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2017/09/18 - [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 가슴이 울었기 때문에 파업에 나선다

저는 드라마 PD입니다. ‘내조의 여왕이나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글로리아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주로 연출했어요. 2012년 파업 당시 노조부위원장으로 일한 후, 대기발령, 정직 6개월, 교육 발령 등의 징계 3종 셋트를 받기도 했어요. 검찰은 당시 제게 구속영장을 2회 청구하고, 업무방해죄로 징역 2년형을 구형하기도 했지요. 물론 법정에서 다 무죄로 판결을 받긴 했지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드라마 피디는 공정 보도 같은 파업의 쟁점 사안과는 별로 관계없는 직종인데, 왜 파업에 나서게 되었을까요?

제가 PD가 된 건 어린 시절 왕따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섯 살 때, 저는 초롱불 위로 넘어졌다가 턱에 커다란 화상 흉터를 얻었어요. 까만 흉터가 신경 쓰여서 얼굴을 까맣게 태웠어요. 마른 체격에 까만 얼굴, 두꺼운 입술을 가졌다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아프리카 깜둥이라고 놀렸어요. 고등학교 때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였어요. 내신 성적 15등급에 7등급이었지요. 집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많이 혼났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학교 선생님인데요, 저의 비교 대상은 전교일등들이었어요. 아버지는 매를 들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학교 전교 일등은 말이야.’ 학교에선 놀림 받고 따돌림 당하고, 집에서는 구박 받고 매를 맞았어요. 사는 게 힘들어 고등학교 때 자살 시도도 했는데요, 겁이 많아서 성공하진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 다행이지요. 사는 게 이렇게 재미난 지 그땐 몰랐거든요.

혹시 여러분 중 외모나 성적, 부모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가 있나요? 제가 해결방안을 알려드릴게요. 세 가지 문제는 한 가지 방법으로 해결됩니다. 그냥 사는 거예요. 하루하루 살면서 나이 들면 됩니다. 10, 20대에는 외모 때문에 고민이 많지요? 나이 40 넘으면 외모 걱정은 절로 사라집니다. 나이 40 넘으면 아무리 예쁘고 잘 나봤자 다 아줌마 아저씨에요. 나이 50, 못생긴 외모 탓에 사는 게 불행하다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불행한 건 외모 탓이 아닐 거예요. 청소년 시절에는 학교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지요? 학교를 다니는 어린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이 금세 티가 납니다. 어른이 되면 공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은 다양하거든요. 교과서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 말고도 다양한 재능이 사회에서는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그럴 거예요. “나이 20에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다니느냐로 남은 평생이 결정 난단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저는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나왔는데요, 대학에서 석탄채굴학이나 석유시추공학을 배웠어요. 그런데도 PD로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대학 전공과 다른 직업을 얻어 사는 사람도 많아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 어려서는 부모님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스무 살이 넘으니 부모님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어요. 따로 살면 되거든요.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 때문에 고민이잖아요? 그럼 여러분 잘못이 아니에요. 부모가 이상한 거예요. 스무 살이 넘으면 한 사람의 성인이라 자식도 남이에요. 남의 인생에 참견하는 게 잘못이지, 여러분 잘못이 아니에요.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제게 준 선물이 있어요. 바로 책 읽는 습관입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힘들었기에, 저는 은신처를 찾아 숨었어요. 제겐 학교 도서실과 동네 도서관이 피난처였어요. 힘들 때마다 도서실에서 가서 재미난 소설을 읽었어요.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책을 펼치면 현실에서 벗어나 책 속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어요. 대학에 올라가서는 1년에 200권씩 책을 읽었어요. 그 덕분에 MBC에 피디로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사 공채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이 논술과 면접인데요. 글쓰기와 말하기 실력을 키워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거든요.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

