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이 너무 길다. 끝나지 않는 막장 연속극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제발 이제 그만 종영해!" 채널을 다른데로 틀어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문화'라는 여주인공이 있다. 참 단아하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성품 바른 아가씨였는데, 어느날 그 집에 '재철'이라는 새 아버지가 온 후로, '문화'의 삶은 막장이 된다. 벙어리에 귀머거리에 아이를 반병신을 만든 양아버지는 끝내 재벌집 반푼이 막내에게 강제로 시집보내겠다고 발표한다. 동네에서 성품 올곧기로 유명한 '공영'이라는 총각과 '문화'는 오래전부터 굳게 사랑해온 사이인데 막무가네로 '민영'이라는 재벌집 반푼이에게 시집보내야겠다고 난리다. 도대체 이 막장의 끝은 어디일까?

 

아침에 경향신문을 읽다 김상조 교수님이 쓴 '망가진 세 개의 조직'이라는 경제시평을 읽었다.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한 교수님의 눈에는 지난 1년 사이 심하게 망가진 조직이 세 개가 보였단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소중한 세 개의 조직이 크게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문화방송 (MBC), 공정위 이야기다. 

[중략]

 

내가 이 세 조직이 망가졌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 것이다. 이 세 조직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KDI), 그 진행 과정을 감시하며 (MBC), 규칙을 깬 자들을 처벌하는 (공정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인적 역량이 조직의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충성심을 잃어버리면 어찌되겠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기관장의 책임이 크다. 기관장이 자신의 임명권자에게만 충성하면, 그 밑의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잃는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조직이 흔들리면, 유능한 구성원부터 떠난다. 그러면 그 조직은 끝이다. 

 

기관장과 임명권자는 임기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들이 남긴 상처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불가능한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안타깝다.'

 

 

 

위의 글을 읽으며 찢어지도록 가슴이 아팠다. 막장연속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문화'의 운명도 가슴아프고, 무엇보다 도대체 끝을 모르는 김재철의 악행을 지켜보는 것도 인내심의 한계에 달했다. 

 

막장이 싫으면 시청자는 채널을 돌리면 된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삼돌이는 어쩌란 말이냐? 나처럼 다른 방송사에는 원서 한 장 넣어본 적 없이 오매불망 MBC만 짝사랑해온 사람은 어쩌라고? '문화'를 재벌에게 강제로 시집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 오늘은 천막 농성을 시작하고, 내일은 '서늘한 간담회' 장물아비 김재철 특집을 녹음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테다.

 

막장을 이기는 건 순정이라 생각한다.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한 편 보여드리겠다. MBC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고 굳센지 보여드리겠다. 막장에서 악당의 패악질이 심해진다는 건 최후가 멀지않았다는 뜻이다.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도 힘 보태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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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치새를 잡는건 마음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라는 걸 기억해."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대사다. 새총을 선물로 받은 딸에게 변호사인 아빠가 하는 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새를 잡는 건 괜찮지만, 그 바람에 죄없는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피하라는 뜻이다. 초등학생인 우리 민지의 필독서인데, 웬지 대한민국 검사님들이 꼭 보셔야할 책 같다. ^^  

 

 

 

딴따라 우파의 노조 위장취업기 2. 딴따라와 여검사

 

그러니까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12년 5월 21일, MBC 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전원 기각되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장재훈 교섭쟁의국장, 그리고 나는 유치장에서 기각 소식을 들었다. 사실 나는 영장 실질 심사 과정을 지켜보며 영장 기각을 기대하고 있었다.

 

구속을 촉구한 검사 기소 이유 중 압권은 권재홍 앵커 자해공갈 사건이었다.

 

"며칠 전 MBC에서는 노조원들의 불미스러운 폭력사건이 있었습니다. 5월 16일, 방송을 마치고 퇴근하는 권재홍 앵커를 기자 4~50명이 가로막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권재홍 앵커가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권재홍 앵커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뉴스데스크 진행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조합원들의 폭력사태를 방조한 데는 노조 집행부의 책임이 큽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대한민국 검찰의 무공이 경천동지할 수준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심지어 조합원이 쏜 '장풍'을 폭력의 증거로 내놓는 수준이었단 말인가!

 

노조 측 변호사가 바로 나섰다. "지금 검사님이 말씀한 사건의 진실을 알기란 간단합니다. 판사님께서는 잠깐 네이버에 '권재홍 장풍'이라고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노트북에 뭔가를 입력한 판사님은 순간, 풋! 하고 터져나오는 폭소를 참느라 고생 좀 하셨다. 엄숙한 법정에서 보기 힘든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한 검사님께 감사라도 드려야하나? 순간 나는 검사님이 우리를 풀어주려고 일부러 쇼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역시 노조에 위장 취업한 나의 정체를 아시는 거야! 그래서 일부러 풀어주시려고 저런 자살골 플레이를 하시는 거야!'

