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의 브런치에 기고한 영화 리뷰입니다.)

필 카너즈(빌 머레이)는 뉴스 앵커가 되는 게 꿈인 기상 캐스터다. 영화의 원제는 <Groundhog day>이다. 두더지 비슷하게 생긴 마못이 집에서 나와 겨울이 언제 끝나는지 예보를 해준다. 개구리가 나오는 경칩 비슷한 날인가 보다. 어느 시골 마을 성촉절 행사를 중계하러 간 필. 두더지의 날씨 예보를 전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 대충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내린 폭설 탓에 도로가 끊긴다. “이 놈의 일기예보!”

 
촌구석을 탈출하지 못하고 하루 더 지내야한다니 짜증이 치솟는다. 마을에 돌아와 잠을 자고, 아침에 눈뜨니, 라디오에서 어제 나온 방송이 또 나온다. DJ의 농담도 똑같고, 음악도 똑같고, 심지어 “오늘은 성촉절입니다.”라는 멘트도 똑같다. “방송사고로군. 이 놈의 시골구석!” 

나가보니 어제 아침에 만난 사람이 처음 만난 것처럼 인사를 한다. “저 양반은 건망증이 심하군.” 그런데 모든 동네 사람들이 다 그런다. 처음 본 것처럼 행동한다. 아니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만 이상한 게 아니다. 어제와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고 있다. 알고 보니 이 남자, 시골에 갇힌 게 아니라, 타임 루프에 갇혔다. 같은 하루가 끝없이 반복된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톰 크루즈는 죽었다 살아나는 일을 무한반복하면서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가 된다. 이 남자도 그렇게 세상을 구하면 좋으련만, 같은 능력을 가지고 여자를 유혹해서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고, 현금수송차를 털어 난잡한 생활을 누리는 데만 집중한다. 같은 자극도 반복되면 지겨워진다. 매일 똑같은 날이 끝없이 계속 되자 미칠 지경이다. 자동차 사고, 감전사, 투신자살 등 갖가지 방법으로 지겨운 삶을 탈출하지만, 죽었다 깨어나면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오고 라디오 디제이의 똑같은 멘트가 들려온다. “오늘은 성촉절입니다!” 이 놈의 무한루프에서 달아날 길은 없을까?

생각해보면 1994년 스물일곱 살의 내가 그랬다. 외판 사원으로 일하며 치과 영업을 뛰었다. 오늘은 광주, 내일은 대구, 전국의 치과를 돌아다니며 제품을 파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울상을 하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 치과 환자들 틈에서, 혼자 환하게 웃으며 간호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날 회사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내 남은 인생이 눈앞에 펼쳐졌다. 5년 후, 대리가 되면 저기 칸막이가 있는 책상, 10년 후 부장이 되면 저 앞 창가 자리, 20년 후, 임원이 되면 한 층 위 사무실, 못되면 나가서 대리점 영업. 하루하루 재미없는 어른의 일상을 반복하며 상사의 삶을 닮아가겠지. 이렇게 살다 갈 수는 없다. 뭐라도 재미난 일을 하나씩 찾아보자. 출근 전 새벽에는 수영을 배우고, 퇴근 후 저녁에는 영어 학원을 다녔다. 수영은 재능이 없었고, 영어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통역사가 되었다.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데 싫증이 난다면, 하루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본다. 그게 영화 속 주인공이 찾은 해법이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뉴스 앵커를 할 수 없으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직업은 뜻대로 되지 않아도 취미는 가능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피아노 연습을 계속한 끝에 수준급 연주를 선보이게 된다. ‘이제는 내가 좀 자랑스럽다!’ 취미를 즐긴 끝에 더 멋진 내가 된다.

20대의 나에게 영웅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였다. 책을 읽고, 시간 관리의 개념을 배운 나는 하루를 나누어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삶에 도전했다. 그 결과 통역사, 피디, 작가, 강연자라는 여러 직업을 얻었다. 취미로 시작한 영어 공부와 시트콤 시청이 훗날 통역사와 드라마 감독이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이제 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 새로운 취미를 시작한다. 내게 일을 주지 않는 세상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새로운 놀이를 찾아본다.

