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프리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7.01.24 보고 싶다, 정영하 (15)
  2. 2017.01.10 어느 겁쟁이의 고백 (10)
  3. 2016.10.31 나를 버티게 하는 후배의 문장들 (7)
  4. 2016.10.19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탈이다 (10)
  5. 2016.08.26 계속해보겠습니다 (2)
  6. 2012.09.03 만원으로 나홀로 가을 축제 (13)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면 2012년 MBC 파업 당시 노조 위원장으로 일하다 해고된 정영하라는 분이 나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의 인터뷰 내용에 눈물을 흘린 이들이 많습니다. 그분들께 정영하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문득 소개하고 싶어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

내 이름은 김민식이지만, 별명은 김민종이다. 잠깐, 거기 짱돌 집어드시는 분, 동작 그만! 내 외모가 원조 꽃미남 배우 김민종과 닮았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 아니니, 절대 오해마시길. 2012년 내가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당시 위원장이던 정영하 선배의 충실한 이란 뜻인지, 위원장이 무슨 말만 하면 딸랑 딸랑 맞장구를 친 덕분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하여튼 집행부 내에서 내 별명이 김민이었다. ‘위원장님, 만세! 딸랑 딸랑~’ ^^

 

하지만 아무리 딸랑거려도 나는 정영하 선배에게 진 빚을 다 갚을 수 없다. 내가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으로 연출 입봉했던 2000년 당시, 정영하 선배는 더빙실에서 음향 효과 믹싱과 웃음 더빙을 담당하고 있었다. 신참 피디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에는 각 분야 최고 에이스를 투입하는 것이 MBC의 전통이다. 정영하 선배는 소리를 만지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연출도 편안하게 배려해주기에 모든 연출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1순위였다.

 

매주 5편씩 일일 시트콤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은 방청객을 모아놓고 웃음 더빙을 할 때다. ‘썰렁하면 어떡하지? 재미없으면 어쩌지?’ 숙제검사 받는 피디만큼 외로운 이가 또 있을까? ‘뉴논스톱의 경우, 초반 시청률이 저조해 특히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그때 더빙실에서 내 등을 지켜준 이가 정영하 선배다.

 

민식 씨, 너무 걱정하지마. 저 양동근이라는 친구가 하는 코미디, 재미있어. ‘딱 걸렸어 한 턱 쏴!’ 저거 다음 주에도 또 시켜봐. 밀면 유행어가 될 거 같아. 그리고 조인성인가? 그 신인도 괜찮은 것 같아. 집사람이 잘 생겼다고 좋아해. 이제 조금 있으면 재미있다는 반응 올 테니까 현장에서 배우들 힘 빠지지 않게 잘 해줘. 민식 씨 특기가 현장 분위기 띄우는 거잖아?”

 

훗날 그가 노조 전임이 되어 현업에서 빠지게 되었을 때 아쉬워하는 피디들이 많았다. ‘사람 좋은 양반이 거절 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괜히 노조에 발이 묶였어.’ 하고. 2011년 봄, 그가 MBC 노조 위원장직을 떠맡았을 때, 나는 빚 갚는 마음으로 편제부문 부위원장직을 맡았고 1년 후, 우리는 기나긴 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파업을 하며 집행부로서 가장 힘든 것이 투쟁의 수위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보도국이나 교양국은 김재철 체재에서 받은 탄압으로 열기가 뜨거웠지만, 내가 속했던 드라마국이나 예능국은 상대적으로 싸움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이럴 때, 누구 입장에서 싸울 것인가? 박성호 기자회장의 해고가 결정된 날, 우리는 모여서 긴 회의를 했다. ‘계속 1층 로비 민주의 터를 지킬 것인가, 분노한 보도국 조합원들을 이끌고 10층 사장실로 올라갈 것인가?’ 그때 정영하 선배가 한 말.

 

박성호 앵커는 MBC 보도국 사람들이라면 선후배고 좌우를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가 해고를 당했으니, 기자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가 클 것입니다. 누군가 고통에 울부짖을 때, 남은 이들이 그 아픔을 외면한다면, 공동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조는 가장 억울하고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싸우는 곳입니다.”