 

당연히 그날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다섯명 전원에 대해 영장을 기각했다. 그런데 집요한 검찰이 2주만에 다시 영장을 칠 줄이야. '역시 법의 양심은 살아있구나!' 하고 만세를 부르며 유치장을 나온 우리는, '역시 검찰의 앙심도 죽지 않았구나!' 하며 치를 떨며 유치장에 다시 갔다.

 

권재홍 장풍이 안 먹혔는데, 왜 2차 영장을 날린걸까? 6월 7일, 법원에서 영장 심사 중 검사님 말씀.

 

"한 여자 아나운서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나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으며,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겠다며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이 글을 보면 MBC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이 성향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노조 집행부 전원 구속으로 파업을 중단시키는 것이 책임있는 법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나는 다시 입이 딱! 벌어졌다. 결국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두 앵커의 몸개그와 개드립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서비스 플레이였단 말인가? 배 모 아나운서의 게시판 글이 떴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드디어 오랜 시간 노조에서 암약하던 내가 활약할 차례로군.' 노조 집행부에서 1년 넘게 암약해온 보수 우파 비밀 공작원이 꿈이 무엇인지 아는가? 북의 지령을 받고 남한의 방송을 장악하려는 종북좌파를 색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이 100일 가까이 진행되는 데도 전혀 불순 분자의 폭력 책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나만 헛고생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무렵 배 아나의 글이 떴다. '역시 폭력을 조장하는 불순분자가 있었군!' 이제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어 폭행의 배후를 찾아내면 나는 임무를 완수하는 거야! 즉각 노조 부위원장이라는 나의 직함을 이용해 탐문 수사에 나섰다. 마침 폭행이 일어났다는 아나운서 국은 내가 담당하는 편제부문 소속 부서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를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배 아나가 제보한 사건의 전모를 알아봤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폭행 사건이라 할 만한건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나운서들이 조직원 보호에 앞장서느라 그러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노조 부위원장인 내게는 알려 줄 텐데? 답답해하는 내게 한 후배가 그랬다. "얼마전에 서점 옆에서 선배 하나가 늦게 온 후배더러 '일찍 일찍 다녀.' 하면서 어깨를 몇번 친 적이 있죠. 아마 그걸 가지고 폭행이라 그러나봐요." MBC 조합원들의 집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은1층 회사 로비다. 로비 뒤에는 서점이 하나 있는데, 수업 듣기 싫은 아이들이 교실 뒤에 모여있듯, 집회 참석에 가장 열의가 적은 멤버들이 모이는 곳이 서점 앞이다. 거기서 누가 다른 사람더러 '일찍 일찍 다녀!'하고 훈계를 했다는 건, 화장실 담 뒤편에서 담배 피우던 고교생 하나가 다른 후배더러 '마, 공부 좀 열심히 해!'하고 잔소리하는 거랑 같다. 그냥 자기들끼리 개그하는 거지. 

 

당연히 나는 이게 노조원 폭행 사건의 전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배 아나운서 정도 되는 공인이 저 정도의 일을 침소봉대해 게시판에 글을 쓰고, 기자 정신의 화신인 이진숙 홍보국장이 그걸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내가 알아내지 못한 진짜 폭행 사건이 일어났던 게 분명해... 아무리 알아내려 해도 알 수 없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검찰이 법원에서 배 아나의 글을 인용할 때는 만세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천라지망과 같은 검찰의 정보망에 폭행 사건이 걸려들었군.' 이제 남은 건 그 폭행 사건의 범인과 피해자를 검찰이 찾아내어 세상에 까발리면 된다. MBC 노조가 얼마나 부도덕한 집단인지 밝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검찰에게 주어진 것이다. 제보자나 목격자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제보자는 누구나 다 아는 뉴스데스크의 앵커! 얼마나 공신력이 큰 인물인가. 배 아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만 봐도 게임 오버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검찰은 배 아나가 말한 폭행 사건에 대해 전혀 수사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그냥 배 아나의 글을 핑게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뿐이다. '이건 아니지! 폭행 사건이 있다잖아. 그걸 조사해보면 되잖아. 검찰이 그 사건을 밝혀내지 못하면, 기껏 용기를 내어 노조원의 폭행을 고발한 배 아나의 진심은 어떻게 되는거냐구!'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불현듯 날아온 미모의 여검사의 일격!

 

"피의자 김민식은 서늘한 간담회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김재철 사장의 퇴진 없이는 파업을 절대 풀지 않을 거라 말했습니다. 사실이지요?"

