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터키 여행 9일차 (2부)


아야 소피아를 갈 때 입장권을 놓고 고민을 했어요. 터키 물가에 비해 꽤 비싼 편이거든요. 물론 아무리 비싸도 이스탄불에 와서 아야 소피아를 안 보고 갈 수는 없지요. 고민끝에 뮤지엄 3개 콤보권을 샀어요. 15리라(3천원) 할인 혜택을 보고. 티켓 가격은 135리라. 2만7천원입니다. 

저는 어차피 아야 소피아, 톱카프 궁전, 고고학 박물관을 셋 다 볼 생각이었어요. 이스탄불 당일치기 여행이 아니라 5일 정도 관광하니까 셋 다 봐야지요. 고고학 박물관은 월요일 휴관하고, 톱카프 궁전은 화요일 휴관합니다. 당일에 아야 소피아와 톱카피를 보고 고고학 박물관은 다음날 봤어요. 

톱카피 궁전은 아야 소피아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데요. 와보니 매표소 앞에 긴 줄이 있군요. 콤보권을 산 덕에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합니다. 표에 있는 바코드를 게이트에 찍으니 바로 입장 가능! 아, 콤보권을 사길 잘했네요. 

예전에는 돈을 아끼며 여행을 다녔는데요. 요즘은 시간을 아낍니다. 12시간 버스 대신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고 그러지요. 나이가 든 탓일까요? 이제는 돈보다 시간이 더 소중해요.

술탄으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톱카프 궁전은 이슬람 궁전답게 하렘이라는 후궁들의 처소가 있어요. 어떤 왕은, 후궁을 300명을 두기도 하고, 자식만 112명을 뒀대요. 크게 부럽지는 않네요. 선택과 집중에서 실패한 삶 같아서요. ^^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면, 그 삶이 행복하기만 할까요? 조선 시대 왕들의 수명이 짧은 건 왜 그럴까요? 성인병이 무서운 건 영양부족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과잉에서 오는 탓입니다. 나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톱카프 궁전에 있는 술탄의 서재입니다. 왕이 절제를 배우려면 독서에 매진하는 게 좋습니다. 세종이나 정조처럼 현명한 조선의 왕이 그랬듯, 독서를 통해 궁궐 밖 서민의 삶을 공부하고,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배워야 해요. 

독서를 통해 선조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통치술을 익히는데 최선이라 믿습니다.

점심은 톱카프 궁전 내 식당에서 먹어요. 한끼에 53리라. 만원이 조금 넘으니 약간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론리 플래닛 터키 편에서 추천한 맛집입니다. 1894년에 영업을 시작한 식당이에요. 전망이 참 좋고요. 궁전 식당에서 밥을 먹다 바다를 보다, 다시 전자책으로 독서를 하다, 눈을 감고 쉽니다. 아, 여행자의 삶, 왕이 부럽지 않아요. 


톱카프 궁전에 가면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라고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에서 소개했는데요. 점심 먹기를 잘 했어요. 궁전을 돌아보는데 반나절 이상 걸립니다. 나가서 싼 식당 찾으려고 굶고 버텼으면 허기져서 쓰러졌을 뻔...

보물 전시만해도 종류별로 다 있어요. 무기, 시계, 성물, 주방 식기 등등. 술탄의 보물이 많기도 하네요.

알함브라의 궁전이 그렇듯, 건물 외양도 화려하지만...

내부 타일 세공도 정말 화려합니다. 전체를 봐도 아름답고, 세세한 디테일을 봐도 정교하고 예뻐요. 정말 이슬람 장인들의 세공 솜씨는 탁월하군요.

톱카프 궁전, 오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아야 소피아가 로마 제국의 위용을 보는 기회라면,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전성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에요. 

이 멋진 궁전을 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했어요. 여자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입니다. 여행을 다녀보면 세계 어디서나 똑같아요. 남녀 화장실 공간을 똑같이 배정했는데요. 남자는 일렬로 서서 해결하니까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시간도 훨씬 짧아요. 그런데 여성의 경우, 항상 개인적 공간이 필요하지요. 시간도 더 걸리고요. 남녀 화장실 공간을 똑같이 분배하면 여자 화장실에 줄이 늘어설 수 밖에 없어요. 기계적 평등이 가져다온 안타까운 결과에요. 아마 2,30년전만해도 여자 여행자가 많지 않았기에, 여자 화장실 공간을 배려하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관광지에 가보면 여자분이 더 많거든요? 그럼 화장실도 늘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예전에 미국 서부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여자 칸에는 줄이 너무 길어 어린 민지는 제가 남자 화장실에 데려갔어요. 가끔 급하신 아주머니들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와 서로 민망한 순간도 있었지요. 딸과 여행을 다니며 느낀 점, 공공 장소 여자 화장실 부족은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구나... 

