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SF라는 장르를 좋아해서 SF 번역가로 일했던 나로서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정말 반갑다. 예전에 조선에서 왔소이다라는 환타지 시트콤을 연출한 적이 있는데, 연출력이 부족했는지, 흥행에 참패를 겪었다. 시청률 저조, 제작비 초과, 광고판매 부진의 PD 삼거지악을 저지르고, 방송 4회만에 종영 결정이 내려져 12부작인데 7부에서 막을 내렸다. 당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MBC에서 당신이 가장 연출료가 비싼 피디인거 알아? 1년 동안 시트콤 일곱 편 만들었으니까, 편당 연출료로 따지면 1천만원이 넘는 셈이잖아.” 아내의 농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타임슬립 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 ^^ 

 

친구들을 만나면 내게 묻는 질문이 있다. “드라마 피디는 시청률이 대박나면 월급 더 받는 거니?” “아니.” 급여가 성과연동제가 아니라면 사기 진작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다. 그럼 꼭 이렇게 얘기해준다. “시청률 더 나와서 월급 더 받아야한다는 건 시청률이 낮을 때 월급을 깎아도 좋다는 얘기거든? 창의력이 중요한 조직에서 시청률과 급여를 연동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급여체계가 아니란다.” “네가 시청률 올릴 자신이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친구들의 이런 반응,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는 피디 사회는 버팔로 사냥으로 먹고 사는 100명의 인디언 마을이라 생각한다. 그 마을에는 모두가 창을 하나씩 들고나가 버팔로를 잡아서 먹고 산다. 100명이 버팔로를 몰아서 다 같이 창을 던지면, 3~4개의 창이 버팔로를 맞히고 그래서 잡은 고기를 100명이 나눠먹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인디언 하나가 나서서 이렇게 얘기한다. “매번 버팔로를 맞히는 건 난데 왜 내가 너희들이랑 고기를 나눠먹어야 하지? 이건 불공평하잖아. , 안되겠다. 지금부터 다들 창에 각자 이름 써. 그래서 버팔로에 꽂힌 창에 이름 적힌 사람만 고기 먹기.”

 

, 새로운 보상 체계를 적용시켜 사냥에 나간다. 버팔로를 맞힌 사람은 배 터져라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쫄쫄 굶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그동안 버팔로를 한 번도 맞히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다. 100명이던 마을 사람은 70명이 되고, 다시 한 달이 지나면 50명이 된다. 50명이 사냥을 나가면 예전처럼 버팔로를 몰기도 어려워지고 창을 던져도 한두 개 맞은 버팔로는 그냥 달아나버린다. 결국 마을 사람 전원이 굶어죽게 된다.

 

나는 PD가 버팔로를 잡는 인디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맞힐 때도 있고, 놓칠 때도 있다. 중요한건 그럼에도 사냥에 나가 창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성과가 좋지 않다고 사냥에서 아예 배제하는 건, 실패의 경험에서 배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 어린 후배들이 보기에도 그렇다. 인생이 살아볼만 하다고 느끼는 건 극적인 역전도 가능할 때다. 좀 빌빌하던 선배도 자신에게 딱 맞는 기획을 만나면 펄펄 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어린 후배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내쳐지고 성공도 반복하는 사람만이 기회를 얻는 세상이라면, 그런 정글에서 즐겁게 일하는 보람은 없다. 승자도 패자도 다 같이 불안한 세상이 될 테니까.

 

드라마 나인을 보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이 나온다. 만약 내게 그런 향이 있다면 10년 전 조선에서 왔소이다.’가 쫄딱 망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10년 전 죽을 것같이 괴로워하던 나에게 이렇게 말해줘야지. “너무 자책하지 마.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10년 후에야 유행하고 심지어 그 중에는 대박 드라마도 나온단다. 그리고 살다보면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오니까 웃으며 버텨.”

 

동료들이 나눠주는 버팔로 고기를 얻어먹으며 하는 생각. ‘언젠가는 나도 버팔로를 맞히는 날이 올 테니, 일단 오늘은......... 감사히 먹겠습니다!’