 

난 예쁜 여자가 말을 걸면,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본다. 한심한 놈이라고 흉봐도 소용없다.

 

이어지는 검사님 말씀.

"네, 파업이 100일이 넘었지만, 이들에게는 보다시피 파업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죄질이 극히 나쁘고, 재범의 우려가 농후합니다. 조합원들을 일터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파업 현장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합니다. 집행부 다섯명 전원을 반드시 구속하여 법질서의 엄중함을 보여줘야합니다."

 

구속의 위기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와! 저 이쁜 검사님도 내가 진행하는 서늘한 간담회를 들으시는 거야? 그럼 저 미모의 검사님이 나의 안티팬 1호? 나의 방송을 즐겨 들으시고 나를 오래 오래 곁에 두려고 구속영장을 친 거야? 그럼 이건, '아름다운 구속'? 아, 놔, 이 놈의 인기란...'  

 

하지만 미모의 검사님이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반드시 당신만은 잡아넣고 말겠어.'라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고나 할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중간첩 놀이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나보다. 노조의 불법 파업을 막고, 민주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신념 하에 노동조합에 위장취업했는데, 어쩌다 종북좌파로 몰려 구속영장까지 받게 된거지? 어쩌지? 이제라도 나의 정체를 고백해야하나?

 

"실은 저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조에 위장취업한 보수 우파입니다." 라고?

 

검찰의 오버플레이 때문에 십수년 간 MBC내에서 암약해온 나의 정체가 여기서 드러나게 생겼군. 어쩐다?

 

딴따라 우파의 구속 위기, 3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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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면접 때 일이다. "김민식씨, 예능 피디를 지원한 이유는?"

"저는 광대입니다. 세 사람이 모이면 세 명을 웃기고, 열 사람이 모이면 열 명을 웃겨야 직성이 풀립니다. 기회를 주시면 수천만 시청자를 웃겨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김민식씨를 안 뽑으면?"

"그럼 다시 돌아가 친구들이나 가족을 평생 웃겨주며 살겠습니다."

 

그런 각오로 입사했다. 우리 시대의 광대가 되겠다는 각오로. 입사하고 줄곧 코미디를 고집하며 살았다. 드라마국으로 옮겼다고 해서 갑자기 진지해진 건 아니다. '내조의 여왕',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글로리아'까지 다 로맨틱 코미디만 연출했으니까. 노조 집행부가 되어서도 나의 역할은 광대다. 마이크를 잡고 조합원 앞에 서면 어떻게든 한번은 웃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광대의 소명이다.

 

조합원 업무 복귀 후, 사측에서 취하는 갖가지 보복인사와 작가 해고 등의 사태를 보며 우울해졌다. 김재철과 그 일당들의 행태를 옆에서 지켜보며 2년을 살아낸다는 것, 그 중 6개월은 파업으로 그중 6개월은 정직으로 보내며 내 속의 유쾌한 광대기질이 죽어가는 건 아닌지 심하게 우울했다.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싸움을 거친 후, 나는 광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현업 복귀 후, 나는 다시 코미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 어제 책을 한 권 읽었다. 커트 보네거트의 '마더 나이트'.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선전병 역할을 한 죄로 전범 재판에 회부된 미국 첩보원의 이야기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우울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유쾌한 이야기가 가능한거지?' 알고보니 커트 보네거트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경험한다. 수만명의 무고한 시민이 소이탄에 불에 타버린 현장을 눈으로 목도한 사람이다. 그런 생지옥을 겪고 살아나온 보네거트는 20세기 최고의 유머 작가가 된다. 

 

                               (저 얼굴에 가득한 웃음 주름을 보라! 저렇게 멋진 주름을 갖고 싶다.)

 

김중혁 소설가가 책 뒤에 쓴 추천사가 마음에 남는다.  "키득거리며, 땅을 치며, 땅에 떨어지는 배꼽을 부여잡으며, (너무 웃겨서 터지는) 눈물을 훔쳐가며 커트 보네거트를 읽었다. 웃으면서 입술을 앙다물었다.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세상을 비웃어주어야만 내가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꼼수 팀을 볼 때마다 느낀다. 가카라는 공포스러운 존재를 만나고도 오히려 끊임없이 조롱을 일삼는 그들이야 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광대가 아닌가! 예전 광대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외줄타기를 했다면 우리 시대의 광대는 감옥 담장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생각해보면 데뷔작 '뉴논스톱'에서 짠돌이 양동근과 억척 또순이 박경림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가난했던 20대, 몸에 배인 나 자신의 짠돌이 습성 덕분이었다. 그래, 광대라면 오히려 시련에서 웃음을 길어낼 줄 알아야 하는 데, 이 정도 싸움으로 광대가 웃음을 잃어버린다면 진짜 광대가 아닌거지.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는 것은 제대로 된 코미디 연출가로 만들기 위한 운명의 배려일지도 몰라! 나를 더욱 큰 코미디 피디로 만들어줄 새로운 시련에 도전해야겠다. 그것이 진정한 광대의 길이니까.

