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MBC 파업이 끝나고, 회사로부터 정직 6개월에 대기발령, 교육 발령 등 각종 징계에 시달리던 시절, 예능국 선배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당시 JTBC에서 일하던 주철환 선배가 그러셨어요.

민식아, MBC에서 버티지 말고 나와. JTBC에 오면 프로그램 할 수 있어.”

선배의 고마우신 제안을 저는 농담조로 받았어요.

아이고, 선배님. 중앙일보에서 저 같은 노동조합 집행부 출신 PD를 받아줄까요?”

“JTBC에 온 사람 중에도 과거 노조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 누가 홍석현 회장에게 그걸 알렸더니 홍회장이 그랬대.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류인지, 이류인지 그것만 봅니다.’”

저는 일류가 아니라 힘들 것 같다고 눙쳤습니다. MBC에서 핍박을 당하며 살지언정 종편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세월호 정국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며, JTBC 뉴스는 종편 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했고요. MBC 뉴스는 급전 추락하여 기레기뉴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JTBC 뉴스의 화려한 비상은, 일류 중의 일류, 손석희라는 걸출한 언론인 덕분이지요.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쓴 <손석희 저널리즘> (정철운 / 메디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왜 나는 손석희의 저널리즘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무모한 짓을 감행해야만 했던가.

개국 이후 시청률 · 영향력 · 신뢰도에서 모두 바닥 수준이었던 한 방송사가 한 사람의 보도책임자를 영입한 뒤, 3년 만에 동시간대 메인뉴스 시청률 · 영향력 · 신뢰도 · 선호도 1위를 싹쓸이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있을까. 미디어담당 기자인 내가 JTBC와 손석희에 주목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손석희 저널리즘> 4)

 

정철운 기자는 손석희 저널리즘의 출발선이 신군부 부역방송 아나운서라고 말합니다. 198738일은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고 외치며 분신을 시도한 노동자 표정두 씨가 사망한 날입니다. 그날 MBC <뉴스데스크>의 첫 꼭지 주인공은 흑두루미입니다. 리포트 제목은 흑두루미의 번식과 이동에 대한 생태 조사”, 앵커는 손석희였고요.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MBC1988년 방송사상 첫 파업을 벌이고 공정 방송 쟁취 투쟁에 나섭니다. 1990년 노조 집행부로서 농성에 나서던 손석희 아나운서는 당시 이런 말을 합니다.

부끄럽게도 역사의 반복을 믿는 우리는 6월 민중항쟁에 무임승차했다는 원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싸움의 몸짓을 계속해야 한다.”

 

최장기 파업을 마친 후, 1992<>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손석희는 노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왜 노조를 하는가,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고만 해도 노조 활동은 불가피합니다. 이게 우리 방송 현실의 비극인데, 거기에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한다는 우리 직업의 특수성이 더해집니다. 노조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선택이지요.”

 

(위의 책 45)

 

언론인으로서 손석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손석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인터뷰인데요, 그 무기가 강력한 이유는, ‘이 인터뷰로 출세나 이득을 바라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음으로써 언론인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얻은 것이지요.

 

JTBC가 손석희를 영입한 계기는 무엇일까요? MB의 방송 장악 이후 지난 몇 년간, 지상파 3, 종편 4, 보도채널 2사 등 총 9개 채널의 뉴스의 톤이 다 똑같았어요. 2012년의 대선 결과는 5248이었으나, 9개의 방송은 모두 52만 대변하고 있었던 거지요. 48에 속했던 사람들은 아예 뉴스를 안 보거나, 대안 방송을 찾거나, 팟캐스트로 옮겨 갔어요. 이런 상황에서 48을 대변하는 방송이 나온다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때 김재철 이하 MBC 경영진은 라디오 최고 시사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 제작진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모멸감을 줍니다. JTBC가 이때 손석희를 부릅니다. 망가진 MBC에서 나오라고. JTBC는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했기에 손석희를 영입한 게 아니라,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자본의 속성상 일류 언론인 손석희를 스카웃한 겁니다. 그 결정이 대박으로 이어졌고요.

 

정철운 기자는 2012MBC 노조의 170일 파업을 취재했고 이후 MBC 내부 구성원들의 싸움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가 책 끝에 남긴 김장겸 사장에 대한 평가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20173월 새 사장으로 선출된 김장겸은 김재철 체제에서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맡은 인물로, 그의 등장은 극우 보수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해온 MBC의 존속을 의미했다. 김장겸 MBC 체제의 최종 목적은 MBC 정상화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이 MBC를 욕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의 책 262)

 

촛불 혁명 이후 많은 시민들이 MBC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3대 적폐 세력 중 하나로 지목된 언론, 그중에서 지난 5년 가장 큰 나락의 수렁에 빠진 MBC,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안에서 싸움이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합니다. 바깥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신군부 시절, 부역 앵커로 일했다는 부끄러움이 손석희 저널리즘의 출발선입니다. MBC에는 지난 5년 동안 비제작부서로 좌천되고 유배지를 떠돌며 망가진 방송을 지켜봐야 했던 기자, 피디, 아나운서가 100명이 넘습니다. 이제 이들이 방송 현장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고, 이들이 현업으로 돌아온다면, 5년 후, 10년 후, 우리는 100명의 손석희를 얻을 것입니다. MBC의 싸움을 지켜봐주십시오. 반드시 이기고 돌아가겠습니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저는 심한 활자 중독이라, 읽을 거리가 없으면 불안 장애가 옵니다. 화장실에서 가서, 읽을 게 없으면 비데 사용법이라도 읽습니다. ^^ 전철 타고 책을 읽다가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면 불안해집니다. '도착하기 전에 다 읽으면 어떡하지?' 항상 책을 두 권씩 가지고 다니는데요, 문제는 장기 여행 다닐 때입니다. 최소 스무권은 필요한데 그걸 다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전자책 리더기를 애용합니다. 리더기에는 수백권을 넣어 다녀도 부담이 없으니까요.

