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선배가 쓴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는 참으로 잘 쓴 책이다. 정말 좋은 글을 읽으면 나는 그 글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진다. 그래서 책을 끝내자마자 블로그에 들어와 독서 일기를 남겼다. 그러고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게 멈추지 않아 거실을 혼자 서성이다가 안방에 가서 자는 아내를 깨웠다. 

"부인, 어제 얘기한 그 책 있잖아. 지금 다 읽었거든. 몰입도 완전 죽여. 그래서 얘기인데, 나 지금 그 선배 좀 만나고 와야겠어."

그래서 일요일 오전 7시에 차를 끌고 박성제 선배를 찾아갔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선배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와락 껴안았다. 

"형, 책 잘 봤어요. 난 선배가 해직기자로 산 지난 3년의 세월에 대해 책을 낸다기에 울분에 가득찬 그런 책인줄 알았거든? 그런데 정말 유쾌하게 쓰셨더라구요. 보면서 형의 상황에 대해 마음이 막 아픈데, 그런데 형이 사는 모습은 너무 또 멋있는 거야. 아, 정말 이런 책 완전 처음이야."

50 다된 중년 남자의 호들갑이 유난하게 느껴질 것 같아 책에서 한 대목을 소개할까 한다. MBC에서 해고 된 후, 목공을 배우며 대패질과 사포질로 세상에 대한 울분을 삭이던 박성제 선배는 죽이는 디자인의 수제 스피커를 만들게 된다. 어라, 주위 반응이 괜찮네? 이걸 만들어 팔아볼까? 라는 생각에 해직기자이던 그가 영세 사업자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 시절, 그가 지하철에서 만난 어떤 사람 이야기.

 

'스피커 부품 몇 가지를 구입하기 위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시내 나들이에 나선 길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큼직한 가방을 든 남자가 올라탔다. 쭈뼛거리면서 잠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윽고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물건을 꺼내 들었다. 울긋불긋한 무늬가 찍힌 싸구려 앞치마였다. 그는 조심스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께 오늘 특별한 상품 하나를 소개해드리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앞치마는 작년에 특허를 받은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입니다. 지금 가정에서 부인들이 쓰는 앞치마는 어떻습니까? 조금만 사용하면 물에 젖고 기름이 묻어서 금방 더러워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앞치마는 특수 소재로 만들어 물에 젖지도 않고 기름이 묻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촉감이 부드러워서......."

신기술로 만든 거라 한 장에 만 원을 받아야 하지만 오늘만 특별히 5천 원에 판다고 했다. 외워 온 멘트를 또박또박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웬지 흥미가 일었다. 저 사람은 분명 초보다. 말을 더듬지는 않지만 경험 많은 잡상인 특유의 운율이랄까. 멘트에 노련한 맛이 전혀 없었다. 40대 중후반쯤 됐을까? 나이는 내 또래로 보였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말쑥한 회색 양복에 잘 닦인 구두, 깔끔하게 가르마 타서 벗어 넘긴 머리. 지하철에서 5천 원짜리 앞치마를 파는 잡상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가 나의 심증을 굳혀주었다. 지난주까지 어엿한 큰 회사에 다니던 부장님이었을지도 몰라. 회사가 망했을까. 아니면 정리 해고를 당한 걸까. 낮에는 저렇게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다가 저녁이 되면 대리운전을 뛰겠지. 새삼 동병상련의 심정이 생겨나서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지갑을 꺼내 들고 그 남자에게 외쳤다. 

"아저씨, 저 두 장만 주세요."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달려와서 앞치마를 건네며 두 번이나 고맙다고 말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만 원짜리 지폐를 받아 들고 돌아서던 남자가 다시 내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저 혹시 MBC 기자분 아니신가요?"

급작스러운 질문에 오히려 내가 말문이 막혔다.

"네?,,,,,, 마, 맞는데요."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았다고 생각한 남자의 얼굴이 일순 환해졌다가 다시 굳어졌다.

