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불행한 뉴스가 신문에 났어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요. 기사에는 그 분이 쓴 책이 소개되었는데요. <죽고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 알키)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저자의 직업의식을 엿볼 수 있었어요. 

내 일은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울증으로 힘들 때 필요한 3가지가 있어요. 한 명의 친구, 하나의 루틴, 하나의 메시지. 

학교에서 왕따인 학생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개입도, 가해 학생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단 한명의 친구다. 한 명의 친구가 생기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 학생은 더 이상 왕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책 24쪽)


허리통증으로 오랜 세월 고통을 받던 저자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죽음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저자를 다시 일으킨 건 매일 아침 일어나 하는 명상이었어요. 명상을 하며 몸을 살펴보고 통증을 들여다보는 거죠. 일상의 루틴이 중요하대요. 

내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외부의 무언가가 있을 때 그것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경우, 나의 생활 자체가 스스로도 예측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수록, 오히려 자기 생활을 규칙적으로 잘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약속과 계획은 신중하게 세우고, 한번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면 가능한 한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루틴 routine'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루틴이란 어떤 일을 하기 전, 반복하는 늘 똑같은 행동이다.


(위의 책 48쪽)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극심한 척추 고통에 시달리다 온갖 처방을 다 찾습니다. 미국 연수 중 명상 프로그램까지 들어요. 그때 만난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남에게 메시지를 주려는 이들이었대요. 자신의 고통과 절망을 명상으로 치유한 후, 명상의 효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려는 이들.


누구나 가슴속에 나만의 메시지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 메시지는 나의 인생 전체에 걸쳐 크게 영향을 미친 어떤 사건을 통해 깨달은 바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난을 겪어 낸 사람들일수록 그러한 메시지는 더욱 더 빛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타인들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듣고 내 가슴에 품는다는 건 가장 주옥같은 지혜를 이식받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내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하나씩 꺼내 되뇌어 보고, 삶의 에너지를 얻는 중요한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위의 책 78쪽)

 미국 연수 도중, 수술을 받으려고 잠시 귀국합니다. 허리 통증이 심해 이착륙 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비행기 내에서 거의 11시간 동안 서서 옵니다. 그렇게 수술을 받지만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수술만 받으면 좋아질 거라 생각한 사람에게는 완전 절망이지요. 결국 생을 포기하려고 하는데요. 마음을 돌린 건, 시신 처리 문제였어요. 미국 유학 중 자살하면, 가족이 시신을 한국으로 옮길 텐데, 죽은 사람을 관으로 옮기는 게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든대요. 시신이 된 아빠와 함께 귀국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해요. 

소설가 헤밍웨이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그의 집안은 아버지와 형제, 누이가 모두 스스로 생을 마감했대요. 심지어 손녀인 마고 헤밍웨이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지요. 자살은 혹시 유전이 되는 걸까요? 

실제로 부모의 자살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신과 임상 현장에서 비교적 자주 관찰된다. 특히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부모의 자살을 경험한 사람들은 우울증이 있을 때 무가치감과 자살 사고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그중 일부는 반복적으로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한다.

자살은 결코 끝이 아니다. 내 가족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남기게 될 뿐만 아니라,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랑하는 자손들에게 나쁜 영향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자살로 70대의 어머니를 잃은 30대 후반의 여성을 면담할 때 그녀가 했던 말이 생생하다.

"엄마와 우리 가족은 수많은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어요. 엄마는 칼국수와 찜질방을 좋아하셨어요......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서는 엄마와의 행복했던 기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요.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시던 날의 끔찍한 기억과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만 떠올라요. 너무 힘들고 괴로워요. 나도 언젠가 그렇게 죽을 것 같고, 우리 아이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두려워요....."

자살은 결코 나 혼자의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 모두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영향을 주게 된다. 혹시라도 삶의 어느 순간,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녀의 이 이야기를 꼭 떠올려 주었으면 한다.

(122쪽)

  
이것이 임세원 선생님이 우리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조금 더 버텨달라고요.  


