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싫어하시는 분은 오늘 글은 건너뛰셔도 됩니다.) 


<어벤져스 3: 인피니티 워>의 경우, 극장에서 세 번 봤습니다. 개봉하자마자 조조로 한 번, 아내와 극장 데이트로 한번, 그리고 개봉 막바지에 아이맥스로 한번. 좋아하는 영화는 개봉할 때 일반 버전으로 한번, 내리기 직전에 아이맥스로 다시 한번 보는 게 저만의 영화 감상법입니다. 

<다크나이트>나 <어벤져스>같은 화제작은 개봉 초반에 아이맥스로 좋은 자리 구하기 쉽지 않아요. 그럴 때는 그냥 일반판으로 봅니다. 그런 다음 2~3주가 지나고 열기가 가라앉으면 아이맥스로 다시 보지요. 

방송 문법을 전공한 적이 없기에 저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상 연출을 공부합니다. 처음 볼 때는 그냥 스토리에 집중해요. 두번째 볼 때는 시나리오의 복선이나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공부하듯이 봅니다. 

일반 화면은 횡으로 길고, 아이맥스 화면은 종으로 깁니다. 즉 아이맥스의 경우, 자막이 저 화면 아래 바닥에 있어요. 위에서 일어나는 액션과 아래에 적힌 자막을 번갈아보기에 좋은 화면비율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맥스를 볼 때는 자막을 읽지 않고 가급적 화면에 집중합니다. 처음 볼 때는 저도 리스닝이 딸려 못 알아듣는 대목이 많아 자동으로 자막으로 시선이 갑니다. 그래서 아이맥스는 두번째 관람용으로 봅니다. 

같은 영화를 세번 정도 보면, 혼자서 킥킥 웃게 되는 지점이 생겨요. <인피니티 워> 초반, 로키가 타노스에게 "We have a Hulk."라고 하는 대목에서 혼자 빵 터졌어요. 어벤져스 1탄에서 토니 스타크가 로키에게 같은 대사를 들려주지요. 그 충고를 무시한 로키는...

 


떡이 됩니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이 개봉한 첫 날, 달려가 영화를 봤어요.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일까요? <인피니티 워>의 대규모 액션씬에 경도된 탓일까요? <엔드 게임>을 보고 나오며,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아가며 3시간이나 견딜 이유가 있나?' 싶었어요. 솔직히 중반에는 너무 늘어졌어요.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나 옛 연인을 만나는 장면만 덜어냈어도 상영 시간은 줄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러다 아내와 주말에 영화를 다시 봤어요. 같은 영화도 2번을 보고 나니 느낌이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중반 이후, 그 지루했던 대목에 좀 더 깊이 이입하며 봤어요. 압도적인 절망감을 히어로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가장 잘 극복한 예는 캡틴 아메리카고요. 가장 망가진 예는 토르입니다. 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영웅입니다. <퍼스트 어벤져>를 보면, 2차 대전 당시 징병 검사에서 연거푸 탈락할 정도로 약골입니다. 하지만 애국심과 책임감, 도덕적 정의감만은 강하지요. 그래서 슈퍼 솔져 실험에 발탁됩니다. 실험 피험자를 고르는 박사의 기준은, 도덕심입니다. 힘만 세고, 정의가 부족한 사람에게 슈퍼 파워가 주어지면, 악당이 될 수도 있어요. 약자의 설움을 아는 사람에게 힘이 주어져야 진짜 영웅이 탄생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엔드 게임> 막바지에는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왜 그런 걸까?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퍼스트 어벤져>를 주말에 다시 찾아봤습니다. 영화 초반에 귀에 익은 대사가 나옵니다. 

"I can do this all day."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퍼스트 어벤져>에서 이 말을 하는 스티브 로저스는 약골입니다. 동네 깡패에게 얻어터지는 데요. 그럴 때마다 그는 다시 일어납니다. 맞고 쓰러지는 걸 하루 종일 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진짜 캡틴 아메리카의 강점입니다. 그는 강해서 영웅이 된 사람이 아니에요. 약골이지만, 늘 맞고 줘터지는 사람의 심정을 알기에, 약자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가 된 겁니다. 

반면 토르는 '천둥의 신'입니다. 그는 태생부터가 범상치 않아요. 아스가르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고, 노르웨이 신화에서는 신으로 숭배받는 인물입니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가장 강한 어벤져'가 바로 토르지요. 그 일격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타노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다음 번에는 머리를 노려."

<엔드 게임>에서 토르는 타노스의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지만, 이후 망가집니다. 캡틴은 패배 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서 합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위로를 나누는 심리 치료 모임을 엽니다. 토르는 반대로 사람들을 피해 혼자 칩거하며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요. 

어려서부터 약골로 살며 늘 상처와 좌절을 달고 살았던 스티브 로저스와, 왕자로 태어나 신으로 숭배받던 토르가, 궁극의 패배 앞에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승승장구하다 한번의 실패로 무너지는 사람과, 좌절할 때마다 다시 일어나 "I can do this all day."라고 말하는 사람, 둘 중 누가 진짜 영웅일까요?  