"인터넷에서 봤습니다. 김재철 사장에게 해고당한 기자 맞죠? 용기 잃지 말고 힘내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꽉 움켜쥐고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나는 충격에 빠져 어안이 벙벙해졌다. 용기 잃지 말고 힘내라니. 저 양반이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 텐데. 나는 그래도 노조에서 생활비도 받고 나름대로 사업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직장을 잃고 처자식 생각에 지하철 행상에 뛰어든 이가 나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힘주어 잡아준 내 손에 온기로 남았다.

며칠 뒤 주말, 나는 다른 해고자들과 함께 남산에서 열린 노조 행사에 참여했다. 노조가 해고된 조합원들을 위로하고 조합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였다. 백여 명이나 되는 후배들이 모여 해고자들과 함께 남산을 걸어 올랐다. 팔각정 앞에서 진행자가 해고자들에게 한마디씩 하라면서 마이크를 넘겼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며칠 전 지하철에서 만났던 이가 떠올랐다. 후배들에게 그가 내게 던지고 간 말을 들려준 뒤 이렇게 얘기했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이 해고된 저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여러분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기자가 아니라 시청자가 됐거든요. 형편없는 MBC 뉴스 보면서 혀만 끌끌 차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MBC 안에서 망가져가는 조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더러운 세력과 싸우다, 그러다 징계까지 받으면서 버텨내야 합니다. 후배 여러분이 저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그분이 제게 했던 말, 그대로 제가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저를 위로하지 마세요. 제가 위로하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늘 응원하겠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한 후배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박 선배, 아까 연설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눈물 날 뻔했다니까요. 힘낼게요."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중에서-

 

 

(모델 협찬 : 김민서 어린이. 모델료는 아이스크림 하나로 갈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나는 가슴이 막 뜨거워져서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거실을 혼자 빙빙 돌기도 하고, 괜히 자는 아내를 깨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 도무지 참지를 못하고 등산 간다는 박성제 선배를 그 새벽에 찾아간거다.

선배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선배님, 그렇게 글 잘 쓰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피디 지망생이나 기자를 꿈꾸는 모든 예비 언론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바로 그 답! 전직 MBC 기자가 공개하는 글 잘 쓰는 비결! 은... 시간 관계상 다음에 계속됩니다.

 

제가요, 이 책을 읽고 하도 필이 꽂혀서 한 며칠 시리즈로 포스팅을 올리려구요. ^^

그럼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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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SF라는 장르를 좋아해서 SF 번역가로 일했던 나로서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정말 반갑다. 예전에 조선에서 왔소이다라는 환타지 시트콤을 연출한 적이 있는데, 연출력이 부족했는지, 흥행에 참패를 겪었다. 시청률 저조, 제작비 초과, 광고판매 부진의 PD 삼거지악을 저지르고, 방송 4회만에 종영 결정이 내려져 12부작인데 7부에서 막을 내렸다. 당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MBC에서 당신이 가장 연출료가 비싼 피디인거 알아? 1년 동안 시트콤 일곱 편 만들었으니까, 편당 연출료로 따지면 1천만원이 넘는 셈이잖아.” 아내의 농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타임슬립 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 ^^ 

 

친구들을 만나면 내게 묻는 질문이 있다. “드라마 피디는 시청률이 대박나면 월급 더 받는 거니?” “아니.” 급여가 성과연동제가 아니라면 사기 진작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다. 그럼 꼭 이렇게 얘기해준다. “시청률 더 나와서 월급 더 받아야한다는 건 시청률이 낮을 때 월급을 깎아도 좋다는 얘기거든? 창의력이 중요한 조직에서 시청률과 급여를 연동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급여체계가 아니란다.” “네가 시청률 올릴 자신이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친구들의 이런 반응,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는 피디 사회는 버팔로 사냥으로 먹고 사는 100명의 인디언 마을이라 생각한다. 그 마을에는 모두가 창을 하나씩 들고나가 버팔로를 잡아서 먹고 산다. 100명이 버팔로를 몰아서 다 같이 창을 던지면, 3~4개의 창이 버팔로를 맞히고 그래서 잡은 고기를 100명이 나눠먹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인디언 하나가 나서서 이렇게 얘기한다. “매번 버팔로를 맞히는 건 난데 왜 내가 너희들이랑 고기를 나눠먹어야 하지? 이건 불공평하잖아. , 안되겠다. 지금부터 다들 창에 각자 이름 써. 그래서 버팔로에 꽂힌 창에 이름 적힌 사람만 고기 먹기.”