 *이 원고는 <소년소녀, 정치하라!>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우리학교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출판사로부터 청소년들에게 '정치와 언론'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고민을 하다, 방송사 파업과 무한도전 불방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그 고민에서 나온 글을 썼습니다. 출판을 앞두고 먼저 블로그 게재를 허락해주신 '우리학교' 측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무한도전이 몇주째 결방되고 있는 지금, 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며칠에 걸쳐 연재할 계획입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MBC 드라마 피디 김민식입니다. 201794, MBCKBS 양대 방송사의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시작했습니다. 2달 전, 7월에 MBC ‘PD 수첩제작진이 노동문제를 다룬 방송 기획안을 내자 윗선에서 막았어요. 이에 PD들이 제작 거부에 나서면서 몇 주째 PD 수첩이 불방 되는 일이 벌어졌지요. 지난 몇 년간 간부들이 ‘PD 수첩을 어떻게 검열하고 망쳤는지 증언이 잇따르자 시사매거진 2580’ 기자들이 나섰어요. 자신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제작 자율성을 침해당했다며, 함께 제작 거부에 들어갔습니다. 회사에서는 해당 피디와 기자들에게 대기발령을 내며 중징계를 예고했어요. 그러자 보도국 기자들이 우리도 징계하라며 제작 거부에 동참했고요. 지역 MBC 기자들도 본사 기사 송고를 보이콧합니다. 뉴스와 라디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들도 제작 거부에 들어갔습니다. 라디오에서는 DJ 멘트 없이 노래만 나왔어요. 언론노조 MBC 본부는 총파업 돌입 여부를 투표에 붙였고, 투표율 95%, 찬성률 93%라는 사상 최고의 찬성률을 기록하며 총파업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에게 방송사 파업에 있어 최대 관심사는 무한도전의 방송여부가 아닐까 싶네요. 방송사 노조가 보도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파업을 하는데 왜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불방 되는 걸까요? MBC 뉴스는 안 해도, ‘무한도전은 방송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2012MBC 노동조합이 170일간 파업했을 때는 6개월간 무한도전이 불방 되기도 했는데요, 그때도 많은 시청자들이 아쉬움을 토로했었죠. 당시 김태호 피디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알아야 할 사실이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거나, 전달되더라도 왜곡되거나 누락되어 전달되면 시민이 세상일에 대하여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언론의 최대 피해자는 시민이기에, 언론사 파업은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입니다.”

사회 통념상 예능이라고 하면 정치나 사회 참여에 관심 없이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능 피디가 파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태호 피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능 피디들은 논리적으로 이게 이렇고, 저게 저렇고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요. 이성이나 논리에서는 상당히 약하죠. 대신 감성이나 가슴이 발달한 사람들이 많아요.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치밀한 계산이나 구성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하여 보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포인트 하나가 시청자들과 소통이 되면 그걸로 끌고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능 피디의 파업 참여도 가슴이 울었기 때문입니다.”

피디의 입장에서는 방송을 죽이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없습니다. 그럼에도 파업에 참여하는 이유, 가슴이 울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이 원고는 <소년소녀, 정치하라!>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우리학교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참여연대 회원으로서 매달 소식지 '참여사회'를 받으면 즐겨읽는 코너가 있어요. 참여 연대 회원들을 만나는 인터뷰 코너.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어요. 이번달에는 부끄럽게도 저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글을 쓰신 분께서 제 삶을 세미콜론이라고 정의해주셨어요.

 

그가 서 있는 경계는 마침표와 쉼표 그 사이에 있다. 앞과 뒤를 재지 않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지점에서 마침표 하나가 분명하게 찍힐 때까지 모든 걸 쏟아 붓는 사람. 그러고도 그 마침표 뒤에 쉼표 하나를 찍고 다시 자신의 서사를 이어가는 사람. 내가 정리한 그는 그래서 세미콜론(;)을 닮은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무엇하나 제대로 해낸 적이 없는 부끄러운 삶인데 이렇게 써주시니 민망합니다. 글을 읽고 오히려 다짐하게 됩니다. 앞으론 세미콜론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분명하게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밀어붙이는 삶.

인터뷰 본문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고맙습니다!  

돌아오라! ‘만나면 좋은 친구’

김민식 회원 / MBC PD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1523407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며칠 전 MBC 집회에서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 전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한 발언을 옮깁니다. 구로에 있던 이근행 선배와 양효경 기자 등은 MBC 총파업에 함께 하기 위해 전날 유배지에서 짐을 빼어 나왔습니다.)

오랜만입니다. 6년 반 만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힘이 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참 판단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임 위원장이 아니라, 한 조합원으로서, 똑같은 욕망과 고민을 지니고 사는 한 인간으로서,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걸로 이해해 주십시오. 