마블의 영화는 가벼운 액션 히어로물이라고 넘기기에는 아까운 작품이 많아요. <퍼스트 어벤져>의 경우, 개봉했을 때 흥행은 저조했어요. 생각해보면, 마블은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지난 11년 동안 나온 22편의 마블 영화를 다시 볼 생각입니다. 21편을 다 본 후에는 <엔드 게임>을 아이맥스로 보며 작별 인사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고마워요, 모두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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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수정 2019.05.16 0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지않아도 엔드게임 후기 기다렸어요. 저도 처음엔 좀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다 보고 나니 그래도 도입부분이 필요했던거 같았어요. 3시간이 눈깜짝 사이 지나가 버릴 정도로 재밌게 봤구요. 마지막 다 보고 나오는데 왜 이리 아쉽던지... 나중에 한번 더 보고 싶어요~

  2. 섭섭이짱 2019.05.16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엔드게임> 보면서 다시 예전 22편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전 다른 이유로
    예전 스토리가 기억이 하나도 안나서 ㅋㅋㅋ

    종 으로 아이맥스에서 즐기고
    횡 으로 일반상영관에서 즐기고
    무 비를 재밌게 보는
    진 정한 영화 매니아 김민식 피디 영화감상법 ^^

    와우~~ 종.횡.무.진 영화 감상법..
    다음에는 이렇게 영화를 봐야겠어요.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3. 꿈트리숲 2019.05.16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시간이나 견디며 볼 수 있을까 걱정하고
    영화관 들어갔는데, 끝나고 나서는 벌써
    3시간이 흘렀나 싶었어요. 2시간쯤
    지난것 같았거든요.
    그만큼 몰입이 잘 되었어요.

    몇몇 분들이 아이맥스로 볼 것을 권유하던데
    주위에 아이맥스 영화관 찾기도 쉽지 않고,
    한번 본걸 또 볼 필요가 있나 싶은데, 오늘
    글 읽으니 아이맥스 상영관을 찾아봐야겠어요.

    등장 인물들이 모두가 슈퍼히어로인데
    전 캡틴이 제일 인간적이고 사람다워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웅도 우리 안에서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서인가
    싶기도 하고요. 캡틴이 좀 멋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ㅋㅋ 어메이징 메리를 보고
    캡틴에 입덕했어요.~~

  4. 아리아리짱 2019.05.16 0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전 솔직히 히어로물과 환타지물은 잘 몰입이 안되는 딱딱한 '쉰세대'인 가봐요!

    피디님 영화평 보니 웬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해요!

    22개의 마블 영화가 있었군요.
    슬슬 올레TV 무료상영 분 부터 진지하게 입문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

  5. 루시아 2019.05.16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드게임` 아직 못봤는데 얼른 보러가야겠어요.

    좌절할때마다 다시 일어나서 `I can do this all day.`라고 나자신에게 되뇌일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

  6.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05.16 0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드 게임에서 캡틴이 토르의 묠니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을 보고, 토르가 이렇게 말하죠. "역시"
    캡틴 또한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죠. 캡틴이 마지막에 늙어버려서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웠어요. 캡틴이 어벤져스에서 더욱 많은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사실 어벤져스에서 캡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요. 엔드 게임을 통해서 캡틴
    이란 캐릭터에 꽤 흥미가 생겼습니다. 다음에 저도 한 번더 봐야겠네요.

    아무튼 김민식PD님 좋은 아침입니다.^^

  7. 보리랑 2019.05.16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스포도 좋아하고 여러번 보는거 좋아해요 ㅎ 놓치는게 많아 낱낱이 알고 싶어서요. 11년치를 계획하다니 대단하네요. 캡ㆍ아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 저도 갖고 싶네요. 회복탄력성 Resilience 차원이 아닌듯요

  8. 김주이 2019.05.16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블은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

  9. why-DH 2019.05.16 1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어벤져스...돌려줘 ㅠㅠ

  10. 오달자 2019.05.16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동안 아이들 때문에 마블 영화를 몇 편 보긴 했어도 시리즈로 쭉~~ 보질 않아서 사실 엔드게임의 감흥도 절반만 느꼈었던거 같네요.
    작은 아이가 첫 편부터 다시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ㅎㅎ
    아이랑 함께 복습 들어 갑니다~~ ^^

  11. 혜린 2019.05.16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복습 후 엔드게임 아이맥스 때릴(?) 예정입니다 저는토르 보면서 그 크리스 햄스워스가 저런 몸으로 나오다니 그것만 안타까워하면서 봤는데요 캡틴과 그런 식으로 비교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시 볼 때의 관전포인트가 늘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2. 섭섭이짱 2019.05.16 2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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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6 18:5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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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분들이 <공짜로 즐기는 세상> 블로그를 방문하면 좋겠어요..
    오늘 새 책도 나오고 앞으로 좋은 일들이 더 많아질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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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summerlover 2019.05.17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피디님 여행책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섭섭이님 댓글 보고 바로 주문 넣었습니다 ㅋㅋㅋ

  14. J's_Identity 2019.05.17 0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엔드게임으로 마블 입문했네요...
    거꾸로 보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정말 재밌고 탄탄한 시리즈 인거 같아요!
    자주소통해요!!!
    구독하고 갑니다 :)

  15. 호랑이 2019.05.17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르 팬으로서 엔드게임 보고 조금 실망했는데
    이렇게 재미있게 적어주시니
    왜 그렇게 되었는지 캡틴 아메리카와 비교가 되어서
    이해가 되기도 하네요 ~

    저도 마블 영화 찬찬히 봐보려고요
    재미있는 글 감사하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