 

여행을 떠나기 전, 항상 전자책 서점에 들러 책을 채워넣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뭘 좀 읽어볼까?'
'한국 소설이 좋아서'라는 무료 이북이 있기에 덥썩 골랐습니다. 보통 무료 이북은 체험판이 많은데, 이 책은 통째로 공짜입니다. 만세! (공짜에 환장하는 짠돌이.^^)

 

한국 소설이 좋아서 (장강명 기획/50인 공저) 


한국 소설을 소개하는 50인의 리뷰를 모은 책인데요. 누가누가 더 재미난 소설을 찾아내나, 누가누가 더 맛깔난 글로 독자를 유혹하나. 글쟁이들의 진검승부를 보는 재미가 있어요. 흥미진진한 한 판 대결입니다. 이 멋진 향연을 공짜로 즐기다니 황송할 지경인데요, 이 책이 무료로 나온 사연이 있어요.

장강명 작가는 공모전 당선작인 소설 <댓글부대>로 '오늘의 작가상'을 또 받았는데요. 한 작품으로 상금을 두 번 받기 민망했다네요. 상금을 의미있는 작업에 쓰기 위해 내놓습니다. 그리고 재미난 한국 소설을 소개하는 서평을 모읍니다. 50명의 작가, 독서가, 서평가들에게 원고를 받아 모은 것이 이 무료 전자책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읽고 싶은 한국 소설이 마구마구 늘어납니다. 전자책에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휴대폰에 한 권 넣어두고 짬짬이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독서에 대한 구미를 제대로 당겨주는 책이에요.

 

여행을 떠나기 전, 제가 원하는 건, 힘들고 지루할 때, 펼치면 빠져들 수 있는 킬러 콘텐츠입니다. 믿고 보는 작가의 책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전자책으로 구매한 것이 장강명 작가의 신작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위즈덤하우스)

 

작년에 나온 책이지만 아껴두고 있었어요. 탄자니아 여행 가서 읽으려고. 음,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제가 애정하는 작가 둘이 만났군요. 장 강명과 리 차일드의 만남. 영화로도 몇번 소개된 '잭 리처' 시리즈는 액션 장르 소설입니다. 완전 무결하고 냉철한 살인기계가 곤경에 처한 여자를 구하기위해 악당들을 처단합니다. 영화보다 소설이 백 배 더 뛰어난 작품입니다.


전 리 차일드의 팬이에요. 그가 소설가가 된 과정을 존경합니다. 영국 방송사에서 일하다 구조조정을 당한 후, 문방구에 가서 펜과 원고지를 삽니다. 나이 마흔에 쓴 첫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전설 같은 작가지요.

저는 또, 장강명의 팬입니다. 그가 소설가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존경합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책의 리뷰가 올라옵니다. 거의 하루에 한 권을 읽는 것 같은데요. 작가로서의 루틴이 확실합니다. 자신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장강명 작가는 후기에서 주인공 이름 장리철은 잭 리처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힙니다. 저는 이렇게 대놓고 하는 팬질을 좋아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거든요. 장강명의 액션 스릴러 소설이라! 매일 새로운 책을 읽고, 매년 새로운 소설을 내놓으며,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부지런한 작가님이 있어, 오늘도 행복합니다. 

장강명, 만세! ^^

 

장강명 작가에 대한 이전 리뷰 두 편도 함께, 올립니다.

2016/01/02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2016-1 열광금지, 에바로드

2016/01/09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2016-5 한국이 싫어서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정해진 미래 (조영태 / 북스톤)

 

저자인 조영태 교수 (인구학자)에 따르면, 10년 후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 인구학이랍니다. 1955~74년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매년 90~100만 명씩 출생했어요. 지난 30년 사이 출생아가 4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위태롭답니다. 앞으로는 학교 입학 아동이 줄어 학교와 교사가 남아돌게 됩니다. 직업 안정성과 연금이라는 이점 때문에 장래 희망이 '교사'라는 아이가 많은데요. 중등 독일어 교사는 2008년 이후 전국에서 1명도 선발하지 않았어요. 서울대 사범대학 독어교육과에서는 매년 15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말이지요. 교직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요?

 

'지금이야 의사나 변호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치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중략)

현재 활동하는 의사와 변호사들의 주축은 40대와 50대 초반이다. 이들이 언제까지 의사와 변호사를 할까? 60대? 70대? 현재의 40~50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사는 데다, 노후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므로 쉽게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은퇴가 있는 노동시장은 윗세대가 꾸준히 빠져나가면서 신규 세대가 진입할 수 있는데, 의사나 변호사처럼 은퇴가 없는 노동시장은 빈자리가 나지 않는 한 신규세대가 들어갈 길이 없다.' 

(위의 책 82쪽)

 

의사나 변호사의 특징은 교육 기간이 길고 학비도 비싸다는 점입니다. 요즘엔 로스쿨이나 의대를 보내려면, 초등학교부터 사교육비를 쏟아부어야합니다. 아이들 사교육에 소득을 모두 쓴 사람과 그 돈으로 노후를 준비한 사람, 앞으로 둘 사이 노후 생활의 질은 극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부모가 가난해도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아이의 진로에 온 가족이 판돈을 올인한 도박을 하는 셈입니다. 도박은 판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유리한 게임이구요. 지금 사교육 시장은 가진 자들이 판돈을 올리고, 중산층이 빚을 내어 쫓아가는 판이거든요? 이 판이 과연 공정한 게임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대학 신입생이 급격하게 줄면서 문을 닫는 지방 사립대도 나올 겁니다. 지방대가 문을 닫으면 그곳의 4,50대 교수들은 다시 수도권 대학이나 공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겠지요. 교수직 경쟁이 더 치열해집니다. 지금 미국 유학중인 아이들이 국내에 돌아오는 10년 후, 십년 넘게 들인 유학비용을 뽑을 수 있을까요? 상황이 이런데 미국 박사 만드는데 유리하다고 초등학교 부터 1년에 1억을 들여 조기 유학을 보내야 할까요?