책을 읽으며 고인이 남긴 메시지를 감히 되새겨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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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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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트리숲 2019.02.08 0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기사를 보고서 마음이 참 아팠어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좀더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인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힘들 때 필요한 3가지가 저에겐 뭐였나 생각해봤어요.
    한 명의 친구는 가족이었고,
    하나의 루틴은 독서였고,
    하나의 메세지는 '나는 나를 사랑한다'였던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어떻게든 견디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잘 살고 있습니다.

  2. 체리 2019.02.08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섭섭이짱 2019.02.08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기사를 접하고 이런 의사분이 계셨다는걸 나중에 알았는데요.
    정말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분인데 너무 안타까웠어용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4. 농업사랑 2019.02.08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경을 이겨내신 분인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난없는 삶은 없겠죠? 자기만의 비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 걷기와 독서, 글쓰기로 이겨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걷습니다.

    아침마다 글을 쓰고, 저녁에는 책을 읽습니다. 규칙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효과도 있더라고요.

  5. luvholic 2019.02.08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질병이지요.
    단 하나의 친구, 루틴, 메시지는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커다란 요소인 것 같아요. 무척 공감됩니다.
    이책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6. 아날로그 2019.02.08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참 좋은 책이다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얼마전 사고로 돌아가신 의사선생님인건 몰랐네요.
    누구나 힘들 때 한번 쯤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볼 텐데
    그때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확신합니다.
    힘들때마다 작가님 글 생각하며 잘 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 kuaile 2019.02.08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가를 향해 손 내밀 수 있는 사람...누군가의 말에 귀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그런 사람이면 삶이 충만하겠지요.

  8. 쩍팔리게살지말자 2019.02.08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 만난 친구가 생각 나네요. 결혼해서 8살난 아이가 있는데, 이혼 했다고 하더라구요. 기분좋게 신세한탄 하며 술 먹고 헤어졌어요. 근데, 다음날 명절 잘 보내라며 행복 하라고 카톡을 보냈는데, 그 친구가 '이번생은 글렀어'라고 보내더군요.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왜 전 그 말이 가슴이 아플까요?
    위 글 하고는 별 상관 없는데, 삶이 고통?이나 행복 사이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건 똑같다는 생각에 그냥 적어봅니다.
    오늘도 글 잘 읽었습니다.

  9. 김수정 2019.02.08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셨던 분이 떠나신것 같아 안타깝네요.
    자신의 고통을 그저 괴로움과 통증으로만 끝내지 않고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치유하는 법을 책으로 널리 알려주신 점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같은 평범인들은 고통에 빠져 제 한 몸 주체하지 못해 허우적거리다가 지쳐 나가떨어져버릴테니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 은하수 2019.02.08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좋은 메시지를 주신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셨네요...
    미처 알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구요...
    고통과 고난을 잊고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11. 보리보리 2019.02.08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분이 그분이셨네요 ㅠ 그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요 __()__ 우울증도 살아있는 자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족이 겪는 트라우마 정말 무서워요

    우울증의 가족력 문제는, 한방에서 우울증이 정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심장과 폐의 건강과 연관 있대요. 자살은 당사자가 통제하기 힘든 면도 있대요ㅠ

  12. light2040@daum.net 2019.02.09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는 책 제목도 생각나내요

  13. 아리아리짱 2019.02.09 0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거라고 했어요!
    힘들 때 한명의 친구, 하나의 루틴,하나의 메세지를 간직하면, 힘듬을 견디고 버텨낼 수 있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힘든이들에게 도움 주시는 귀한 분을 이렇게 황망하게 보내게 되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4. 울트라맘 2019.02.09 1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책소개 감사합니다
    우울증으로 매일 죽고싶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네요
    선물해줘야겠어요

  15. 그로잉101 2019.02.09 1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중한 메세지를 ~ 책으로 남겨둬서 정말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16. 안봄 2019.02.11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명에 가신 임세원 선생님 기사를 접하고 많이 안타까웠는데. 남기신 책이 있군요.
    힘들때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견디고 버텨내야 한다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