 

 

다시 한번,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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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정직중인 기러기 아빠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가. 네, 혼자 잘 놀면서 보냅니다. 감기로 앓아 누워있기에는 가을 하늘이 너무 이쁘니까요. 아침에 일찍 집에서 나왔어요. 8시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해섭니다. 영화광이라 1년에 100편 정도 영화를 보는데, 거의 조조로 봅니다.

 

어제는 스텝업4 레볼루션을 봤어요. MBC 후배가 추천해준 영화였거든요. 전형적인 댄스 청춘영화입니다. 가난한 웨이터지만 댄서의 꿈을 꾸는 남자가 발레를 하는 부잣집 딸을 만나 사랑을 하는 이야기, 네, 딱 그림 나오죠. 어찌보면 내용도 없고 오로지 음악에 춤만 추는 영화인데 후배가 추천한 이유는 플래쉬몹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6개월간 파업을 하면서 우리도 'MBC 프리덤'을 가지고 서울역에서, 잠실 롯데월드 앞에서, 광화문에서, 홍대 정문 앞에서 플래쉬몹을 벌였거든요.

 

 

http://youtu.be/Bl3JhUmOSc4  서울역 플래쉬몹

 

스텝업에서는 플래쉬몹을 레볼루션이라고 부릅니다. 감히 혁명이라니요. 하긴, 우리도 봄에 춤을 추며 세상을 바꾸려고 했었죠. 괴로운 6개월의 장기 파업 춤추고 노래하며 이겨보려 했죠. 하지만 여야합의를 믿고 올라간 조합원들, 8월 한 달이 다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고, 그동안 김재철 일당은 피디수첩 작가 전원 해고에 불만제로 불방에 아이템 검열에 외려 보복의 칼춤만 추었죠. 

 

영화를 보고 나와 서울 대공원으로 갔어요. 동물원에 가 홍학과 기린에게 인사한 후, 산림욕장으로 향합니다. 저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산책코스를 좋아합니다. 3시간 동안 혼자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아침에 본 영화의 내용을 복기해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세상을 바꾸겠다고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또다시 즐거운 기획 아이템이 떠올랐습니다. (곧 블로그를 통해 공개할 겁니다~)

 

 

사색의 숲에서 이런 저런 생각~ '그래, 사장을 바꾸겠다고 춤을 췄는데, 사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다시 춤을 춰야지. 나갈 때까지 춤을 추는 거야. 인디언 레인메이커처럼.'

 

 

 

선선한 가을의 초입에 계곡 바위에 앉아 집에서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습니다. '가을을 즐기러 왔으니 진짜 가을을 즐겨야지.'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테니까~ 그래요, 다시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합니다. 아내가 싱가폴에서 해외 파견 근무중이라 가끔 아이들을 보러 싱가폴에 갑니다. 갈 때마다 그래요. '한국에서 태어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싱가폴은 적도 바로 위에 있어 사계절이 따로 없어요. 백화점 안에 들어가면 가을이고 나오면 뜨거운 여름이고 그렇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건 큰 복이에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빨리 빨리 옷도 새 옷 갈아입고 이불도 새로 내고 그렇게 움직이다보니 한국 국민이 이렇게 부지런한가봐요. 자, 나는 다시 가을축제를 즐기러 갑니다.

 

 

 

어제 동물원 축제무대에서는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동호인의 날 행사가 열렸어요. 관악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회였죠. 아바의 히트곡 메들리를 관악으로 연주한 군포 윈드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흥겨웠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주제곡을 편곡한 베누스토 윈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즐거웠어요. 지휘자가 해적 모자를 쓰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 동호인들로 이루어진 멤버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무료 공연이 있어 즐거운 세상, 바로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국제관악제는 대부분 무료공연이니 가을 하늘 아래 흥겨운 브라스밴드의 연주를 즐기실 분들은 아래 싸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w2012.windband.or.kr/  아마 다음주 일요일의 가을 축제는 혼자 소래포구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서 여의도 너른들판에서 펼쳐지는 마칭밴드 연주회 관람으로 마무리할 것 같네요.

 

 

 

어제 하루 영화 5000원, 동물원 3000원, 교통비 2000원, 토탈 만원으로 나홀로 가을 축제를 즐겼습니다. 항상 짠돌이로 사는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이유는? 돈을 들여 즐기는 향락만 누리다보면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올 수 없거든요. 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지,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번 한 주, 즐거운 축제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삶은 하루하루가 축제의 연속이니까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기원하는 흥겨운 굿판을 벌이러 나갑니다. 재처리 몰러 나간다~ 훠어이, 훠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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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오늘은 파업채널 M에 올라온 팟캐스트 'MBC 방송학 개론'을 소개합니다.