 

, 새로운 보상 체계를 적용시켜 사냥에 나간다. 버팔로를 맞힌 사람은 배 터져라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쫄쫄 굶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그동안 버팔로를 한 번도 맞히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다. 100명이던 마을 사람은 70명이 되고, 다시 한 달이 지나면 50명이 된다. 50명이 사냥을 나가면 예전처럼 버팔로를 몰기도 어려워지고 창을 던져도 한두 개 맞은 버팔로는 그냥 달아나버린다. 결국 마을 사람 전원이 굶어죽게 된다.

 

나는 PD가 버팔로를 잡는 인디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맞힐 때도 있고, 놓칠 때도 있다. 중요한건 그럼에도 사냥에 나가 창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성과가 좋지 않다고 사냥에서 아예 배제하는 건, 실패의 경험에서 배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 어린 후배들이 보기에도 그렇다. 인생이 살아볼만 하다고 느끼는 건 극적인 역전도 가능할 때다. 좀 빌빌하던 선배도 자신에게 딱 맞는 기획을 만나면 펄펄 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어린 후배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내쳐지고 성공도 반복하는 사람만이 기회를 얻는 세상이라면, 그런 정글에서 즐겁게 일하는 보람은 없다. 승자도 패자도 다 같이 불안한 세상이 될 테니까.

 

드라마 나인을 보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이 나온다. 만약 내게 그런 향이 있다면 10년 전 조선에서 왔소이다.’가 쫄딱 망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10년 전 죽을 것같이 괴로워하던 나에게 이렇게 말해줘야지. “너무 자책하지 마.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10년 후에야 유행하고 심지어 그 중에는 대박 드라마도 나온단다. 그리고 살다보면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오니까 웃으며 버텨.”

 

동료들이 나눠주는 버팔로 고기를 얻어먹으며 하는 생각. ‘언젠가는 나도 버팔로를 맞히는 날이 올 테니, 일단 오늘은......... 감사히 먹겠습니다!’

 

(PD 저널 연재 칼럼 '김민식 피디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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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이천명 가까운 지원자들 중 단 두사람에게만 주어진 MBC 예능 PD의 자리.

졸업을 앞두고, 처음 넣어본 전형에서 덜컥 주어진 합격 소식은, 내 인생 너무나도 큰 선물이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느낀, 혹은 새삼 확인한 사실들이-
언론사를 준비하거나,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꿈을 쫓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될까 후기를 적어본다.


나는 거의 10년째 TV를 거의 보지 않은 채 살아왔다.
PD가 되겠다는 사람이 TV를 보지 않는다는게 스스로 우습기도 했지만- 사실 볼 시간도 별로 없었다.
학기 중에는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방학이 되면 읽고 싶던 책들을 잔뜩 읽고, 여행을 떠나고, 글을 읽고 쓰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험준비도 안했다.
PD시험이 그동안 어떻게 나왔는지, 어떤 내용들을 알고 있어야 하는지- 서류전형을 넣고 나서야 알아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시험'준비를 안했을 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PD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준비-는 하지 않았지만, 생활 속에서 '좋은 컨텐츠를 만들기 위한 고민'은 끊임없이 해왔다.


