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드라마 심사를 했어요. 처음엔 '서울 드라마 어워즈' 예선 심사였어요. 전세계에서 출품한 120여편의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보면서 본선에 올라갈 작품을 추렸지요. 터키나 싱가포르, 남아공에서 올라온 드라마를 영어 자막을 보며 심사해야 했어요. 북유럽의 잔혹한 스릴러물을 볼 때는 쏘고, 찌르고, 때리는 장면을 이어 보는 게 너무 괴롭더군요. 심사를 마친 날, 만세를 불렀어요. '이제 넷플릭스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실컷 봐야지!' 그런데 회사에서 또 불렀어요. 이번에는 MBC 드라마 극본 공모 심사를 하라고요. 신인 작가들의 대본을 읽었는데요. 극성이 강한 드라마도 많아요. 속이고 울리고 죽이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드라마 속 인생은 너무 극적이라 저처럼 몰입해서 극본을 읽는 사람은 감정 소모가 심합니다. 이럴 때는 그림책을 읽으며 조금 쉬어가고 싶어요. 그래서 찾아본 책입니다.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 글 /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 김서정 옮김 / 사계절)

'0세에서 100새까지 100장면으로 보는 인생의 맛'인데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참 그림을 들여다보며 '나는 저 나이 때 어땠지?'하고 과거를 추억해봅니다.  



19라고 적힌 그림에는 이런 글이 있어요. 

'가끔은 네 자신이 싫어지기도 할 테고. 

사람도 완전히 변할 수 있을까?'


손바닥에 앉은 나비 그림. 이 그림을 한참동안 멍하니 들여다봤어요. 아, 이 작가는 어쩜 이렇게 사람의 속을 잘 들여다볼까? 열아홉 살에 내가 딱 그랬거든요. 어린 시절에는 왕따로 살았는데, 대학에 올라와서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어요. 미팅 나가서 차일 때마다 꼭 내가 벌레가 된 기분이었어요. 사람들이 징그러워하는 벌레. 이런 나도 언젠가 나비가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내가 겪은 폭력의 상처.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의 상처를 지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요.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삶은 힘들 때가 있어요. 우리는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봐요. 어른이 되어서도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내가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어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나를 믿는 이에게 실망스런 행동을 할 때도 있지요. 슬프지만 그게 인생인가 봐요.


45세의 그림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어요. 

'지금 그대로의 네 모습을 좋아하니?'

어려서부터 비주얼이 좋았던 적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비주얼은 심지어 더 나빠지더군요. 마흔이 넘자 배도 나오고, 주름도 늘고, 머리는 새고 빠지기 시작했어요. 더 젊어질 수는 없는 거죠. 지금이 그나마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인거죠. 그래서 어차피 포기한 외모,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마흔 다섯 즈음일 겁니다. 제가 머리 염색 대신 그냥 흰 머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게.

100 인생 그림책을 읽다, 그래서 지금 내 나이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52

이루지 못한 꿈도 많지만... 

53
괜찮아.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어려서 가졌던 꿈 가운데 이루지 못한 것도 많아요. 생각도 못한 불행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괜찮아요. 큰 불행을 상쇄하는 건 그만큼 큰 행복이 아니더라고요. 작은 행복에 감사할 수 있다면, 삶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조금 은은한 삶의 향기를 맡고 싶은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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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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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짱 2019.08.07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100세 인생 그림책이라..
    피디님이 그림책 소개하는건 오랫만이네요.
    아직 하고 싶은 꿈이 많은데...
    과연 제 나이에는 어떤글이 있을지 궁금하네요.
    바로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장바구니 고고고 ^^

    100세 인생 제목처럼 정말 100세까지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지내면서
    이런 재밌는 책들 읽으며 지내고 싶네요