 

조영태 교수는 우리나라는 산아 제한 계획을 너무 오래 시행했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인 2.1명이 된 1983년에 일본이 겪고 있는 인구변화 추이를 봤다면 아마 그때 가족계획을 중단했을 것이다. 바로 이웃한 나라가 우리의 20년 후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지 않았다.'

(201쪽)

 

요즘 저는 '노후파산' '2020 하류노인이 온다' 등, 일본의 가난한 노인 문제를 다룬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노인이  20년 후,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사교육 투자보다 노후 대비가 더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고요.) 

어려서 저는 의대를 가라는 아버지의 강권에 이과를 갔는데요. 적성도 안 맞고 성적도 모자라 결국 공대에 갔습니다. 20대 시절, 많이 힘들었어요.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밤에 입시반 학원을 다녀 외대 통역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기쁜 마음에 아버지께 낭보를 전하러 갔더니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래, 공부를 하니까 되지 않니. 지금이라도 재수하고 수능 봐서 한의대를 가면 어떻겠니? 한의사는 정년이 없으니 나이 40에 졸업해도 된단다."

 

그 순간, 정말 좌절했어요.

'아, 의사가 되지 못하면 나는 평생 아버지 눈에 못난 자식이구나...' 오히려 그 후,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어차피 무엇을 하든, 아버지 눈에는 안 찰 테니, 그냥 내가 좋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부모의 소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 본인의 적성과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현직에 계신 교사나 의사, 변호사들은 괜찮습니다. 그분들은 지금까지 익힌 노하우와 시장에서 차지한 점유율로 오래 버틸 수 있으니까요. 다만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 미래에 의사 변호사 교사가 못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의 천직이 교직, 의사, 법률가라 믿고, 또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나 법대, 교대에 갈 수 있는 아이라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세가지 직업이 못 되었다고 아이를 패배자 취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책의 제목은 '정해진 미래'이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바뀝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더 행복하기를 꿈꾸는 부모님들께 권합니다.

'정해진 미래 - 인구학이 말하는 10년 후 한국 그리고 생존전략'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혼자를 기르는 법 (김정연 만화 / 창비)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을 읽었어요. 주인공 이름이 '이시다'입니다. 아버지가 딸을 낳고 이름을 짓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존대하게 만들 거다!

훌륭한 분 - 이시다!!!

현명한 자 - 이시다!!!

귀한 몸 - 이시다!!!

나라님에게나 어울리는 귀한 이름이다!!!'

딸에게 '이시다'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빠.

'넌 아비처럼 무시당하고 살면 안 돼. 모두가 스스로를 낮추고 너를 높이게 될 거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성을 빼고 이름만 부릅니다.

"시다씨! 우체국 좀 다녀와!"

"시다씨, 샘플 어디에 뒀어?"

"시다씨, 이거 복사 좀."

ㅠㅠㅋㅋㅋ

(시다는 한때 미싱사 보조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시다-바리, 下(した)-' 일본어로 '시다'는 아래거든요.  "내가 니 시다바리가?"하는 영화 '친구' 대사에서 보듯, 아랫사람, 졸병, 부하를 뜻합니다.)

 

딸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 이 대목을 읽으며, 딸 가진 아빠의 딜레마가 떠올랐어요. 모든 아빠는 딸을 귀하게 키우고 싶어합니다. 딸들이 커서 세상으로 나가면 그 딸을 귀하게 대접하는 건 세상의 몫이지 아빠의 몫이 아니에요.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주인공은 혼자 서울에 자취하러 상경합니다. 자취방을 구할 때, 동네 가로등은 밝은지, CCTV 카메라는 많이 설치되어 있는지 꼼꼼하게 따집니다. 그럼에도 늦은 밤, 골목에서 못된 놈들을 만나 봉변당하는 건 피할 길이 없네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딸을 귀하게 키워도,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 길이 없어요.

 

카페의 패브릭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생리혈이 터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 망부석이 되어가는 에피소드, 남자로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입니다. 전 독서의 가장 큰 효용이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3월 8일,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딸 가진 아빠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딸이 일터에서 평등한 기회를 얻으려면 직장 내 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고요. 딸이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보호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딸이 훗날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늘어나야 하고요.

 

딸의 이름을 아무리 귀하게 지어도, 불러주는 사람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처럼, 딸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느낀 교훈이 있어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거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더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육아라고 믿습니다.

둘째가 학교에서 받아온 햄스터를 2년 넘게 키웠기에, 만화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순간이 많았어요. 이 작가, 위트와 재치가 장난 아닙니다. 간만에 정말 유쾌한 만화를 봤네요.

만화만큼 재미난 작가의 인터뷰도 강추합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sehoi-park/story_b_10825142.html

 

신고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만권 독서에 도전해보자!  (10) 2017.03.23
지속가능한 즐거움  (3) 2017.03.16
혼자를 기르는 법  (9) 2017.03.08
사표를 쓰기 전에 해야 할 일  (15) 2017.03.02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3) 2017.02.23
로보파이낸스의 시대  (3) 2017.02.22
Posted by 김민식pd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 책을 좋아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다 2번 이상 언급되는 책이 있으면 한번 찾아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다른 경로로 두번 추천받았다는 것도 나름의 인연이거든요.

 

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 김미형 / 엘리)

 

아주 유쾌하게 읽었습니다. 일본 명문대를 나와 아사히 신문에서 기자로 평생을 일하던 저자가 어느날 '아프로 헤어'를 한 후, 인생이 조금씩 꼬여가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정답만을 추구하며 살다, 어느날 뒤집어쓴 아프로 헤어 가발에 주위 사람들이 즐거워합니다. '어라 이런 게 웃기나? 그럼 아예 이 참에 헤어스타일을 바꿔봐?' 아프로 헤어를 한 후, 거리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저랑 친구해 주실래요?" 엉뚱한 장난 끝에 발견한 삶의 재미!