내 꿈은, 'PD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꿈이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PD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까?'가 아니라, '그런 세상을 이루어가려면 무엇을 해야할까?'를 고민해왔다.
그 꿈은, 반드시 PD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나를 신나고 즐겁게 만들어 온 일들이 PD라는 직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에-
그 꿈을 PD라는 자리에서 이루어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신나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PD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떨어지면 또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다른 일을 얼른 찾아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NGO단원도 좋고, 독립프로덕션들도 좋았다. 그것도 기대가 되었다.
PD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란 생각이 오히려 두둑한 배짱을 챙겨주었다.

때문에- 내가 준비한 것은 'PD시험'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 블로그를 자주 찾는 분들이라면, 여기까지 읽고 '음, 김민식 피디가 또 자신의 입사 전형 이야기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미안하지만 위의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 MBC 예능국에서 무르팍 도사를 만드는 신입 피디인 권성민 군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이다. 난 얼마전 이 블로그 글을 보고 깜짝 놀란 한편 반가웠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 MBC에 입사한 친구가 또 있구나!

 

설 연휴 동안 권성민 피디의 블로그를 차근 차근 살펴보시기 바란다. 좋은 피디를 꿈꾸는 사람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피디 공부의 최고 장점은 즐겁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무엇이든 미친듯이 한다면, 그게 바로 피디가 되는 길이다. 당신의 삶이 즐겁지 않다면 예능 피디의 삶은 의미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즐거운 일을 하시라.

 

일부러 내 글인양 속이려고 종교나 학벌 부분은 제하고 올렸다. 글의 원문을 보시면 훨씬 더 감동이다. 이런 멋진 후배가 있어, MBC의 미래는 아직도 밝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권성민 피디의 아름다운 생각이 담긴 재미난 예능 프로그램 하나, 기대해본다. 

 

글의 전문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시길~

 

http://www.cyworld.com/miracleofgiving/9261878

(이상하게 이 글은 모바일 환경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ㅠㅠ 이래서 난 티스토리가 좋아! ^^

PC로 읽어보실 걸 권해드린다.)

 

그리고...

설날 맞이 특별 이벤트를 하나 마련했다.

 

 

기존의 강연회와 차별화하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중이다... 음... 긁적긁적...

그리고 그동안 방명록에 올라온 사연 중 글로 미처 풀지못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해드리는 코너도 마련했다. 질의 응답 시간을 길게 준비했으니, 와서 마음껏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질문을 던져주시길... 공개 질문이 여의치 않다면 비밀 댓글이나 방명록에 '강연회 참가 신청했습니다.' 하고 글을 남겨주시면 된다. 직접 얼굴 보고 물어주시면 약발이 더 잘 받긴 한다... ^^

강연 신청은 아래 페이지를 참고해주시길~

아, 참, 강연은 무료 참가다. 내가 사랑하는 공짜 강연회, 이번엔 제가 서비스해드립니다~^^

 

http://www.yes24.com/Event/01_Book/2013/OT0121Free.aspx?CategoryNumber=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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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올해 유튜브에서 본 가장 충격적인 영상 하나.

싱가폴 택시의 블랙박스 촬영 영상이다. 직진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뀐 후, 택시가 출발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페라리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와 부딪힌다. 이 사고로 페라리 운전자와 택시 기사, 그리고 일본인 택시 승객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영상을 보고 분개했다. '무슨 세상에 저런 미친 놈이 다 있어?' 유튜브 영상에 20대 중국인 이민자라고 나왔기에 '도대체 중국에서 어떻게 돈을 벌면 20대에 싱가폴에서 페라리를 몰까?' 하고 궁금해했다. 싱가폴은 자동차 면허가 수천만원을 호가하기에 일반 승용차 한 대 모는데 1억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싱가폴에서 페라리를 몰려면 10억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 

 

중국 노동자 평균 임금이 한 달에 50만원이다. 2000명의 노동자가 한 달 뼈빠지게 일해야 10억이 나온다. 혼자서 일한다면 166년 동안 월급 한 푼 안써야 페라리 한대를 살 수 있다. 새파란 20대 대학생이 어떻게 그런 돈을 모을까? 답은 하나다. 비리다. 왜? 30년전 중국의 모든 인민은 경제적으로 평등했다. 사유재산이라는 게 없었으니까. 지난 30년 사이에 빈부 격차가 벌어졌다면, 그건 유산 상속이나 집안의 원래 재산 덕분은 아닐게다. 

