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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아야 소피아 이야기

by 김민식pd 2019. 1. 22.
2018 터키 여행 9일차

본격적인 이스탄불 여행 첫날, 아침에 일어나 트램을 탑니다. 트램은 이스탄불의 구시가지를 달립니다.

이스탄불의 전철은 3종류에요. 지상으로 달리는 트램이 있고요. 아예 깊은 땅속으로 다니는 푸니쿨라가 있고, 우리에게 익숙한 메트로(지하철)가 있어요. 유적의 도시다운 대중교통 설계네요. 함부로 땅을 파면 고대유적이 나오거나, 인근 오래된 건축물에 균열이 갈 수 있으니, 구도심에는 지하철이 없어요. 지상으로 달리는 트램이 있고요. 지하철을 만들 때는 아예 땅속 깊이 들어가는 푸니쿨라를 만들어요. 

탁심과 카바타스를 오가는 푸니쿨라.

땅속 깊이 내려가기에 이런 커다란 도르래로 전철을 움직입니다. 

처음 간 곳은 블루 모스크아야 소피아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1616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537년에 지어진 소피아 대성당에 대응해, 이슬람 최고의 건축물로 만들려고 했으나... 

비교대상이 코 앞에 있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1000년 전에 지어진 선조의 업적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네요. 블루 모스크는 별 감흥없이 봤는데요. 소피아 대성당 앞에서는 멍하니 서 있었어요. 아, 1500년 전에 저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구나.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했을까?

아야 소피아는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재현하려고 만든 성당입니다. 그 시절,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궁금증이 생겨, 한국인 단체 여행객을 찾아다녔어요. 가이드 중에는 이걸 설명해주실 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혼자 배낭여행 다니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투어 가이드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듣습니다. 어느 가이드 분이 한국인 투어 팀에게 묻더군요. 

"아야 소피아를 만든 건축가는 누구일까요?"

저도 궁금해 그 분의 입만 쳐다봅니다.

"정답, 없습니다. 아야 소피아는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 아닙니다."

황제가 건축가들에게 5년 안에 대성당을 지으라고 명했더니, 다들 안 된다고 했대요. 당대의 건축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요. 결국 황제의 명을 받든 건, 철학자 이시도로스였어요. 당대의 기술로는 불가능하지만, 이시도로스는 기하학의 원리를 이용해 대성당을 짓습니다.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면, 실천도 가능하리라 믿으면서요. 

해 본 사람이, 못 해본 사람을 못 당할 때가 있어요. 안 되는 이유만 대는 해 본 사람과, 해 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 둘 중 결국 해내는 건 후자거든요.  

이시도로스는 건축가가 아니에요. 그래서 건축에 굳이 공을 들이지 않아요. 대신 기존 건축물을 가지고 조합을 새로 합니다. 기독교의 등장 이후, 그리스 로마의 신들은 용도 폐기되었어요. 곳곳에 흩어져있는 낡은 그리스 신전을 뜯어옵니다. 에페수스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 중 하나도 그때 소피아 성당의 일부가 됩니다. 

단일 재료로 단일 색채를 낸 건물이 아니라,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진 덕에 소피아가 더욱 신비한 느낌을 주나 봐요.

당대 최고의 학자가 만든 아야 소피아, 서기 537년에 완성했는데요. 1000년이 지나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습니다. 이슬람군의 공세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운 곳이 소피아 성당이었어요.

52일간 7천명이 성당 안에서 싸우며 버티는데요. 술탄이 명을 내립니다. 

"항복하라. 항복하지 않으면 씨를 말린다."

유목민은 약속을 중요시합니다. 정해진 마을에서 익숙한 주민들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초원을 떠돌기에 만나는 사람과의 신용이 중요하지요.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때도 유명했지요. 그들은 약속을 지켰어요. 저항하면 살육하고, 항복하면 살려줍니다. 

동로마는 끝까지 항전했고, 끝내 소피아 성당도 함락됩니다. 성당에 입성한 술탄은 소피아의 위용을 보며 감탄합니다. 이례적으로 살육 중지 명령을 내리고, 성당을 파괴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유목민이 정복자가 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모든 정복자가 제국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스만이 제국이 된 이유는 관용성이랍니다. 

예전에 소개한 <중동은 왜 싸우는가?> (박정욱 / 지식프레임)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현재 터키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지역은 그동안 이슬람 세계와 비잔틴 제국간의 영토 전쟁이 끝없이 벌어지던 곳이었다. 1071년 이슬람과 비잔틴의 군대가 격돌했을 때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군대가 크게 승리했다. 비잔틴의 황제는 포로가 되어 노예의 상징인 귀걸이를 걸고 술탄 앞으로 끌려나가는 굴욕을 당했다. 이때 승자인 술탄과 패자인 화제 간의 유명한 대화가 오고 간다.

술탄 : 만약 내가 패하여 포로로 당신 앞에 잡혀왔다면 당신은 나를 어떻게 했겠는가?
황제 : 죽이거나 콘스탄티노플 거리로 끌고가 구경거리가 되게 했을 것이다.
술탄 : 내 형벌은 더 무겁다. 난 그대를 용서하고 풀어줄 것이다.

승리자인 술탄 알프 아르슬란은 너그러이 비잔틴의 황제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권위가 실추된 황제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간 후 반란군에 패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위의 책 78쪽 정리)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술탄은 도시의 이름을 이스탄불이라 바꿉니다. 하지만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합니다. 곳곳에 있는 성당도 보존하고요. 아야 소피아는 위대한 술탄이 보존한 유적이에요.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다, 훗날 터키의 국부인 아타투르크가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하지요. 이 또한 관용의 상징이에요. 아야 소피아를 특정 종교의 성지로 남겨두기보다, 모든 인류가 감상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바꾼 거죠. 

이스탄불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터키의 국부, 무사타파 케말의 초상화를 만나요.

거리마다 펄럭이는 깃발을 처음 봤을 때는, 살짝 거부감도 들었어요. 저는 개인의 우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위대한 개인의 업적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릅니다. 함께 싸운 다수가 더 소중하다고 믿어요.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읽으며, 무스타파 케말이 왜 독립을 위해 싸웠는지, 어떻게 싸웠는지, 싸움에서 이기고 어떻게 했는지를 보며, 존경심이 새록새록 돋아났어요. 

터키 여행을 준비중이시라면, 혹은 다녀오신 분이라면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권해드립니다. 알고 보면, 또 달라요. 

2018/12/03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중동은 왜 싸우는가?


무엇보다 500년 간, 모스크로 쓰이던 공간을 온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돌려놓은 건 무스타파 케말의 업적이라 생각해요. 


아야 소피아를 보며 남은 2가지 생각.


'제국은 다양성 위에 만들어진다.' 

'건축가는 아야 소피아를 못 만든다.'


한 나라가 위대한 제국이 되기 위해 다양성을 포용해야하듯, 위대한 삶을 꿈꾸는 개인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포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새로운 직업이나,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어요. 1500년 전, 철학자로서 건축에 도전한 이시도로스처럼. 

다음엔 톱카프 궁전 여행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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