'어쩌면 행복이란, 노력 끝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의외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게 아닐까요?'

(10쪽)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이어가다, 나이 50에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 기자직을 걷어차고 나옵니다. 아, 멋지네요, 이런 삶.

저는 2년 전, 비제작 부서로 좌천했어요. 평생 PD로 살 줄 알았는데... '전국의 시청자들이 내가 만든 드라마를 본다!' 는 재미로 살았는데, 더이상 피디가 아니라니, 이제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그냥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자... 그래서 매일매일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올렸는데... 어라? 이게 또 은근히 재미있는 겁니다. 연출이라는 직함에 목을 매면 회사가 하는 모든 인사 행위가 징계가 되어버리지만, 전업작가의 꿈을 꾸는 블로거로 산다면, 이 시간은 오히려 자기계발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인생은 결국 내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이니까요.)  

책의 저자, 에미코 아줌마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본사에서 근무하다 어느날 섬으로 유배를 갑니다. 싱글 엘리트 직장 여성으로 도시에서 살던 그가 어느날 시골로 좌천되는데요. 신문사의 경우, 지방 총국에도 데스크가 필요한데, 가족이 딸린 유부남 중년 기자보다 혼자 사는 노처녀 기자가 만만했겠지요. 자세한 사연은 나오지 않지만 책을 읽다보면 비혼 여성으로 사는 어려움이 만만찮게 느껴집니다. 그는 그렇게 타의에 의해 내려간 시골 생활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나섭니다.

'당시의 나는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에 무척 진지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나를 '유배 보낸' 인간들에게 '날 물 먹였다고 생각하지? 천만의 말씀! 난 요렇게나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하고 말해주고 싶은 쪼잔한 심경 때문이었습니다.' 

(49쪽)


 
아, 팍팍 찔립니다. 나만 쪼잔한 게 아니군요.^^ 언젠가부터 미친듯이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렇게 팔자 좋게 살아도 되나?' 나름 필사적으로 노력중입니다. PD라는 직함이 없어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요.

 

20년 넘게 MBC에서 일하면서 선배님들이 정년 퇴직 후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녹화장에서 출연자들을 호령하며 살던 감독님들이 어느날 정년퇴직을 하자 힘들어하시더군요. 나이 50, 아직 새로운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시기에, 퇴직 이후를 준비할 기회를 갖게 되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작 현장에서 연출로 살다 은퇴해도 좋겠지만, 지금처럼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 역시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퇴직을 할 거니까요.  

 

퇴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책에서 읽은 가장 귀한 충고는,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라는 것입니다. 월급의 노예로 사는 한, 회사에서 어떤 부당한 처우를 해도 입을 닫고 견디며 살 수 밖에 없어요. 전 이걸 첫 직장에서 사표를 던지던 스물 다섯에 깨달았습니다.

92년에 첫 직장에 들어간 후, 첫 달부터 매달 꼬박꼬박 월급의 반은 저축을 했습니다. 그때 읽은 재테크 책에서 배웠거든요. '월급 다음날 저축을 먼저 하고,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살아라. 절대 신용카드는 쓰지 말고, 할부로 물건 사지 말고.' 그렇게 모은 돈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든든한 뒷배가 되었어요. 빚이 있으면 세상의 노예가 되고, 저축이 있으면 자유인으로 살 수 있어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 돈 없이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믿어야, '퇴사하겠습니다!'하고 외칠 수 있어요. (제 인생 가장 통쾌한 순간 중 하나가 첫 직장에서 사표를 던질 때였어요. ^^) 

 


'퇴사하겠습니다' 
퇴사를 꿈꾸는 분들보다 오히려 '회사 인간'으로 사는데 너무 익숙한 분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평생 정답만 쫓다가는 회사 인간으로 살게 됩니다. 퇴직 이후 우리는 정답이 없는 세상을 만나요. 어쩌면 노후란, 가족 부양의 책임에서 벗어난 가장이, 아이 양육의 부담을 벗은 주부가 자신만의 오답을 찾아가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통해, 그날 이후를 미리 살펴보는 기회를 가지시길.

 

책이 참 좋은게요, 내가 직접 하기엔 힘들 일도, 다른 이의 경험을 통해 대리체험을 할 수 있거든요. 저자가 힘들게 얻은 깨달음은 덤으로 따라오고요. 재미와 의미,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건 그래도 독서가 최고 아닌가 싶어요. ^^
신고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속가능한 즐거움  (3) 2017.03.16
혼자를 기르는 법  (9) 2017.03.08
사표를 쓰기 전에 해야 할 일  (15) 2017.03.02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3) 2017.02.23
로보파이낸스의 시대  (3) 2017.02.22
아르바이트의 시대  (5) 2017.02.21
Posted by 김민식pd

2016-241 기하급수 시대가 온다 (살림 이스마일 등 / 이지연 / 청림출판)

 

2013년에 어떤 이가 아르헨티나의 세차장 매출을 살펴보니 10년간 50퍼센트나 감소했대요. 경제가 나쁜 것도 아니고, 고급 차량 판매도 꾸준히 증가세인데, 왜 세차장 이용은 줄었을까? 세차장 매출에 영향을 줄 외부적 제도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알아보니,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데이터가 증가한 덕분에 10년 동안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50% 개선되었습니다. 비가 올 것을 아는 운전자들은 당연히 세차를 건너뛰었고, 그러다보니 세차장을 찾는 횟수도 줄었다는 거지요. 이처럼 정보화된 환경 변화로 인해 전통적 산업들에게 파괴적 혁신이 임박했답니다. 