감정이 강퍅해져서 큰일입니다.
원래 예민하기도 하고 감정과잉도 있어서 늘 애쓰기는 합니다. 예전에는 눈물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수 년 새 많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어제 조합에서 구로유배지로 촬영을 왔었습니다.
양효경이 울었습니다.한참을 울었습니다. 말을 하다 다시 울었습니다. 저는 제 눈물샘이 작동하는 걸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 효경도 우는구나, 했습니다.
김민식이 근래 인터뷰하다 자주 울었습니다. 송출실에서  같이 근무할 때 즐겁기만 했던 김민식입니다. 김민식의 익숙한 웃음과 비현실적 울음이 너무 급격하고 진폭이 커, 혹여 조울증같다 느꼈습니다.

어쩌면,
말이 많은 양효경도,  늘 즐겁게만 보였던 김민식도, 감정을 상실해가는 저도 정상이 아닙니다.
상처입고 불행해진 인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합니다.
누구에게나 물욕과 명예욕이 있습니다.
이익과 손해를 어렵지 않게 분간합니다.
그럼에도,
지난 9년간,
자기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인간적 수모를 당하고, 속깊은 상처를 입은 기백명의 동지들에게 피붙이 이상의 깊은 연민과 애정을 느낍니다. 
또한 이익과 회유와 암담한 현실에 끝내 굴복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 자존을 지켜낸 인간 각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밥상을 차려주는데 자리를 차고 일어선 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으면서, 마치 모래알을 씹는 거 같았다거나, 밥을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거나, 그렇게 말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살다보니 , 
나쁜 놈은 늘 나쁜 놈입니다.
이익을 쫓는 이는 늘 이익을 쫓습니다.
악은 더 큰 악으로 자기를 증명해야 살아남고
이익은 더 큰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게 생리입니다.
악에 더 부지런하고 이익에 더 전전긍긍합니다. 

저는 김재철의 농간으로 갑자기 특별채용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호봉도 근속도 날려버린, 불명예와 치욕의 귀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자. 

혼자 다짐했습니다.딱 한 번만 더 싸우자. 저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이길 수 있다면 가자.  그래도 안되면 미련없이 MBC를 떠나자.

 

ⓒ 권우성 (오마이뉴스)


촛불과 탄핵과 정권교체가 없었다 생각해봅니다.
수구세력의 집권연장가능성이 절반쯤이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 있겠습니까?
저는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만의  처절한 최후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죽음만이 남아 있었을 테니까요.
정권교체가 없었다면 이우환 피디는 스케이트장에서 해고되었을 것이고, 양효경과 김수진은 유배지와 변방을 떠돌다가 회사를 떠나야 했을 겁니다. 김민식 또한 드라마 곁에도 가지 못하고 해고되거나 떠나야 할 겁니다.

김장겸이 그랬습니다.
낭만적 파업이라고.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던 것일까요.
잠을 못자 약을 먹고, 동료들이 떠나가는 것을 가슴찢어지게 바라보아야 했던  이들의 피맺힌 절규가 한갓 낭만이라니요.
독해집시다. 처절해집시다.

싸움은,
지고도 승리하기도 하고,
이기고도 패배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두 번의 파업은 지고도 이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싸워야 할 때 피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이고,
끝내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싸움은 이기고도 패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판이기 때문입니다.
처절하지 않으면 지는 겁니다.
철저하지 않으면 지는 겁니다.
타협하면 지는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되면 지는 겁니다.
우리 안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 지는 겁니다.

부끄럽더라도 힘을 냅시다.
그리고 우리 MBC의 영광을 땀흘려 재현해 냅시다.
그것이 오늘의 이 상황을 만들어준
국민의 명령입니다.

6년 반 전의 이근행 위원장입니다.

이제 마지막 싸움이 임박했습니다.

이 싸움, 꼭 이기고 싶습니다.

저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요즘 영화 '공범자들' 관객과의 대화를 다닙니다. 영화를 본 후, 객석에서 많은 질문들이 나오는데요. 그중 가장 아픈 질문이 있어요.

'사장 하나 바뀌었다고 그렇게 조직이 망가지면, 그것도 문제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 역시 뼈저리게 반성하며 고민하는 대목입니다. 같은 고민을 동료 피디들도 하고 있는데요, 김재영 피디가 연재하는 MBC 몰락 10년사에서 그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그들은 지난 10년 MBC를 어떻게 망가뜨렸는가, 2편의 글을 공유합니다.

