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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출판도 협업이다

by 김민식pd 2019. 1. 17.

제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는, 그 사람의 열정에 반했을 때입니다.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성실함 때문이에요. 소설 창작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마치 노동 화가 반 고흐 같아요. 매일 꾸준히 읽고 글을 씁니다. 특히 그는 독자에 대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요. <당선, 합격, 계급>을 읽으며 놀란 대목이 있어요. 

2016년~2017년 나는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할 때마다 설문지를 돌렸다. 소설을 고를 때 각 요소들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0~10점으로 표시해 달라는 내용의 설문이었다. (중략)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반 독자들이 소설을 고를 때 영향을 받는 요소 (점수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1. 이야기의 소재

2. 제목

3. 친구나 지인의 평가

4. 표지 디자인

5. 작가의 대표작

6. 작가의 인지도

7. 작품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

8. 작가가 바로 직전에 쓴 작품

9. 서가나 매대에 자리한 위치

10. 책에 함께 실린 문학평론가의 해설

(후략)  

(<당선, 합격, 계급> 344쪽)


작가가 직접 여론 조사까지 하며 소비자 동향을 살피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소설을 고를 때 영향을 받는 요소에서 제 눈길을 끈 건 제목, 표지 디자인, 매대 위치였어요. 이건 작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모두 출판사의 공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처음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제목을 출판사에서 제안했을 때, 약간 걱정이 됐어요. '음... 반말이네? 제목을 보고 반감을 사면 어떡하지? 영어책 한 권 읽어본 적도 없다, 어쩔래? 하고 시비걸면 어떡하지?' 

책 출판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책의 제목과 디자인, 마케팅은 전문가인 출판사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제목도 좋다고 했어요. 그 다음 책의 디자인을 봤을 때도 내심 실망했어요. 저자인 제 이름보다 추천사를 써준 김태호 피디의 이름이 더 크게 나왔더라고요. ㅠㅠ^^ 심지어 인터넷 리뷰에는 김태호 피디가 쓴 책인줄 알고 샀다는 글도 있고... ㅋㅋㅋ 그래도 편집자님에게는 '디자인 좋은데요? 고맙습니다!' 하고 메일을 보냈어요. 

책이 매장에 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교보 문고에 갔을 때는 책을 찾지 못해 당황했어요. 영어 학습서 분야를 뒤졌거든요. 책은 엉뚱하게 자기계발서 분야에 비치되어 있더라고요. 책의 제목, 표지, 매대 위치, 무엇하나 저자인 제 뜻대로 된 건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이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출판과 책 마케팅에 있어서는 편집자가 전문가이니 무조건 전문가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평소 저의 드라마 연출론입니다. 감독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사람이다. 대본에 대해서는 작가의 의견을, 연기에 대해서는 배우의 의견을, 앵글에 대해서는 카메라 감독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드라마 피디로 제가 먹고 사는 건 저보다 잘 난 사람을 주위에 모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덕이지요.  

수많은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드라마와 달리, 책은 저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는 작업이라 생각하고 책을 썼는데요. 이것도 협업이더군요. 출판 전문가인 편집자들과의 협업으로 책을 만들고요. 궁극의 협업은 독자들과의 협력입니다. 독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하고, 독자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작가의 일입니다.

설문조사의 결과, 독자가 책을 고를 때 '전문가'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장강명 작가는 놀라요. 타인의 의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나 지인의 평가지요. 왜 전문가들의 추천은 외면을 받는 걸까요?


나 역시 언론이나 서점 등에서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면 다른 작가나 명사들이 같은 코너에서 어떤 책을 추천했는지도 살피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서 '아, 이 책 읽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때보다는 '아, 저 사람이 자기 취향 고상하다고 자랑하고 싶었구나.'라고 느낀 적이 더 잦았다. 

(위의 책 345쪽)


서평을 쓰면서 가끔 하는 고민이에요. 저의 취향을 자랑하기 위해,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읽지는 말자고요. 재미없는 책을 읽기도 힘들고, 리뷰를 쓰는 건 더 힘들거든요. 책읽기와 글쓰기의 즐거움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최대 목표입니다. 더 잘 쓰고 싶은데 쉽지는 않지요.

한국의 서평 문화가 척박한 이유에 대해 밀리의 서재 서영택 대표는 장강명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문 서평가든 블로거든 서평을 써서는 먹고살 수가 없죠.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서영택 대표는 파워블로거의 글이 부실한 것은 글을 열심히 써봤자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론가의 글이 어려운 것은 그 경제적인 보상을 출판사가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블로거들이 다른 독자를 통해 직접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더 공들여 서평을 쓰게 되지 않을까? 평론가들은 작가나 다른 평론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의 관점을 고려하게 되지 않을까?

(위의 책 377쪽)


블로그에 서평을 연재하는 이로서, 고민하게 하는 글이었어요. 경제적 보상과 관계없이 즐거움에 집중하고 싶어요.  독자와의 만남 행사 때마다 설문조사를 했다는 장강명 작가 이야기가 놀라웠어요.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꾸준히 공부하는 작가의 자세. 배우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시고, 좋아요를 눌러 꾸준히 반응해주시는 블로그 독자 여러분도 제게는 은인입니다. 여러분의 댓글과 반응에서 또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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