 

싱가폴은 비리로 돈을 모은 사람들에게는 조세 천국이다. 권력이 세습되는 나라, 1당 독재가 수십년째 계속되는 나라, 신문이 하나밖에 없는 언론 통제국가에 금융 비밀이 보장되는 나라다. 자국에서 비리를 저질러 모은 돈을 싱가폴에 빼돌려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사람, 요즘 꽤 있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 중에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 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죠?'

 

싱가폴은 규제가 심한데 그중 하나가 택시 내 블랙박스 설치 규정이다. 모든 택시에는 블랙박스가 달려있고, 그 중 한 대가 저 사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영상은 유튜브로 풀리면서 전세계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도대체 저 미친 페라리 운전자는 누구냐?' 중국의 네티즌들도 약이 올랐다. '외국에 나가 중국의 국격을 떨어뜨린 저 인간은 누구냐?' 나도 궁금했다. 그 사람의 정체가... 그러다 올해 초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는 인터넷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 차도 페라리였다. 도대체 그 페라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지난 금요일 경향신문 1면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후진타오 최측근 링지화 스캔들... 제2의 보시라이 사태 되나'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의 핵심 측근으로 불려온 링지화 당 통일전선부장. 지난 3월, 중국에서 페라리 승용차를 몰고 가다 사망한 사람이 바로 링지화의 아들이었다. 권력의 끝이란 이렇게 허무하다. 부정부패로 모아온 돈을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에게 건네주자, 그 돈은 아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흉기가 되었고, 그 사건을 은폐하려다 인터넷 여론의 역풍을 맞고 결국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기폭제가 되었다. 링지화의 아들이 최고위층 자제이면서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북경 시내 한복판에서 광란의 질주를 즐긴 이유?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언론 통제와 인터넷 통제를 믿었던 탓이다. 언론의 비판과 감시 기능을 제거한 권력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광란의 질주를 통제할 수 없어 결국 자멸의 길을 걷는다.

 

언론장악은 문제는 해결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키운다. 'PD 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을 방송한 최승호 피디가 김재철 손에 해고되었으니, 세상은 조용해 질까? 검찰을 견제하고 감시해야할 언론이 그 기능을 상실하자, 검찰은 성추문에, 뇌물 수수에, 거짓 양심 선언에, 막장 연속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결국 자중지란 끝에 검찰 총장까지 물러났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검찰에게 자정이란 멀고도 먼 길이다. 감추어진 비밀을 세상에 까발려야 할 자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에 급급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세상에 감출 수 있는 비밀이란 없다.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을 뿐이다. 

 

페라리는 멋진 차다.

그 차가 멋진 이유는 급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없는 페라리는 살인 기계일 뿐이다.

언론이라는 제동 장치 없는 권력은 스스로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자살 폭탄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 5년, 그리고 지금 대선 정국.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광란의 질주를 즐기고 있는가?  

기다려라. 최후가 멀지 않았다. 속도가 빠를수록, 결말은 더 빨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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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인재가 갖추어야할 3가지 덕목은 창의성, 역량, 협업정신인데, 이들은 피디 시험을 볼 때 면접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품성이다. 학교에서는 이 세가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특히 우리네 학교의 문제점은 세번째 협업 정신을 기르기에 전혀 부적절한 교육 환경을 조성한다는 데 있다. 이범 선생이 강의에서 이야기하듯 상대평가를 하는 교육 시스템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학급 친구들과 협동하기보다는 경쟁으로 상대를 딛고 올라서야 한다. 협업 정신을 배우기에 취약한 구조인데, 이는 PD 시험을 볼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MBC 공채 시험의 마지막 진검 승부는 합숙 평가다. 1박2일 동안 의정부에 있는 연수원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평가를 받는다. 서류, 필기, 실무 면접까지 뚫고 올라온 쟁쟁한 실력자들이 모여 1박2일간 피튀는 서바이벌 경쟁을 벌인다. 임원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최종면접에 3배수를 올리지만, 임원들은 보통 합숙 평가의 성적순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가장 치열하고 가장 중요한 전형이 합숙 평가다. 

