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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인생의 효율을 높이려면

by 김민식pd 2019. 12. 12.
(어제 올린 <사랑의 블랙홀> 영화평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스무 살에 공대를 다니며 인문학 전공자들이 늘 부러웠습니다. 나이 50에 인문학 강연을 쫓아다니는 건 어린 시절의 한을 푸는 일이지요. 강연을 많이 듣다보니 <PD 연합회>에서 교육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피디들이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 의논하는 자리인데요. 스마트워크 디렉터로 일하는 최두옥 님의 강연을 외부에서 듣고, 제안을 했어요. 피디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수업을 듣자고요. <PD 연합회>에서 교재를 추천해달라기에 최두옥 님께 여쭤봤더니 <Extreme Productivity>라는 미국 책을 권하시더군요. 마침 번역본이 나와있어 찾아봤어요. 

<그는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내는가> (로버트 포즌 / 차백만 / 김영사)

일단 저자의 약력을 보고, 그 생산성에 놀랐어요.

'로버트 포즌 교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정규과목을 가르치는 동시에 다국적 금융기업의 의장직을 병행했고, 동시에 총 6권의 책과 수백 편의 글을 쓰고, 많은 지역자선단체와 공기업에서 사외이사로도 활동했으며, 40년을 함께한 아내와 평온한 가정을 유지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누구보다 효율적이고 현명한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생산적인 경영자로 인정받는다. (...)
그러나 그 자신은, 결코 심하게 바빴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 소개에서)

저자의 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다양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삽니다. 오랜 시간 일하고도 큰 돈을 벌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저자는 공부를 잘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다니던 지역 고등학교의 교사 수준이 낮아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가정 형편상 고교 시절, 아르바이트도 2개나 합니다. 그 와중에 친구들과 농구와 테니스도 열심히 즐깁니다. 운동과 공부, 아르바이트, 셋 다 열심히 하고 하버드에 진학합니다. 하버드에 가보니 동급생들은 부유한 집안의 머리 좋은 아이들이었대요. 가난한 환경을 타고난 자신이 이들과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이라는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대학 시절, 야간에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기업에서 조사업무 아르바이트를 하고, 복수전공을 하면서, 대학 신문사 논설을 담당하고, 농구팀 주장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버드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답니다. 대학 시절,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하는 습관을 기르고 변호사가 되었는데요. 시간당 요금을 부과하는 법률사무소의 관행에 매우 실망합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사람일수록 돈을 덜 버는 구조거든요. 변호사가 돈을 벌려면, 의뢰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청구해야 해요. 남들은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버티면서 돈을 버는데 익숙하지만, 저자는 그게 안 맞는 사람입니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투자회사로 옮기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열중하지요. 그 결과 투자회사에서 사장 겸 부회장까지 올라갑니다. 
인생에서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될 자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간입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그걸 깨달은 거죠. 

제 대학교 시절, 성적표입니다. 2학년 1학기 영어 성적이 D+에요. 영어를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2학년 마치고 휴학하고 고향에 내려가 방위병으로 일했어요. 신병훈련소에서 쇼크를 먹습니다. 수 백명을 머리 깎고 훈련복을 입혀놓으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더군요. 결심을 합니다. 방위병 근무하는 동안, 남다른 특기를 하나 만들자고. 그게 영어고요.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합니다. 주말에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열심히 읽었지요.   


군복무를 마치고 90년 가을에 도서관에서 다독상을 받습니다. 1년에 책 200권을 읽었거든요. 영어회화 교재도 통째로 외웠습니다. 1년 반 동안 공부했더니, 영어에 자신이 붙었어요. 

1991년에 복학하고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대회에 나가 2등상을 탑니다. 88년도 1학기 영어 D+를 받은 사람이, 91년에 전국 2등을 해요. 그 사이에 200권의 책을 읽고요.

가끔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피디로 사시면서, 블로그에, 유튜브에, 책 집필에, 강연까지, 어떻게 그 모든 일을 다 하느냐"고. 저는 그 와중에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어요. 일과 공부와 놀이를 적절히 분배하며 삽니다. 20대에 깨달았어요. 시간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로 인생의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걸. 
 
<그는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내는가> 책을 읽으며, 내가 평생을 통해 깨달은 점을 누가 대신 정리해뒀다고 느꼈어요. 