 

MBC 몰락 10년사⑦ 블랙리스트 파문, MBC를 집어삼키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8211405001#csidx482765f4e8c568ca2af23830da05da0

 

MBC몰락 10년사⑧]‘공범자’들의 놀이터 된 MBC 시사교양국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8270929001#csidxd5ef81f141c21a8885782ad13304489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지난 번, ‘인생은 리액션이다는 글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게 일어나는 사건보다 그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때로는 타인의 반응이 나를 움직이기도 합니다. 2015년 드라마 <여왕의 꽃> 야외 연출로 일할 당시, 많이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젊은 조연출이나 공동연출이 하는 연속극 야외 연출을 늦은 나이에 하려니 체력적으로 많이 딸리더군요. 6개월간 꾸준히 일주일에 며칠씩 밤을 새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제가 B팀 감독으로 일하는 것을 놓고 임원회의에서 말이 나왔어요. ‘왜 김민식이한테 일을 시켰나?’ ‘그 나이에, 그 경력에 B팀 감독으로 일하는 건 징계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제작인데? 이번 드라마 끝나면, 두 번 다시 드라마 연출 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힘들었어요. 전장에서 밤을 새워 싸우고 있는데, 정작 등 뒤에 있는 아군 초소에서 내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PD교육원에서 ‘PD 글쓰기 캠프를 한다는 공지가 떴어요. 촬영 쉬는 날, 가서 글이나 좀 써야겠다 싶었어요. 힘들 때는 어디 틀어박혀 글을 쓰면 마음이 좀 풀리거든요. 당시 글쓰기 캠프의 주제는 나는 PD가 아니다.’였어요.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마음을 추스리고 글을 풀어갔습니다.

 

나는 PD가 아니다.

고등학교 진로특강에 가면 아이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PD님은 언제부터 PD가 꿈이었나요?”

참 답변하기 난감합니다. PD가 꿈이었던 적이 없거든요.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나왔지만, 엔지니어가 되기 싫어 한국 3M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고 2년 만에 퇴사한 후, 영어 통역사가 되기 위해 외대 통역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은 없을까, 고민하다 MBCPD로 입사했고요. 싫증을 쉽게 내는 제게, MBC 예능국은 최고의 놀이터였습니다. 조연출 시절, 6개월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배정되었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가요 쇼를 할 때는 가수,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할 때는 탤런트와 영화배우, 코미디를 할 때는 코미디언 등등. 우리 시대 가장 예쁜 여자,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 가장 잘 웃기는 사람, 이런 이들을 만나는 직업. 이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던 꿈의 직업이었어요.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으로 연출 데뷔하고, 제목 그대로 논스톱으로 2년 반 동안 계속 일일 시트콤을 만들었습니다. 방송 편수로 시트콤을 700편 넘게 만든 어느 날, 그 재미도 시들해지더군요. 새로운 게 뭐 없을까 고민하다 사내공모를 통해 드라마국으로 옮겼습니다. 나이 마흔에 드라마 PD로 전직하고 이듬해 내조의 여왕을 만들었지요.

예능이면 예능, 드라마면 드라마, 매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기회를 주는 회사,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조직이 다 있나, 하던 참에 어느 날 새로 출범하는 노조 집행부에서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나 같은 날라리 딴따라에게 그런 제안이 온다는 게 좀 이상했지만, 고마운 회사를 위해 그 정도 봉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덥석 맡았지요.

집행부로 일하던 20121, MBC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저는 집회 프로그램의 총연출을 맡았습니다. 170일 동안 싸우면서 온갖 다양한 포맷의 집회 시위를 기획한 결과, 회사와 나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정직 6개월, 대기발령, 교육 발령, 구속영장 2회 청구, 징역2년 구형으로 이어지는 과분한 배려를 누렸습니다. 회사의 징계나 검찰 수사는 별로 괴롭지 않았습니다. 지난 3년간 가장 괴로웠던 것은 더 이상 연출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술 담배 커피 골프를 하지 않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코미디 연출이 이미 최고의 취미생활인데, 더 이상 어떤 즐거움이 필요하냐고 되물었어요. 방송을 만드는 게 삶의 낙이었던 내게, 회사는 더 이상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나의 나라 사랑, 회사 사랑이 지나친 탓이구나. PD라는 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기 때문이구나.’