 

합숙 평가가 가장 어려운 점은 팀별로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한다는 데 있다. 8명을 한 팀으로 묶어 특정 시간대에 맞는 방송 기획안을 회의를 통해 도출하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자, 이제 머리 터진다. 입사 전형이니까, 8명 중에서 가능하면 나의 아이디어가 선정되어야 나의 역량이 돋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낸 아이디어만 티나게 고집할 경우, 감점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도 추천한다. 이때 다른 사람에게 표를 던질 때 어떻게 해야할까? 아마 가장 뛰어난 경쟁자보다는 좀 못한 사람을 밀고 싶다는 유혹이 들 것이다. 누군가 압도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다면 혼자 합격하고 나는 떨어질 공산이 커지니까. 심사위원이 보기에 추천이 분산되는 쪽이 경쟁에서는 더 안전한 플레이다. 

 

자,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 팀은 하나의 아이디어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이러한 과정이 심사위원의 눈에 띈다면 그 팀은 전원 탈락하기 쉽다. 최종 합격한 사람들을 보면, 각 팀에서 한 명씩 고르게 뽑힌 게 아니다. 어떤 팀은 복수의 합격자를 내고, 전원 탈락하는 팀도 나온다. 이건 왜 그럴까? 팀으로서 단체 성적이 개인 성적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 있다. 슬램덩크의 최고 천재가 누구인가? 강백호? 아니다. 서태웅이다. 강백호라고 대답한다면, 서태웅이 화 낼 것이다. 그럼 서태웅의 라이벌은? 역시 강백호라고 대답하면 서태웅은 화 낸다. 감히 백호 따위가 어찌 천재 에이스 서태웅에게! 서태웅이 인정하는 라이벌은 윤대협이다. 어느날 서태웅이 윤대협을 찾아간다.

 

 

서태웅은 윤대협에게 승부를 제안하고, 둘은 미친듯이 1대1 승부를 펼친다. 그러면서 서태웅이 묻는다. 

"너랑 나랑 전국에서 1,2위를 다투는 선수이니, 오늘 1대1 승부에서 이긴 사람이 전국 최고의 선수가 되는 걸로 인정해주자."

그랬더니 윤대협은 이렇게 말한다.

 

 

 

"1대1도 공격 기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동안엔 네게 지지 않아."

 

농구는 다섯 명이서 하는 경기다. 남은 네 명의 팀 동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무조건 독불 장군 식으로만 플레이한다면, 절대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될 수 없다. 

 

팀별 과제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 내가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다. 팀 전체가 협동을 통해서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나는 협업의 중요성을 통역대학원에서 배웠다. 통대내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재학생 40명 중 통역사로 졸업하는 사람은 5명 안팎이다. 그러기에 스터디를 열심히 해야하는데 이때 관건은 파트너 선정이다. 엄밀히 말하면 파트너도 나의 경쟁 상대다. 하지만 스터디를 하면서, 파트너와 경쟁을 하면 절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터디를 하면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아끼게 되고, 그런 태도가 소문나면 스터디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워 진다. 결국 스터디를 할 수 없어 실력을 향상 시킬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경쟁에서 더 잘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우선시해야한다는 역설을 나는 통대에서 배웠다.