톱카프 궁전을 나와 다시 아야 소피아를 향해 걷습니다. 소피아 앞 광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네요. 아야 소피아는 몇번을 봐도 놀라운 건축물이에요. 아마 이스탄불에서 있는 4일 동안 매일 한 번씩 보러 올듯...

저녁 무렵 탁심 골목을 걷다 현지인들이 줄서서 먹는 부페식 식당을 발견했어요. 볶음밥이 보여 냉큼 줄 섰습니다. 간만에 밥이로구나!
터키식 고기완자 요리랑, 볶음밥이랑, 콜라까지, 다 합해서 16리라. 3200원, 싸구나!
계산대 주인 아저씨가 절 보더니 무척 흐뭇해하며 인사하시는군요. "웰컴, 마이 프렌드."
외국인 손님이라 반가우신가 봐요. 마치 순대국 골목 기사 식당에 서양 손님이 찾은 느낌?

저녁 먹고 탁심거리를 거닐다 영화 <퍼스트맨>의 포스터가 붙은 걸 보고 들어갔어요. 영화비는 15리라, 3천원. 이스탄불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밤 극장에서 영화를 볼 것 같아요. 혼자 즐기는 이스탄불 영화제.

사람이 없어 혼자 영화관 전세 낸 기분으로 영화를 봅니다. 외국 여행 중 영화를 볼 때는 본 영화 상영전 광고도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상영 중 갑자기 화면이 뚝 끊기더니 불이 환하게 켜져요. 헉? 무슨 일이지? 갑자기 광고가 나와요. 알고보니 터키에서는 영화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네요. 마치 뮤지컬처럼. 아무리 그래도 한창 긴장되는 순간에 끊다니... 겨우 한시간 10분 지났는데 말이죠. 뭐, 이것도 터키에서의 독특한 문화 체험이네요. 영화 중간에 인터미션... ^^


아, 이렇게 또 하루가 갑니다. 


(그나저나 작년 10월에 갔던 터키 여행기를 몇달이 지나 쓰고 있어요. 욕심이 너무 많은 탓이지요. 주말에는 쉬어야 하고, 또 읽은 책 이야기도 하고 싶고... 이래저래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아, 여행기 업데이트가 늦는 점, 양해 바랍니다. 다음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으로 갑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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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보리 2019.01.30 0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지인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느긋한 여행 부럽습니다. 그러려고 불규칙한 생활하는 PD가 되신듯요. 삶의 허기를 소유로 채우지 않도록 조심조심 중입니다

  2. 꿈트리숲 2019.01.30 0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느리게 길게 가는 여행기 좋습니다.
    한 번에 다 쏟아내는 여행기는 임팩트가 있어
    좋지만 여유롭게 풀어내는 여행기는 두고두고
    곱씹을 시간이 많아 또 좋네요.^^

    제가 현장에서 눈으로 두 궁전을 스캔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비슷해보여요. 궁알못ㅠㅠ(궁전 알지 못함)
    이어서 그렇겠죠. 그래도 궁전 내부의 장식은
    사진으로도 감동이 전해지네요. 최신 장비도 없던
    시대에 수작업으로 했을 사람들의 실력과 노고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사는 곳, 사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도 어린 아이는
    다 이쁘다는 건 세계 공통이네요.
    비행기 위에 올라탄 아이들 뺨이 궁전 못지않게
    감탄을 부릅니다.ㅎㅎ

  3. 춈덕 2019.01.30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술탄ㅎㅎㅎ 독서 매진으로 절제를 배운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독서의 중요성을 배워갑니다ㅎㅎ

  4. 하하하 2019.01.30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탄 서재의 책받침대에서 눈을 못 떼겠습니다. 갖고 싶어서요. 가끔 올리시는 여행기라 마주칠 때 더 두근거리게 됩니다. 작가 오르한 파묵을 좋아하면서도 터키 여행은 한 번도 꿈꿔 본 적이 없어요. 김피디님의 터키 여행기를 읽으며 3년째 읽고 있는 오르한 파묵의 "A strangeness in my mind"를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제가 읽기 어려운 수준의 영어여서 몇 번을 포기했던 책인데, 여행기와 병행해서 읽으니 좀더 상상이 잘 되어서 재미를 붙이고 있어요. 이번엔 다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고, 터키에도 가보고 싶어집니다. 고맙습니다.

