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의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어떤 영화든, 1편을 보지 않고, 2편부터 보는 경우는 드물다. 전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야기를 쫓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이리언 2>는 예외였다. 1편도 안 보고 달려갔다. 감독 때문이다. 1987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를 보고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신인 감독의 이름을 뇌리에 새겼다.

‘천재구나!’

미래에서 온 살인 로봇을 그린 그가 우주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었다기에 보러 갔다. 주인공도 <터미네이터> 1탄에 나온 미래에서 온 전사 마이클 빈이었다. 마이클 빈의 활약을 기대하고 갔다가 시고니 위버의 맹활약에 깜짝 놀랐다. 에이리언이라는 영화사상 최강의 강적이 나오는데, 더 막강한 여전사가 박살내 버리는 모습을 보고 물개 박수를 쳤다.

<에이리언 2>가 대박이 나자 1편을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2탄의 스케일을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했다. <에이리언 2>의 원제는 <Aliens>다. 1탄에서는 후반부가 되도록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에이리언이 2탄에서는 떼로 나와 해병대와 우주 전쟁을 벌인다. 1탄이 SF라는 장르로 변주한 우주 공포물이라면 2탄은 전쟁 액션 영화다. 1편을 통해 우주 괴물의 정체는 다 드러났다. 2편에서는 물량공세를 퍼붓는다. <에이리언 2>로 1탄보다 더 큰 흥행 성적을 거둔 제임스 카메론은 훗날 <터미네이터 2>를 들고 나와, 속편으로 대박을 내는 재주를 계속 선보인다. <터미네이터> 1탄이 저예산 독립영화였다면, 2탄은 헐리웃 영화 기술의 총화를 보여주는 액션 블록버스터였다. <에이리언 2>가 흥행한 덕분에 제작비를 넉넉하게 동원할 수 있었고, 이 영리한 감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SF 영화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제임스 카메론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 때마다 기술의 진보를 보여준다면, <에이리언 시리즈>는 새로운 감독을 만날 때마다 장르의 진화를 이룩한다. 1탄이 공포 영화, 2탄이 전쟁 영화라면 신예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맡은 3탄은 SF 느와르였고, 장 피에르 주네가 만든 4탄은 비주얼이 독특한 영화였다. 4탄의 각본을 쓴 신인 작가 조스 웨던은 훗날 <어벤져스>를 성공시켰으니 <에이리언> 시리즈는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등용문이었다. 

새로운 <에이리언> 시리즈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매번 집에서 비디오나 DVD로 1탄부터 정주행을 했다. 새로 나올 영화는 어떤 진화를 보여줄까 설레며 기다렸다. 회사 자료실에 있는 수 만장의 영화 라이브러리에 접근할 수 있는 게 MBC PD가 된 최고의 보람이었다. 이제는 왓챠플레이 덕분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으니, 영화광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시절이 또 있을까?

<에이리언>같은 강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1탄에서 리플리는 기본에 충실한 원칙주의자로 조심스럽게 대처한 덕에 끝까지 살아남는다. 2탄에서 리플리가 살아남은 건 약자를 구하러 나섰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에서는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죽는다. 목숨을 걸고 약자를 구하려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 고양이 죤스를 찾아 나서고 여자애 뉴트를 구하러 가는 순간, 리플리는 살아남게 된다. 영화 작가와 감독은 관객이 응원하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배신자로 찍히면 안 되니까.

인생을 살면서 강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 연출가로 데뷔하며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신인 시절의 제임스 카메론과 데이비드 핀처를 생각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성공시킨 시리즈의 후속편을 맡았을 때, 신인 감독이 느낀 부담은 얼마나 컸을까? 마치 우주선 안에 침입한 에이리언 성체를 마주한 것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신인들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살려냈다. 