    오늘이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번 만난다는
    칠월칠석이라 그런지.... 글이 언제 올라오나
    블로그교만 바라봤는데 이런 재밌는
    책을 소개해주시고.... 넘 좋네요 ^^
    매일 매일 이런 글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럼 내일도 삶의 향기나는 김민식 피디님
    만나러 블로그교에 또 올께요.
    그럼 내일 또 뵈요 ^^

    • 김민식pd 2019.08.07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어제 저녁 늦게까지 최인아 책방 강연을 했고요. 강연 한 날은 기력을 많이 쓰는 편이라 다음날 늦잠을 자기도 해요. 오늘은 심지어 애들 방학이라 다같이 늦잠 자는 바람에.... ^^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당

    • 섭섭이짱 2019.08.07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에요 ^^ 저같은 늦잠쟁이는 해가 중천에 있을때 일어나야 늦잠인데...그에 비하면 피디님은 늦잠이라기에는 ㅋㅋㅋ

      오늘은 글 발행전 검토에 시간이 걸리시나보다 생각했네요.

      매일 아침 써보니도 중요하지만
      쉬실땐 푹 쉬셔야 또 에너지 충전되시니
      건강도 챙기시며 글쓰셔용 ^^

  2. vivaZzeany 2019.08.07 0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가 와서 그런지 차분한 아침입니다.
    제 힘들어했던 나이, 제가 도전을 했던 나이,
    제가 무엇을 성취했을 때 나이,
    자녀가 생겼을 때 나이,
    갱년기..
    뭐라고 써 있는지 궁금하네요.

    작은 행복.. 오늘은 힘들었던 시절을 상쇄해준 작은 행복을 추억해 보렵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3. 아리아리짱 2019.08.07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님 아리아리!

    피디님의 외모는 나이들수록 빛이나며
    준수해 지십니당~!
    그 비결이 작은 행복찾기의 성공 이겠지요?

    아침글이 일찍 올라오지 않아 쬐끔 걱정했답니당!
    편찮으신가, 일이 생기셨나 등...

    조금 은은한 삶의 향기가 궁금해 지는 하루의 시작입니다. ^^

  4. 오달자 2019.08.07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 회사에서 그리 바쁘신 업무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블로그는 여전히...
    역시 피디님은 대단하십니다.
    블로그 글 저장고에 수십건의 글을 저장하시는 능력이야말로 고수중의 고수가 아닐까요? ㅎㅎ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외모를 타고 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특히 여자인 저는 한창 일 나일때는 성형의 유혹에 혹하기도 했었고 좀 더 이쁘게 태어났었으면....하는 바램 또한 있었구요~
    그치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저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구요.
    인간의 모습은 보이는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이 훨씐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거죠.

    지금의 흰 머리 김민식 피디님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이듦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5. sunnytax 2019.08.07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피디님^_^
    출근길에 매일 들르는 곳인데, 오늘 아침엔 글이 없어서 제 눈을 살짝 의심했어요 ㅎㅎ 항상 이른 아침 글을 쓰시던데,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 내심 걱정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올라온 글이 반갑고요, 좋은 그림책까지 들고 와주시니 더할나위없이 감사드립니당:) 매일 퇴근 후 꼭 한권씩이라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고 있는데요~ 요 책도 같이 함 봐야겠어요! 조금 심오할 것 같지만, 뭔가 뭉글뭉글 할것도 같아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6. 꿈트리숲 2019.08.07 0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0세 인생 그림책, 탐나는 책인데요~~^^
    꼭 사서 읽어봐야겠어요.
    지나온 나이는 그랬었구나 하며 위로하고 다가올 나이는 그럴 수 있으니 준비하자는 마음을 가지려구요.

    전 서른 중반부터 외모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남들이 제 외모에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마음 놓고 외모가꾸기 멈추었는데요. 꾸밈에서 해방되어 그렇게 편할수가 없어요.ㅎㅎ

    살아온 기적과 살아갈 기적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책 같아서 기대됩니다.^^

  7. GOODPOST 2019.08.07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세 손바닥에 앉은 나비 그림
    사람도 나비처럼 완전 변할수 있을까?
    애벌레에서 나비처럼 변한 자신을 갖고 싶은 희망을 손바닥 위에 표현을 했네요.
    역시,,작가님들은 감성과 식견은 대단합니다.

