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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나무에게 배우는 육아 원칙

by 김민식pd 2019. 12. 6.
아버지가 대추나무에 올랐다가 가지가 부러져 크게 다치신 적이 있습니다. 체력에 자신이 있어 산도 잘 타는 분인데, 많이 놀랐지요. 꾸준히 재활운동을 하신 덕에 몸은 다시 좋아지셨어요. 얼마 전 제가 사는 아파트에 안내문이 붙었어요. 단지가 오래되어 나무가 울창한데, 태풍에 나무가 쓰러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요. 아파트를 지을 때, 지하주차장을 만들기에, 화단의 깊이가 3미터 정도랍니다. 표토가 3미터밖에 안 되기에, 나무가 겉으로는 울창해 보여도 뿌리가 약해 잘 부러진답니다. 가지치기를 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안내문이 붙었어요. 그제야 아버지의 낙상 사고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아버지는 대추를 따러 나무에 많이 오르셨어요. 산에서 자라는 나무라 뿌리도 깊고 가지도 튼튼했겠지요. 아파트에서 자라는 대추 나무는 그냥 관상용이에요. 튼튼하지는 않아요. 생각해보니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나무가 안쓰럽네요.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갇혀, 얕은 바닥에 뿌리를 뻗고 살아야 하는 나무.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지음 / 한성수 엮음 / 메이븐)

나무의사 우종영 선생님이 쓰신 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들'이라는 소개가 와 닿습니다. 저자는 아이를 낳고 육아를 고민하다 문득 나무를 생각합니다. 

'나무를 키울 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아이도 나무 기르듯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마치 어린 묘목을 돌보듯 간섭하고 싶은 마음을 거두고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덕분에 딸아이는 일찍부터 제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깨우쳤다.
살면서 부딪치는 힘든 문제 앞에서도 나는 부지불식간에 나무에게서 답을 찾았다. 척박한 산꼭대기 바위틈에서 자라면서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의 한결같음에서 감히 힘들다는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평생 한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기막힌 숙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무를 보면서는 포기하지 않는 힘을 얻었다.'

(위의 책 6쪽)

북한산을 오를 때, 나무그늘에 누워 하늘을 봅니다. 하늘을 빈틈없이 채운 가지와 잎을 보며 나무의 부지런함을 배웁니다. 가을이 되면 여지없이 낙엽지고 잎을 버리는 나무에게 또 배웁니다. 햇볕을 더 벌고 싶지만 참아야합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뿌리는 얕고 가지만 큰 괴물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잎보다 뿌리를 더 튼실하게 하는 나무에게 배웁니다. 겨울 동안 나무는 단단한 껍질을 만들며 한 살 더 먹을 겁니다.

당나라에는 나무를 잘 기르기로 정평이 난 곽탁타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곱사병을 앓아 허리가 굽은 모습이 낙타를 닮았다고 붙여진 거라는데요. 나무를 잘 키우는 비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를 많이 맺게 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아는 건 나무의 본성이 잘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넓게 펼쳐지길 원하고 흙은 평평하기를 원합니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뒤에는 건드리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뒤는 버린 듯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지나치고 근심이 심해 아침에 와서 나무를 보고 저녁에 또 와서 만져보는가 하면, 뿌리까지 흔들어 흙이 잘 다져졌는지 확인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나무는 자신의 본성을 잃고 맙니다." (...)
신기한 것은 나무가 제 자식 키우는 법도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육아 원칙은 하나, '최대한 멀리 떼어 놓기'다. 자신의 그늘 밑에선 절대로 자식들이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보호라는 미명 하에 곁에 두면 결국 어린 나무는 부모의 그늘에 가려 충분한 햇빛을 보지 못해 죽고 만다.'

(69쪽)

평생 나무를 들여다보며 사는 사람은 나무에게 인생을 배웁니다. 저는 책에 옮겨놓은 나무의 삶에서 다시 인생을 배우고요. 이렇게 배움이 순환하는 삶이 참 좋습니다. 저의 배움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아이들에게 거리를 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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