 

(PD 저널 연재 칼럼 '김민식 피디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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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얼마전 단식 농성을 했다. 시작하고 처음 3일이 가장 힘들었다. 끼니때만 되면 배는 맹렬하게 꼬르륵 거리며 빨리 먹을 걸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때 예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수십만년 동안 수렵채취를 통해 진화해 온 인류가 수십년 사이에 일어난 문명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나온 게 비만이다. 수렵채취민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 다음 끼니가 생길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것이 생겼을 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여분의 열량은 온 몸 구석 구석에 지방으로 축적하는 것을 진화의 수단으로 삼아 인류는 생존해왔다.

 

냉장 기술과 운송수단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수십년 내 생긴 일이다. 수십만년 동안 영양빈곤의 환경 속에서 진화해 온 몸의 유전자는 영양 과잉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배고프다고 엄살을 부린다. 현실과 몸의 괴리가 비만을 낳았다.'

 

단식을 하면서 온몸의 감각 기관이 내게 음식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칠 때마다 이렇게 달랬다. '안 죽는다, 걱정 마라. 넌 아직도 수렵채취로 살던 원시인의 자세를 버리지 못했구나. 이젠 우리도 문명인답게 살아보자꾸나.'

 

어제 '세상을 바꾸는 시간'을 통해 꿈꾸는 유목민이라는 김수영씨의 '쫄지마 질러봐 될거야'란 강연을 보았다. 여자 혼자서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며 사는 모습에 '멋지다!' 하고 감탄하다가도 '근데 막상 민지가 나중에 저렇게 살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들었다. 이런 게 딸을 둔 아빠의 이중성인가?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과잉 보호도 문명의 발달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6~70세였던 시절에는 자식들이 20대가 되면 가정을 꾸리고 30대가 되면 자리를 잡아야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들의 독립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현대의 부모들이 지금도 자식들에게 20대 취직과 30대 자수성가를 종용하는데, 죄송하지만 이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취향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20대에 빠른 취직을 택한다면, 남은 60년이 두고 두고 괴롭다. (직장 생활하는 30년도 괴롭고, 퇴직하고 전문가로 살아야하는 30년도 괴롭다.) 안정적인 직장보다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조건보고 대충 30세 전후에 결혼했다가 평생 후회하는 수가 생긴다. 예전에는 직장에 매여살던 남자들이 55세에 정년퇴직하면 얼마 못가 이승에서는 작별이었다. 성격 안 맞아도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이제는 퇴직하고 집에서 삼시 세끼 챙겨달라며 30년을 더 산다. 생각만 해도 눈이 깜깜해서 4,50대에 이혼이 느는 거다. '조금만 참고 살아.' 이런 얘기 함부로 못한다. 40대라고 해도, 50년을 더 참고 살라는 말인가? 자식이 결혼이 늦다고, 혹은 이혼했다고 인생의 낙오자나 실패자라 생각하는 것도 시대착오다. 90까지 사는 인생에서, 40에 배필을 만날 수도 있고, 50에 새 출발 할 수도 있는거지!  

 

모든 아이들이 비슷비슷한 장래 희망에 '공무원이 최고야!'를 외치는 세상, 이거 우울하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이던 시절은 전쟁 직후 1950년대 보릿고개 시절, 꼬박 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으로 작용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2050년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100년 전 기준으로 성공을 종용하다니. 굶어죽을 걱정이 없어졌는데도, 꼬박 꼬박 배고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위장의 명령에 복종하다 비만으로 외려 수명을 줄이는 것처럼, 수명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빠른 취직에 목매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평생을 허비하는 것도 비극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나는 아이에게 좀더 실패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고 여지를 주는게 자식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 죽기 전에 저 놈 인간 되는 꼴 봐야하는데, 마냥 손 놓고 살 수는 없지!' 한다면, 생각 고쳐드시기 바란다. 평균 수명 대로만 살아도 90살이다. 부모가 90에 죽어 자식이 60세가 다 되었는데도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한다면, 그게 어디 부모탓이겠는가? 지 탓이지.

