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에 태어났다면, 나에게 직업의 선택지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농경시대에는 직업인의 90퍼센트가 농군이었으니, 저도 농사꾼 아니었을까요? 그 시대의 직업적 고민이란, 밭농사를 할 것이냐, 논농사를 할 것이냐. 소를 기를 것이냐, 돼지를 기를 것이냐. 콩을 심을까, 팥을 심을까... 이런 정도 아니었을까요? 70년대 시골에 살 때는 주위 어른들은 다 농부였어요. 유일하게 다른 직업은 학교 선생님이었고요. 제가 어렸을 때, 주위에 선생님이 장래 희망인 아이들이 많았어요. 저는 아버지 어머니가 학교 교사인지라, 선생님의 삶을 동경한 적은 없어요. 아버지를 보며 직업인으로서 행복하시다고 느낀 적이 없어서... 대신 작가를 동경하게 되었어요. 책을 읽다보니, 책을 통해 만난 대표적 직업인이 작가였거든요. 사람의 욕망은 결국 환경에 의해 결정됩니다.

요즘은 직업 선택의 폭은 넓어졌어요. 아이들은 TV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예능을 봅니다. TV 속 세상에는 화려한 직업이 많아요. 마치 우리가 그걸 다 이룰 수 있는 것 같지요. 내가 보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괴리가 너무 큽니다. 그 괴리에서 좌절감이 찾아오지요. 나날이 자신감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한겨레신문에서 즐겨읽는 칼럼이 있어요.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선생님이 쓰시는 '증상과 정상'입니다. 이번에 새 책 <포기하는 용기> (이승욱 / 북스톤)을 내셨어요. 


'나는 이렇게 힘들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괴로울까요?'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내 삶을 위해 해야 했으나 미처 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사느라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세상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 그걸 찾아야 지금의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할 것이 있다면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서 수혈받아 채우려는 욕구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마 이것에 대한 포기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권리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이 심어준 욕망을 포기합시다.'

(뒷표지에서)


얼마 전, 어떤 분을 만났는데요. 꿈이 국민 MC라 하시더군요.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국민 MC의 꿈, 쉽지 않아요. 그건 국민이 인정해줘야 하거든요. 나의 행복의 기준을 타인으로 삼지 말아요. 님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도로만 목표를 삼으세요. 저는 책을 쓰지만, 꿈이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에요. 그냥 작가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많은 독자가 제 책을 선택해주셔야 가능한 꿈이지요. 타인에게 제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달라요. 내 의지대로, 나의 노력에 따라 이룰 수 있어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 글 한 편을 쓴다면 이미 작가거든요. 타인의 기준은 포기하고요. 내가 매일 성취할 수 있는 정도까지가 나의 꿈입니다."


이승욱 선생님은 뉴질랜드 유학 시절, 영어로 심리학을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답니다.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도 어렵고, 영어로 쓰는 과제도 어렵고, 영어로 하는 발표도 힘들고... 공부를 접고 귀국해서 장사를 해야하나 고민했답니다. 그 순간 '이번 학기만 더 견뎌보자'고 결심하고는 매일 밤 108배를 하고 불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신실한 신자여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대요. 딱 100일만 하자고 결심하고 시작한 108배, 무려 3000일간 지속했답니다. 아르바이트에 파트타임 직장일에, 학교 과제를 하고, 수업 교재를 읽으면 하루 일과는 대개 새벽 4시에 끝났대요. 수면도 부족한 상태에서 108배를 했답니다. 너무 힘들어 절을 하다 울기도 하고, 너무 잠이 와서 절을 하다 엎어져서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고요. 

그때 이후 저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것은 석사나 박사학위가 아닙니다. 3000일 동안 자신과의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이 훨씬 뿌듯합니다. 학위는 정말 종이 한 장이더군요. 오히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새벽 108배의 경험을 통해 저는 스스로를 인정할 건덕지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저 자신이 인정할 건덕지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은 세상에 알릴 필요도 없고, 타인의 확인도 필요 없는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약속,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이행한 약속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정욕구의 메커니즘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포기하는 용기> 66쪽)


스무 살에 영어 문장을 외우며 공부했는데요. 지나고보니 그것도 수련이었어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오로지 나 스스로 한 약속을 매일 조금씩 실천해 가는 것. 영어책 한 권을 외운 후, 나 자신을 인정할 건덕지를 얻었어요. 

기준이 굳이 영어 문장 암송일 필요는 없겠지요. 108배도 좋고요. 30분 걷기 운동도 좋아요. 요즘 저의 수행은 매일 한 편 글쓰기입니다. 글 한 편을 위해,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합니다. 무엇이 되든 좋아요.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 하나 정하고, 그걸 꾸준히 실천하는 것. 그게 세상과 나의 괴리에서 오는 상실감을 극복하고, 나를 찾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요?

분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타인의 기준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기준 하나, 그걸 찾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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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수정 2019.01.31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인에게 인정 받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포기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줄인다면,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야 없겠지만
    나의 니즈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3. 꿈트리숲 2019.01.31 0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을 읽어보니 글쓰기를 시작 잘했다 싶어요.
    얼떨결에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습관이 되어
    눈 뜨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책을 사랑하지도, 글쓰기를 해본적도 없지만
    매일 쓰면서 알았어요. 글을 통해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요. 저도 스스로를 인정할 건덕지를
    찾은 것 같아요. 320여일 동안 200개 글을 쓴 제가
    대견합니다. 셀프 칭찬 매일매일 하고 있어요.