 

'최고의 사랑' 박홍균, '무한도전' 김태호, '남극의 눈물' 김진만, 뉴스앵커 김수진, '신입사원' 김초롱 아나운서, 라디오 김재희 피디, '아마존의 눈물' 송인혁 카메라 감독, 등 MBC 최고의 스타 피디 기자가 모여 방송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제 여의도 공원에서 오후 2시에 있었던 정겨운 대화, 들어보시고요. 오늘도 후 2시 여의도 공원에서 KBS 방송대학이 열립니다.  

 

방송 지망생이 아니어도 재미난 방송 뒷담화를 즐겨보세요.

http://www.podbbang.com/ch/1793

 

사진은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발췌했습니다. 기사 원문을 보고싶으시면 아래 링크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1412

 

 

어제 어느 여학생이 찾아와 수줍게 건네고 간 봉투 속에는 만원 2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남긴 편지글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시험 준비생인 유**입니다. 후원계좌를 찾지 못해 이렇게라도 후원하고 싶어 이 자리를 찾았습니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하루 3000원짜리 고시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는 저에겐 매우 큰 돈이에요. 처음 MBC에서 파업을 선언했을 때 이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00일이 넘어가고 간간히 들려오는 뉴스에서 몇몇 아나운서들이 노조를 탈퇴하고 다시 돌아갔다는 소식이 노조분들을 얼마나 힘빠지게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한 일을 MBC가 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꼭! 이기셔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정한 보도를 위해, 언론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반드시 이겨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주세요. 그리고 제가 적은 돈이지만 금액이 생길 때마다 후원하고 싶은데 010 **** 이 번호로 계좌번호를 보내주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MBC 화이팅!'

 

편지를 읽는데, 콧등이 시큰거리더군요.

 

 

미치도록 이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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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딴따라가 무슨 파업이야? 물으신다면...

딴따라는 광대라고, 체질상 반골이라고 답하련다.

세상을 삐딱하게 볼 줄 알아야 진짜 딴따라다.

쪽팔리는 걸 보고 쪽팔린다! 하고 소리칠 줄 알아야 진짜 딴따라다.

부조리를 보고도 눈 감고 희죽희죽 웃기만 하면, 그게 광대냐? 그냥 미친거지.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이라면 기자들만 파업하고,

공정보도와 상관없는 예능 프로그램은 돌려놓으라고 말하신다면...

여러분의 즐거움을 위해, 예능 피디가 자신의 양심을 버려야하는지 묻고 싶다.

피디란 자고로 세상과 교감하는 자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고통에 둔감한 자가 어떻게 세상과의 교감을 논할소냐?

 

공익을 위해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 물으신다면,

내게 가장 중요한 공익은 언론 자유라고 답하련다.

언론이 죽으면, 세상의 아픔을 돌볼 사람이 없다.

우리 시대 가장 훼손된 공익이 언론 자유인데,

그것을 놔두고 세상에 나가 무슨 공익을 논할 거냐.

 

사장에게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은 없다고 말하는 경영진에게 묻노니,

그대들의 화법은 그 자체로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이다.

MBC 사장의 개인 비리에 눈감고,

어찌 세상의 비리를 논할텐가?

 

언론사를 경영하는 자가, 도덕적 결함은 한 치도 없다고 얘기해야지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은 없다고 말하는 것,

그 말 자체가 그대들의 수준을 드러내는 치명적 도덕적 결함이다.

 

이제 100일이니,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묻는 이들에게,

갓 태어난 아기도 백일은 버텨야 버젓한 생명으로 인정받는다.

사람 대접 받으려면 백일은 버텨야 하듯

파업 인정 받으려면 백일은 버텨줘야지.

 

백일을 살아낸 아기가 쉽게 죽지 않듯이,

백일을 버텨낸 파업이니 쉽게 죽지 않는다.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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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한 사람의 인생은 때로는 한 권의 책 만큼이나 흥미진진합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파업해보니 파업은 참 힘듭니다. 방송사보다 파업이 더 힘든 사업장이 있어요. 증권사인데요. 최근 골든브릿지 투자증권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에효, 가능하면 파업은 하지 마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힘들거든요, 파업.^^

 

그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가 뭘까? 기사를 검색해보니,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사측이 파기했군요. 직원 해고나 구조조정시, 기존에 노조와 합의한다는 것을 협의한다로 바꾸자고. 합의와 협의, 한 글자 차이지만 결과는 완전 다르죠. 합의 체제라면,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지만, 협의라면 노조가 반대해도 밀어버릴 수 있거든요.