 

회사에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내게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큰 탓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 괴로울 일이 없지요. 오히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자기계발에 힘쓰면 될 일을.

 

그래서 다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PD가 아니다.’

 

어려서 피디를 꿈꾼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살다보니 피디가 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피디로 살지 못한다고 괴로울 일도 없어요. 파업이 끝나고 정직 6개월을 받고, 대기발령에 교육발령으로 일이 없던 시절,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그래, 연출을 하지 못한다고,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카메라와 편집기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는 것을.

 

나는 PD가 아니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글이든 말이든 영상이든 언제나 즐거운 소통을 꿈꾸며 산다.’

라고, 글을 맺고 싶습니다. 쿨하고 멋지게.

 

그러나 저는 알아요. 제가 쿨하지 못함을. 아마 전 앞으로도 PD로 일하고 싶은 마음과 씨름하며 살 것입니다. 야외 연출이든, B팀 감독이든, 조연출이든, 받아만 준다면 어떤 프로그램에 가서든 일하고 싶어요. 이 마음을 들키면, 일에 대한 내 사랑이 볼모가 되고, 징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PD이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피디 노릇을 하고 살기에 너무나 힘든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격렬하게 피디이고 싶습니다.

 

아이들 진로 특강에서 한 대답으로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PD를 꿈꾼 적이 없어요. 그냥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그것만 생각하고 그 순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열심히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PD가 되어 있더라고요. 꿈이란 걸 미리 정해두지 마세요. 하루하루 즐겁게, 열심히 사세요. 그러다보면 어느 날 무언가 되어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때 가서 우기세요. 처음부터 그게 꿈이었다고.”

 

PD 글쓰기 캠프에 왔습니다.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서?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읽고 싶은 책이 내 곁에 있고, 만나고 싶었던 작가가 내 눈 앞에 있고,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내 속에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즐거운데 무엇이 되고 안 되고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지난 34, 즐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을 다 쓴 후, 피디 연합회보에 기고하라는 주최측 말씀에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글을 사측에서 읽으면 연출에 대한 나의 사랑이 징벌이 되리라 생각했거든요. 글쓰기 캠프 마지막 날 각자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조용히 낭송을 했습니다. 그렇게 동료들 앞에서 한번 읽고 이 글은 지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날 그 자리에서 있던 KBS 라디오 피디 한 분이 제 이야기를 들으며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2012KBS에서도 함께 파업을 했는데, 당시 KBS 새 노조 집행부로 일했던 그는 자신이 겪은 일, 동료들이 겪은 일이 떠올랐는지 글을 읽는 내내 울었어요. 끝나고는 달려와 고맙습니다, 선배님. 열심히 싸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또 우는데, 갑자기 저도 콧등이 시큰해지더라고요.

그 분의 반응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 바깥에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구나. 이 글을 통해 MBC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증언할 수 있다면 글을 공개해야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을 ‘PD 저널에 기고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허핑턴포스트에서 연락도 왔고요. 글을 발행하고 한 달 후, 저는 드라마국에서 편성국으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본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돌이켜보면 그 때, 유배지로 좌천된 것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영어 책 한 권 외워봤니?’를 내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에 나가 강연을 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로 사장 퇴진 퍼포먼스를 했던 건 다 그 발령으로 시작된 연쇄 작용이니까요. 드라마국에서 밤샘 촬영하며 야외 연출로 계속 일했다면 책을 쓸 엄두도 못 냈을 것이고, 책이 없었다면 세바시에서 강연 요청도 오지 않았을 것이고, 드라마 연출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없었다면 김장겸은 물러나라페이스북 라이브도 없었을 테니까요.

 

인생은 리액션입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타인의 리액션이 다시 내 삶의 액션을 불러옵니다. 제 인생, 마지막 반전을 위한 행동, 그 행동을 위한 용기를 불어넣어주신 이진희 피디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디님 덕분에 다시 싸울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생은, 역시 리액션입니다.

언론노조 MBC 본부 조합원들은 총파업 투표에 돌입했습니다. 300여명의 피디 기자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이미 제작거부에 나섰고요. 오늘 저녁 7시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이들을 만나주세요. 여러분의 리액션이 마봉춘과 고봉순을 살릴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네 뒷산 약수터나 강변을 걷다보면, 테니스장 옆을 지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어느날 산책로를 걷는데 테니스 코트에서 운동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복식 경기를 하는데, 맞은 편 선수가 왼쪽 구석을 노려 공을 쳤어요. 앞 사람이 공을 뒤로 흘리자, 뒤에 있던 이가 한참 쫓아갔으나 늦었어요. 그때 뒷사람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 그건 앞에서 받아줘야지. 앞에 한발짝, 뒤에 열발짝이잖아."