 

20대에 취직하지 못한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부모가 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추구하느라 나이 마흔에도 자신의 꿈이 무언지 모르고 사는 것이다. 30대에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부모의 잣대에 맞춰 사람을 찾느라 20대에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보는 일이다.  과잉보호가 아이의 독립을 막는다. 아이에게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 그게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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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치새를 잡는건 마음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라는 걸 기억해."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대사다. 새총을 선물로 받은 딸에게 변호사인 아빠가 하는 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새를 잡는 건 괜찮지만, 그 바람에 죄없는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피하라는 뜻이다. 초등학생인 우리 민지의 필독서인데, 웬지 대한민국 검사님들이 꼭 보셔야할 책 같다. ^^  

 

 

 

딴따라 우파의 노조 위장취업기 2. 딴따라와 여검사

 

그러니까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12년 5월 21일, MBC 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전원 기각되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장재훈 교섭쟁의국장, 그리고 나는 유치장에서 기각 소식을 들었다. 사실 나는 영장 실질 심사 과정을 지켜보며 영장 기각을 기대하고 있었다.

 

구속을 촉구한 검사 기소 이유 중 압권은 권재홍 앵커 자해공갈 사건이었다.

 

"며칠 전 MBC에서는 노조원들의 불미스러운 폭력사건이 있었습니다. 5월 16일, 방송을 마치고 퇴근하는 권재홍 앵커를 기자 4~50명이 가로막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권재홍 앵커가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권재홍 앵커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뉴스데스크 진행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조합원들의 폭력사태를 방조한 데는 노조 집행부의 책임이 큽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대한민국 검찰의 무공이 경천동지할 수준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심지어 조합원이 쏜 '장풍'을 폭력의 증거로 내놓는 수준이었단 말인가!

 

노조 측 변호사가 바로 나섰다. "지금 검사님이 말씀한 사건의 진실을 알기란 간단합니다. 판사님께서는 잠깐 네이버에 '권재홍 장풍'이라고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노트북에 뭔가를 입력한 판사님은 순간, 풋! 하고 터져나오는 폭소를 참느라 고생 좀 하셨다. 엄숙한 법정에서 보기 힘든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한 검사님께 감사라도 드려야하나? 순간 나는 검사님이 우리를 풀어주려고 일부러 쇼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역시 노조에 위장 취업한 나의 정체를 아시는 거야! 그래서 일부러 풀어주시려고 저런 자살골 플레이를 하시는 거야!'

 

당연히 그날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다섯명 전원에 대해 영장을 기각했다. 그런데 집요한 검찰이 2주만에 다시 영장을 칠 줄이야. '역시 법의 양심은 살아있구나!' 하고 만세를 부르며 유치장을 나온 우리는, '역시 검찰의 앙심도 죽지 않았구나!' 하며 치를 떨며 유치장에 다시 갔다.

 

권재홍 장풍이 안 먹혔는데, 왜 2차 영장을 날린걸까? 6월 7일, 법원에서 영장 심사 중 검사님 말씀.

 