 

파업 시작하고 회사에서는 불법 대체 근로까지 투입했어요. 도대체 이런 결정을 한 사장은 누굴까? 기사를 검색하다 기겁했어요. 노조 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준 회장, 이분은 알고보니 대학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해서 공장에 위장 취업도 하고, 전태일 연구소 팀장까지 하신 분입니다. 전형적인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맙소사...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이렇게 더럽히는 사람이 있다니, 이소선 여사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노동운동가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주역이 되다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7억 김재철 선사의 삶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로에 대해 온갖 불충한 상상을 하는 것이 제 낙이거든요. ^^ 

 

이상준과 김재철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자본과 권력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진영을 배신하고 헌납한 사람들입니다. 4년전 PD 수첩 광우병 보도로 촛불이 온나라를 뒤덮을 때, 지방사 사장이던 김재철은 청와대에 달려갑니다. "제가 책임지고 MBC 문제 정리하겠습니다. 두번 다시 피디 수첩 광우병 보도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MBC 사장으로 보내주세요."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었던 김우룡은 얼마전 인터뷰를 통해 '김재철은 세 사람의 MBC 사장 후보 중, 꼴찌로 가장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임명권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라고 밝혔지요. 

 

적들을 기겁하게 만든게 MBC의 제작 자율 시스템이고 공정한 보도였습니다. 김재철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아니면 MBC를 장악할 수 없다고 장담하며 사장 자리를 따낸 거죠. 

 

이상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노동운동 해봐서 아는데, 노동 조합은 내가 책임지고 정리할테니, 걱정말고 단협파기하세요. 대체 근로 투입? 그거 부당 노동 행위 맞는데, 벌금 좀 내면 끝이야, 내가 이 방면은 전문가라니까?'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진영과 회사를 자본과 권력에 바침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사람들... 아, 갑자기 인생에 환멸이 느껴졌어요.

 

어제는 MBC 어버이연합 선배님들을 만났습니다. 입사 20년차 이상된 선배님들, 92년 MBC 파업의 주역인 선배님들이죠. 정년 퇴직을 몇년 앞둔 선배님들이 요즘 저희의 파업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매일 회사에서 농성을 하십니다. '김재철 선배,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라는 피켓으로 MBC를 지켜주시는 자랑스러운 MBC 선배님들!

 

한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92년 파업으로 MBC가 20년을 버텼어요. 당시 공권력 투입하고 손석희 아나운서 수감해도 꺾이지 않는 MBC 조합원들을 보고 저들이 MBC 장악은 힘들겠다, 포기한 거거든. 그 덕분에 20년간 공정방송 MBC를 지켜온 거지.

 

이번 파업에 이기면, 앞으로도 20년 잘 버틸 수 있어요. 우리는 이제 몇년 안에 다 퇴직할 사람들이지만, 앞으로 후배들이 즐겁게 직장 생활하기 위해서는 이번 파업이 중요해요.

 

무엇보다 요즘 젊은 조합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탄하고 있어요. 우리는 87년의 민주화 운동 세대여서 92년의 파업을 이끌 수 있었죠. 2000년대 이후 입사자들은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아닌데도 이렇게 잘 싸워주고 있다니 깜짝 놀랐어요."

 

선배 세대인 이상준이나 김재철을 보고 좌절했던 저, 후배들을 보며 희망을 찾습니다. 그저께는 최근 공채로 입사한 드라마 신입 피디 3명이 수습이 끝나자 마자 조합 사무실로 찾아와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이번 100일 파업의 핵심 인력은 2000년대 입사자들입니다. 민주화 운동 이후에 대학에 들어가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C에 입사한 사람들, 그들이 파업에 앞장서는 모습은 정말 고무적입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자기 희생을 감수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 아, 감동입니다.

 

선배에게 본 절망, 후배에게 발견한 희망으로 갈음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절대로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

 

어느 강연회에서 들은 20대 여학생이 했던 말로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기성 세대의 모습에 절망하지 말기로 해요. 10년뒤 20년뒤에는, 우리가 기성 세대가 될테니까요. 곧 우리의 세상이 올테니까요. 그때까지 우리 마음만 변하지 말기로 해요."   

 

  

MBC 파업 100일 기념 로고입니다. 다음주 화요일 저녁 백일 잔치에 많이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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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16년 전의 일입니다. 시골 촌놈이 한 번도 방송국 구경 해 본 적이 없어, 면접까지만 가면 방송국 구경은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랬는데 면접까지 갔어요. 여의도 본사에 가서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기하더군요. “, 여기가 방송국이구나. , 저기 면접 보는 사람이 피딘가 보지? , 저 분은 PD 수첩 앵커 아닌가?”