    어쩜, 이그림은 19세가 아닌 지금 나의 나이에도 필요한 것이 아닌지?
    나도 애벌레가 아닌 나비가 되고 싶은 꿈은 있는데,,얼마나 노력하는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 할 긍정에너지를 그림에서 받고 갑니다.

  8. 초현 2019.08.07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 피디님이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올 때면 마음이 짠해져요. 저의 어린 시절까지 오버랩되서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의 피디님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뿜뿜!! 숨길 수가 없네요^^
    선물같은 하루 보내겠습니다. 파이팅!

  9. 2019.08.07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08.07 1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다 유약한 존재인가봐요. 나 자신의 유약함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11. 보리랑 2019.08.07 1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궁 거시기 한거 보시느라 힘드셨겠네요. 영어가 되시니 이런저런 기회 좋군요~^^ 폭력의 대상이 되신건 '아름다운 씨앗' 품고 계셔서 일듯요. 상처 주고 받는 일은 지금까지 잘해 오셨듯이 수행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리라 봅니다

  12. 에밀리썬 2019.08.07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그림책 꼭 한번 보고싶었는데, 피디님이 소개해주시니 더 궁금해지네요.

  13. 평범한 H씨 2019.08.07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책 매일 아침 써봤니?
    읽고 방문해봤어요.
    피디님의 말투도 좋고 글도 좋고 생각도 좋아요.
    저도 특별한거 없어도 꾸준히 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요. 감사합니다^^

  14. 혜혜심심 2019.08.07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쉬어가고 싶을 때, 딱 지금인데요.
    지금 '100인생그림책'이 없을 땐 어떻게~~^^
    (제겐 어제 꼬꼬독에서 소개해 주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가 있지요. 덕분에 즐독하겠습니다~~^&^)

    때론 상처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론 주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준 상처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내가 받은 것만 끌어안고 미워하며 살아가죠. 결국엔 그것이 나를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 .

    제 나이쯤 되면 그런 것 쯤이야 털어버릴 수 있는 나이.
    내가 준 상처를 보듬어 줄 쭐 아는 마음이 쌓이길...

    언제나처럼 오늘도 감사합니다.

  15. 핑크무니 2019.08.07 1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과 같이봐도 너무 좋을 책 같아요.
    제 나이에는 어떤 글이 쓰여 있을까 궁금하네요^^
    서른 아홉에서 마흔이 되었을 때 심리적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나요
    어느새 마흔하고도 2년째 접어들었지만,
    나이가 드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가봐요
    다른 분 말씀처럼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겠죠?!

  16. 옥이님 2019.08.07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너무 좋네요^^
    오늘하루도 감사하게 해주시네요^^

  17. 햇살사람 2019.08.07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극복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직면하고 치유받아야 하는데 직면하기도 꺼려지고, 그 때 그 시절의 사람이 나타나 사과하는 일도 잘 없죠..
    지금 아주 잘 살고 계시니, 상처에서 벗어나시면 좋겠어요^^

    그림책 100책은 기대되네요. 지금 제 나이에 어떻게 써있을지..
    53. 괜찮아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 이 말이 왜이렇게 슬프게 들릴까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18. 아빠관장님 2019.08.07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지는 건 저만 그런가요...ㅎㅋ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19. 2019.08.08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글 읽고 주문했던 이 책이 오늘 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며 인생을 나누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무척 설레입니다^^

  20. 딸기 2019.08.30 0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읽고 블로그 글을 처음 제대로 써봤답니다. 부끄럽지만 남겨봐요.
    https://bemyself1.tistory.com/3
    구독이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