다음소프트의 송길영 부사장은 책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들의 꿈이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면 합격자 발표 후 수험생들 앞에는 두 가지의 비극이 놓이게 되는 셈입니다. 불합격자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고, 합격자는 매우 젊은 나이에 꿈을 이루게 된 것이죠. 이때 인생의 단계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꿈을 이룬 자는 이후 동기가 부여되기 어렵기 때문에 미래에 특별한 희망을 품지 못하고 세월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IMF 이후 고용안정성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부모 세대는 너나없이 '평생 직장에다 연금까지 보장되는 공무원이 최고야'라고 말합니다. 지금 현재의 불안을 30년 후, 직업인으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투영합니다. 어린 나이에 평생의 진로를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 지 알 수가 없으니,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됩니다. 

 

'볼드'의 저자, 피터 디아만디스는 서문에서 '6D', 즉 디지털화 Digitized, 잠복기 Deceptive, 파괴적 혁신 Disruptive, 소멸화 Dematerialize, 무료화 Demonetize, 대중화 Democratize를 이야기하는데요.

'어떤 기술이든 일단 디지털화되고 나면 성장 잠복기에 들어간다. 기하급수적 성장의 초기에는 아주 작은 숫자를 계속 두 배씩 키워봤자 (0.01, 0.02, 0.04, 0.08) 그냥 다 '0'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하급수 곡선이 일단 무릎 지점을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두 배씩 10번만 하면 1000배가 된다. 두 배씩 20번이면 100만 배, 30번이면 10억 배가 된다. 이런 급격한 성장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파괴적 혁신'이다. 어떤 기술이 파괴적 혁신을 겪고 나면 '소멸화'된다. 우리는 더 이상 GPS 장비나 캠코더나 손전등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모두 다 스마트폰의 앱 형태로 '소멸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멸화되고 나면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는 '무료화'된다. 우버는 택시를 무료화했고 온라인 중고 장터는 신문사의 지면 광고를 무료화했다. 이 모든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대중화'다. 30년 전에 10억 명의 고객에게 연락하려면 100개국에 직원을 가진 코카콜라나 GE쯤 되어야 했다. 하지만 작업실로 개조한 창고에 앉아 몇몇 대형 플랫폼에 앱만 올리면 누구라도 수십억 인구와 접속할 수 있다. 전 세계 인류와 연락할 방법이 대중화된 것이다. (...)

다가올 새로운 세상처럼 기술을 똑똑하게 활용하고, 새로운 것에 빠르게 적응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변화해야만 할 것이다. 

그 비전이 바로 '기하급수 기업'이다.'

기하급수 기업을 만들고 키우는 열쇠는 디지털 문화에 친숙한 20대에게 달려있습니다. 청년들의 창업과 취업을 돕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지요.

'살림 이스마일이 대기업 CEO들에게 권하는 사항 중 하나는 회사에서 가장 똑똑한 25세 청년을 찾아내서 그림자 리더 역할을 시키라는 것이다. 세대 격차와 기술 격차를 줄이고 경영의 학습곡선을 끌어올려주고 역멘토링을 해줄 수 있게 말이다. 지금은 젊은 리더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시장의 움직임에 대처해야 하는 새로운 기술의 세상에서는 우리가 늘 정의해온 경험이라는 것이 회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구글 자동차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유다시티의 CEO 서배스천 스런은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직원을 채용할 때는 경험보다는 상상력을 훨씬 중시한다."

(276쪽)

구글, 에어비앤비, 테슬라, 샤오미... 순식산에 기업가치 1조 이상이 된 기업들, 그들은 무엇이 다를까요? "소유하지 말라! 접근하고 공유하라!"고 책은 말합니다.  앞으로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보여주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비용은 0에 수렴하고,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책을 읽으면서 현기증을 느꼈어요. 기술의 발전이 정말 빠르군요. 며칠 전에 만난 배우는 극장에 영화 관객이 줄어 걱정이라는 얘기를 하더군요. '영화보다 현실 정치가 더 자극적이어서 그런 거 아닌가? 드라마 작가들도 요즘 걱정이야. 정치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라서...' 그랬는데요. 정치적 현안 말고도 영화 산업을 위협하는 게 또 있다는군요. 지금의 10대, 20대는 2시간 동안 스마트폰에 접속하지 못하면 힘들어한대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은 즐거우나, 2시간 동안 SNS에 접속하지 못하는 건 불안을 야기한다고...

스마트폰을 통해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면서 세차장의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앞으로 영화나 공연 산업의 최대 경쟁자는 스마트폰에서 울려대는 알람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입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위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기하급수적 성장을 보이는 미래형 인간일 것입니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2016-219 살아갑니다 (권성민 글 사진 그림 / 오마이북)

 

96년, 제가 MBC 입사했을 때, TV PD는 공통 직군으로 함께 뽑았습니다. 15명을 뽑아놓고 6개월간 교양 예능 드라마 3개 파트를 돌린 후, 수습이 끝날 때 각자의 희망 업무를 물었어요. 주위에서는 제가 교양 피디 지망인줄 알았어요. 분위기가 약간 골방 샌님같아서 그런가봐요. ^^   

수습하면서 보니까, 예능국 선배들이 다 참 좋았어요.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이 강하고,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어요. 무엇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타인의 개성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요. '난 이런데, 넌 그러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런지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는 분위기. 이런 조직이라면 '나'라는 개인으로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능국에 온 후에도, '너는 어쩐지 편성이나 교양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술담배나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고, 혼자 책 읽는 걸 더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저는 저같은 코미디 피디도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든 예능 피디가 외향적이고 개방적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칩거형 딴따라도 있어야지요.

