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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글을 써야 하는 이유

by 김민식pd 2019. 8. 19.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아메리카나>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나이지리아 출신 청년들의 아메리칸 드림의 명암을 사랑과 우정을 소재로 재치있게 그려내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서 '올해 최고의 책', <더 타임스> 선정 '21세기 필독 소설 100권'에 뽑혔는데요. 저자인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존스홉킨스 대와 예일 대에서 문예 창작과 아프리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즉,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소설인 거죠. 참 재미난 소설이라, 낄낄 거리며 웃으며 읽다 문득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듭니다. 좋은 소설의 미덕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이 미국에 가서 가장 처음 느끼는 건 뭘까요? 흑인이라는 정체성의 재발견입니다. 저도 그랬어요. 미국에 여행가서 처음 느낀 건, 유색인종이라는 제 정체성의 새로운 발견이었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혈연, 학연, 지연을 철폐하자고 하는데요. 혈연, 학연, 지연은 외모 상으로는 구분이 가지 않아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르지요. 피부색으로 바로 차별의 대상이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어요. <인종 단상 혹은 (과거에는 미국인 니그로로 알려졌던) 미국인 흑인들에 대한 비미국인 흑인의 여러 가지 생각>이라는 블로그입니다. 그 얘기를 들은 백인 남자가 그래요.

"인종 문제는 완전히 과대 포장 돼 있어요. 흑인들은 깨달아야 해요. 이제는 계층 문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만이 중요하다는 걸."

(위의 책 13쪽)

순간, 전율이 일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거든요. 페미니즘이 이슈가 될 때마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성평등 문제는 완전히 과대 포장 돼 있어요. 여자들은 깨달아야 해요. 이제는 계층 문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만이 중요하다는 걸." 

인종 차별의 뿌리는 노예제도입니다. 미국에 사는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빼고는 흑인이고 백인이고 다 이민자에요. 먼저 온 백인 이민자들이 땅을 차지했어요. 농경 시대, 땅을 가진 백인 농장주가 노동력을 가진 흑인 노예를 착취했어요. 그 시절에 생긴 인종간의 격차가 마치 능력의 차이인듯 이어집니다. 공업의 시대, 남자는 숙련된 기술을 익히기 용이했어요. 반면 여자 노동자는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이 잦아 숙련 기술을 익히기 쉽지 않았어요. 그 시절에 만들어진 남녀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꽤 오랜 세월 이어졌지요. 소설 속 주인공인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인종/성)은 결국 수백년 전 농업 사회나 지난 세기 산업 시대의 유물인데요. 이제는 정보 혁명의 시대에요. 땅을 가진 백인이나 육체적 근력을 가진 남자가 유리하지 않은 시대에요.

주인공이 고교 시절 만난 첫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새로 전학온 남학생이 여자 주인공에게 첫눈에 반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실 근처에서 네가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의 책을 들고 있는 걸 봤거든. 그래서 생각했어. 아, 좋았어. 희망이 있구나. 책 읽는 여자애였어."

(위의 책, 104쪽)

둘이 신나게 서로 읽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여자애가 물어요.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물어봤어?" 친구들은 전학생에게 이페멜루 대신 기니카를 소개해주려 했거든요.

"이렇게 말했어. '이페멜루는 좋은 애지만 말썽꾼이야. 말싸움도 잘하고, 말도 잘하지. 절대 그냥 수긍하는 법이 없어. 하지만 기니카는 그냥 상냥한 애야.'" 그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카요데는 그게 바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란 걸 몰랐지. 나는 착하기만 한 여자애들한테는 관심 없거든."

"아니 아니! 너 지금 나 흉보는 거야?" 그녀가 짐짓 화난 척하며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그녀는 말썽꾼, 별종이라는 자신의 이미지가 늘 좋았다.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단단한 껍데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흉보는 거 아니란 거 알잖아." 그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부드럽게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때 처음으로 두 사람의 몸이 닿았고, 그녀는 자신의 몸이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네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너는 무얼 하든 네가 하고 싶어서 하지, 남들이 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따라하지는 않을 사람으로 보였거든."

(위의 책, 107쪽)

둘은 좋아하는 작가와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호감을 키워갑니다. 예전에 소개팅을 나가면,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곤 했어요. 책 읽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평생 같이 책만 읽어도 좋겠어요. 

주인공는 미국에 가 살면서 미국 사회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미국에 대한 안내서를 만드는데요. 이런 글도 있어요.


'나의 벗, 비미국인 흑인들에게 : 미국에서 당신은 흑인이다

비미국인 흑인이여, 당신이 미국에 오기로 결정하는 순간, 당신은 흑인이 된다. 왈가왈부할 것 없다. 자기는 자메이카인이라는 둥, 가나인이라는 둥 하지 마라. 미국은 신경 쓰지 않는다. (...)

범죄 사건이 보도되면 범인이 흑인이지 않기를 기도해라. 범인이 흑인인 것으로 밝혀지면 그 사건이 일어난 동네를 몇 주 동안 피해 다녀라. (...)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을 때는 팁을 넉넉히 줘라. 그러지 않으면 다음에 들어오는 흑인 손님이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게 된다. (...) 당신이 겪은 인종 차별을 흑인이 아닌 사람한테 얘기할 때는 흥분하지 않도록 주의해라. 불평해선 안 된다. 용서하듯 말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유머로 승화해라. 무엇보다도 화를 내선 안 된다. 미국인들은 흑인이 인종 차별에 대해 화를 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화를 내면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나마 이것도 백인 진보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백인 보수주의자에게는 당신이 겪은 인종 차별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마라. 보수주의자는 '당신이야말로' 진짜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말할 것이고 당신은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될 테니까.'

(<아메리카나> 1권, 372쪽)


여행에서 불친절을 경험했다면, 친절로 갚아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 여행자로 인해 불쾌한 경험을 한 사람은 편견을 갖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 일반화의 오류는 고쳐지지 않아요.

저자는 어쩜 이렇게 위트있게 글을 쓸까요? 글에 드러난 유머가 다 고통과 상처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디치에가 편견과 차별 속에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글쓰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땅을 가진 사람이 부자고, 산업화 시대에는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이 부자라면,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이 힘을 갖습니다. 흑인 여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정보의 1차 생산자, 즉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극복한 거지요. 


오늘 저녁에 있을 아디치에의 세바시 특집 강연회 <페미니스트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신청하신 분들, 저녁에 뵙겠습니다! (신청은 이미 마감되었지만, 강연 영상이 올라오면 다시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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