  5. 섭섭이짱 2019.01.30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톱카스 궁전 여행기 잘 봤습니다
    혼자여서 가능한 여행 일정 같아요. 부럽사와요 ^^

    터키 여행기 읽으면서 느끼는건
    여러면에서 피디님이 터키랑 잘 맞는거 같네요

    여행기가 늦어질만큼 하실 얘기만 많다는 얘기는
    앞으로 블로그가 멈출일이 없다..
    이 말로 들리네요 ^^

    이스탄불 다음 여행기도 기다려지네요


  6. 샘이깊은물 2019.01.30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십년 전 여름, 첫 휴가에 터키 페티예로 워크캠프 갔던 기억이 떠올라요. 열 몇 시간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별로 피곤하지 않던 때였지요. 시선이 머무는 모든 것이 다 어여뻐서 찰칵찰칵, 작은 카메라의 셔터를 얼마나 눌렀는지 몰라요. 이스탄불과 페티예에만 머물렀는데, 다음에 터키에 가게 된다면 소개해 주신 다른 도시에서도 유유자적 머무르고 싶네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하지만은 않다에 한 표 던집니다. 한계가 있으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소중한 것의 우선순위에 대해 더 고민할 수밖에 없지요. 저만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요즘, 주어진 짧은 시간을 더 진하고 밀도 있게 보내려고 애쓰게 됩니다. ‘결핍’이 결핍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7. 쩍팔리게살지말자 2019.01.30 1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저는 3년전 간 여행도 써야지하며 아직 까지 못 쓰고 있네요.
    꾸준함이 이렇게 어렵네요. 피디님 처럼 정말 밤을 포기 하지 않고는 힘든걸까요?
    밤이 너무 좋은 일인으로 갈등이 심합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영화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는 게 참 신기 하네요...ㅎ

  8. 아침종소리 2019.01.30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해외 여행지 리스트에 터키도 올려야겠네요.
    잘 보고 갑니다^^

  9. 은하수 2019.01.30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고, 또 존경합니다.
    '영어 책 한권 외워봤니?'를 통해 pd님을 알게 된 후 유튜브에서 강의를 거의 다 찾아서 봤어요. 보고 또 보고..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감사하던지... 예능, 드라마 pd를 다 하셔서 그런지 웃기신데다가 연기까지 잘하세요.
    앞으론 강연회도 직접 갈거랍니다.

    어느 강의에서 TV 드라마는 시청률이 얼마 안나와도 2~3백만 사람들은 본다고 말씀하셨죠.
    블로그 방문자 숫자는 그에 비할 수 없겠지만
    pd님의 열정과 애씀을 매일 느낄 수 있다는게 큰 행복이예요. pd님과 하루의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저만의 달콤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ㅎㅎ
    블로그에 쓸 글이 많아 고민하신다는 말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10. 2019.01.30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여행을 거의 하지 않는데요. 익숙한 곳이 제일 맘 편해서 국내도 가는 곳만 가는 편입니다.
    근데 너무 낯선 나라 터키는 가보고 싶네요.
    좋아하는 나라 영국 여행기 볼때는 이런 생각 안들었는데...
    역시 물가가 싸서 그런걸까요.
    밥값도, 영화값도 기본이 3000원이네요.
    가격 나올때마다 절로 은은한 미소가 지어지네요.
    터키 화폐가치가 일시적으로 하락해서 그런거지만 여행자 입장에선 가성비 갑인 나라인듯해요.
    치안도, 시민 수준도 괜찮은 편이고, 유서깊은 역사가 있어 볼거리까지 풍부...
    120년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도 1만원이네요 관광지 한복판인데도요.
    그래서 그런지 역대 여행기중에 제일 재밌어요.

    • corrie 2019.01.31 0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12~3년전엔 1리라 830원..
      저 식당에서 인당 4만원 가까이 지불하고 먹었습죠.. ㅎㅎ

    • 2019.02.02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에 다른님이 답글 달아준 건 처음이네요 ㅎㅎ터키 화폐 가치가 그렇게 떨어지다니... 터키의 현금부자들은 가슴 좀 쓰리겠네요.

  11. 쫄깃쫄깃붕어빵 2019.01.30 2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년전에 대학교 다닐때 터키에 여행을 갔었는데 그때가 첫 해외여행이라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네요 ㅎㅎ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꼭 가고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