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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최악을 거르는 전략

by 김민식pd 2019. 12. 27.

2020년 새해가 옵니다. 2020년, 아, 소리내어 읽기만 해도 벅찹니다. 2020년이 올 거라고는 어린 시절에는 꿈도 못 꿨는데요. 1989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이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였지요. 먼 미래였던 순간이 현실이 되었어요. 큰 딸 민지가 이제 대학생이 되어 20학번입니다. 이 또한 감개무량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언제 다 키우나...' 했는데 벌써 대학생이라니요. 

수능을 마친 민지에게 권해준 책이 있어요.  

<불안 위에서 서핑하기> (하지현 / 창비)

'낭만은 제로, 혼란은 일상. 대학은 더 이상 인생의 분기점이 아니다.' 대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불확실한 세상에 필요한 마음의 태도를 말하는 책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하지현 선생님은 불안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만나 상담을 하며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들여다봅니다. 스트레스는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 두 가지에 의해 움직이는데요. 대학생들의 진로 고민이 큰 이유는 두 가지가 별로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예측하기도 쉽지 않고, 외적 환경을 조절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 결과 청년들은 전문직과 공무원이라는 두 가지 진로를 선호하게 됩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직을 가지면 내 삶의 조절 가능성이 높아지고, 공무원 같은 안정성 높은 직업을 선택하면 갑자기 야근하거나 해고되는 일이 적어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이 적어 불안한 시대, 가장 피해야 할 일은 오랜 고민입니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 너무 길게 고민하는 건 효율이 좋지 않습니다.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고민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도 비용이에요. 어차피 최선의 선택인지 아닌지 출발선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데 고민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이게 되면,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내 만족도가 훨씬 높아야만 해요. 고민에 들인 시간과 노력까지 보상받아야 하거든요. (중략)

그보다는 “절대 이것만은 싫어.”하는 마음이 드는 최악의 선택을 걸러 내려는 노력부터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솔직히 몇 가지 안 되니 거르기도 훨씬 쉬워요. 푸드코트에서 뭘 먹을까 고민할 때, “난 매운 것은 싫어.”라고 최악을 걸러 내면 선택의 폭이 줄어들죠. 최악을 걸러 내고 나면 차선과 차악이 남으니 그다음에는 뭘 골라도 돼요. 마음 가는 대로 고르세요. 최소한 최악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 확인했으니 중간에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어요. 최선을 고민하는 것보다 최악을 거르는 전략이 훨씬 유용합니다.'


<불안 위에서 서핑하기> (하지현 / 창비) 72쪽


드라마 촬영할 때, 여럿이 함께 밥을 먹습니다. 촬영감독, 조명 감독, 동시녹음 기사 등이 같이 먹는데요. 메뉴를 정할 때 저만의 룰이 있어요.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답하는 사람의 의견을 따릅니다. 가장 먼저 말한다는 건, 그만큼 땡긴다는 거죠. 몇 번 이렇게 결정하면, 다음부터 먹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먼저 대답하게 되거든요. 저는 누군가 가장 원하는 것부터 하나하나 다 시도해봅니다. 타인의 취향을 통해 나의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어요. ‘가장 먼저 말하는 사람의 선택을 무조건 존중한다.’ 이 원칙이 좋은 건, 결정의 시간이 짧아져요. 먼저 말한 메뉴에 대해 제가 ‘음... 그건 좀 별론데...’하고 퇴짜를 놓을 경우, 다음 사람이 이야기하기 쉽지 않고요. 다들 속으로 ‘음, 오늘은 저 양반이 먹고 싶은 게 있나보다.’하고 제 눈치만 살피지요. 별로 바람직한 의사결정 과정이 아니에요.


'좋은 부모는 모든 것을 알고 통제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위의 책 133쪽)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저 호기심을 갖고 시도하고 관찰해볼 뿐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들어가는 자본이 없어 드라마에 비해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댓글로 칭찬을 받을 수도 있어요. (요즘 하루 일과 중 가장 뿌듯한 순간이 여러분이 남긴 댓글을 읽을 때입니다. ^^) 재미삼아 시작한 블로그가 이렇게 큰 보람이 될지 몰랐어요. 작가란 직업도, 강연자라는 직업도 블로그를 통해 얻었습니다. 지금도 궁금해요, 앞으로 블로그가 어떤 인연을 가져다 줄지.

대학생이 된 민지가 이 책을 읽고 그랬어요. "엄마에게 권해줘도 좋겠네." 삶의 스트레스를 크게 줄여주는 책이거든요.

"발상의 전환을 해 보면 어떨까요? 불확실성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호기심과 스릴의 대상으로 삼아 보는 겁니다. 큰 파도가 올 것 같다면, 휩쓸려 갈까 무서워 지레 피하기보다 신나게 서핑을 할 기회가 왔다고 큰마음을 먹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큰 파도의 물결을 타 보는 거예요. 미래는 어차피 더욱 불확실해질 테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요."

(113쪽)


2020년, 새해를 맞아 우리 모두 서핑을 즐겨봅시다. 새로운 한 해가 안겨줄 변화의 물결을 거침없이 즐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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