먼저 생산력을 키우는 3대 핵심 아이디어가 있어요.
1. 가장 중요한 결과물에 시간을 써라.
2. 가능한 한 빨리 최종결과물에 집중하라
3.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지려고 하지 마라

훈련소 입소하면서 목표를 세웠어요. 1년 반, 군복무 기간 동안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하겠다고. 그걸 위해 틈날 때마다 손바닥만한 쪽지에 적어둔 영어 문장을 외웠어요. 최종 결과물은 영어 정복이지요. 그것만 집중합니다. 만날 사람이 없었어요. 여자 친구도, 과 동기도, 고교 동창도,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영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지냈어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버려야할 습관이 2가지 있어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지만 중요한 일은 자꾸 뒤로 미루는 행동은 반드시 버려야 할 습관이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해서 제때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강박적인 습관도 마찬가지다.'

(위의 책 42쪽)

영어 문장을 외우는 건 귀찮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군 복무를 하던 제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요. 고참들에게 점수를 따고, 장교들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구석에 가서 눈을 감고 문장을 외웠어요. 별난 놈이라고 수군거렸지만 괜찮아요. 따돌림에는 익숙하니까. 영어를 할 때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지 않아요. 쉽고 간단한 문장으로 일단 대화를 시작하고 봅니다. 그래야 점점 늘어요.  

'당신은 매일 당신의 시간과 지적 노동을 요구하는 수많은 요청에 직면한다. 동료나 가족, 지인들, 심지어 낯선 이들조차 당신의 시간과 지적 노동력을 빼앗아가려 한다. 따라서 이런 요청을 받았을 때에는 무시할지, 아니면 응대할지를 즉각 결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요청사항의 80퍼센트는 무시해도 좋은 것들이다. (...)
나는 80 대 20 법칙을 믿는다. 즉, 20퍼센트의 노력이 80퍼센트의 성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예를 들어, 영업직원들은 80퍼센트의 매출을 20퍼센트의 고객한테서 올리지만, 막상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나머지 80퍼센트의 고객들에게 쏟는다. 따라서 돈이 안 되는 80퍼센트 고객들의 요청이라면 비서나 웹사이트로 돌리는 것이 좋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아예 이런 고객들을 '해고'하고 실제로 돈이 되는 20퍼센트의 고객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훨씬 낫다. 당신이 수신하는 이메일에도 80 대 20 법칙을 적용하라. 시간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메일만 골라서 회신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삭제하든지 무시하라.'

(69쪽)

제가 블로그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니까 무척 한가한 사람으로 여기는 분도 있습니다. 그냥 한번 만나고 싶으니 연락처를 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독서, 글쓰기, 여행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난 철저히 시간을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씁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지 않아요. 
정확하게 원을 그립니다. 동그라미는 3개. 가운데 동그라미에는 내가 있고, 그 밖 작은 동그라미에는 가족, 즉 아내와 두 딸이 있어요. 그 밖의 큰 동그라미는 친구의 영역인데요. 내가 좋아서 찾는 친구는 열 명을 넘지 않습니다. 그 외는 80의 영역이지요. 나와 가족, 친구를 위해 제 시간의 80을 쓰고, 모르는 80의 영역에는 시간의 20을 할애합니다. 이게 바뀌면 삶이 불행해요.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20의 시간을 쓰고, 회사 동료나 학교 동창을 위해 80의 시간을 쓰는 삶은 제가 원치 않는 삶입니다.

20년 넘게 피디로 일하면서 여러 조연출들과 일을 해봤는데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입니다.
1. 가장 중요한 결과물에 시간을 써라.
2. 가능한 한 빨리 최종결과물에 집중하라
3.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지려고 하지 마라 

조연출로 일할 때, 저의 작업 방식은 간단했어요.
1. 가편집본을 최대한 빨리 만들어 피디에게 보여줍니다.
2. 피드백을 받고 재빨리 수정하여 다음 단계로 넘깁니다.
3. 그래야 음악, CG, 자막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편집본에 노력을 더할 수 있습니다.

1차 가편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친구는, 1. 피디의 피드백을 못 받고, 2, 전문가의 도움을 못 받고, 3. 일을 느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결국 팀에서 제외되기 십상입니다.
 
52시간 노동의 시대,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빨리 하는 게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시간의 생산성을 키우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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