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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잘 늙고 싶은 소망

by 김민식pd 2019. 1. 15.

나이 50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쉰 두 살입니다. 세월은 정말 빠르군요. 이러다 앗차! 하는 순간 노인이 될 것 같아요. 어디에선가 ‘나이 드는 지혜’라는 글을 읽었어요.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의 글이라고 하더군요. 도서관에 가서 '소노 아야코'를 검색했더니 책이 여러 권 뜹니다. 그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은 1985년에 나온 ‘아름답게 늙는 지혜’라는 책입니다. 좀더 최근 판본은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소노 아야코 / 오경순 / 리수)군요.

저자는 나이 40에 잘 늙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시작합니다. 나이를 먹은 후에, 멋있게 늙는 법에 대해 고민하면 이미 늦다고요. 이미 늙어버린 사람에게는 책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6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책을 팔지 말라고 써야할까 고민했다는군요. 어떻게 나이들까, 고민하는 건 아직 늙지 않았을 때 해야할 일이라는 거지요. 책의 목차만 읽어도 좋더라고요. 한 줄 한 줄 받아쓰고, 틈 날 때마다 소리 내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해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일단 포기할 것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생애는 극적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푸념을 해서 좋은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명랑할 것

‘삐딱한 생각’은 용렬한 행위, 의식적으로 고칠 것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려고 노력할 것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질 것

젊음을 시기하지 않을 것, 젊은 사람을 대접할 것

젊은 세대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냉혹할 것

젊은 세대는 나보다 바쁘다는 것을 명심할 것

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다

자식이 걱정을 끼친다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공격적이지 말 것

태도가 나쁘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의사가 냉정하게 대해도 화내지 않는다

같은 연배끼리 사귀는 것이 노후를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정년을 일단락으로 하고, 그 후는 새로운 출발로 생각할 것

보편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최고 연장자가 되어도 자신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돈을 아끼지 말 것



구구절절 옳은 말씀 아닌가요? 목차를 읽으며, 한 줄 한 줄 뜻을 곱씹어보는 것도 좋아요.


나의 생애는 극적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어느 것이든 존중되어야 하며 또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 유독 “나처럼 고생한 사람도 없지요. 내 일생이야말로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 만합니다.” 이런 말로 자기의 생애를 남에게 긍정시키려는 사람이 꽤 많다.

거의 100명에 97,8명까지가 자기의 일생은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이 극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자기만이 특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일지 모른다. 그 반면 모든 인생에 대해서 깊은 경의를 품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의 일생이라도 그 깊은 속을 꿰뚫을 수 있는 눈만 가진다면 어느 것이나 위대한 삶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책 33쪽)  


드라마 피디로 일하다보니, 나이 많은 어르신을 만나면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내가 살아온 걸 쓰면 그냥 드라마야. 김피디가 이걸 드라마로 한번 만들어봐.”

저는 웃으며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 지금 하신 이야기가 다 재미있는데요. 먼저 책으로 내시는 게 어때요? 선생님 인생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가장 잘 쓰실 수 있거든요.”

그럼 노인들은 손사래를 칩니다. 

“아냐, 내가 글은 못 써.”

그런 분은 구술사를 정리하는 전문가를 만나도 좋겠지요. <할배의 탄생>을 쓰신 최현숙 선생님 같은 저자. 그런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일 좋은 건 직접 쓰는 겁니다. 타인을 붙잡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조용히 내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노인이 되고 싶어요. 그런 노인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저는 매일의 기록을 남깁니다. 나이 50에 매일 올린 독서일기와 여행일기, 육아일기는 어느 날 70 노인이 된 제가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데 최고의 자료가 되지 않을까요? 

노인이 되어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건 참 어려워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이 넘치는 중년에 하지 못하는 일을 60이 넘어 새로 시작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잘 늙는 법, 하루하루 즐겁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후회와 분노로 가득한 노년의 삶을 멀리하는 길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살 또 먹었어요. 잘 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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