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으악!”하는 소리가 났어요. 비명은 아니고요, 기합에 가까운 소리였어요. 사람들이 다 놀랐어요. 잠시 후, 또 같은 소리가 났어요. “으앗!” 다시 쳐다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서성이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가 보니, 그냥 혼자서 고함을 지르시더군요. 특별히 어디 아프다거나 특정인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그냥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어요.

요즘 화가 많은 사람이 꽤 있어요. 그 화를 통제하기 힘든 사람도 있고요. 이건 세계적인 흐름인가 봐요. <분노의 시대>라는 책이 있어요.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히말라야의 산골 마을에 들어가 수년간 독서로 소일하던 한 젊은이가 근대 서구와 아시아의 만남을 대단히 독창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을 씁니다. 

<분노의 시대> (판카지 미슈라 / 강주헌 / 열린 책들)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이슬람 국가 ISIS의 테러리스트가 되어 고향에서 수 백 명을 학살하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어떤 조종사는 수백 명을 태운 채 자살 비행을 하고요,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의 건물을 공격하는 자국민도 나타나요. 영국은 유럽연합의 탈퇴를 결정하고, 미국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지요. 브렉시트도 트럼프 당선도,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지만, 많은 이들의 상실감과 분노가 그 동력이었어요.

지난 백 년 동안, 분명 인류 문명은 진화하고 발전했어요. 하지만 세계 전역에서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밀려나고 뒤처지고 버려졌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효율성을 따지는 정치와 신자유주의 경제 하에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교육받은 중산 계급은 오래전부터 민주적 가치의 전달자를 자임했지만, 이제는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잉여란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들의 불안감, 파산자들과 낙오자들의 분노, 부자들의 경멸에 가까운 무관심이 결합되며, 잔혹함과 무자비함이 지배하는 일상의 문화가 조금씩 형성된다.

(중략)

1989년 이후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나라들에서 넘실대던 이상주의는 경제적 도덕적 대안으로 여겼던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함께 사그러 들었다. 자본의 세계화가 세계의 더 많은 부분을 욕망과 소비라는 획일적인 틀에 가둬 넣었다. 개인주의라는 신자유주의적 환상에서는 모두가 기업가가 되어야 했고, 역동적인 경제에서 테크놀로지 혁명을 항상 눈 여겨 보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시시때때로 변신을 꾀해야 했다.

자기 역량 강화에 대한 찬사는 IT 혁명으로 한층 더 고조되었다. 젊은 대학 졸업생과 중퇴생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하룻밤 사이에 억만장자가 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혹은 왓츠앱의 사용자가 세계 곳곳의 권위주의 체제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고도 터무니없이 적은 요금밖에 벌지 못하는 우버 택시 운전사는 수많은 자영업자의 현실적인 운명을 대변한다.

(중략)

루소가 경고했듯이, 자존심과 이기심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법이다. 흔하디흔한 현상이지만 이기심은 변덕스런 마음에 기생하며 타자에 대한 무력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반감까지 키워 간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마음에, 어떻게든 남들보다 앞서고 남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공격적인 충동으로 이기심이 변질될 수 있다. 미국 소설가 고어 비달은 이러한 감정을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남들은 실패해야 한다.>


(<분노의 시대> 388쪽 에서 402쪽 사이 추림)    


지하철 할아버지의 분노는 어디에서 올까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비롯합니다. 할아버지의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요? TV 화면 속, 친구가 보내준 유튜브 영상 속에 있습니다. 그 속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집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이 놈의 세상이 곧 망할 것 같은데, 편안한 얼굴로 휴대폰 속 드라마를 보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는 화가 나 죽겠는데, 저들은 잘도 지냅니다. 저들의 평화를 깨고 싶어요. 나의 분노를 표현하고 싶어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소리를 지르고 기합을 넣고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겁니다.

서글픕니다. 저 노인의 분노를 달래줄 길이 없어 슬픕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함부로 그 노인에게 다가가려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게 폭력으로 비쳐질 수 있어요. 이럴 때 제게 필요한 것은 포기하는 용기입니다. 그 노인에게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뜻대로 되지 않는 욕망을 포기하는 용기. 우리의 시대, 자칫하면 좌절하고 분노하기 쉽습니다. 분노는 타인을 해치기도 하지만, 먼저 분노를 품은 사람을 괴물로 만듭니다. 자살이 바로 궁극의 분노 표출이지요. 나를 포함한 세상을 지워버리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분노의 시대>, 많은 질문을 떠오르게 하는 책입니다. 화내지 않고 사는 법을 공부해야겠어요. 욕망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는 이승욱님의 책, <포기하는 용기>에 대해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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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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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섭섭이짱 2019.01.28 0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어떻게 살것인가...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욕망을 포기하는 용기는 저에게 필요한 얘기 같네요.
    오늘 글은 묵직한 주제지만 꼭 생각해볼 내용 같아요.

