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여연대 후원회원입니다. 매달 집으로 날아오는 <참여사회>를 읽는 게 낙이지요. 어느날 <참여사회>에서 정지혜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어요.


https://www.peoplepower21.org/Magazine/1641079


‘각기 다르게 처방’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츠바키 문구점』은 할머니와 손녀의 갈등을 풀어가는 가족 소설이다. 나는 가족 갈등을 푸는 것보다 대필 일을 하는 손녀가 자세하게 자기 일을 설명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대하는지 서술하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일하는 태도에 고민이 많은 분들이 오시면 이 책을 처방하며 ‘주인공이 일하는 방식을 참고하시라’고 제안 드린다. 나만의 읽기 방식이다. 출판사 보도 자료에도 없는 해독 방법이랄까.(웃음)

 
정지혜 대표님은 '책을 처방해주신다'고 하셨어요. '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책이 3권 있는데요.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는 제 책 <매일 아침 써봤니?>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고요. 은유 선생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은 제게 글쓰기 교본이지요. <츠바키 문구점>은 생소했어요.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마침 동네 도서관에 장서가 있더군요. 우리 동네 도서관 장서 구입 담당 사서 선생님의 책을 고르는 안목은 정말 탁월하십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알고 다 구비해놓았지?’ 신기할 정도예요. 
요즘은 휴대폰으로 도서관 장서 검색이 가능합니다. 휴대폰에 찍어보니 분류번호가 '833.6 오12츠'이군요. 휴대폰에 나온 분류 번호를 보며 서가 사이를 헤맵니다. 833.6, 800번대는 문학이고, 833.6은 일본 소설입니다. '오12츠'에서 '오'는 작가의 이름 첫 글자, '츠'는 책 제목 첫 글자. 도서관 서가에 가서 오가와 이토 소설 <츠바키 문구점>을 찾습니다. 그런데 같은 칸 '833.6 오72빈'의 책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목이 <빈곤의 여왕>, 왠지 확 땡깁니다. 결국 두 권 다 빌려서 나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빈곤의 제왕>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돈을 쓰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이라면 감히 '빈곤의 제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에서는 청년 3명 중 1명이 빈곤이랍니다. 고용, 주거, 대출이라는 심각한 삼중고를 겪고 있고요. <빈곤의 여왕>은 수년 간 일본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청년 실업, 청년 빈곤, 청년 주거 문제와 더불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기업, SNS상의 언어폭력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유머 있게 풍자한 소설입니다.

책을 잡자마자 바로 빠져들었어요.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의 드라마 작가에요. <러브제너레이션>을 쓴 분이군요.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후, 첫 번째 쓴 소설이 <빈곤의 여왕>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영상이 펼쳐집니다. 영상 감각이 뛰어난 작가입니다. 첫 장면에서 빠져든 건, 방송사 조연출로 일하는 마이코의 일상을 보며 20년 전, 조연출로 일하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조연출로 일하며 밤샘 노동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 둔 후, 방값을 구하기 어려워 PC 방에서 먹고 자며 점점 빈곤의 나락에 빠지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러다 인질 사건에 휘말리는데, 범인의 엉뚱한 요구 탓에 갑자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빈곤 여성’이 되어버립니다.

<러브제너레이션>같은 인기 드라마를 쓴 작가라더니, 무거울 것 같은 이야기인데도 소설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경쾌하게 흘러갑니다. 같이 빌려온 <츠바키 문구점>은 오히려 뒷전에 밀리고 이 책에 빠져버렸어요. 

책에서 가장 공감한 한 마디.

“정말 행복한 사람은 복권에 당첨돼 3억엔이 생겨도 지금의 생활을 바꿀 생각이 없는 그런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과연 빈곤의 여왕 마이코는 돈이 없어도 삶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책이 주는 메시지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주인공이 보여준 결말이 가장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돈과 상관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빈곤의 황제는 아니어도 절약의 고수 정도는 되고 싶어요.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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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찬어멍쏭 2019.12.18 0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굿모닝입니다

    피디님 추천책 찾으러 바로 가볼게요 :)
    오늘도 재미있는 책추천 감사합니다

  2. 제니스라이프 2019.12.18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천만금이 생겨도 생활을 바꿀 필요가 없는 삶.

    저두요 저두요!!!

  3. 보리랑 2019.12.18 0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행복한 사람은 복권에 당첨돼 30억이 생겨도 지금의 생활을 바꿀 생각이 없는 그런 매일을 보내는 사람.” 저는 제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10개국에 각 1년씩 살면서요.

  4. 더치커피좋아! 2019.12.18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의 틀을 잡고
    생활하니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남을 부러워할 시간도 없구요.

    내세울건 없지만
    내가 계획하고 실천하는 하루.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하루를 채워가는게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요.

    힘든하루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고 아끼는 한순간이 꼭
    필요한거 같아요.

    저는 아침 이 시간 이네요^^

    절약의 고수이자 좋은책 나눔의 대가.
    피디님~파이팅!