 

복식 테니스에서 나온 말인가봐요.

앞에 한발짝, 뒤에 열발짝.

앞사람이 한발 거리, 뒷사람은 열발을 가야한다는 뜻이겠지요.


'내가 공을 흘려도, 뒤에서 어떻게 막아주겠지' 하지만, 공은 뒤로 갈수록 궤적이 벌어지기에 쫓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뒷사람에게 맡기지말고 내가 막는다는 각오로 뛰어야합니다. 내가 한 발 갈 거리, 뒤에서는 열 발을 가야하니까요.


생각해보면, 인생도 복식 경기입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함께하는 복식경기. 오늘 내가 딛는 한걸음이, 10 뒤 나에게는 열걸음입니다. 좋은 습관 하나를 만들면, 그 습관이 계속 쌓이면서 훗날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아직 퇴직까지 10년이 남았지만, 저는 매일매일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지금 내가 부지런해야 10년 후 내가 고생하지 않으니까요. 스무 살 시절 영어책을 외운 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그 덕분에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도 썼고, 유배지에서의 생활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어요.

 

 

 

요즘 MBC에서는, PD수첩 피디들의 제작거부를 시작으로, 싸움이 날로 커지고 있어요. 시사제작국, 보도국에 이어 아나운서도 제작 거부에 나섰고요. 라디오, 예능, 드라마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방송인으로 살면서, 방송을 멈춘다는 것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뼈아픈 선택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들은 강다솜 아나운서의 클로징 멘트에 마음이 아팠어요.

 

 


 

MBC의 몰락을 더이상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순간 우리의 한걸음이, 10 열걸음이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딛는 이 힘든 한 걸음이,

MBC의 부활과 재건을 위한 힘찬 첫걸음이길 바랍니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요즘 열심히 인터뷰를 다닙니다. 김장겸 사장님의 업적을 칭송할 수 있는 자리라면 열 일 마다않고 달려가거든요. 딴지 일보와 인터뷰를 했는데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먼저 기자님이 중고생 시절, <논스톱>의 팬이었다는 거.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왜 논스톱에서 대학 생활에 대한 거짓 환상을 심어주셨나요?'하고 항의부터 하시더군요. "중고생이고 대학생이고 하루 종일 공부하느라 힘든데, 하루 20분, 논스톱 보는 그 시간만은 즐거우시라고요." ^^

"피디님이 파파이스, 맘마이스, 한겨레, 경향, 씨네 21까지 요즘 인터뷰를 워낙 많이 하셔서, 인터뷰 질문할 게 없더라고요. 인터뷰 포기할 뻔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같은 사람이 한 말이라도, 쓰는 사람이 다르면 글은 다르게 나올 겁니다. 매체가 다르고 기자님이 다르니까요."

정말 그렇더군요. 완전 딴지스러운 인터뷰 기사가 나왔어요.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몇번 뿜었어요. 역시 딴지일보! 딴따라와 딴지의 만남, 기사로 만나보세요~   

  

이너뷰]MBC 김민식 PD 인터뷰 : MBC는 제 첫사랑이에요

http://www.ddanzi.com/ddanziNews/196911000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김재영 피디가 경향신문에 연재중인 'MBC 몰락 10년사' 그 여섯번째 글입니다.

소개하는 글을 쓰다가, 이런 훌륭한 글에 내가 감히 어떻게 한줄이라도 더 보탤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지우고 기사만 올립니다.

MBC몰락 10년사⑥]블랙리스트 …MBC장악 마지막 퍼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8131024001#csidxc574bf02719f537a404b2bef7b42cc2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1년 전, 저는 문유석 님의 책에 빠졌어요.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이건 내 이야기잖아!' 맞장구를 쳤고, '판사유감'을 읽고, '아, 이 분 탁월한 이야기꾼이구나' 싶었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깊이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 글을 쓸 때마다 문유석 님의 책과 글을 계속 인용했어요. 