    이 책도 읽을 목록에 추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 보리보리 2019.01.28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버...싼 채소 달걀... 내가 편한것이 누군가의 눈물이네요 ㅠ 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세상 사는 지혜를 얻는군요. 나눠먹고 춤추고 웃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3. 세라피나 장 2019.01.28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쉬나
    매일 블로그 들러서
    읽고 있지만

    댓글 남기는 건
    자제 했지만

    오늘은
    문득

    리뷰
    남기고 싶네요


    요즘
    일터에서

    느끼는
    모멸감


    그런 감정 있기에
    글도 읽고

    그 글들 속에서
    에너지와 용기를 배웁니다


    포기하는 용기
    욕망을 포기하는 용기...

    굿
    실천 일순위...


    나만 성공해야 하고
    나의 성공은 부족하고

    타인이 실패해야 함...

    나의 자식들이
    지금 사회에서

    받게될 부당함과
    현실 타협들이

    가슴아푸게

    다가옵니다

    큰아이가 이번 수능으로
    좌절감에 힘들어함에

    저도
    꼬옥 그 만큼
    같이....


    좋은하루 항상 되세요

  4. 세라피나 장 2019.01.28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댓글 달 여유

    살다보니
    오네요

    계속
    쭈욱

    여행&독서&영화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일터에서 받는
    밥벌이의 지겨움&고단함을 잊고자

    주말에는 꼬옥
    조조영화 2-3편으로

    2017년 : 67편
    2018년 : 67편

    우연의 일치로
    같은 숫자

    올해도 그만큼
    그보다 더 볼려고 합니다


    제가 영화&뮤지컬&클래식 공연
    넘치도록 볼려고 할때는

    삶의 녹록치 않음에
    지치지 않고

    살아 볼려고
    발버둥 치는 시간들이 많다는 역설...


    자전거 투어
    젊은시절
    요근래 다시 어게인


    저도
    10여년전에 돌아보고

    다 돌고
    희미해지고 재미 없어짐에

    해외로 좀 눈 돌리고

    작년 초
    새차 구입으로

    미뤄 두었던
    코리아 again

    이번 구정 2.2 연휴 시작으로

    한 집안의 며느리라서
    제사 음식 등 차례 지내야 하기에

    그 전날까지

    울산 출발
    울진 태백 강릉
    정선 홍천 소백

    찍고 올려고 합니다


    김민식 작가님 덕분에


    삶의 일순위에 올려놓고
    글을 접하다 보니

    어느듯
    메모 해 둔 글들에

    제가 실천이라는
    숟가락을 집어 들게 됩니다


    생은 가본자들만이
    더 많이 누리게 되지요


    영혼의 풍요로움을...

  5. 아리아리짱 2019.01.28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오늘의 글은 묵직함으로 다가옵니다.
    주말에 읽은 주철환pd의<오블라디 오블라다>
    에서 '더'잘사는 것은 물론 중요 하지만 '다'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더다이즘" 이 떠오릅니다.

  6. 꿈트리숲 2019.01.28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는 질문 같네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겨를 없이 달려왔기에 지금 분노표출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건가 싶어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천천히 숨고르며 나를 알고 타자를 이해하면서 갈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네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으려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조용히 생각해봅니다.^^

  7. 황준연 2019.01.28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살 것인가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대략적으로 안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질문의 수준이 인생의 수준이라고 하더라고요.
    멋진 질문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8. 랄프 2019.01.28 2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중간쯤 읽었을 때..피디님이 다음에 <포기하는 용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런 제목의 책이 있군요 ㅎㅎ
    욕망을 포기하고 무엇을 남겨야 될까...
    누가 뭐라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책임지는것,
    그리고 그만큼의 용기로 바로 옆에서 함께 하는 사람을
    응원하는것..그 정도일까요..

  9. Ohyeonsu 2019.01.28 2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기하는 용기.
    또 하나를 배운 날이네요.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고 페북에서 친구 요청을 보냈습니다.
    친구 수락 부탁드립니다.

  10. 오또기 쭘마 2019.01.29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리함과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사람들의 상처가
    안으로 점점 들어가 곪는것 같아요.
    끝내 곪을대로 곪은 상처는 분노로 바뀌어 크게 빵! 하고 밖으로 터트리죠.
    어느정도 부족하고, 불편했고, 가족끼리 이웃끼리 부비부비 했던
    예전의 생활이 그리워지는 날이네요

  11. kuaile 2019.01.29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하철 할아버지의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묘사한 풍경은 흡사 한편의 선시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