 

박성제 기자가 쓴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를 보면, MBC 사장과 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갈린다. MBC 사장은 자리 구걸하느라, 정치권에 줄 대고, 청와대 불려가서 쪼인트 까이고, 후배를 자르기까지 하며 지키는 자리고, 노조 위원장은 누구도 하려 들지 않아, 다른 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하고 책임감 투철한 선배가 가는 자리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선배가 회사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의 복직 판결이 났는데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나는 참을 수 있다. 해고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을 들고 함께 MBC로 돌아오는 날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사타구니에서 방울소리가 날 정도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MBC 정문 앞에 서서 외칠 것이다.

 

정영하 위원장님, 만세!” 딸랑 딸랑~ ^^

 

 MBC 정영하 위원장을 비롯한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장재훈 정책교섭국장, 김민식 부위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인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에서 신동진 아나운서가 정 위원장을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
ⓒ 유성호

(사진 : 유성호 @ 오마이뉴스)

5년 전 이렇게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군요. 영화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신고

'공짜로 즐기는 세상 > 2017 MBC 파업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MBC 정상화, 줄탁동시의 시간  (9) 2017.06.24
시간관리, 오컴의 면도날  (10) 2017.06.11
보고 싶다, 정영하  (15) 2017.01.24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  (10) 2017.01.23
어느 겁쟁이의 고백  (10) 2017.01.10
죽지 않아, 마봉춘  (20) 2016.12.09
Posted by 김민식pd

저는 겁이 참 많습니다.

눈 큰 사람이 겁이 많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딱 그래요.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가봐요. 눈에 뵈는 게 없으면 무서울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라는 영화가 개봉합니다. MBC와 YTN의 해직언론인 사태를 다룬 영화예요. 전주영화제에서 영화를 먼저 본 후배가 그러더군요.

"선배님 모습이 영화에 자주 나와요."

스크린에 내가 나온다니, 궁금했어요. 어떤 모습일까? 2012년 MBC 170일 파업 당시, 노조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회사에서 정문을 봉쇄한 일이 있습니다. 기자들 못 들어오게 막으려고요. 명색이 언론사가 기자들의 출입을 봉쇄한 겁니다. 진실을 알리기위해 성역없는 보도를 추구해야할 언론사가 정작 자신의 회사는 문을 걸어 잠그다니, 그때 정말 화가 났어요.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아, 이들은 정말 염치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요.

기자들을 회사안으로 들이기 위해 조합 집행부에서 사다리를 가져왔어요. 사다리를 철문에 걸쳐서 문밖 기자들의 손을 잡고 월담을 합니다. 그때 제가 철문에 올라가 씩 웃으면서 V자를 그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무슨 수업 땡땡이치고 월담하는 개구쟁이처럼 나옵니다. 영화에서 제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그랬어요. '저때 참 많이 무서웠나보네...'

파업을 하면서 늘 무서웠습니다. 대학 다닐 때, 데모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제가 노조 부위원장이라고 앞줄에 서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겁먹은 기색이 드러날까봐 더 웃었습니다. 포식자들은 사냥감에게서 공포의 냄새를 맡습니다. 겁에 질린 티가 나면 잡아먹혀요. 저들에게 쫄은 티를 내지 않으려면 웃으면서 싸워야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무섭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상상력이 커지고, 상상력이 클수록 겁은 더 납니다. 온갖 비관적 시나리오가 다 떠올라요. 그렇게 겁많은 제게, 검찰이 2번이나 구속 영장을 청구하고, 재판에서 징역 2년을 구형했으니, 오죽 쫄았겠어요. 

영화를 보니, 이명박근혜 정부 치하에서 해고된 언론인이 물경 스무명이 넘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크린을 채웁니다. 구호를 외치고, 몸싸움을 하고, 낙하산 사장에게 대거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저 사람 속으로는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마음이 착잡합니다. 사람들이 물어요.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예고편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함께 봤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에는 가장 쉬운 해답이 숨어있거든요.

교육을 살리고, 검찰과 국정원을 개혁하고, 경제 정의를 되살리고...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언론사 낙하산 사장 방지법 제정입니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섭니다.