 

즐거운 추억 만든다는 기분으로 지원했기에,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나중에 면접관이셨던 선배님께 들었어요. “다들 긴장해서 얼어 있는데, 너는 혼자 놀러 온 것처럼 내내 빙글빙글 웃고 있더라. 신기한 듯 사람 구경하고 있고. 입사 면접을 공원에 놀러 온 것처럼 보는 놈이라면 오락 피디도 한번 시켜볼만 하겠다 싶었다.”

 

, 죄송합니다. 살짝 자랑질이었군요. 갑자기 16년전 MBC 본사에서 한 면접이 생각난 이유는, 월요일에 있을 계약직 기자 면접 때문입니다. 100일 가까이 제작거부과 파업에 나선 보도국 기자들에 대한 대체인력을 뽑습니다. 김재철 사장의 특별 지시에 따른 조치죠. MBC 역사상 초유의 1년짜리 연봉직 기자 채용... 정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김재철과 그 일당들은 그런 인간들이니까 그냥 둡시다. 전 여기 지원한 분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MBC 입사를 전제로 한 면접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제가 16년전에 했던 방송국 구경은 못합니다. 웬지 아세요? 김재철 사장이 내일 회사가 아닌 시내 모처에서 몰래 면접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뒤가 구려, 본사에서 면접도 못하는 이런 채용에 마음 편히 응시하실 수 있으신가요?

 

파업 대체 인력을 뽑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원하지 않으면 더 질 나쁜 기자들이 들어가 MBC 뉴스를 욕되게 할 것이다.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그래도 양질의 보도를 하면 될 것 아닌가?’

 

미안하지만, 님의 그런 생각은 정말 순진한 계산입니다. 200명의 기자들이 지난 몇 년간 공정보도를 하겠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나선 파업입니다. 1년후 계약 갱신이 되느냐 마느냐가 김재철의 손에 달려있는데 1년짜리 계약직 기자가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빌려주고는 싶은데, 그랬다가 너의 자립심을 꺾을까봐 못 빌려주겠다.” 미안하지만 그건 돈 빌려주기 싫으니까 하는 변명입니다.

 

그냥 솔직하게 파업하는 MBC 기자들의 상황은 잘 알겠지만, MBC 경력이 탐이 나서 지원했다고 말씀하세요.

 

파업 100일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생계 위협을 받는 가장들도 있고, 가계 대출 상환을 하지 못해 제2금융권에 손을 벌린 조합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업무 복귀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차라리 싸우다 죽을 지언정, 파업 현장을 지키겠다는 각오입니다.

 

80년 광주, 전남 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그때 진압군이 들어와 시민군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시민들은 총을 들었습니다. 상대편에는 계엄군이 있었습니다. 나는 계엄군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국방의 의무에 부름을 받은 군인이었으니까요. 명령 불복종하면 총살당하는 군인이었으니까요. 병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으니까요.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100일 파업으로 MBC를 지키겠다고 나선 기자들을 진압할 계엄군을 회사는 모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원한 사람이 있습니다. 떳떳하게 MBC 본사에서 면접도 실시하지 못하고 외부 모처에서 면접을 해야 하는 그런 외인부대에 지원한 기자가 있습니다.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계엄군에게 총을 내려놓으라고 광주 시민이 호소했듯이, 저 역시 그런 면접에 나가지 마시라고 호소 드립니다. 계엄군과 달리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만약 불법 파업을 일삼는 MBC 노조를 손봐주기 위해 내가 직접 김재철 편에 서서 싸우겠어!’ 혹은 ‘MBC 기자 경력을 발판 삼아 보수 언론사에 입사하는 기회를 노려보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지원하셨다면... 그러시다면, 저도 말릴 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면접을 보세요. 싸울 각오로 들어온다면, 기꺼이 맞아들여야지요.

 

80년 광주의 어느 새벽, 도청에서 울려 퍼진 총소리는 20분 만에 끝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싸움을 약속드립니다.

 

 

 

민주 언론 쟁취와 공영 방송 정상화의 깃발을 들고,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깃발을 들고 우리와 긴 싸움을 벌이실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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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꿈의 횡재라고 불리는 연금 복권, 매월 500만원씩 20년간 나온단다.

연간 6천만원 X 20년 = 토탈 12억원

16년전 나도 로또에 맞았다.

내 로또는 매월 당첨금이 30년간 나오고, 심지어 총수령액도 20억이 넘는다.

내 인생의 로또는 MBC 입사 공채 합격이다.

 

16년 전, 외대 통역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MBC에 시험을 봤다.

