그걸로 먹고 사는 단계까지 가는 게 즐거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신문 서평란에서 <취미로 직업을 삼다>라는 제목을 보고 ‘어라? 이건 내 특기인데?’ 했던 책이 있어요.

<취미로 직업을 삼다> (김욱 / 책읽는 고양이)

‘85세 번역가 김욱의 생존분투기’라고 하는데요, 저자인 김욱 선생님은 1930년생이십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보면, 고생을 참 많이 한 세대이지요. 어려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로 수업을 받고요, 해방이 되어 좌우익의 갈등 속에 위태위태하게 지내다 전쟁이 터져버리지요. 김욱 선생님은 책을 사러 나갔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혀 이북으로 끌려가고요. 죽을 고생 끝에 서울로 돌아옵니다. 가난한 시절에 먹고사느라 고생도 많이 하고, 군사 독재 정권 시절, 억압과 탄압도 많이 받았어요. 직업으로 신문 기자를 선택하고, 삼십 년 넘게 일을 합니다. 일제  시대와 6.25 전쟁 같은 큰 위기를 넘긴 후, 이제 퇴직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나, 싶을 때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쳐옵니다. 보증을 잘못 섰는데 IMF가 터져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리고 쫄딱 망해서 남의 집 묘막살이를 합니다. 어려서는 식민지, 커서는 전쟁, 늙어서는 IMF를 겪은 세대가 1930년생인데요. 문제는 나이 들어 돈을 다시 벌려고 해도 벌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세상은 오직 내 나이가 육십이 넘었다는 이유로 노인네 취급했고, 더 이상 사회에 너를 위한 일감은 없다고 매정하게 거부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나.’ 
(10쪽)

세상이 일을 시켜주지 않아 혼자 일을 찾아 나섭니다. 어렸을 때 배운 일본어로 번역일을 하려고 해요. 해 본 적없는 일을 시도하려니 일감을 주는 출판사는 없습니다. 일감을 스스로 찾아갑니다. 시골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18만원짜리 셋방을 구하고요. 왕복 세 시간 반을 달려 서초동 국립도서관을 찾아다닙니다. 옛날 책을 뒤집니다. 작가 사후 70년이 흐르면 저작권이 사라집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작가와 계약하지 않아도 되므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요. 사람들 기억에서 잊힌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냅니다. 출간 기획안을 써서 출판사를 찾아다닙니다. 저작권이 소멸된 책이니 번역료만 챙겨주면 내가 일하겠노라 하고요. 평생의 취미였던 독서를 밑천삼아 번역에 매진하여 200권이 넘게 번역했대요. 취미로 직업을 삼게 된 거죠. 

나이가 들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이 노화를 통해 잃는 육체적 기능은 30% 정도랍니다. 그건 속도와 순발력, 감각 같은 찰나의 아름다움일 뿐, 신체를 지탱시켜주는 지구력, 인내력, 소화력에는 차이가 없답니다.

‘나이 들수록 주름지는 것은 피부 표면의 수분이 증발하는 시간을 늦추기 위함이고, 몸에 안 좋은 자외선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이기 위함이다. 나이 들어 키가 줄어드는 것은 불필요한 골격을 줄여 소비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절약된 에너지는 생명 유지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심장과 뇌에 우선적으로 공급된다.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을 버리고 보다 완벽한 생명체로 탈바꿈하고자 우리가 노화라고 부르는 과정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노화(老化)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다. 진화(進化)가 맞다.’   

(26쪽)

저도 나이 50이 넘어 이제 머리가 하얗게 새고, 빠집니다. 가끔 사람들이 탈모 방지 샴푸나 염색약을 권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웃으면서 사양합니다. 제가 외모로 승부하는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저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지구의 중력이 작용하는 한, 머리는 빠질 것이요, 시간이 흐르는 한, 머리는 계속 하얗게 새겠지요. 흐르는 세월을 억지로 부여잡고 청춘을 부러워하며 살기보다, 10년 후, 20년 후, 더 지혜로운 노인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제게는 그게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나이 50에 외모 관리를 한다고 다시 꽃다운 청춘이 될 수는 없겠지요. 환갑에 수능 만점을 받아 서울대 의대에 합격할 가능성도 매우 낮고요. 칠순에 건설 일을 시작해 건설 회사 사장이 되고 강남에 100세대 아파트를 짓는 일도 힘들 겁니다. 육체나 물질적인 차원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나이 60에 정신적인 생활에서 기쁨을 찾는 건 가능합니다. 

‘칸트를 읽고, 사서삼경을 읽고, 성경을 읽고,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내가 살아온 이야기, 세상에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등의 지적으로 충만한, 내적으로 행복한, 인간적으로 자랑스러운 노년의 지성미 넘치는 최후의 마무리는 누구든지 가능하다. 이것이 고령화의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 우리에겐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다.’

(128쪽)

직장에서 막말하는 상사에게 탈출하는 마음으로 취미를 파고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탈출구로만 삼지 마세요. 요즘은 창직도 가능한 시대입니다. SNS가, 유튜브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어요. 그런 무기를 활용하셔서 취미를 내 삶의 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 깊숙이 숨어있는 욕망을 들여다보세요. 
취미로 직업을 삼는 것, 우리 모두가 도전해볼 과제가 아닐까요? 어려서는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고, 나를 받아준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고, 항상 나보다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요. 그렇게 평생을 살며 가족을 부양하고, 이제 노후를 맞게 되었다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는 일로 만들고, 놀이를 공부삼아 하다 그게 일이 되는 삶, 그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노후 아닐까요?
직업을 구하고 얻는 자세에 대해 배울 점이 많은 책이고요.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힘이 되어줄 책입니다. 젊은 세대나, 나이든 세대나, 모두 이 85세 현역 번역가에게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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