신고

'공짜로 즐기는 세상 > 2017 MBC 파업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고 싶다, 정영하  (15) 2017.01.24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  (10) 2017.01.23
어느 겁쟁이의 고백  (10) 2017.01.10
죽지 않아, 마봉춘  (20) 2016.12.09
공포영화에서 살아남는 법  (10) 2014.11.04
보고싶다, 정영하  (0) 2014.10.14
Posted by 김민식pd

2016-219 살아갑니다 (권성민 글 사진 그림 / 오마이북)

 

96년, 제가 MBC 입사했을 때, TV PD는 공통 직군으로 함께 뽑았습니다. 15명을 뽑아놓고 6개월간 교양 예능 드라마 3개 파트를 돌린 후, 수습이 끝날 때 각자의 희망 업무를 물었어요. 주위에서는 제가 교양 피디 지망인줄 알았어요. 분위기가 약간 골방 샌님같아서 그런가봐요. ^^   

수습하면서 보니까, 예능국 선배들이 다 참 좋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이 강하고,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어요. 무엇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타인의 개성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요. '난 이런데, 넌 그러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런지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는 분위기. 이런 조직이라면 '나'라는 개인으로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능국에 온 후에도, '너는 어쩐지 편성이나 교양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술담배나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고, 혼자 책 읽는 걸 더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저는 저같은 코미디 피디도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든 예능 피디가 외향적이고 개방적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칩거형 딴따라도 있어야지요.

가끔 예능국 후배를 보면서, '저 녀석은 교양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권성민 피디가 그렇지요. 권성민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MBC 파업이 끝나고 몇 달 후였어요. 당시 '정직 6개월' 징계중이라 노조 집행부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는데 어떤 신입 사원이 연락을 했어요. "선배님,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잘 생긴 청년 하나가 와서 고민 상담을 했어요. 파업 이후,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뉴스나 제작 프로그램이나 너무 낯설다고. "제가 오고 싶었던 MBC는 이런 회사가 아닌데요, 선배님." 참 미안했어요. 저는 MBC가 좋았던 시절을 다 겪었는데, 이 친구는 입사하고 보니 이 상태인겁니다. "좋은 시절 보내고 나니, 이런 날도 오더라. 이런 날도 잘 버티면 또 좋은 시절이 오지 않을까?"

그 친구가 '오늘의 유머'에 글을 올리고('나는 엠병신 PD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만화로 그렸다가 (예능국 이야기)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어요. 입사 3년차에 졸지에 해직 피디가 된 권성민은 자비로 세월호 영상을 만들고 뉴스타파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연출했어요. 그를 보면서, 새로운 영상 세대의 도래를 느꼈어요. 저는 기껏해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후배는 웹툰으로, 영화로, 유튜브 영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미디어를 만들더군요. '이런 놀라운 신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권성민의 에세이를 읽으며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내 기억 속의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한무더기씩 가져다주신 이면지를 쌓아 놓고, 버릇처럼 밥상을 끌어안고 앉아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무언가를 그려대곤 했다. 상상하고 싶은 게 많았다. 머릿속에는 늘 이야기로 가득했고, 어린 키만큼 쌓여 있던 이면지는 늘 부족했다.

자랄수록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이면지 시절부터 계속된, 버릇처럼 그린 만화는 어느새 친구들의 손을 타고 교실을 넘어 다니며 탐독되고 있었다.

인터넷을 처음 접한 즈음부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설을 썼다. 아직 집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시간만 나면 PC방으로 달려갔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사용 시간이 1분씩 줄어드는 것을 보며 서둘러 한 편을 마무리 짓고는 했다. 내 소설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이메일을 받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시간을 들여 읽어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의 만화와 소설은 재능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 연극이 되고, 콘서트가 되고, 뮤지컬이 되고, 영화가 되었다. 내 머릿속, 내 손끝에서 나온 이야기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한결같이 황홀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학을 졸업하고 예능 PD가 되었다. 그리고 꼬박 3년을 채운 뒤에 그 이름을 빼앗겼다.'

