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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이토록 따듯하고 유쾌한 위로

by 김민식pd 2019. 12. 23.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를 은근히 즐겨 읽습니다. 어른이 보기에도 좋은 책이 많고요. 읽고 재미난 책은 아이들에게 권해주기도 좋거든요. 신문 신간 소개에 나온 책을 찾아서 읽었어요. 

<내일 말할 진실> (정은숙 / 창비)

주인공이 다 청소년들인 단편 모음집입니다. 각자 다른 사연의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요. 나이가 어리든 많든 누구나 삶은 힘들고, 인생은 늘 어려운 선택을 던져줍니다. 

<빛나는 흔적>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사연 하나. 중학교 축구 선수이던 아이가 경기 중 태클을 했다가 축구부 친구가 다쳐요.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아들의 친구를 병원에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해요. 그 아이의 부모님은 맞벌이라 병원 문 닫기 전에 픽업이 힘들거든요. 엄마는 형의 학원 픽업을 아빠에게 미루고 병원으로 갑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아빠는 하필 그날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한 분을 집으로 모셔다드려야 해요. 그래서 큰아들에게 그날만큼은 대중교통으로 학원에 가라고 하는데요. 버스가 오지 않아 학원에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했더니 원장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학생의 픽업을 부탁합니다. 평소에 공부를 잘 하는 아이라 유난히 마음이 갔나봐요. 할아버지가 몰고 나간 그 차는 갑자기 끼어든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사고가 나고 그만 운전자와 동승자가 다 숨져요.   

'형의 사고를 돌이켜 볼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양호도, 원장님도 모두 선의를 베풀었는데 결과가 어떻게 이런 지독한 불행일 수 있는지...'

(위의 책 54쪽)
모두가 선의를 베풀었는데 왜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 무척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게 인생의 딜레마입니다. 선의로 한 말에 우리는 상처받고,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불행을 불러옵니다. 옛날에 영문 소설을 읽다 만난 구절이 있어요. 
'Shit happens.'
자동차 범퍼 스티커인데요. 차를 몰고 가는 소설 주인공은 앞차 뒷범퍼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딴생각을 하다 급정거한 앞차를 들이받아요. 네, 이런 걸 자기실현성 예언이라고 하지요. '똥같은 일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 스티커를 붙였더니,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아들과 형의 죽음이라는 지독한 불행을 맞이한 엄마와 아들이 유럽 여행을 갑니다. 그곳에서 더 어이없는 불행에 휘말리는데요. 엔딩에 가서는 의외의 전개에 빙긋 미소를 짓게 됩니다. 살면서 나쁜 일이라고 다 나쁘지도 않고, 좋은 일이라도 다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끝에 실린 작가의 말...

'나는 아직도 불가해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행했던 어제와 불확실한 내일 사이에서 힘들고 아픈 '오늘'을 꿋꿋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속절없이 우는 누군가의 곁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기로 했다. 그가 가진 아픔을 기꺼이 나눠 갖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 슬펐고, 애틋했고, 행복했다. 책을 읽으면서 한번이라도 빙그레 웃어 준다면, 한 번쯤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주위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내 기쁨에 같이 웃어 주고, 내 슬픔에 같이 울어 주는 그들이 있어 오늘도 충만하게 살고 있다.'

(231쪽)

저요, 이  읽으면서 여러번 크게 웃었어요. 수능을 마친 큰 딸 민지에게도 권해줬어요. 둘이 같이 어떤 장면을 이야기하며 크게 웃었어요. 여러 차례 위로도 받았고요. 작가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이 있어 살만한 세상이에요. 책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청소년 문학이지만, 제가 더 위로받았네요. 

<내일 말할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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