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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by 김민식pd 2019. 11. 29.

 

요즘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인 민서가 겨울방학에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어요. 민서는 <완득이>를 좋아합니다. 민서에게 물어봤어요. 
"<완득이>가 좋은 이유가 뭐야?"
"완득이는 라면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어!"
네, 우리 집에서 라면은 금지 항목이거든요. ㅠㅠ ^^ 
아이와 책 이야기를 하면 엉뚱한 대목에서 빵 터집니다. 이때 저는 "그치? 완전 부럽지?"하고 맞장구만 쳐줍니다. 
"아니 <완득이>의 교훈이 '엄마가 없으면 라면을 마음껏 먹는다'가 아니잖아. 그 책은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잔소리를 하지 않아요. 그럼 민서는 저랑 더 이상 책 이야기를 안 할 테니까요.
<완득이>는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데요. 민서에게 다른 수상작도 권하려고요. 언니가 좋아하는 <아몬드>도 좋고,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도 좋아요.

<페인트> (이희영 / 창비)

출생률이 자꾸 떨어지니까 국가에서 비상수단을 강구합니다. 육아와 교육이 힘들어서 출산을 포기한다면, 아이는 마음껏 낳아라. 정부에서 대신 키워줄게. 공공육아로 아이를 키우고요, 그렇게 자란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부모를 선택해서 가정을 꾸리게 합니다. 매력적인 상상이지요? 부모는 양육에 들어갈 자원을 아끼고, 국가는 공공 육아를 통해 아이들에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아이가 직접 부모를 선택한다는 점이지요. 부모를 면접하고 점수를 매겨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소설에서 아이들이 부모 후보들을 만나 면접을 보고 점수를 매겨 선택하는 걸 '페인트'라고 불러요. Parent 페어런트, Paint 페인트.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로, 내 인생을 새로 칠할 수 있어요. 내 손으로 미래를 색칠할 수 있다면? 이 놀라운 가정을 놓고 이야기는 달려갑니다. 아이들은 어떤 부모를 원할까요? 책을 읽는 것은 타자의 이야기로 나를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저보고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냐, 묻는다면 저는 자기감정에 솔직한 부모라고 답하겠어요.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은 싫어요.”
(77쪽)

'누군가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인품이 드러난다고. 눈가에 잡힌 선명한 주름은 두 사람이 지금껏 얼마나 자주 미소를 지었는지 알려 주었다. 불거져 나온 손마디는 성실함을, 낡아 보이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은 소박함을 증명했다.'

(150 쪽)

“아이는 절대 실험 대상도 연구 대상도 아닌데,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잖아요. 여자아이 중에서 프릴 달린 원피스에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지 않겠어요? 고작 열 살짜리가 억지로 간 발레 학원에서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끔찍한 일 아니에요?”
(107쪽)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사이다발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반대로 부모입장에서 보면 아픈 말들이 많지요.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듯한 책입니다. 그것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말이죠. 그렇다고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에요.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160쪽)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이어주는’ 책이거든요. 책을 읽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저와 여동생은 어려서 아버지가 행사하는 가정 폭력, 어머니의 언어 폭력에 늘 괴로워했어요. 부모 없이 사는 게 어려울까,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사는 게 더 어려울까? 항상 그게 고민이었지요. 책을 읽다 작가의 말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어요. 

'내 유년은 회색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중에서 검은색이 더 많이 섞인 잿빛 회색. 나의 아이에게는 이런 색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사랑한다, 그저 사랑한다, 꾸준히 말할 수밖에. 누군가 내게 왜 청소년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이유를 들고 싶다. 유년 시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고.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내 안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와 놀아 주는 일이 나에겐 글쓰기다. 부모가 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이 바라는 아이로 만들려는 욕심보다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는 마음이 먼저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 가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면 된다.'
   
(199쪽)

어린 시절, 저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어른이 되는 게 무서웠어요.
매 맞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폭력 남편이 된다는 책 속의 경고는 제게 협박이었어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10대의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민지와 민서, 두 딸의 사진을 책갈피에 넣어서요. 
"부모는 네 마음대로 못 골라도, 이 아이들에게 네가 어떤 부모가 될 지는 너의 선택이다. 힘들면 책 속으로 달아나렴. 재미난 이야기를 읽다 문득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단다. 이 책이 그 좋은 증거야."
타임머신이 없어 과거의 나를 찾아갈 수 없기에,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을 지금의 10대에게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이 책을 권합니다.
아이와 부모가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나는 이 아이에게 부모로 선택 받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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