(168~169쪽) 

 

 

요즘의 2,30대들은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를 잘 갖고 놉니다. 그들이야말로 좋은 피디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재주 많은 세대가 하필 재수 없는 시대를 만났어요. 제가 피디가 된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입사한 1996년에는 1년에 피디를 15명씩 뽑았어요. 98년 IMF가 터지고, 비정규직 바람이 일고, 신입 정규직 공채는 규모가 팍 줄었어요. 요즘은 아예 사라진 형국... 제가 피디가 된 비결은 딱 하나예요. IMF 터지기 전에 입사한 거... 

운 좋게 좋은 회사에 들어와 20년 가까이 녹을 먹었으니, 저는 갚아야 할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조 집행부도 하고 파업도 하고 그랬어요. 권성민은 한 해 2,3명 뽑는 시절에 힘들게 MBC 입사했습니다. 다닌지 3년도 안 된 친구가 이렇게 많이 갚을 줄 몰랐어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친구에게 선배님이란 소리를 듣고 산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오늘의 유머'에 그가 올린 글도 그랬어요. 많은 MBC 선배들을 부끄럽게 만든 글이지요. 그가 올린 글 뒤에 많은 선배들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겼어요. 그 어린 친구가 선배들을 대신해 사죄하고, 선배를 대신해 징계를 받았어요.

 

책의 부제가 '나를 버티게 하는 청춘의 조각들'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어쩌다보니 후배의 문장으로 버티는 못난 선배가 되었군요. 아름다운 청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글 속에서 오늘 하루도 버팁니다.

 

'그저 나 즐거운 대로만 사는 건 재미가 좀 덜한 것 같고, 몸도 마음도 덜 가난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산다. (중략)

이 책은 내 서른 젊음의 기록이자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말빚을 확인시키는 채무이행각서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생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그 발자취를 기억하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는 날이 올까?(중략)

그냥 흘러가버리는 순간이 어디 있을까. 글 한 편 한 편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듯, 발끝만 보며 걷는 걸음걸음이 모여 어딘가에 이르듯,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조차 차곡차곡 쌓여 삶을 이루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또 하루를 그냥 힘껏 살아가는 것뿐이다.'

(위의 책 294쪽) 

신고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건 누구의 인생이지?  (3) 2016.11.03
공부가 취미가 되는 삶  (3) 2016.11.01
나를 버티게 하는 후배의 문장들  (7) 2016.10.31
주말엔 꿈꾸는 독서  (2) 2016.10.29
아오리를 먹는 오후  (4) 2016.10.28
그 섬에 가고 싶다  (5) 2016.10.21
Posted by 김민식pd

 

친구들을 만나면 묻는 질문이 있다.

드라마 피디는 시청률이 대박나면 월급 더 받는 거냐?”

아니. 시청률이 30%5%든 받는 월급은 큰 차이가 없어.”

 

드라마 PD처럼 성과가 눈에 보이는 직업도 없다. 시청률로 모든 게 판가름 난다. PD로 살면서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스트레스다. 나의 업무 성과를 주위 사람이 다 안다. 앞집 아저씨가 회사에서 일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사업이 잘 되는지 안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 드라마의 시청률은 뉴스로 뜬다. 망하면 주위에서 다들 안타까워한다. 시청률이 안 나와서 혹 월급이라도 깎이는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 PD들의 급여가 성과연봉제가 아닌 것은 다행이다. 성과와 보상을 연동한다면, 안전하게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막장 드라마만 연출하려고 할 테니까. 경쟁이 치열한 시간대에는 아무도 들어가려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새로운 포맷이나 장르에 도전하는 피디가 없어질 테니까.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률이 더 나온다고 월급을 더 달라고 하는 건, 시청률이 낮을 때 월급을 깎아도 좋다는 얘기거든? 창의력이 중요한 조직에서 시청률과 급여를 연동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네가 시청률 올릴 자신이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드라마가 대박 나고 호평을 받으면 굳이 월급을 더 받지 않아도 이미 행복하다. 오히려 돈이 필요한 건 드라마가 쪽박 났을 때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거나 집에 틀어박혀 술이라도 마시려면 돈이 든다. 시청률이 잘 나오면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행복하지만, 망하면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우울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회사에서 월급을 깎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몇 년 전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인 임승수 선생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상적인 사회를 버팔로 사냥으로 먹고 사는 100명의 인디언 마을로 비유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나씩 창을 들고나가 버팔로를 사냥한다. 모두들 창을 던지지만, 버팔로를 맞히는 건 그중 서너 명이다. 그렇게 잡은 버팔로 고기를 100명이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인디언 하나가 나선다.

