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 PD 스쿨

어느 예능 조연출의 푸념

by 김민식pd 2018. 7. 19.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전, 한 달치 글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쓴 글도 찾아봤는데요. 그러다 20년 전 글까지 찾아냈어요. 1998년 예능 조연출 시절에 쓴 글입니다.)


아, 인생


글 / 김민식 (가족 캠프 조연출)


1996년 12월 프로듀서로 입사하면서 '내 인생 드디어 꽃피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십대의 오랜 방황은 끝이 나고 드디어 나에게도 멋진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나는 엔지니어가 아닌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세일즈맨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어느 날 난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유는 한 가지,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며 살기 싫어서였다. 프로듀서가 되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 더 이상 안 하고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난 스타 신년 메시지 하나 따려고 매니저마다 붙잡고 통사정을 한다. 영화 촬영장에 가서는 잘 나가는 연기자의 인터뷰 하나 따려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러다 영화 홍보팀에서 무슨 인터뷰를 할 거냐고 물어오면 최근 출연작 소개라고 사기 치고 마이크를 들이밀고는 최근의 염문설에 대해 묻는다. 아, 인생...

예전에 난 지하철에서 스포츠 신문을 펼쳐놓고 읽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런데 연예 정보 프로그램 조연출을 하면서 스포츠 신문은 내 최대의 정보원이 되었다. 아침마다 스포츠 신문을 들고 읽다가 '여배우 누구랑 모 가수랑 염문설!' 그러면 바로 몰래 카메라를 하나 들고 뜬다. 새벽 3시에 밀회 장소라는 실내 포장마차도 기습하고, 자주 간다는 식당을 찾아가 종업원 몰래 음성 녹취도 하고, 한번은 인터뷰를 거부하고 도망가는 여자 연기자를 MBC 7층에서 지하 1층 주차장까지 한달음에 쫓아내려간 적도 있다. 아, 인생...


대학 시절 난 백골단과 싸우는 게 무서워서 늘 시위대 후미를 지켰다. 그러던 내가 모 탤런트가 비밀리에 입원해 있다는 병원에 카메라팀과 육탄 돌격할 때는 선봉에 서서 진입한다. 병원 앞을 지키는 로드 매니저와 멱살잡이를 하다 보면 그 친구가 통사정을 한다. "이거 방송 나가면 전 사장님한테 죽어요, 네?" 그럼 나도 당당히 대꾸해준다. "나도 이거 못 찍어가면 죽어." 아, 인생... 입맛이 쓰다.

방송사에 입사했다고 하자 고향 친구들은 예쁜 여자 많이 보겠다고 침을 흘리며 부러워했다. 녀석들, 부러워할 만하지. VIP 대기실 사용 문제로 모 드라마팀이랑 시비가 붙었을 때 미녀 탤런트들이 우르르 몰려와 날 가운데 두고 조연출 성토 대회까지 벌이니 이런 여복이 또 어디 있을까. 여복! 생각만 해도 흥분이 돼서 가슴이 벌렁거린다. 내 나이 서른 둘, 벌써 노총각 소리를 듣는데 시간이 없어 못하고 밀려 있는 소개팅 건수만 해도 몇인가. 아, 인생...

객쩍은 친구들은 농담삼아 물어온다. "너 MBC는 언제 그만두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 나왔지만 공장에 가기 싫어 세일즈맨이 되었고,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통역사가 되었다. 2년 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는 MBC 공채를 봤다. 자, 이제 그럼 다시 새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인가? 솔직히 말하면 그 답은 "절대 아님"이다. 아무리 인생이 고달파져도 난 이 바닥을 떠날 생각이 없다.

통역사로 내가 하는 일은 남의 말을 충실히 옮기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 프로듀서를 지망했다. 대학 시절 미팅에 나가면 나는 어릿광대 짓을 해서라도 분위기를 살려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도 일단 개그를 풀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족히 웃길 자신이 있다. 사람들을 웃기는 게 내겐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대여섯 명을 웃겨도 이렇게 마음이 흐뭇한 데 하물며 사천만 국민을 웃기게 된다면이야!

솔직히 조연출로서 나는 아직 많이 서투르다. 재미있는 대본이나 설정도 내가 찍어와 보면 거의 방송 불가용이다. 그나마 서투른 대로 찍어온 걸 선배 프로듀서가 새로 편집해 살려놓는 걸 보면 '역시 난 멀었구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러고는 다시 '역시 AD 본연의 임무는 행정이야!'하고 편집실을 배정받으러 울고 다니고, 카메라 취소된 거 빌러 다니고, 탤런트 로비에 연예인 구걸 인터뷰를 나간다. 그러다 저녁이면 다시 "아, 인생..."하고 처량한 내 신세를 곱씹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지금 이 순간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게도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나의 어설픈 기교와 초라한 스타일과 엉성한 디테일을 갈고 닦을 것이다. 사천만을 즐겁게 하겠다는 나의 포부를 멋지게 펼칠 날이 오고야 말리라. 그날이 오면 나는 자랑스럽게 내 인생 뒤에다 힘찬 느낌표를 달 것이다. 

'아, 인생!'




(1998년 사내 잡지 'MBC 가이드'에 기고한 글입니다. '힘들 땐, 글로 푼다'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군요. ^^ 학보나 사내 잡지에 늘 적극적으로 투고를 했어요. 그럼 소문이 납니다. '아, 저 사람은 원고 청탁을 싫어하지 않는구나.' 20년 전 제가 사보나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쓰던 글을 눈여겨 보던 분이 있어요. 피디 저널에서 일하던 기자였는데요. 훗날 출판사 편집자가 되어 제게 원고 청탁을 하셨지요. 그게 출판계와 닿은 첫번째 인연이에요. 작가의 삶을 꿈꾼다면, 작은 기회라도, 원고 청탁이 오면 몸을 사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모자라고 부끄러운 글이라도, 훗날 보면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하니까요. 20년 전에 이런 사진도 찍었네요.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