 

앞으로 다가올 30년, 지나온 30년보다 더 큰 변화가 인류 문명에 닥쳐올 것이다. 변화와 위기 앞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과거 인류가 생존한 비결과 같다. 협업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다.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협업이다. 세상 모든 일의 기본은 협업이다. 

 

p.s. 피디 시험을 준비한 적이 없던 내가 합숙 평가를 통과한 이유가 무엇일까?

난 기획안을 단 한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획안을 만드는 팀 과제가 주어졌을 때 내가 선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낼 수 없으니, 누군가 재미난 아이디어를 내면, "와, 그거 재밌겠다!"하고 반응했다. 남들이 낸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보강할 수 있는 방안만 계속 고민했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난 아이디어를 낸 적이 없는데?' 나중에 시트콤 대본 회의를 하며 깨달았다. 피디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무엇이 재미있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걸.

 

피디는 아이디어를 놓고 작가와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다. 협업하는 사람이다. 이걸 깨달으면 연출이 훨씬 쉬워진다. 협업과 경쟁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협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게 살아남는 길이다.

 

이범 선생의 강의 '우리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키워라'를 듣고 

창의성, 역량, 협업 정신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연속 특강으로 꾸며봤다.  

정답은 없다. 끊임없이 고민할 뿐이다. 

 

이전 글이나 이범 선생 강연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링크로 연결해둔다.

그럼, 오늘 피디 스쿨은 여기까지~~~

 

2012/10/10 - [공짜 PD 스쿨] -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

 

2012/10/12 - [공짜 PD 스쿨] - 역량이란 머리 속 지식보다 몸에 밴 태도

 

2012/10/09 - [공짜 PD 스쿨] - 과거의 성공이 불러온 교육 시스템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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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지난 1년이 너무 길다. 끝나지 않는 막장 연속극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제발 이제 그만 종영해!" 채널을 다른데로 틀어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문화'라는 여주인공이 있다. 참 단아하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성품 바른 아가씨였는데, 어느날 그 집에 '재철'이라는 새 아버지가 온 후로, '문화'의 삶은 막장이 된다. 벙어리에 귀머거리에 아이를 반병신을 만든 양아버지는 끝내 재벌집 반푼이 막내에게 강제로 시집보내겠다고 발표한다. 동네에서 성품 올곧기로 유명한 '공영'이라는 총각과 '문화'는 오래전부터 굳게 사랑해온 사이인데 막무가네로 '민영'이라는 재벌집 반푼이에게 시집보내야겠다고 난리다. 도대체 이 막장의 끝은 어디일까?

 

아침에 경향신문을 읽다 김상조 교수님이 쓴 '망가진 세 개의 조직'이라는 경제시평을 읽었다.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한 교수님의 눈에는 지난 1년 사이 심하게 망가진 조직이 세 개가 보였단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소중한 세 개의 조직이 크게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문화방송 (MBC), 공정위 이야기다. 

[중략]

 

내가 이 세 조직이 망가졌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 것이다. 이 세 조직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KDI), 그 진행 과정을 감시하며 (MBC), 규칙을 깬 자들을 처벌하는 (공정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인적 역량이 조직의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충성심을 잃어버리면 어찌되겠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기관장의 책임이 크다. 기관장이 자신의 임명권자에게만 충성하면, 그 밑의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잃는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조직이 흔들리면, 유능한 구성원부터 떠난다. 그러면 그 조직은 끝이다. 

 

기관장과 임명권자는 임기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들이 남긴 상처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불가능한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안타깝다.'

 

 

 

위의 글을 읽으며 찢어지도록 가슴이 아팠다. 막장연속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문화'의 운명도 가슴아프고, 무엇보다 도대체 끝을 모르는 김재철의 악행을 지켜보는 것도 인내심의 한계에 달했다. 

 

막장이 싫으면 시청자는 채널을 돌리면 된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삼돌이는 어쩌란 말이냐? 나처럼 다른 방송사에는 원서 한 장 넣어본 적 없이 오매불망 MBC만 짝사랑해온 사람은 어쩌라고? '문화'를 재벌에게 강제로 시집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 오늘은 천막 농성을 시작하고, 내일은 '서늘한 간담회' 장물아비 김재철 특집을 녹음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테다.