평범한 사람도 시간을 정복하면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영화 <사랑의 블랙홀>의 교훈이다.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면, 책 한 권 소개하고 싶다. <그는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내는가?>(로버트 포즌/김영사) 모두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을 활용해 더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생산력의 법칙이 소개되는 책이다. 영화를 보고 필이 부러우면, 책을 찾아보시라.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 책 속에 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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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이 2019.12.10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을 정복하신 PD님
    하루를 알차게 즐기시는 PD님
    오늘도 PD님의 글을 읽으며 알찬 하루를 계획해 봅니다.
    자기 전에
    아~ 오늘 하루도 짜임새있게 보냈구나~
    하고 잠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2. 아프리칸바이올렛 2019.12.10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게도 너무 공감가는 이야기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날 때
    하루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라는
    조언 오늘도 많은 도움을 얻어요
    피디님은 고민 있으면 책을 찾아 읽는다고
    하셨는데
    언제부터인가 전 고민 있을 때는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하는가?
    시간을 정복하여 영화같은 삶을
    꿈꾸어 보자
    카페인 중독에 공짜로 즐기는 세상
    기분 좋은 중독이 추가되었군요

  3. GOODPOST 2019.12.10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범한 사람도 시간을 정복하면 히어로가 될 수 있다.
    저는 오늘도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얻기 위해 열심히,,책을 읽습니다.

    내가 원하는 능력이 나에게 생기기를 바라며,,,

  4. 세라피나장 2019.12.11 0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복
    반복

    내가
    주인공이 되어
    하루 가꾼다

    항상
    색다른
    영혼의 자극
    감사합니다

  5. 더치커피좋아! 2019.12.11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에 만족하고
    고민이 없었다면..
    피디님 책을 읽고
    블로그에 찾아오지
    않았을것 같아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고
    그 방법을 알고 실천하고 싶어
    매일 찾아옵니다.

    힘든시간.
    묵묵하게 고민하고
    읽고 쓰고 나누는 피디님 덕분에
    오늘은 어제보다
    더 즐겁고 생기있는
    나의 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선물같은하루.
    피디님~파이팅!

  6. 보리랑 2019.12.11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딴소리~ (과거) 아장아장 걷는 첫째는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있다 밤에서야 만난 엄마한테 놀아달라 하는데, 일에 지친 엄마는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몸이 천근만근인데도 애가 눈을 까뒤집으니 자는둥마는둥 (미래) 치매 와서 요양원에 보내짐. 가끔씩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나를 아기 취급하고 약 먹이는 사람들, 다른 치매 환자들 때문에 못살겠음

  7. 아리아리짱 2019.12.11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시간을 정복한 남자, 김민식PD'

    일이 뜻대로 되지않아 괴로울때,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서
    인생 변화를 몸소 보여주신 싸부님!
    열심히 따라쟁이로 노력하겠습니다. ^^

    <공즐세 학당> 영원하라~!

  8. 오달자 2019.12.11 0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상이 지겨울 때 저는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이라고 해서 꼭 거창하게 멀리 가는 여행도 여행이지만...
    집 밖을 벗어나는것도 여행이지요.
    집근처 공원 여행,집근처 카페여행,집근처 서점여행~~
    걸어서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너무도 많죠~
    근무하는 날에야 어딜 갈 순 없지만~~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기대하면서 일하는것도 일터 여행으로의 묘미인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생애 최고의 날 되시길 바랍니다.^^

  9. 타이거맨 2019.12.11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달 기흥도서관에서 작가님의 강연이 있어 들으러 갔습니다.
    작가님이 그러시더군요.'몇몇 분들은 저의 강연을 여러번 들으셨는데, 강연내용이 비슷해서 지루해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되도록 안오셨으면..' 하는 푸념(?)을 하시더라구요..
    저를 두고 이야기하는 말 같았습니다.(저도 여러번 들었거든요.^^)
    물론 강연 레퍼토리가 비슷하긴 합니다.하지만 그속에서 약간씩은 변형하고,새로운 이야기를 첨가해주기때문에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될것 같습니다.