"한 여자 아나운서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나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으며,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겠다며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이 글을 보면 MBC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이 성향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노조 집행부 전원 구속으로 파업을 중단시키는 것이 책임있는 법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나는 다시 입이 딱! 벌어졌다. 결국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두 앵커의 몸개그와 개드립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서비스 플레이였단 말인가? 배 모 아나운서의 게시판 글이 떴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드디어 오랜 시간 노조에서 암약하던 내가 활약할 차례로군.' 노조 집행부에서 1년 넘게 암약해온 보수 우파 비밀 공작원이 꿈이 무엇인지 아는가? 북의 지령을 받고 남한의 방송을 장악하려는 종북좌파를 색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이 100일 가까이 진행되는 데도 전혀 불순 분자의 폭력 책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나만 헛고생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무렵 배 아나의 글이 떴다. '역시 폭력을 조장하는 불순분자가 있었군!' 이제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어 폭행의 배후를 찾아내면 나는 임무를 완수하는 거야! 즉각 노조 부위원장이라는 나의 직함을 이용해 탐문 수사에 나섰다. 마침 폭행이 일어났다는 아나운서 국은 내가 담당하는 편제부문 소속 부서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를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배 아나가 제보한 사건의 전모를 알아봤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폭행 사건이라 할 만한건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나운서들이 조직원 보호에 앞장서느라 그러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노조 부위원장인 내게는 알려 줄 텐데? 답답해하는 내게 한 후배가 그랬다. "얼마전에 서점 옆에서 선배 하나가 늦게 온 후배더러 '일찍 일찍 다녀.' 하면서 어깨를 몇번 친 적이 있죠. 아마 그걸 가지고 폭행이라 그러나봐요." MBC 조합원들의 집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은1층 회사 로비다. 로비 뒤에는 서점이 하나 있는데, 수업 듣기 싫은 아이들이 교실 뒤에 모여있듯, 집회 참석에 가장 열의가 적은 멤버들이 모이는 곳이 서점 앞이다. 거기서 누가 다른 사람더러 '일찍 일찍 다녀!'하고 훈계를 했다는 건, 화장실 담 뒤편에서 담배 피우던 고교생 하나가 다른 후배더러 '마, 공부 좀 열심히 해!'하고 잔소리하는 거랑 같다. 그냥 자기들끼리 개그하는 거지. 

 

당연히 나는 이게 노조원 폭행 사건의 전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배 아나운서 정도 되는 공인이 저 정도의 일을 침소봉대해 게시판에 글을 쓰고, 기자 정신의 화신인 이진숙 홍보국장이 그걸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내가 알아내지 못한 진짜 폭행 사건이 일어났던 게 분명해... 아무리 알아내려 해도 알 수 없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검찰이 법원에서 배 아나의 글을 인용할 때는 만세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천라지망과 같은 검찰의 정보망에 폭행 사건이 걸려들었군.' 이제 남은 건 그 폭행 사건의 범인과 피해자를 검찰이 찾아내어 세상에 까발리면 된다. MBC 노조가 얼마나 부도덕한 집단인지 밝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검찰에게 주어진 것이다. 제보자나 목격자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제보자는 누구나 다 아는 뉴스데스크의 앵커! 얼마나 공신력이 큰 인물인가. 배 아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만 봐도 게임 오버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검찰은 배 아나가 말한 폭행 사건에 대해 전혀 수사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그냥 배 아나의 글을 핑게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뿐이다. '이건 아니지! 폭행 사건이 있다잖아. 그걸 조사해보면 되잖아. 검찰이 그 사건을 밝혀내지 못하면, 기껏 용기를 내어 노조원의 폭행을 고발한 배 아나의 진심은 어떻게 되는거냐구!'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불현듯 날아온 미모의 여검사의 일격!

 

"피의자 김민식은 서늘한 간담회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김재철 사장의 퇴진 없이는 파업을 절대 풀지 않을 거라 말했습니다. 사실이지요?"

 

난 예쁜 여자가 말을 걸면,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본다. 한심한 놈이라고 흉봐도 소용없다.

 

이어지는 검사님 말씀.

"네, 파업이 100일이 넘었지만, 이들에게는 보다시피 파업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죄질이 극히 나쁘고, 재범의 우려가 농후합니다. 조합원들을 일터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파업 현장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합니다. 집행부 다섯명 전원을 반드시 구속하여 법질서의 엄중함을 보여줘야합니다."

 

구속의 위기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와! 저 이쁜 검사님도 내가 진행하는 서늘한 간담회를 들으시는 거야? 그럼 저 미모의 검사님이 나의 안티팬 1호? 나의 방송을 즐겨 들으시고 나를 오래 오래 곁에 두려고 구속영장을 친 거야? 그럼 이건, '아름다운 구속'? 아, 놔, 이 놈의 인기란...'  