  5. 더치커피좋아! 2019.12.18 0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부러운 분~피디님 계시네요!^^;
    ㅋㅋㅋ

  6. 아리아리짱 2019.12.18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오늘 소개 해 주신 책 두권 연말 보너스 받은 느낌입니다.

    냉큼 읽어 보겠습니다.

    <공즐세> 싸부님을 절약의 고수인 '빈곤의 제왕'으로 추대합니다. ^^

  7. 아프리칸바이올렛 2019.12.18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 무게를 버티며
    돈과 상관없이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찾지않았을 뿐
    책 속에서 많은 도움들을 받고 있어요

  8.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12.18 0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도에 대한 누군가의 통찰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저는 매일 아침마다 PD님의 꾸준함을
    보면서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게 더 커요. 감사합니다.

  9. 오달자 2019.12.18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츠바키문구점> 책 소개를 해 주셔서 너무 반가워 읽다가보니 새로운 책 소개를 또 해 주시네요~~ ㅎㅎ

    저 역시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곁눈질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써 피디님의 책욕심에 백퍼 공감갑니다.

    빈곤의 제왕 피디님의 자유로운 삶을 응원합니다!

  10. 섭섭이짱 2019.12.18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정지혜 대표님 도서전에서 만나 직접 처방도 받았었는데
    조근조근 책 설명을 잘해주셔서 기억이 많이 남아요
    다양한 책을 소개해줘서 정말 많은 책을 읽으신다는 생각을 했었죠.

    일본 책들 볼때마다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 똑같아 매번 소오름...
    빈곤을 유쾌하게 풀어 얘기한다니 저도 확땡기긴하네요.

    근데 원제는 ビンボ-の女王 인데 빈곤의 한자어가 아닌
    ビンボ 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긴하네요..
    빈곤 뜻은 아닌거 같고.. 검색하니 아프리카 지명이 나오던데...
    소설 내용과 관련있는건지... 바로 도서관가서 빌려오려고요 ^^

    피디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고르기 비법 좋네요
    도서관가서 방황하며.....
    보이는대로 땡기는대로 내맘대로 책 고르기 ㅋㅋㅋ

    다음에는 저도 요렇게 함 읽을 책 골라봐야겠어요.
    오늘도 재밌는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꿈꾸는낙타 2019.12.19 0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ビンボ-는 가난을 뜻하는 일본어 貧乏(빈보우)를 외래어를 표기하는 가타가나로 표기한 것입니다. 늘 눈팅만 하다가 일본어로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댓글 남겨봅니다^^

    • 섭섭이짱 2019.12.19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저도 처음에 빈곤을 쓴거겠지라고 생각은 했는데.
      가타가나 표기에서 좀 헷갈렸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11. 힘껏배워늘푸른나 2019.12.18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지와 게으름으로 인한 빈곤이 아닌 자유의지로 빈곤을 선택한 삶은 참 멋진것 같아요!

    요즘 부동산에 집중된 사람들의 관심을 보면서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한편으로는 거기에 편승하지 못한 불안감도 있어요..

    '돈'에 대해 확실한 자기 신념을 세우신 피디님이 부럽습니다~~ㅎ
    오늘도 굴하지 않는 보석같은 하루 보내세요 ~^

  12. GOODPOST 2019.12.18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세상엔 다양한 직업과 지식을 나눠주는 분들이 계시네요.
    pd님의 블러그가 저에게는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작은 통로 같습니다.

    도서관에 자주 가려했는데, 최근에 못갔습니다.
    이번주는 꼭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소개해준 책들을 찾아보며 방랑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3. 인대문의 2019.12.18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을 처방
    도서관 사서의 영향력
    도서 분류번호 의미

    평소에 생각도 안 해 본 것들인데 잠시 생각해보면 하나하나 누군가의 깊은 고민과 배려가 담겨 있네요.

    매번 블로그에 재미와 더불어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써주시니, pd 님의 깊은 고민과 배려가 느껴집니다.

    감사히 즐기겠습니다.

    댓글일지라도 고민과 배려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4. SORA& 2019.12.18 1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뷰 글에 나온 <잃어버린 영혼>이란 그림책 제목이 확 와닿네요.
    셀프 책처방 받아갑니다~^^
    How long do I have to put up with this.

  15. silahmom 2019.12.19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글 멋지네요, 복권에 당첨되어도 변하지 않는 일상 ~
    저한테 대입해 봅니다. 저의 행복을 다시 고민합니다.
    감사합니다,

  16. 봄처녀 2019.12.19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표지도 재미있어보이고 피디님 짤막하게 소개해주신 내용도 재미있네요~~ 날씨가 추운데 모두 건강 잘 챙기세요~~

  17. 코코 2019.12.2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피디님이 추천해 주신 책을 메모하며 설레네요. 어떤 책일까? 재밌을까?.. 기대돼서요. 읽어봐야 할 책 목록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지고 신이 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