피디를 꿈꾼 적은 없었다. 당시 내 나이 서른 살, 공채를 볼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통역사는 어차피 평생 할 수 있는 프리랜서니까,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이용해 재미삼아 응시해봤다. 예전에도 직장생활을 해봤지만, 웬지 MBC는 끌렸다. '재수 좋은면 예쁜 여배우나 가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로또 한 번 긁어보는 심정이었다.

그랬는데 덜컥 붙었다. KBS나 SBS는 원서를 낸 적도 없는데, 한번에 MBC에 붙어버렸다.

와우, 이건 정말 내 인생의 로또다.

 

평생 나오는 연금 복권인줄 알았는데, 요 몇달 파업하느라 당첨금 수령액이 싹 줄었다. ^^

그래도 아쉽진 않다. 로또에는 세금이 붙는다. 내가 누린 횡재에도 세금이 붙는다.

당첨금만 털어먹고 세금은 떼어먹는 그런 양심불량자가 될 순 없지.

나는 MBC인로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세금을 지불할 것이다. 기꺼이.

 

MBC라는 내 인생의 로또를 누군가 가카의 수중에 헌납했다.

MBC라는 자랑스러운 회사를 누군가 더러운 권력의 하수인으로 바꿔치기해 버렸다.

나의 로또 당첨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항목은 'MBC인으로 사는 자부심'이었다.

그들은 나의 로또 중 일부를 뺏아가버렸다.

 

입사는 분명 운이었다. 인정한다. 정말 하늘이 내린 운 덕에 들어온 직장이다.

하지만 MBC를 지키는 일마저 운에 맡길 수는 없다.

누군가 앗아간 나의 당첨금, 'MBC인으로 사는 자부심'을 되찾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비록 당첨금이 중간에 끊기더라도!

 

 

내 인생의 로또는,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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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많은 이들이 나를 보며 의아해한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딴따라 어쩌다 선봉에 서게 됐지?'

'집회에도 안 나오던 날라리가 어쩌다 노조 부위원장을 하고 있지?'

사람들이 변한 내 모습에 신기하다고 할 때, 난 내 과거를 돌아봤다.

'내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살았나?

 

작년 1월, 이번 MBC 노동조합 집행부가 꾸려질 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도 정말 하기 싫었다. 왜? 이번 집행부 임기는 2년이다. 그 2년은 이명박 정권의 남은 임기와 정확하게 맞물린다. 현정권이 임기 내내 보여준 행태를 미루어볼 때, 남은 2년, 특히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언론 장악이 한층 더 악화될 게 뻔했다.

 

이번 집행부의 운명은 처음부터 둘 중 하나였다. 망가지는 MBC를 지켜보며 2년을 버티던가, 끝내 못견디고 일어나 정권으로부터 철저하게 응징 당하던가. 싸우지 않고 2년을 버티면 어용 노조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고, 싸우겠다고 일어나면 많은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해야 할 것이고...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 둘 중 무엇도 감당하기 싫었다. 

 

그럼, 나는 왜 노조 부위원장이 되었을까?

 

정영하 위원장 때문이다.

 

내가 뉴논스톱 연출로 데뷔할 때, 더빙 엔지니어가 정영하 선배였다. 연출은 정말 외로운 자리다. 어두컴컴한 더빙실에 앉아서 편집이 끝난 화면을 볼 때, 가장 불안하다. '이게 재밌을까? 이게 재밌을까?' 특히나 망해가는 시트콤, 시청률 7% 나오는 시트콤을 맡은 초보 피디의 불안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때, 내 등을 지켜준 사람이 정영하 선배다. "민식 씨, 이번 주 꺼 재밌어. 양동근이 하는 거 그거 웃기니까 유행어로 밀어봐." 

 

정영하 선배는 많은 연출자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스탭이었다. MBC에서 소리를 가장 잘 다룬다는 평을 듣던 정영하 선배가 노조 위원장이 된다고 했을 때, PD들은 다 아쉬워했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현업에서 빠지게 싫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곧 그의 책임감에서 나온 것이란 걸 알기에, 위원장을 맡은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연락이 왔다.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10년전 더빙실에 앉아있는 나의 등은 무척 초라했을 것이다.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을 맡아 처음 PD가 되었는데, 시청률은 바닥이었다. 낯선 신인들만 나오고, 이상한 엽기 코미디만 하고... 그때, "민식 씨, 이 프로, 잘 될 거야. 지금 잘 하고 있어."라고 등 두들겨준게 정영하 선배다. 

 

10년이 지나, MBC가 가장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 정영하 선배가 있다.

 

이제는 내가 그의 등을 지켜야 할 차례다. 

 

 

나는 딴따라다.

 

사랑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연출가다.

 

내가 아는 사랑이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를 지키는 것이다.

 

 

                          사진의 가운데 키크고 안경 낀 사람이 정영하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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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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