2016/08/16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개인주의자 선언

2016/08/19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너무 열심히 살지는 말자

2016/08/24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9호선 퇴근길의 비애

2016/08/26 - [공짜로 즐기는 세상] - 계속해보겠습니다

2016/09/13 - [공짜로 즐기는 세상] - 왕따도 즐거운 세상

 

섭섭이님이 댓글로 문유석 판사님의 페이스북 주소를 알려주셨어요. 페북을 통해 작가님의 일상을 팔로우했지요. 평소에 올리시는 글에서도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지난 2월에 탄자니아 여행을 갔는데요. 여행 중 읽을 책이 없을 땐 페이스북을 들여다봤어요. 2월 14일에 문유석 판사님이 페북에 올린 글이 있는데요. 

 

https://www.facebook.com/moonyousuk/posts/700361073476564?pnref=story

인터뷰 중 이런 대목이 있어요.

Q : 중년 남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 쉽고 재미있는(게다가 짧기까지!) 책으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 좋겠네요. 행복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책인데,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예전에 후배의 추천으로 읽었던 책이었지만, 내가 애정하는 작가가 또 추천을 하니 다시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탄자니아 여행 중 전자책으로 '행복의 기원'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때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구범준 피디님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출연 요청을 해오셨어요.

 

제가 '세바시'의 오랜 팬이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싶었지요. 탄자니아 여행 하는 내내, 15분짜리 이야기를 뭘 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요. 당시 읽던  '행복의 기원'의 메시지와 나의 삶 이야기를 버무려보자 싶었어요. 책의 메시지 중 하나가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였거든요.

 

 

세바시에서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영상은 조회수가 120만을 넘겼다고 하더군요. 지인들에게 세바시 잘 봤다는 인사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얼마전 문유석 판사님 페이스북에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표지 사진이 올라온 걸 봤어요.

 

'주말에 읽은 책. 영어공부법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이번 생엔 이미 틀렸어ㅠ),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동기에는 참 다양한 것들이 있는 것 같다.
.
물론 영어공부법으로서도 유익할 책이지만, 유쾌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성실한 한 사람이 온전히 보이기에 정겹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런 사람이 만드는 드라마, 보고 싶어졌다.
.
분명 영어공부법 책을 읽었는데, 엉뚱하게도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보자' 감상문 말미에 덧붙였던 나의 사족이 떠올랐다. ...
.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나라다. 황우석 사건 같은 대단한 일을 해낸 피디조차 방송제작 대신 스케이트장 운영 업무에 종사한다니 탁월한 피디가 남아돌거나 또는 시민들의 생활체육을 극도로 중시하는 것이리라."
.
p.s. 역시 우리나라에는 탁월한 피디가 남아도는 게 틀림 없다.'

 

아아아악!

문판사님이 내 책을 읽으셨어!!!

이게 진짜 꿈이냐, 생시냐.....

 

생각해보니, 돌고도는 인생이 정말 재미있네요.

문유석 판사님의 책을 읽고 -> 블로그에 리뷰를 쓰고 -> 리뷰를 읽은 독자가 작가의 페북 주소를 알려주고 -> 작가님 페북을 읽다 -> 추천하신 책을 읽고 -> 그 책으로 강연을 하고 -> 다시 문판사님 페북에서 내 책을 만나는...

 

이중 리액션이 하나라도 빠졌다면, 이를테면, 책은 읽고 리뷰를 쓰지는 않거나, 댓글 제보를 보고 페북에는 가지 않거나, 추천 글은 보고 책은 읽지 않거나... 하나라도 빠졌다면 '세바시 -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강연은 없었겠지요.

 

결국 인생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이에요. 내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이 곧 나의 인생인 거죠.

 

2017년 8월 11일 금요일, 오늘 저의 징계를 결정하는 MBC 인사위원회가 다시 열립니다. 무엇이 오든, 걱정하지는 않아요. 세상이 액션을 하면, 저도 또 리액션을 하면 되니까요. 제가 리액션이 좀 큰 편이라. ^^

  

오늘 저녁 6시 30분, 상암동 MBC 본사 앞에서는 '돌마고'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시민행동) 집회가 있는데요. 징계를 기념하는 공연을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오시면 50대 댄스 가수의 숨가쁜 랩과 처절한 몸부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리액션이 저를 살렸습니다. 고맙습니다. ^^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