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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방랑하기

by 김민식pd 2019. 12. 18.

저는 참여연대 후원회원입니다. 매달 집으로 날아오는 <참여사회>를 읽는 게 낙이지요. 어느날 <참여사회>에서 정지혜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어요.


https://www.peoplepower21.org/Magazine/1641079


‘각기 다르게 처방’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츠바키 문구점』은 할머니와 손녀의 갈등을 풀어가는 가족 소설이다. 나는 가족 갈등을 푸는 것보다 대필 일을 하는 손녀가 자세하게 자기 일을 설명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대하는지 서술하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일하는 태도에 고민이 많은 분들이 오시면 이 책을 처방하며 ‘주인공이 일하는 방식을 참고하시라’고 제안 드린다. 나만의 읽기 방식이다. 출판사 보도 자료에도 없는 해독 방법이랄까.(웃음)

 
정지혜 대표님은 '책을 처방해주신다'고 하셨어요. '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책이 3권 있는데요.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는 제 책 <매일 아침 써봤니?>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고요. 은유 선생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은 제게 글쓰기 교본이지요. <츠바키 문구점>은 생소했어요.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마침 동네 도서관에 장서가 있더군요. 우리 동네 도서관 장서 구입 담당 사서 선생님의 책을 고르는 안목은 정말 탁월하십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알고 다 구비해놓았지?’ 신기할 정도예요. 
요즘은 휴대폰으로 도서관 장서 검색이 가능합니다. 휴대폰에 찍어보니 분류번호가 '833.6 오12츠'이군요. 휴대폰에 나온 분류 번호를 보며 서가 사이를 헤맵니다. 833.6, 800번대는 문학이고, 833.6은 일본 소설입니다. '오12츠'에서 '오'는 작가의 이름 첫 글자, '츠'는 책 제목 첫 글자. 도서관 서가에 가서 오가와 이토 소설 <츠바키 문구점>을 찾습니다. 그런데 같은 칸 '833.6 오72빈'의 책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목이 <빈곤의 여왕>, 왠지 확 땡깁니다. 결국 두 권 다 빌려서 나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빈곤의 제왕>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돈을 쓰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이라면 감히 '빈곤의 제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에서는 청년 3명 중 1명이 빈곤이랍니다. 고용, 주거, 대출이라는 심각한 삼중고를 겪고 있고요. <빈곤의 여왕>은 수년 간 일본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청년 실업, 청년 빈곤, 청년 주거 문제와 더불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기업, SNS상의 언어폭력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유머 있게 풍자한 소설입니다.

책을 잡자마자 바로 빠져들었어요.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의 드라마 작가에요. <러브제너레이션>을 쓴 분이군요.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후, 첫 번째 쓴 소설이 <빈곤의 여왕>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영상이 펼쳐집니다. 영상 감각이 뛰어난 작가입니다. 첫 장면에서 빠져든 건, 방송사 조연출로 일하는 마이코의 일상을 보며 20년 전, 조연출로 일하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조연출로 일하며 밤샘 노동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 둔 후, 방값을 구하기 어려워 PC 방에서 먹고 자며 점점 빈곤의 나락에 빠지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러다 인질 사건에 휘말리는데, 범인의 엉뚱한 요구 탓에 갑자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빈곤 여성’이 되어버립니다.

<러브제너레이션>같은 인기 드라마를 쓴 작가라더니, 무거울 것 같은 이야기인데도 소설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경쾌하게 흘러갑니다. 같이 빌려온 <츠바키 문구점>은 오히려 뒷전에 밀리고 이 책에 빠져버렸어요. 

책에서 가장 공감한 한 마디.

“정말 행복한 사람은 복권에 당첨돼 3억엔이 생겨도 지금의 생활을 바꿀 생각이 없는 그런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과연 빈곤의 여왕 마이코는 돈이 없어도 삶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책이 주는 메시지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주인공이 보여준 결말이 가장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돈과 상관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빈곤의 황제는 아니어도 절약의 고수 정도는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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