가끔 예능국 후배를 보면서, '저 녀석은 교양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권성민 피디가 그렇지요. 권성민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MBC 파업이 끝나고 몇 달 후였어요. 당시 '정직 6개월' 징계중이라 노조 집행부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는데 어떤 신입 사원이 연락을 했어요. "선배님,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잘 생긴 청년 하나가 와서 고민 상담을 했어요. 파업 이후,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뉴스나 제작 프로그램이나 너무 낯설다고. "제가 오고 싶었던 MBC는 이런 회사가 아닌데요, 선배님." 참 미안했어요. 저는 MBC가 좋았던 시절을 다 겪었는데, 이 친구는 입사하고 보니 이 상태인겁니다. "좋은 시절 보내고 나니, 이런 날도 오더라. 이런 날도 잘 버티면 또 좋은 시절이 오지 않을까?"

그 친구가 '오늘의 유머'에 글을 올리고('나는 엠병신 PD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만화로 그렸다가 (예능국 이야기)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어요. 입사 3년차에 졸지에 해직 피디가 된 권성민은 자비로 세월호 영상을 만들고 뉴스타파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연출했어요. 그를 보면서, 새로운 영상 세대의 도래를 느꼈어요. 저는 기껏해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후배는 웹툰으로, 영화로, 유튜브 영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미디어를 만들더군요. '이런 놀라운 신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권성민의 에세이를 읽으며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내 기억 속의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한무더기씩 가져다주신 이면지를 쌓아 놓고, 버릇처럼 밥상을 끌어안고 앉아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무언가를 그려대곤 했다. 상상하고 싶은 게 많았다. 머릿속에는 늘 이야기로 가득했고, 어린 키만큼 쌓여 있던 이면지는 늘 부족했다.

자랄수록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이면지 시절부터 계속된, 버릇처럼 그린 만화는 어느새 친구들의 손을 타고 교실을 넘어 다니며 탐독되고 있었다.

인터넷을 처음 접한 즈음부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설을 썼다. 아직 집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시간만 나면 PC방으로 달려갔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사용 시간이 1분씩 줄어드는 것을 보며 서둘러 한 편을 마무리 짓고는 했다. 내 소설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이메일을 받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시간을 들여 읽어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의 만화와 소설은 재능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 연극이 되고, 콘서트가 되고, 뮤지컬이 되고, 영화가 되었다. 내 머릿속, 내 손끝에서 나온 이야기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한결같이 황홀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학을 졸업하고 예능 PD가 되었다. 그리고 꼬박 3년을 채운 뒤에 그 이름을 빼앗겼다.'

(168~169쪽) 

 

 

요즘의 2,30대들은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를 잘 갖고 놉니다. 그들이야말로 좋은 피디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재주 많은 세대가 하필 재수 없는 시대를 만났어요. 제가 피디가 된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입사한 1996년에는 1년에 피디를 15명씩 뽑았어요. 98년 IMF가 터지고, 비정규직 바람이 일고, 신입 정규직 공채는 규모가 팍 줄었어요. 요즘은 아예 사라진 형국... 제가 피디가 된 비결은 딱 하나예요. IMF 터지기 전에 입사한 거... 

운 좋게 좋은 회사에 들어와 20년 가까이 녹을 먹었으니, 저는 갚아야 할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조 집행부도 하고 파업도 하고 그랬어요. 권성민은 한 해 2,3명 뽑는 시절에 힘들게 MBC 입사했습니다. 다닌지 3년도 안 된 친구가 이렇게 많이 갚을 줄 몰랐어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친구에게 선배님이란 소리를 듣고 산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오늘의 유머'에 그가 올린 글도 그랬어요. 많은 MBC 선배들을 부끄럽게 만든 글이지요. 그가 올린 글 뒤에 많은 선배들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겼어요. 그 어린 친구가 선배들을 대신해 사죄하고, 선배를 대신해 징계를 받았어요.

 

책의 부제가 '나를 버티게 하는 청춘의 조각들'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어쩌다보니 후배의 문장으로 버티는 못난 선배가 되었군요. 아름다운 청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글 속에서 오늘 하루도 버팁니다.

 

'그저 나 즐거운 대로만 사는 건 재미가 좀 덜한 것 같고, 몸도 마음도 덜 가난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산다. (중략)

이 책은 내 서른 젊음의 기록이자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말빚을 확인시키는 채무이행각서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생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그 발자취를 기억하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는 날이 올까?(중략)

그냥 흘러가버리는 순간이 어디 있을까. 글 한 편 한 편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듯, 발끝만 보며 걷는 걸음걸음이 모여 어딘가에 이르듯,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조차 차곡차곡 쌓여 삶을 이루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또 하루를 그냥 힘껏 살아가는 것뿐이다.'

(위의 책 294쪽) 

신고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건 누구의 인생이지?  (3) 2016.11.03
공부가 취미가 되는 삶  (3) 2016.11.01
나를 버티게 하는 후배의 문장들  (7) 2016.10.31
주말엔 꿈꾸는 독서  (2) 2016.10.29
아오리를 먹는 오후  (4) 2016.10.28
그 섬에 가고 싶다  (5) 2016.10.21
Posted by 김민식pd

2016-215 아오리를 먹는 오후 (김봄 / 민음사)

 

'아오리를 먹는 오후'는 폭주족, 가출 청소년, 히키코모리 소년, 원조 교제를 하는 문제아 등이 나오는 소설집입니다. 주인공은 어른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힘든 아이들이지요. 이런 아이들을 현실에서 만나면 이해가 안 갈 것 같아요. '얘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살까?'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양재천을 지나 백운호수까지 갔어요. 도중에 과천과학관을 지나가는데, 도로변에 고등학생 남자애들 셋이 앉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평일 오전 10시에 쟤들은 학교 안 가고 뭘하는 거지?' 하다 '아!' 하고 깨달았어요. 학교에서 과학관에 체험 활동 온 겁니다. 과학에는 흥미가 없으니 몰래 빠져나와 핸드폰 게임으로 시간을 죽이는 거예요. 정말 안타까웠어요. 국립 과천과학관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생물의 진화며 우주의 신비며 온갖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지요. 천체투영관에 비스듬히 누워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볼 때면 거의 황홀경에 빠져들어요.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스크린을 통해 우주 비행을 체험할 수 있는데, 고작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니...

