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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길 잃은 분노의 시대

by 김민식pd 2019. 1. 28.

얼마 전 전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으악!”하는 소리가 났어요. 비명은 아니고요, 기합에 가까운 소리였어요. 사람들이 다 놀랐어요. 잠시 후, 또 같은 소리가 났어요. “으앗!” 다시 쳐다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서성이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가 보니, 그냥 혼자서 고함을 지르시더군요. 특별히 어디 아프다거나 특정인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어요.

요즘 화가 많은 사람이 꽤 있어요. 그 화를 통제하기 힘든 사람도 있고요. 이건 세계적인 흐름인가 봐요. <분노의 시대>라는 책이 있어요.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히말라야의 산골 마을에 들어가 수년간 독서로 소일하던 한 젊은이가 근대 서구와 아시아의 만남을 대단히 독창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을 씁니다. 

<분노의 시대> (판카지 미슈라 / 강주헌 / 열린 책들)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이슬람 국가 ISIS의 테러리스트가 되어 고향에서 수 백 명을 학살하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어떤 조종사는 수백 명을 태운 채 자살 비행을 하고요,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의 건물을 공격하는 자국민도 나타나요. 영국은 유럽연합의 탈퇴를 결정하고, 미국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지요. 브렉시트도 트럼프 당선도,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지만, 많은 이들의 상실감과 분노가 그 동력이었어요.

지난 백 년 동안, 분명 인류 문명은 진화하고 발전했어요. 하지만 세계 전역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밀려나고 뒤처지고 버려졌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효율성을 따지는 정치와 신자유주의 경제 하에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교육받은 중산 계급은 오래전부터 민주적 가치의 전달자를 자임했지만, 이제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잉여란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들의 불안감, 파산자들과 낙오자들의 분노, 부자들의 경멸에 가까운 무관심이 결합되며, 잔혹함과 무자비함이 지배하는 일상의 문화가 조금씩 형성된다.

(중략)

1989년 이후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나라들에서 넘실대던 이상주의는 경제적 도덕적 대안으로 여겼던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함께 사그러 들었다. 자본의 세계화가 세계의 더 많은 부분을 욕망과 소비라는 획일적인 틀에 가둬 넣었다. 개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적 환상에서는 모두가 기업가가 되어야 했고, 역동적인 경제에서 테크놀로지 혁명을 항상 눈 여겨 보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시시때때로 변신을 꾀해야 했다.

자기 역량 강화에 대한 찬사는 IT 혁명으로 한층 더 고조되었다. 젊은 대학 졸업생과 중퇴생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하룻밤 사이에 억만장자가 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혹은 왓츠앱의 사용자가 세계 곳곳의 권위주의 체제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고도 터무니없이 적은 요금밖에 벌지 못하는 우버 택시 운전사는 수많은 자영업자의 현실적인 운명을 대변한다.

(중략)

루소가 경고했듯이, 자존심과 이기심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법이다. 흔하디흔한 현상이지만 이기심은 변덕스런 마음에 기생하며 타자에 대한 무력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반감까지 키워 간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마음에, 어떻게든 남들보다 앞서고 남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공격적인 충동으로 이기심이 변질될 수 있다. 미국 소설가 고어 비달은 이러한 감정을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남들은 실패해야 한다.>


(<분노의 시대> 388쪽 에서 402쪽 사이 추림)    


지하철 할아버지의 분노는 어디에서 올까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비롯합니다. 할아버지의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요? TV 화면 속, 친구가 보내준 유튜브 영상 속에 있습니다. 그 속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집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이 놈의 세상이 곧 망할 것 같은데, 편안한 얼굴로 휴대폰 속 드라마를 보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는 화가 나 죽겠는데, 저들은 잘도 지냅니다. 저들의 평화를 깨고 싶어요. 나의 분노를 표현하고 싶어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소리를 지르고 기합을 넣고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겁니다.

서글픕니다. 저 노인의 분노를 달래줄 길이 없어 슬픕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함부로 그 노인에게 다가가려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게 폭력으로 비쳐질 수 있어요. 이럴 때 제게 필요한 것은 포기하는 용기입니다. 그 노인에게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뜻대로 되지 않는 욕망을 포기하는 용기. 우리의 시대, 자칫하면 좌절하고 분노하기 쉽습니다. 분노는 타인을 해치기도 하지만, 먼저 분노를 품은 사람을 괴물로 만듭니다. 자살이 바로 궁극의 분노 표출이지요. 나를 포함한 세상을 지워버리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분노의 시대>, 많은 질문을 떠오르게 하는 책입니다. 화내지 않고 사는 법을 공부해야겠어요. 욕망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는 이승욱님의 책, <포기하는 용기>에 대해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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