 

하지만 미모의 검사님이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반드시 당신만은 잡아넣고 말겠어.'라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고나 할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중간첩 놀이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나보다. 노조의 불법 파업을 막고, 민주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신념 하에 노동조합에 위장취업했는데, 어쩌다 종북좌파로 몰려 구속영장까지 받게 된거지? 어쩌지? 이제라도 나의 정체를 고백해야하나?

 

"실은 저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조에 위장취업한 보수 우파입니다." 라고?

 

검찰의 오버플레이 때문에 십수년 간 MBC내에서 암약해온 나의 정체가 여기서 드러나게 생겼군. 어쩐다?

 

딴따라 우파의 구속 위기, 3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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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파주 헤이리에 다녀왔어요. 예전부터 김홍모 만화가가 하시는 '뜬금없이 만화방'과 황인용 디제이가 연 음악감상실 '카메라타'를 꼭 한번 가고 싶었거든요.

 

뜬금없이 만화방에서는 옛날에 즐겨보던 '보물섬'을 뒤적거리고, '바벨2세'를 다시 보고, 최호철님의 '을지로 순환선'을 봤어요. 만화 카페에서는 보지 못하는 만화의 전설을 즐겼죠. 만화방에서 뒹굴거리다 점심 먹고 카메라타로 갔어요.

 

어린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황인용 님은 1970년대, 80년대 최고의 라디오 디제이였죠. 지금은 은퇴하고 헤이리에서 카메라타라는 음악감상실을 열어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음악을 선곡해주십니다.

 

 

 

의자에 몸을 묻고 '황인용의 영팝스'를 추억했어요. 10년 넘게 황인용님의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정작 기억에 남은 멘트는 방송사고 뿐이었어요. (엥?)

 

언젠가 생방송에서, '자, 그럼 다음 곡 듣고 오겠습니다.'하고 노래로 넘어갔는데, 시디 플레이어가 고장나서 한동안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았어요. 라디오를 켜놓고 공부 하느라, 듣는둥 마는둥 했는데 순간 모든 신경이 라디오에 집중되었습니다. '어라? 방송 사고네? 어떡하지?'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황인용님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시디를 꺼냈다가 바꿔보기도 하고, 다른 플레이어에 선을 연결하는둥 바쁘게 움직였죠. 라디오를 들으며 그때만큼 긴장해본 적도 없어요. 그때 황인용님의 멘트.

 

'여러분,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네, 긴장하셨을 것 같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하루 24시간 음악이 이어집니다. 음악이 나오는 동안에는 그 음악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 음악이 멈추면 음악의 부재를 문득 깨닫죠. 그러면10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도 아주 긴 고역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방송사고가 난 다음에야 깨닫지요. 하나의 방송이 무사히 나가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입니다.' 

 

10년 넘게 황인용님의 방송을 들었는데, 지금에 와서 기억에 남는 건 그 방송 사고 뿐입니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도 마찬가지군요. 옆집 아저씨 아줌마가 얼마나 알콩달콩 잘 살았나는 기억나지 않아요. 남편 사업이 망했을 때, 아줌마가 혼자 도망간 것만 기억하죠. 혼자 남은 아저씨가 술먹고 행패 부리고, 아이들이 문 앞에 나와 울던 모습만 기억남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던 남편이 회사에서 잘린 후, 전업주부로 살던 아줌마가 동네에 가게를 열고 일하던 모습, 양복에 넥타이만 매고 다니던 아저씨가 리어카로 물건을 받아오며 살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연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논스톱처럼 잘 될 때는 500편의 에피소드를 2년반 연속 만드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들어요. 잘 나갈 때는 내 혼자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잘 쓰고, 배우가 잘 하고, 스태프가 호흡이 잘 맞아서 굴러가는 것이거든요. 연출의 실력과 바닥이 드러나는 순간은 망했을 때입니다.