매번 버팔로를 맞히는 건 난데, 왜 내가 너희들이랑 고기를 나눠먹어야 하지? 이건 불공평하잖아. , 안되겠다. 지금부터 각자 창에 이름 써. 그래서 버팔로에 꽂힌 창에 이름 적힌 사람만 고기 먹기.”

 

이제 새로운 룰을 가지고 사냥에 나간다. 버팔로를 맞힌 사람은 배 터져라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쫄쫄 굶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버팔로를 한 번도 맞히지 못해 결국 굶어죽는 사람이 나온다. 100명이던 마을은 70명이 되고, 다시 50명이 된다. 50명이 사냥을 나가면 예전처럼 버팔로를 몰기도 힘들고 창을 던져도 한두 개 맞은 버팔로는 그대로 달아나버린다. 결국 마을 사람 모두가 굶어죽는다.

 

나는 PD 사회야 말로 100명의 인디언 마을이라고 생각한다. 성과가 잘 나올 때도 있고, 또 안 나올 때도 있다. 버팔로를 잡을 때도 있고, 놓칠 때도 있다. 100명 중 저성과자 30명을 추려내도, 남은 70명 중에서 다시 저성과자는 나온다. 저성과자가 나온다는 것은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기보다 어쩌면 조직의 문제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고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못한 탓이다. 조직 관리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패에 대한 포용이다. 빗맞아도 다음 사냥에 나가 다시 창을 던져야 한다. 성과가 좋지 않다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건, 실패의 경험에서 배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

 

어린 후배들이 보기에, 세상이 살만 하다고 느끼는 건 빌빌하던 선배가 자신에게 딱 맞는 기회를 만나 펄펄 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있어야 모두에게 희망이 있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내쳐지고, 성공을 반복하는 자만이 기회를 얻고, 승자 역시 실패하는 순간 버려지는 세상이라면, 그곳이야말로 지옥이다.

 

창의 산업에 있어 성과에 대한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의 용인이다. 실패에 너그러운 조직만이 도전 정신을 키우고, 창의성과 협업을 기른다.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성과연봉제다. 지금 정부는 지하철, 철도, 공공의료, 금융 등 공공부문에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미친 짓이다. 2008년 미국의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들은 위험한 파생상품을 팔아온 직원들에게 높은 성과급을 주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한국 정부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한 결과 벌어진 것이 세월호 사건이듯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위기는 일을 안 해서 나타는 게 아니라 너무 열심히 일한 탓에 나타난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대공황이 찾아오듯이.

 

지난 정부도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4대강 사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녹조의 창궐을 불러왔다. 이번 정부도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미르 재단이며 K 스포츠 재단을 속도전을 밀어붙이더라.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게 탈이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삽질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잠시 삽질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게 낫다. 쉬운 해고와 성과연봉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에게 권하노니, 부디 휴식을 좀 취하시라. 그대들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탈이다.

 

신고

'공짜로 즐기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책 선물 받으실 분!  (201) 2016.12.29
호호호, 메리 크리스마스!  (53) 2016.12.24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탈이다  (10) 2016.10.19
이야기꾼의 노후대책  (2) 2016.10.12
지름신 퇴치용 퇴마술  (7) 2016.10.06
왕따도 즐거운 세상  (17) 2016.09.13
Posted by 김민식pd

더운 여름 한 달, 자전거 출근을 쉬었습니다. 올림픽 중계 기간 동안에는 야근할때 힘들까봐 전철로 다녔습니다. 날이 선선해지기를 기다리다 며칠 전 다시 자전거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첫날 늦잠을 잤어요.

