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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영화 <엑시트>와 노동 이야기

by 김민식pd 2019. 8. 14.
저는 서점에 갈 때마다 사람들의 욕망을 읽으려 합니다. 베스트셀러 코너 책의 제목만 읽어도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나 욕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자기계발서 코너를 보면, 제목에 '부자'나 '돈'이 들어간 책은 참 많은데요. '노동'이 들어가는 책은 드물어요. 우리는 모두 자본가나 건물주를 꿈꾸며 살지만 대부분 노동자로 살다 갑니다. 부자가 되고, 부동산 경매의 달인이 되는 것도 좋지만, 모든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이 진짜 좋은 세상 아닌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해 공부도 하고, 노동 인권에 대해서도 알아야합니다. 하종강 선생님은 <송곳>에 나오는 노동 운동가 고구신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진 분인데요. 그 분이 쓴 책이 있어요.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 (하종강 / 나무야)

노동 운동이란 무엇일까요? 

'노동자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노사 관계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바로 노동 운동입니다. 한국 노동법의 내용이 잘못돼 있거나 어느 회사의 인사관리규정이 불합리하게 돼 있다면 노동자가 아무리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해도 행복해지기 어렵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든가 집단적 노력을 통해 국회에서 법을 개정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곧 노사 관계의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 문제를 구조적 관점에서 보아야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시킬 수 있고 고용도 보장해줄 수 있는 좋은 조직입니다.'

(위의 책, 38쪽)

MBC 입사하고 엄청 신기했어요. 나처럼 빽도 없고, 학연 지연 혈연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 깨달았어요. 강한 노조 덕분이에요. 노조가 채용 과정을 곁에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거든요. 노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영행위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살아있다는 거지요. 
MBC를 망가뜨리려는 이들에게는 노조가 눈엣가시였을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노조 가입이 힘든 계약직을 뽑고, 시용 기자를 뽑아서 노조를 무력화시키려고 했지요. 노조원들에게는 온갖 압력이 다 들어왔어요. 노조 탈퇴를 하면, 업무에 복귀하고, 보직이 주어지고, 승진이 보장됩니다. 그런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조합원 신분을 지키고, 해고자들을 지켜온 이들이 있어요. 저는 노조하기 좋은 회사가 진짜 좋은 회사고, 노조하기 좋은 나라가 진짜 좋은 나라라고 믿습니다.

'핀란드 보건복지부 차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질문했습니다. 
"핀란드가 정보통신산업, 학업성취도평가, 사회안전망, 안정적 경제성장, 국가경쟁력 등 여러 가지 분야에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 핀란드 차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높은 노동조합 조직률과 강력한 노동조합 때문이죠. 저도 조합원입니다."
유럽에서는 한 나라의 차관도 공무원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차관 역시 자신을 '국가에 고용된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차관을 노동자로 본다는 뜻입니다.'

(위의 책, 90쪽)

건물주가 되는 건, 누군가의 수익을 임대료란 이름으로 가져가는 것이고요, 자본가로 사는 건 타인의 노동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일입니다. 저는 노동자로 평생을 살고 싶어요. 내가 하는 노동(창작 노동, 집필 노동, 가사 노동)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가 무엇일까요? 교육 문제 아닐까요? 하종강 선생님은 교육의 문제가 노동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청소년들이 '시험지옥'이라고 불리는 입시 경쟁에 시달리지 않는 나라,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모두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들이 실제로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독일에 살던 어느 한국인이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어느 날 자녀의 취학통지서를 받았는데 "귀댁의 자녀가 입학 전에 글자를 깨우치면 교육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다른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끼칠 수 있습니다."라는 주의사항이 표기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자녀가 아무것도 모른채 학교에 가게 할 수는 없어서 간단한 산수과 독일어 알파벳만 가르쳐서 보냈더니, 며칠 뒤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는 "왜 그렇게 비겁한 일을 하셨느냐? 당신 자녀만 100미터 달리기를 다른 학생들보다 50미터 앞에서 뛰게 하고 싶었느냐? 그 학생이 평생 그렇게 비겁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냐?(...)"고 주의를 주더라는 것입니다.' 

(69쪽)

<공부머리 독서법>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유럽에서는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요. 부모의 재력으로 아이들의 성적에 격차를 벌리는 시도는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비난합니다. 이런 비난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굳이 사교육으로 격차를 벌리지 않아도 누구나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유럽의 교육제도가 지금처럼 자리잡게 된 것은 활발한 노동운동을 통해 대부분 직종의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기 때문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학력과 저학력,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른 임금 차별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OECD 가입국 중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모두 경쟁적으로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려고 하고 그 학력을 바탕으로 대기업 정규직이 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돼 저임금이 해소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없어지고,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교육 문제도 해결됩니다.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육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73쪽) 


아내가 영화 <엑시트>를 보고 와서, 재밌다고 추천하기에 저도 달려가 봤는데요. 흥미진진한 전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 도시에 맹독성 화학물질이 살포됩니다. 살기 위해서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유독가스를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야해요. 조정석과 윤아가 기를 쓰고 높은 곳으로 오릅니다. 
영화를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대한 우화로구나. 빈곤이라는 저지대에 갇히면 안된다는 공포. 어떻게든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한다는 압박.' 그런데요, 건물 벽을 타고 오르는 건 산악부 회원만 가능합니다. 다 같이 사는 방법은, 아래에 퍼진 독가스를 제거하는 것이죠. 

뒤처지면 죽는다는 공포가 아이들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어요. 저는 가상의 화학가스보다, 우리 마음속 공포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저소득층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이 우리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게 아닐까. 모든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이 온다면, 그렇게 기를 쓰고 죽어라 담벼락을 기어오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평생을 노동을 하며 삽니다. 건강한 노동을 위해,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의 강연을 찾아 들어보세요. 노동조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지는 조합원들에게 긍지와 보람을 심어주는 일인데요. 그 첫걸음은 하종강 선생님의 강연을 청해듣거나, 이 책을 함께 읽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하신 강연을 올립니다. 
모든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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