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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인기 조연출이 되는 법

by 김민식pd 2018. 7. 12.

피디로 일하지만, 피디가 되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은 없습니다. 예능 피디라는 직업에 흥미가 생겨 어느날 갑자기 MBC에 지원했으니까요. 1997년에 '인기가요 베스트 50'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는데, 기획, 촬영, 편집 등 방송 실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선배 조연출 꽁무니만 쫓아다녔습니다. 처음 맡은 업무는 제작비 정산이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전산화가 되지 않은 시절이라 방송이 나가면 조연출이 일일이 손으로 출연료 청구 내역서를 쓰던 시절이었어요. 무대 한 쪽에서 백댄서들 머리수를 헤아리고, 촬영 나온 스탭들의 근무 시간을 따져 식대가 몇번 나가야 하는지 챙기는 일이었지요. 피디가 되면 무대 위 가수에게 큐사인을 주고 MC들에게 동선을 알려주고 촬영 감독에게 컷을 외치는 폼나는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시작은 행정보조였어요.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상사에게 배운 건, 고객에는 외부 고객과 내부 고객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외부 고객은 전통적 의미의 고객, 즉 나의 상품을 사주는 사람이고, 내부 고객은 회사 내 회계 담당자, 마케터, 공장 출고 담당자를 포함한 직장 동료지요. 내부 고객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외부 고객 관리, 즉 영업이 쉬워집니다. 회계 처리가 빨라야 대리점 대금 지불이 원활하고, 마케팅 협조가 잘 되야 현장 영업이 쉬워지고, 출고가 제때 이루어져야 유통이 빨라지니까요.

피디에게 외부 고객은 시청자요, 내부 고객은 스태프가 될 것입니다. 외부 고객인 시청자들 눈에 보이는 방송에만 치중하느라 내부 고객인 스태프들의 형편을 몰라라 하기 쉽습니다. 내부 고객(제작진)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외부 고객(시청자)을 잘 모실 수 있는데 말이지요. 조연출 중에서는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 내보내는 데 바빠서 제작비 정산에 소홀한 경우가 있었어요. 출연료나 인건비 청구가 늦어지는 바람에 스태프들 중에는 카드 대출을 받아 급한 생활비를 메우는 경우도 있었지요.

통역사 시절, 여러 회사나 정부 기관에서 일을 했는데 가장 고마운 고용주는 통역료를 제때 챙겨주는 업체였습니다. 미리 선급을 정산받아 일한 그날 바로 돈을 주는 회사가 있고, 통역을 하고 은행 계좌를 적어주고 나왔는데 몇달이 지나도 입금이 되지 않아 전화로 확인을 해보면 결재가 늦어져서 그렇다고 회계 담당자가 외려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줄 돈이라면 제때 챙겨주면 상대가 더 좋아할텐데 말이지요.

제작비 정산 업무를 맡고 결심했어요. '어차피 줄 돈, 최대한 빨리 주자' 방송이 나가면 바로 다음주에 바우처가 처리되도록 했어요. 심지어 어떨 때는 평소에 짬날 때 미리 청구서를 써놓고, 방송 나가면 최종 수정만하고 바로 회계부로 넘겼어요. 작가나 스태프들 사이에 청구서 빨리 쓰는 조연출로 이름을 날렸죠. 나중에 '뉴논스톱'으로 연출 데뷔할 때, 스태프를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나름 인기 조연출이었거든요.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하면서 '을'의 입장에서 살아본 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어려움을 직접 겪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재능을 사는 고객이라는 자세로 삽니다. 그게 스물 다섯 살에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배운 첫 깨달음이었습니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블로그를 매일 찾아와주시는 단골 손님 여러분께,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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