    타인의 인정은 포기하더라도 나를 인정하는 욕구는
    평생 갖고 가고 싶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 나! 인정합니다.~~^^

  4. 보리보리 2019.01.31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물리학자(맥가이버).의사.한의사(허준).대체의학자.통역사(야매) 이꿈들이 강렬했으나 내꿈인지 모르겠네요ㅎ 건덕지 하나... 만족스럽진 않지만 유튜브 매일 올리는것

  5. 송승미 2019.01.31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스로에 대한 약속,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
    너무 가슴에 와닿는 말입니다.

    오늘부터 저와의 약속을 만들어 실천해 보고자 합니다.
    또 한번 배우고 갑니다.

  6. 참이슬공주 2019.01.31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안녕하세요..
    참이슬공주입니다.
    지난 토욜 효양도서관 강의 잘들었습니다.^^
    여전히 열정히 넘치시고, 더 멋있어졌더라는
    며칠전 예전 무대에서 춤추시는 모습을 보고는 피디님이 말씀하시던 젊었을때의 폭탄이야기가 생각이 났네요.ㅋㅋㅋ
    간만에 많이 웃었네요..
    항상 웃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7. 홉리 2019.01.31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고

    “좋은것을 배우면 행하라”는 신조로 블로그에 제 나름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올려주신 글 너무 감사히 잘 읽었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꾸준히 제 기준으로 글을 쓰며 정리하겠습니다^^

  8. 쩍팔리게살지말자 2019.01.31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꾸준히 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쉬울 것 같지만 사실 많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저 단 하나라도 끈을 놓지 않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를 하면 좋지만, 일단 하나 씩 늘려가다 보면 언젠가 그 갯수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만은 아직 까진 실패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댓글에 아니 제 블로그에 피디님 처럼 매일 글을 쓰는 날을 고대해 봅니다.
    오늘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9. kuaile 2019.01.31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지난 3년 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의 힘을 배우고 체험하고 있어요. 늘 감사합니다^^

  10. 은하수 2019.01.31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창시절엔 시험을 봐야 공부했고,
    학교, 회사 외의 생활은 시험과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항상 뒷전이었어요.

    많은 깨달음을 주는 글입니다.
    제가 계획해서 한다기보다는 항상 주어진거를 허덕거리며 하다보니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시험기간엔 교과서 외의 책을 읽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살았는데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학창 시절이 후회스럽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제일 후회되는 과거입니다.

    중간고사 전날 티비에서 우연히 본 '시네마 천국'을 밤늦게까지 끝까지 보고 잔 게 저의 유일한 시험기간의 일탈이었으니... 시험기간에 소설책 읽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되었죠.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음을 알기에 열심히 읽고 쓰고 움직이고 할겁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11. 아리아리짱 2019.01.31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타인의 기준을' 포기하는용기'오늘도 알려 주신 좋은 책 꼭 읽어 보겠습니다.
    늘 앞서서 끌어주시는 그 에너지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12. 오늘도맛남 2019.01.31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아침 글써봤니?
    강연 제목과도 같더라고요. 요즘의 저에게 한 줄기 빛같은 내용의 책이였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꾸준히 무언가 해볼까 합니다.

    매일 글쓰는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열정이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태도를 보고 저 또한 저를 되돌아보며 나아가려 합니다. 모두 화이팅!

  13. 샘이깊은물 2019.01.31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요그럼요. 격하게 공감합니다!!
    타인의 삶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나의 리듬으로 만들어갈래요. 휘둘리고 흔들리는 순간도 있지만 제 것이 아닌 것들에 마음을 주지 않을래요. 삶을 너절하고 번잡하게 만드는 것들을 솎아내고 떨구어,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로 채우고 싶어요. 명료하게. 가볍고 단단하게.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요가입니다. 흠뻑 빠져들어 호흡과 근육의 감각만 오롯이 남을 땐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자세를 멋지게 완성하기 위해 나를 다그치고 싶지 않아요. 조금씩 단련되는 그 느낌은 제 자신과 나누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뿌듯함입니다.


  14. 섭섭이짱 2019.01.31 1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내가 하고 싶은걸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에 맞춰 꾸준히 하기’

    피디님 의견에 공감 백배합니다.
    저도 새해 시작하면서 진행하는게 있는데
    한달동안 하루도 안 빼먹고 꾸준히 하니
    자신감이 팍팍 올라가고 있네요.

    꾸준히 하는거 그게 제일 어렵지만
    제일 중요한거 같아요.
    남은 11개월도 꾸준히 해보려고요.

    이 책도 읽을 목록에 추가할께요
    감사합니다



  15. 러브엘 2019.01.31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전 친구가 박사학위 과정을 내려놓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런말을 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늘 부족해보여서 세상에 내세울만한 기준을 찾다보니 박사학위까지 하게됐는데, 돌아보니 내가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부족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보니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학위과정을 내려놓았고 지금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저는 그 친구에게서 진정한 포기하는 용기를 보았습니다.

    소개해 주신 책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16. 찬휘헌 2019.02.01 0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면서 정말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생각하고, 조금씩 정리해 나갈 때 스스로가 점점 더 자유로워 질텐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17. freezone 2019.02.02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의 글을 공부하기 전 꼭 읽습니다. 삶의 희망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18. 2019.02.02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0일간 지속해 볼 저만의 "108배"를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세상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 인정할 건덕지.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 투썬플레이스 2019.02.15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50배 이상 하려고 하는데 이 글을 보니 반갑네요.
    매일 글을 수행으로 한다는 말씀에 감동..어떤 일이 생겨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다는게 가장 큰 인정 같아요.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20. 아자아자~ 2019.03.20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 없이도 스스로 존재하는 법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21. 티비다시보기 2020.07.03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