'아오리를 먹는 오후'를 읽으면 요즘 시대 아이들의 삶을 대리체험하게 됩니다. 하나하나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그들의 처지가 보입니다. 좋은 소설은, 타자의 삶을 생생하게 구성하여 그들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좋은 작가는, 우리 시대 약자들의 목소리로 소리내어 이야기할 줄 알아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데에는 실질적으로 필연적인 이유도 없으며 그것이 곧 삶의 내용을 구성할 수는 없다. 막연한 강요와 규율에 의해 학습이 행해진다. (중략)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집 밖을 떠돌며,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야말로 진짜 반성을 하고 주체를 찾아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들은 주어진 환경과 역할이 아니라 자신이 찾은 고민과 갈등 가운데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세상이 이렇게 다른 궤도와 언어를 쓰는 아이들을 받아들이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략) 아이들의 어리광을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법도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언제나 이 세상에 존재한다. 외면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셈이다.'

(282쪽 작품해설 중)

책을 보고 느꼈어요. 이 아이들은 지금 맹렬하게,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구나. 동정없는 세상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다시 과학관 앞 삼총사를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와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비슷한 게 아닐까요?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현실을 벗어나 책 속의 타자가 됩니다. 게임을 하는 순간, 아이들은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기적을 행하지요. 제가 현실을 잊고자 허구의 세계로 망명하듯, 아이들도 게임속 가상현실로 유체이탈을 시도하는 거지요.

책을 읽고 난 후, 시야가 조금, 아주 조금 넓어졌어요. 고등학생 아이의 손에 들린 담배에 줌인했던 시선에서 다시 앵글을 키워, 그 아이가 살아가는 현실이 봅니다. 아이가 싸워야할 세상이 보이네요. 

'응, 그래. 너도 많이 힘들구나. 우리 둘 다 서로 힘내자.'

우리 시대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을 응원하는 작가님께 감사드려요. 덕분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넓어졌네요. 고맙습니다.

신고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버티게 하는 후배의 문장들  (7) 2016.10.31
주말엔 꿈꾸는 독서  (2) 2016.10.29
아오리를 먹는 오후  (4) 2016.10.28
그 섬에 가고 싶다  (5) 2016.10.21
내 꿈의 놀이터, 공공도서관  (7) 2016.10.20
내 안의 음란 마귀  (6) 2016.10.17
Posted by 김민식pd

2016-212 내 안의 음란마귀 (김봉석, 현태준 / 그책)

 

독서가 취미입니다. 책 읽는 습관은 국어 선생님인 어머니 덕에 길렀어요. 집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단편문학선이 있었거든요. 책을 읽게 된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었어요. 바로 제 안의 '음란마귀' 말입니다.

 

중학생 시절, 소설에서 야한 장면을 찾아읽는게 재미있었어요. 한국 현대 소설 중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 많았거든요. 아슬아슬한 묘사를 읽으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요. 그 시절에 신문 연재 소설들은 또 왜 그리 야하던지! 인터넷도 없던 시절, 야한 소설을 읽으면서 성적 호기심을 채웠어요. 

야한 대목을 하도 자주 읽어서 책을 펼치면 바로 야한 장면이 딱 나와서 화들짝 놀랐던 적도 많아요. 고등학교 올라가서 야한 이야기의 보물창고를 발견합니다. 바로 무협지지요... 만화방에 틀어박혀 무협지를 즐겨읽었어요. 야한 만화의 경우, 누가 볼까 민망한데 활자로 가득한 책을 보고 있으면 뻔뻔해지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그림보다 글자가 더 야하다는 것을. 그렇게 활자중독자가 되었지요.

 

책만 읽던 제가 영화광이 된 것도 음란마귀(?) 덕분입니다. 고3 때 학력고사를 마치고 딱히 놀러갈 곳이 없어 울산대학교 앞에 가서 놀았어요. 시내는 어른들의 놀이터고, 대학가는 왠지 어른과 청소년 사이의 중간지점 같았어요. 1987년 겨울, 울산의 대학가 카페에서는 야한 비디오를 틀어줬어요. 그때 '엠마뉴엘 부인' 시리즈와 일본의 로망 포르노를 처음 보았지요. 신세계가 열리더군요. 어두침침한 카페 구석 쇼파에 앉아 하루에 영화 3~4편씩 보았으니...

그 시절, 저는 영상의 세례를 받았어요. 그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로리타' '시계태엽 오렌지'같은 걸작을 보았습니다. 당시엔 그냥 야한 영화인줄 알았지, 명작인줄 몰랐어요. ^^

 

부모님이 부부교사다보니 금기시되는 게 많았어요. 만화도 안 되고, 오락실도 안 되고. 어른이 된다는 건 부모님이 쳐놓은 금기의 영역을 하나하나 깨는 작업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모르잖아요?

어린 시절, 책벌레이던 제가 춤에 빠지고, 영화에 빠지면서 날라리 딴따라가 되었지요. 그 덕에 저는 피디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찾았습니다. 그냥 책만 읽었다면, 내 속에 이렇게 다양한 재미를 향한 욕심이 숨어있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김봉석 현태준 두 아재의 거시기하고 거시기한 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 안의 음란마귀'를 읽으며 어린 시절 추억에 빠졌습니다. '아, 그 시절, 그렇게 성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건 나 뿐만이 아니구나... 내가 특별히 음란한 건 아니었구나...' ^^ 다른 사람의 일탈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네요.

 

 

요즘도 저는 극장에 야한 코미디 영화가 개봉하면 혼자 보러 갑니다. 사람들이 쳐다보지요. '중년의 변태가 혼자 야한 영화 보러 왔구나...' 저는 타인의 시선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우선이지요.

