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을 쓰면서, 원고가 막힐 때마다 저는 책쓰기에 관한 책을 읽습니다. 일전에 소개한 <왓 더 북>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2018/08/10 - [공짜 PD 스쿨/딴따라 글쓰기 교실] - 글쓰기는 인생 컨설턴트
그 책을 보면, 다양한 경로로 저자가 된 여러 사연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분은 한의사 강용혁 선생님입니다. 경희대 한의대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다시 개원한 후 칼럼과 책을 쓰는 한의사로 살고 있어요. 참 대단한 능력자시구나 싶은데요. 정작 본인은 어려서 글쓰기와 친하지 않았대요. 이과 출신에 한의대를 나왔기에 글을 쓸 일도 없었고, 잘 쓰지도 못했다고요. 하지만 어느 날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글쓰기에 발을 들인 건 대학 본과 2학년 때였다. 약사들의 한약 조제 허용을 놓고 이른바 ‘한약 분쟁’이 터졌다. 전국의 한의대생들이 유급까지 불사하며 반대 시위를 했다. 이 무렵 PC 통신 하이텔에서 논쟁을 하게 된 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이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론인이 되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러나 문제는 형편없는 내 글솜씨였다. (중략) 첫 신문사 논술 시험에서 두 시간 동안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백지만 쳐다보다 돌아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사설이며 칼럼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아예 ‘외우는’ 것으로 겨우 관문을 통과했다. 글재주로는 인문계 출신의 문학 청년들과 경쟁해서 이길 방법이 도저히 없어 보였다. (중략) 문장력을 하루아침에 늘리기는 더욱 어려우니, 결국 좋은 콘텐츠들을 모조리 외우기로 마음먹었다.
동일한 주제의 사설과 칼럼들 여러 개를 비교하고 정리했다. 이렇게 하면 균형 잡힌 시각과 멋진 표현들까지 취합할 수 있다.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의 멋진 콘텐츠들을 쏙쏙 뽑아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이렇게 재편집한 글은 빈 강의실에서 아예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서 외우고, 중간 고사 시험을 치듯 그대로 써보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별로 늘 30~40개 정도를 준비하니 어떤 주제가 나오든지 나만의 정성과 개성 (?) 가득한 글을 속전속결로 써내려갈 수 있었다.
(중략)
이처럼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고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20~30대에 내가 가려던 길목마다 나타난 꼭 넘어야 할 산과 같은 대상이었다. 정작 가장 자신 있었던 수학은 대학 시절 과외 아르바이트 이후론 별로 사용을 못했다. 그러나 가장 취약했던 국어와 글쓰기는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등장한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왓 더 북> 147쪽)
제 블로그에 놀러오는 피디나 기자 지망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라 옮겼습니다. 어려운 언론사 논술 시험을 이런 방식으로 돌파할 수도 있군요. 글쓰기에 암기를 동원하는 건 신선한 시도네요. 저도 여차하면 통째로 외우는 방식으로 돌파를 시도합니다. 대학 3학년 때,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 대회 본선에 올라갔는데요. 무척 쫄렸어요. 전국에서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올 텐데... 그 중에는 당연히 영문과 전공자도 있고, 유학생이나 교포도 있을 텐데, 나 같은 국내 독학파가 상대가 될까? 영문 학술 잡지를 읽으며 토론에서 사용하기 좋은 표현을 노트에 옮겨 적고 암기했습니다. 회화문장을 외우면서 공부한 터라, 암기는 자신있었거든요. 암기능력은 타고난 능력이라 생각하는데요. 이것도 훈련으로 키울 수 있더라고요.
좋은 표현들을 외워두고, 말문이 막힐 땐 외운 걸로 임기응변했어요. 영어 토론 대회 본선에서는 머릿속에서 영어 문장을 조합할 시간은 없거든요. 참가자만 20명 가까이 되기에 조금만 머뭇거려도 다른 사람에게 발언의 기회를 빼앗깁니다. 미리 외워둔 표현, 그러기에 문법적으로 완벽한 표현으로 말문을 열고, 조금씩 논리를 붙여갔죠. 그 덕에 2등상을 탔다고 생각해요. 그 경험이 제게는 자신감을 안겨 줬습니다. 훗날 통역대학원 진학을 꿈꾸게 된 것도 그 시절에 얻은 자신감 덕분입니다.
문장 암기로 논술 시험에 도전하는 이야기, 재미있네요. 항상 느끼는 건데요. 뜻이 없지, 길이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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