    강연내용중에서 저에게 인상적인 레퍼토리가 하나 있는데,작가님의 대학생때 전국자전거 일주이야기입니다.
    그이야기가 저의 대학생때의 기억을 소환해주거든요..
    저도 1학년때 동아리에서 전국자전거일주를 준비한적이 있었어요.
    운동장에서 선배들이 자전거연습을 시켰는데, 저희가 힘들어하니까 훈계를 하면서 과거이야기를 해주던군요.
    "야,이게 뭐가 힘드냐!, 우리땐 다른학교 어떤 대학생이 이거 하고싶어서 타학교 동아리에 가입해서 자전거일주를 했었다. 그런 xx같은 사람?(차마 이글에서는 못쓰겠네요..)도 있는데,너희들은 뭐가 힘들다고 그래!! 그렇게 열정이 없어서 어떡하냐?"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때마다,자전거일주 이야기를 하실때마다, 항상 저의 과거기억을 작가님이 재미있게소환시켜줍니다.^^
    그때 그 대학생이 작가님이었다는 사실이..(저희 학교에서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옵니다..)

    작가님! 저는 몇번씩 작가님의 강연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구요,오히려 그때의 작가님 열정을 느낄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여러번 강연을 들으러오는 분들은 각자의 말못할(?) 사연이 있기에 전혀 부담느끼실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오늘도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하루의 힘을 얻어갑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세요..




  10.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12.11 0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 이 영화 꼭 볼게요! 감사해요 ㅎㅎ

  11. 나겸맘 리하 2019.12.11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보면서 타임루프에 갇힌 톰크루즈가
    영화 시작하자마자 죽고 다시 살아났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요.
    그런데... 영화 끝날때까지 자꾸만 죽다 살아나기를 똑같이 반복하니까
    좀 지겨워지더라고요.^^
    지겨운 일상이 지겹지 않으려면 새로운 경험과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게 되네요.
    피디님께서도 영업일선에서 벗어나실 결심을 하셨기에 오늘날
    이렇게 재미있는 글로 독자들을 기쁘게 해주시니...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아끼며 살아가기.
    참 현명한 삶의 자세같아요~
    사랑의 블랙홀이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12. Mr. Gru [미스터그루] 2019.12.11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왓챠의 브런치에 기고한... 첫째 줄 읽자마자 인생 몇 개를 사시는 것인가 감탄하던 중에 그에 대한 내용이 나오니 반갑네요.
    저도 pd 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루를 나누어 여러 개의 인생을 살아보려 합니다.
    힘들겠지만 앞서서 하신 분이 계시니 끈기 있게 하면 저 나름의 재밌는 인생들이 여러 개 살아지겠지요.
    이런 다양한 자극들. 감사합니다.

  13. 황준연 2019.12.11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류비쉐프의 일화를 보고난 후, 시간을 1시간, 30분 단위로 계획하고, 그렇게 살아간 결과 1년 만에 큰 성장을 한 것 같습니다. 시간관리가 모든 것이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ㅎ 좋은 책과 영상까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아웃풋을 위해 인풋하러 가야겠습니다 ^^

  14. 엔젤아이 2019.12.12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전에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를 읽다가 이 영화 얘기가 나와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요. 잠들기전 PD님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이 영화가 소개되어 있는걸 보고 깜짝 놀랐네요^^ PD님 글 읽고나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5. 2019.12.12 0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은 목표를 정했습니다 최대한 이 곳에 들려서 글 남기기 ^^
    PD님 책 보다가 역사책을 보는데 맘이 아파 진도가 나가지가 않네요
    다시 PD님 책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벌써 끝이 나서 아쉽네요

    가장 시간낭비라 생각했던 독서...
    덕분에 도서사이트 월정액을 끊었습니다 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16. 섭섭이짱 2019.12.12 1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이 영화 본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요. ㅠ.ㅠ
    이번주말에 다시 봐야겠어요^^
    일타쌍피. 영화 한편에 책 두권 소개 최고👍👍👍

  17. 힘껏배워늘푸른나 2019.12.12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라클모닝 책을 읽고 새벽루틴을 1년째 하고 있습니다.
    어느순간부터 새벽기상의 설렘이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새벽루틴이 타임루프에 갇힌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PD님 알려주신 책 꼭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