눈뜨고 보니 5시 50분, 서둘러 길을 나섰어요. 오전 7시 반 교대인데, 늦겠네요. 한강 자전거 도로를 타고 상암까지, 갈 길이 먼데 지각이라니... 밤을 새워 가뜩이나 피곤한 야근자 볼 면목이 없습니다. 어서 가서 교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둑어둑한 새벽 거리를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 달립니다. 그 와중에 문득, '분명 오전 5시에 알람을 설정했는데 왜 알람이 안 울렸지?' 이상했어요. 그러다, '어? 이거 혹시 꿈 아냐?' 하다가 깨어버렸어요. 손을 뻗어 휴대폰을 더듬어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20분... 아, 이놈의 개꿈...

 

전날 저녁, 간만에 자출(자전거 출퇴근) 준비를 하면서 라이트에 밧데리를 간다, 회사 가서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챙긴다, 한창 부산을 떨었거든요. 그랬더니 이런 개꿈을 다 꾸는군요.

예전에는 야외 촬영 전날에 꼭 잠을 설쳤어요. 눈만 감으면 머릿속에서 촬영 콘티가 펼쳐집니다. '첫 커트를 인물 바스트샷으로 시작할까? 크레인 부감 풀샷이 낫지 않을까?' 눈꺼풀 위로 촬영콘티가 수십번씩 바뀝니다. 그러다 잠들면 꼭 개꿈을 꿉니다. 촬영장에 나갔더니 콘티 대본이 없는 거죠. 모든 배우와 스탭들이 나만 쳐다보는데 첫 커트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몰라서 허둥대다 깹니다. 들어보니 드라마 작가들은 꼭 방송 첫주에 컴퓨터 하드가 날아가서 중반까지 써놓은 대본이 날아가는 꿈을 꾼답니다.

 

늦잠을 잤다고 생각했을 때, 무척 당황했어요. 저와 교대하는 야근 근무자가 피디 수첩의 한학수 피디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동료입니다. 조금이나마 일찍 가서 교대를 해야하는데... 한학수 피디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미안함이지요. 얼마전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다가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나라인가보다. 황우석 사건 보도 같은 대단한 일을 해낸 피디조차 방송 제작 대신 스케이트장 운영 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다니 말이다. 탁월한 피디가 남아돌거나 또는 시민들의 생활체육을 극도로 중시하는 것이리라.'

라는 대목을 만났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한학수 피디나 현업에 복귀하지 못한 MBC 기자들이나, 다 저처럼 촬영 전날이면 설레어 밤잠도 설쳤겠지요. 그런 이들이 파업에 동참했다고 5년 가까이 일터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저는 죄책감에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운동을 합니다. 한강을 하루에 50킬로씩 걷기도 하고, 북한산을 오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그렇게 몸을 혹사시켜야 밤에 뒤척이지 않고 잠들 수 있어요.

어쩌면 매일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현실을 잊어보려는 시도일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엔 현실을 잊을 수 있고, 자전거 핸들을 잡는 동안에는 고민할 틈이 없거든요. 지난 과거를 후회할 틈도, 다가올 미래를 걱정할 틈도. 지금 내 눈앞의 도로에, 지금 내 앞의 책장속 글귀에 집중합니다.

 

문유석 판사의 페이스북을 읽다가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의 추천글을 봤습니다.

2016-195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 창비)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인생에도 답은 보이지 않네요. 아니 어쩌면 답을 못 찾고 방황하는 게 우리네 인생일지 몰라요. 인생에 답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버티는 것 뿐이지.

책을 읽으면서, 글 한 줄 한 줄에 위로를 받습니다. 또박또박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마음 속에서 쿵쿵 울립니다.

 

그래요, 저도...

계속해보겠습니다.

버티는 싸움도, 기왕에 내 인생이라면, 

계속해보겠습니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정직중인 기러기 아빠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가. 네, 혼자 잘 놀면서 보냅니다. 감기로 앓아 누워있기에는 가을 하늘이 너무 이쁘니까요. 아침에 일찍 집에서 나왔어요. 8시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해섭니다. 영화광이라 1년에 100편 정도 영화를 보는데, 거의 조조로 봅니다.