'내안의 음란마귀'를 읽으며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죄도 아니라고요. 치명적 사랑을 다룬 소설, '데미지'에 대해 김봉석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흔히 사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하여 사랑에 빠져든다고도 하고, 죽음의 순간을 대리 경험하기 위해 섹스에 탐닉한다고도 한다. 자신에게 절실하기만 하다면, 어떻게든 무엇에든 넘어가도 괜찮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하고 나서 엄청나게, 죽고 싶을 만큼 후회할지라도 가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사랑도, 섹스도 피하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이 낫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면 망설이게 되니까. 그다음 어귀가 보이니까 굳이 가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니까. 그래서 소설 '데미지'를 40대 중반에 읽었을 때 더욱 공감했다. 그 남자가 왜 빠져드는지 이해가 됐다. 그걸 알고 싶다면, 직접 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직접 경험하는 것 말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세상에는 있다. 어떤 작품들도 그렇다. '데미지'도 그렇다.'

(위의 책 108쪽) 

 

저는 문화평론가 김봉석 선생님의 책을 좋아합니다. 세상에 재미난 것들을 추천해주십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꼭 찾아보세요. 제가 최근 몇 년 추리 소설 읽기의 재미에 푹 빠진 건, 다 김봉석 선생님 덕분입니다.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일단 해보고 볼 일입니다. 어떤 일이 재미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르니까요.

신고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섬에 가고 싶다  (5) 2016.10.21
내 꿈의 놀이터, 공공도서관  (7) 2016.10.20
내 안의 음란 마귀  (6) 2016.10.17
누가 감히 청년수당을 막는가?  (8) 2016.10.11
공생과 협력이 답이다  (4) 2016.10.04
오키나와 독서일기  (5) 2016.10.02
Posted by 김민식pd

'명견만리', KBS 다큐 제작진이 방송을 토대로 만든 책인데요. 만리 앞을 내다본다는 뜻으로, 관찰력이나 판단력이 매우 정확하고 뛰어남을 이르는 말입니다. 제1권에서는 인구와 경제 문제등을 다루는데요. 앞으로 취업은 갈수록 힘들 것 같습니다.

책에 나오는 폭스콘의 사례가 인상적이었어요. 직원 수가 120만명에 이르고 연매출이 140조 원에 달하지만, 회사의 노동 실태는 열악합니다. 주당 6일, 하루 14시간 넘게 일해도 월급이 35만원도 안 된답니다. 몇년 전 폭스콘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이 보도에 나온 적이 있었지요. 이처럼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 환경을 못 견디자, 폭스콘은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하기 시작합니다. 중국 선전시의 한 공장에서는 로봇을 도입한 후, 생산 라인 하나당 직원 수가 8명에서 2명으로 줄었고 공장 전체로 봤을 때 3000명이던 직원 중 2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답니다. 인건비가 가장 싸다는 중국에서도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한다는 것,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일까요?

 

기업의 매출 증대가 노동자 복지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 경제 연구소에서 우리나라 2000대 기업의 성장률을 분석했더니, 이들 기업이 올린 총 매출액은 2000년 815조 원에서 2010년 1711조 원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날 만큼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일자리는 얼마나 늘었을까? 156만 명에서 161만 명으로, 겨우 5만 명 늘었을 뿐이다. 임금 역시 해마다 증가하는 생산성에 비해 얼마 오르지 않아 임금과 생산성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성과가 노동자에게 배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견만리 1권' 전자책 37%)

성장의 낙수효과는 허구이고, 고용 없는 성장이 이미 고착화하고 있어요. 저 통계도 2000년부터 10년간의 일이라는 겁니다. 2010년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자본과 노동의 격차가 더 심화되었는데 말이지요.

이제 기업의 이윤 독식 구조는 바뀌어야합니다. 지금 방식은 지속가능하지가 않아요. 노동자가 사라지고 로봇이 그 자리를 채운다면, 기업이 생산한 물자를 사 줄 수 있는 소비자도 사라집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공멸이 시작되는 거지요. 자본과 노동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해야 합니다.

기업은 앞으로 노동자를 자동화 기계나 정보화 기기,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나 로봇으로 대체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고가 용이하도록 제도를 바꿔야하지요. 이번에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이 바로 기업의 요구에 부응한 겁니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노동자를 자본가 입맛대로 부리고 자를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마저 없애는게 성과 연봉제의 도입입니다.

노동조합은 약한 노동자 개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조직입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지키고,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지킵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노력을 존중할 줄 아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건강한 노동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본가를 꿈꾸고, 건물주를 꿈꾸며 살지만, 결국 우리는 노동자로, 세입자로 살아갑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우리 자신의,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니까요.

 

 

'진화론적으로도 혼자서 살아남은 개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승자독식이 이득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공생과 협력이 더 큰 파이를 나눠 갖게 한다. (중략)

인간은 바로 그 '공존의 진화'의 증거다. 인간이 다른 개체와 달리 엄청난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공존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난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독재와 독식의 시대가 번영을 가져다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여 그런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더라도 인간은 다시금 협력의 시대를 만듦으로써 위기를 돌파해왔다. 인간이 만들어낸 자본주의 역시 그렇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진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위기를 극복해왔다. 그리고 이제 자본주의는 또 다른 생태계로 진화할 때가 되었다.'

('명견만리 제1권' 전자책 48%)

 

자본주의의 미래, 공생과 협력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자본의 독주를 멈출 수 있는 노동자들의 연대,

철도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신고

'공짜 PD 스쿨 >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의 음란 마귀  (6) 2016.10.17
누가 감히 청년수당을 막는가?  (8) 2016.10.11
공생과 협력이 답이다  (4) 2016.10.04
오키나와 독서일기  (5) 2016.10.02
언어 없는 삶  (5) 2016.09.21
진화하는 '원숭이 자본론'  (4) 2016.09.07
Posted by 김민식pd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