 

작품이 안되어 망했을 때, 연출은 그 누구도 탓해서 안됩니다. 오롯이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쪽팔려서 두번 다시 연출하고 싶지 않을 때, 그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 작품에 다시 도전하는 것, 그게 연출의 진짜 실력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성공과 업적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면, 죄송하지만 인생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시련입니다. 시련이 왔을 때, 어떤 모습으로 다시 일어날 것인가. 그걸 기억합니다.

 

MBC, 창사 50주년을 넘기고 언론사로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참 중요합니다. 망했을 때 잘 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복할 수 있어요. 10년 뒤, 20년 뒤, 사람들은 지금 MBC 직원들이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로 MBC를 기억할 것입니다. 

 

황인용님, 감사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파업 150일, 다시 하루를 이어갈 힘을 얻습니다. 님의 방송 인생 30년 중에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 방송 사고 때 의연했던 모습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넘어지는 건 부끄럽지 않아요. 넘어졌다고 경주를 포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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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캐스팅은 연애다. 오디션은 만인의 연인을 찾는 과정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처음 피디가 되어 만든 게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이다. 첫 작품이니만큼 캐스팅 욕심이 많았다. 어떻게든 최고의 스타를 섭외해서 초호화 출연진을 꾸리고 싶었다. 하지만 톱스타들 중 누구도 청춘 시트콤에 나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망가지는 코미디 연기 잘못했다가 이미지 망치는 수가 있으니까. 

 

답답한 마음에 섭외의 달인이라는 선배를 찾아갔다. 그래서 톱스타 캐스팅을 도와달라고 졸랐다. 그 선배님의 말씀. '지금 네가 이름없는 신인 PD인데 스타 캐스팅한다고 정우성한테 가서 백날 졸라봐라, 그게 되나. 절대 안 먹힌다. 왜? 이미 정우성 앞에는 너같은 PD가 수십명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거든. 그런데 말이야, 피디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지. 그 정우성도 10년 전에는 오디션마다 쫓아다니고 퇴짜맞은 신인이었다는 거.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정우성을 쫓아다니는게 아니야. 10년 뒤 정우성이 될 신인을 찾는 거지.'



그래서 오디션으로 발굴한 게 조인성이다. 사실 조인성도 완전 신인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몇번 시트콤에 나왔다가 반응이 없었던 친구였다. 논스톱 출연 초반에도 게시판 반응이 좋지 않아 기가 좀 죽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촬영장에서 조인성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이 친구는 10년 뒤, 제2의 정우성이 될 친구다. 그러니 지금 정우성처럼 아끼고 사랑하자. 그러면 배우도 자신감을 찾을 것이고, 언젠가는 대중도 그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연애란 그런 것이다. 정우성을 쫓아다니는 것만이 연애가 아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정우성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를 정우성 못지않은 조인성으로 만드는 게 진짜 연애다. 

 

기왕에 '뉴논스톱' 캐스팅 얘기가 나왔으니 한가지만 더. 논스톱 멤버들을 모아놓고 보니 다들 신인들이거나 아역 출신 배우들이었다. 좀더 화제성있는 신인이 없을까 찾다가 우리가 눈독 들인 배우가 하나 있다. 바로 원빈이었다. 10년전의 원빈! 

 

섭외의 달인인 선배에게 원빈의 캐스팅을 부탁했다. 그 선배, 흔쾌히 '정우성은 어려워도 원빈은 데려올 수 있지!'라고 큰소리 치더니 소속사로 달려갔다. 작가와 피디들은 가슴을 졸이며 원빈의 캐스팅을 기다렸다. 다음날 선배가 와서 하는 말. '야, 안돼~ 원빈은 시트콤에 안 맞대. 대신 양동근이라는 애가 있는데, 시트콤에는 걔가 더 어울린데. 그래서 원빈 대신 양동근 하기로 했어.'

 

당시 회의실의 반응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원빈 섭외하러 가서 양동근을 캐스팅해오다니... 하지만 난 가끔 생각한다. 양동근 없이 뉴논스톱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양동근의 발탁은 정말 최고의 캐스팅이었다.