최강의 악당을 만났을 때, 예전의 성공방식을 베끼는 건 의미가 없다. 최강의 악당이 아직 버티는 이유는 기존의 해법이 안 먹혔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을 땐, 일단 나만의 답을 찾아본다. 먹히거나 말거나, 일단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로 승부한다.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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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11.12 0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안녕하세요!
    대체?! 몇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시는 거죠??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오늘도 글 잘 읽습니다.ㅎㅎ

  2.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11.12 0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은 연출 공부를 어떻게 하시는지가 궁금하네요~!!
    이번에 제임스 카메론이 메가폰을 잡은 터미네이터가 개봉했데요.
    그래서 극장으로 달려가려구요~^^

  3. 아리아리짱 2019.11.12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먹히거나 말거나, 일단 내가 좋아하고 , 잘 하는 걸로 승부한다'
    거기에서 답을 찾는 사람되기!

    오늘도 자신을 쓰담쓰담, 토닥토닥하며 즐겨보겠습니다. ^^

  4. 콩여사 2019.11.12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인생영화를 생각해봤는데요. 에이리언과 터미네이터가 있어요. 강한 영감을 받았던 작품이었는데, 불현듯 이처럼 생생히 기억나다니요..

  5. 오달자 2019.11.12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답이 없을땐 나만의 해법을 찾아본다!"

    내 문제를 그 어느 누군간가 해결해주기를 바란다면 인생 참....수동적으로 살게 되겠죠.

    나 스스로 삶의 해법을 찾아가는 사람이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위너가 아닐까요~~^^

  6. 봄처녀 2019.11.12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래된 영화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적들은 끊임없이 쳐들어오고~~ 먼저 도망가다 죽지말고 일단 나만의 방법으로 부딪혀보기!

  7. 보리랑 2019.11.12 0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대의 시트콤, 50대의 드라마, 영어책한권, 매일아침, 내모습여행... 그동안 모아온 그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어벤져스> 딱 한편 보고는 '사람들이 왜 저런 걸 보지?' 했네요ㅎㅎ 이렇게 신나 하시는 피디님 글을 읽으며 나는 왜케 재미없는 사람이지 자괴감 ㅠㅠ 😂

  8. GOODPOST 2019.11.12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적을 만났을때 나만의 답을 찾아본다.
    내자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승부한다.

    목숨을 걸고 약자를 구하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pd님의 철학이 담겨있는 영화평이네요.
    만약 저도 강적을 만나게 된다면,,깊이 새기며 대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 비개인날 2019.11.12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 섭섭이짱 2019.11.12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에일리언 본건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이럴때 ㅇ ㅊ 에서 다시보기 해야 하는거죠...
    글 제대로 이해한거 맞죠..ㅋㅋㅋ
    ㅇ ㅊ 가입하러 고고고

  11. 나겸맘 리하 2019.11.12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는 너무나 강렬했었죠. 여전사의 전형이었습니다.
    그 옛날 시고니 위버의 삭발 장면은 아저씨의 원빈급이었던 것 같아요.^^
    시고니 위버 덕분에 킬빌의 우마 서먼이나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도
    여성이라기 보다는 전사로 보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어렵다는 속설을 깨고
    에일리언이나 터미네이터는 맡는 감독들마다의 색깔이 참 다양하게 드러난 거군요.
    내용만 따라가다 보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감독의 분위기는 놓치게 되는데
    피디님께 이렇게 전해들으니 신세계네요~
    후속작들이...신인 재능 발굴의 등용문이었다는 사실도 놀랍고요.
    나만의 것을 찾아, 내 식대로 승부한다!!! 참 멋진 말씀을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2. 김주이 2019.11.12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소중한 가르침 배워갑니다.
    예전의 성공방식을 베끼는 건 의미가 없다!

    나만의 방식을 찾고 이를 발전시켜서 유니크한 해결법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럼 저도 더욱 성장할 것 같네요.


  13. 아빠관장님 2019.11.12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은 에일리언을 보시며 물개박수를 치셨군요!^^
    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숨 죽이며 보았습니다~.
    너무나 강렬한 <에일리언> 시리즈.
    덕분에 옛날 생각합니다~^^

  14. 빛나는별 2019.11.13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파이트클럽으로 알게됐는데 에일리언 감독인 건 처음 알았어요~ 징그러운 괴물 모습만 지레 짐작하고 아직까지 보지 않았는데 피디님 글을 읽고 나니 감독마다 특징을 비교하며 시리즈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15. 송승미 2019.11.15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좋네요. 피디님!!
    저도 요즘 횡적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오늘 피디님이 글을 보니 더 그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