 

어제는 스텝업4 레볼루션을 봤어요. MBC 후배가 추천해준 영화였거든요. 전형적인 댄스 청춘영화입니다. 가난한 웨이터지만 댄서의 꿈을 꾸는 남자가 발레를 하는 부잣집 딸을 만나 사랑을 하는 이야기, 네, 딱 그림 나오죠. 어찌보면 내용도 없고 오로지 음악에 춤만 추는 영화인데 후배가 추천한 이유는 플래쉬몹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6개월간 파업을 하면서 우리도 'MBC 프리덤'을 가지고 서울역에서, 잠실 롯데월드 앞에서, 광화문에서, 홍대 정문 앞에서 플래쉬몹을 벌였거든요.

 

 

http://youtu.be/Bl3JhUmOSc4  서울역 플래쉬몹

 

스텝업에서는 플래쉬몹을 레볼루션이라고 부릅니다. 감히 혁명이라니요. 하긴, 우리도 봄에 춤을 추며 세상을 바꾸려고 했었죠. 괴로운 6개월의 장기 파업 춤추고 노래하며 이겨보려 했죠. 하지만 여야합의를 믿고 올라간 조합원들, 8월 한 달이 다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고, 그동안 김재철 일당은 피디수첩 작가 전원 해고에 불만제로 불방에 아이템 검열에 외려 보복의 칼춤만 추었죠. 

 

영화를 보고 나와 서울 대공원으로 갔어요. 동물원에 가 홍학과 기린에게 인사한 후, 산림욕장으로 향합니다. 저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산책코스를 좋아합니다. 3시간 동안 혼자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아침에 본 영화의 내용을 복기해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세상을 바꾸겠다고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또다시 즐거운 기획 아이템이 떠올랐습니다. (곧 블로그를 통해 공개할 겁니다~)

 

 

사색의 숲에서 이런 저런 생각~ '그래, 사장을 바꾸겠다고 춤을 췄는데, 사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다시 춤을 춰야지. 나갈 때까지 춤을 추는 거야. 인디언 레인메이커처럼.'

 

 

 

선선한 가을의 초입에 계곡 바위에 앉아 집에서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습니다. '가을을 즐기러 왔으니 진짜 가을을 즐겨야지.'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테니까~ 그래요, 다시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합니다. 아내가 싱가폴에서 해외 파견 근무중이라 가끔 아이들을 보러 싱가폴에 갑니다. 갈 때마다 그래요. '한국에서 태어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싱가폴은 적도 바로 위에 있어 사계절이 따로 없어요. 백화점 안에 들어가면 가을이고 나오면 뜨거운 여름이고 그렇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건 큰 복이에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빨리 빨리 옷도 새 옷 갈아입고 이불도 새로 내고 그렇게 움직이다보니 한국 국민이 이렇게 부지런한가봐요. 자, 나는 다시 가을축제를 즐기러 갑니다.

 

 

 

어제 동물원 축제무대에서는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동호인의 날 행사가 열렸어요. 관악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회였죠. 아바의 히트곡 메들리를 관악으로 연주한 군포 윈드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흥겨웠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주제곡을 편곡한 베누스토 윈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즐거웠어요. 지휘자가 해적 모자를 쓰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 동호인들로 이루어진 멤버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무료 공연이 있어 즐거운 세상, 바로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국제관악제는 대부분 무료공연이니 가을 하늘 아래 흥겨운 브라스밴드의 연주를 즐기실 분들은 아래 싸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w2012.windband.or.kr/  아마 다음주 일요일의 가을 축제는 혼자 소래포구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서 여의도 너른들판에서 펼쳐지는 마칭밴드 연주회 관람으로 마무리할 것 같네요.

 

 

 

어제 하루 영화 5000원, 동물원 3000원, 교통비 2000원, 토탈 만원으로 나홀로 가을 축제를 즐겼습니다. 항상 짠돌이로 사는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이유는? 돈을 들여 즐기는 향락만 누리다보면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올 수 없거든요. 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지,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번 한 주, 즐거운 축제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삶은 하루하루가 축제의 연속이니까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기원하는 흥겨운 굿판을 벌이러 나갑니다. 재처리 몰러 나간다~ 훠어이, 훠어이! ^^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