 

연애란 그런 것이다. 지금 정우성이 아니라, 5년 뒤 나만의 정우성이 될 남자를 찾는 것이다. 다들 원빈만 쫓아다닐 때 양동근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다.

 

연애하라 하면, 다들 연애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인류를 모독하지 마시라. 전세계 인구 중 절반이 이성이다.

연애는 상대의 문제가 아니다. 안목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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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병이 또 도졌다.

 

나는 활자 중독이다. 항상 무언가 글을 읽어야한다. 혼잡한 전철에서 가장 쉽게 글을 읽는 방법이 스마트폰으로 블로그를 읽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블로그를 읽다, 어느 날 나만의 블로그를 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만든 게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다.

 

나는 강연 마니아다. 짬만 나면 TED를 보거나, 요즘은 다음팟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간'을 본다. 다른 이들의 재미난 강연을 보다, 나도 저런 온라인 강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만든 게 유튜브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다.

 

나는 20자평 마니아다. 씨네21을 볼 때마다 20자평을 제일 먼저 펼친다. 2시간 짜리 영화를 20자로 함축하는 평론가들의 센스에는 매번 탄복한다. 나도 실시간 영화평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게 트위터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다.  

 

나는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아이튠즈 유에서 강의도 듣고, 나는 꼼수다도 즐겨 듣고,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도 좋아한다. 그래서 파업채널 M’에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토크쇼 - 서늘한 간담회 진행을 시작했다. 라디오 피디들이 연출하고 편집을 도맡아 해준다. 재밌긴 한데, 뭔가 아쉽다.  

 

아뿔싸... 병이 또 도졌구나...

 

나는 무엇을 좋아하면, 미친듯이 좋아하고, 꼭 내 손으로 만들어봐야 되는 성미가 풀린다. 그럼 팟캐스트 직접 만들기에 도전해야 할텐데... 블로그, 유튜브, 트위터와 달리, 이 놈은 만만치가 않다. 왜? 강력한 진입장벽이 있다. 바로 서버 비용이다.

 

나같은 짠돌이는 나는 꼼수다를 듣다가 서버 비용이 천만 원 어쩌고 하는 대목이 나오면 기겁한다. 블로그나 유튜브는 운영에 있어 전혀 금전적 부담이 없다. 심지어 원하면 광고를 달아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팟캐스트는 수익과 관계없이 일단 서버 비용을 내야한다. 젠장! 돈 들이는 건 질색인데!

 

그래서 열심히 뒤졌다. 무료 호스팅 서비스. 있다. 팟빵에서 정액제 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3개월 무료 체험 이벤트를 한다. 앗싸! 공짜다, 공짜! 아내가 늘 흉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들이킬 인간이라고. ^^

http://www.ssenhosting.com/hosting/pod

 

 

 

팟캐스트를 직접 만들어보니 무척 민망하다. 음악도 없고, 편집도 없다. 그냥 2만원 짜리 마이크 하나 사서 피씨에 연결해서 혼자 30분간 떠들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나만의 방송이 만들어진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팟캐스트를 만들고 싶은 분이라면 한번 들어보시라. 아마 자신감이 팍 생길 것이다. '방송사 피디가 이 정도 밖에 못 만든다면, 나라면!'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니 퀄리티가 후지다고 너무 흉보지는 마시길.^^

 

사람들이 가끔 궁금해한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다 할 수 있나요? 난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잘 안되던데...' 남한테 신경끄고 살면 된다. 잘해야한다는 강박을 버리면 된다. 한마디로 겁없이 저지르고 살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못하는 이유는, 잘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시도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실패의 두려움, 사람들의 비웃음은 신경쓰지 않는다. '잘하고 못하고는, 일단 시작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래서 시작했다. 팟캐스트 '공짜로 즐기는 세상'

http://www.podbbang.com/ch/3925

아이튠즈에서도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검색하면 된다.

 

팟캐스트 월드를 만들어주신 잡스님께 감사드린다.

Stay Hungry, Stay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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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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