 

막장을 이기는 건 순정이라 생각한다.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한 편 보여드리겠다. MBC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고 굳센지 보여드리겠다. 막장에서 악당의 패악질이 심해진다는 건 최후가 멀지않았다는 뜻이다.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도 힘 보태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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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어치새를 잡는건 마음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라는 걸 기억해."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대사다. 새총을 선물로 받은 딸에게 변호사인 아빠가 하는 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새를 잡는 건 괜찮지만, 그 바람에 죄없는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피하라는 뜻이다. 초등학생인 우리 민지의 필독서인데, 웬지 대한민국 검사님들이 꼭 보셔야할 책 같다. ^^  

 

 

 

딴따라 우파의 노조 위장취업기 2. 딴따라와 여검사

 

그러니까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12년 5월 21일, MBC 노조 집행부 5명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전원 기각되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장재훈 교섭쟁의국장, 그리고 나는 유치장에서 기각 소식을 들었다. 사실 나는 영장 실질 심사 과정을 지켜보며 영장 기각을 기대하고 있었다.

 

구속을 촉구한 검사 기소 이유 중 압권은 권재홍 앵커 자해공갈 사건이었다.

 

"며칠 전 MBC에서는 노조원들의 불미스러운 폭력사건이 있었습니다. 5월 16일, 방송을 마치고 퇴근하는 권재홍 앵커를 기자 4~50명이 가로막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권재홍 앵커가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권재홍 앵커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뉴스데스크 진행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조합원들의 폭력사태를 방조한 데는 노조 집행부의 책임이 큽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대한민국 검찰의 무공이 경천동지할 수준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심지어 조합원이 쏜 '장풍'을 폭력의 증거로 내놓는 수준이었단 말인가!

 

노조 측 변호사가 바로 나섰다. "지금 검사님이 말씀한 사건의 진실을 알기란 간단합니다. 판사님께서는 잠깐 네이버에 '권재홍 장풍'이라고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노트북에 뭔가를 입력한 판사님은 순간, 풋! 하고 터져나오는 폭소를 참느라 고생 좀 하셨다. 엄숙한 법정에서 보기 힘든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한 검사님께 감사라도 드려야하나? 순간 나는 검사님이 우리를 풀어주려고 일부러 쇼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역시 노조에 위장 취업한 나의 정체를 아시는 거야! 그래서 일부러 풀어주시려고 저런 자살골 플레이를 하시는 거야!'

 

당연히 그날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다섯명 전원에 대해 영장을 기각했다. 그런데 집요한 검찰이 2주만에 다시 영장을 칠 줄이야. '역시 법의 양심은 살아있구나!' 하고 만세를 부르며 유치장을 나온 우리는, '역시 검찰의 앙심도 죽지 않았구나!' 하며 치를 떨며 유치장에 다시 갔다.

 

권재홍 장풍이 안 먹혔는데, 왜 2차 영장을 날린걸까? 6월 7일, 법원에서 영장 심사 중 검사님 말씀.

 

"한 여자 아나운서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아나운서 노조원 사이에서도 투쟁 동력을 떨어뜨릴만한 행위가 나와 서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으며, 불성실한 후배를 다잡겠다며 공공연한 장소에서 불호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폭력을 가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이 글을 보면 MBC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이 성향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노조 집행부 전원 구속으로 파업을 중단시키는 것이 책임있는 법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나는 다시 입이 딱! 벌어졌다. 결국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두 앵커의 몸개그와 개드립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서비스 플레이였단 말인가? 배 모 아나운서의 게시판 글이 떴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드디어 오랜 시간 노조에서 암약하던 내가 활약할 차례로군.' 노조 집행부에서 1년 넘게 암약해온 보수 우파 비밀 공작원이 꿈이 무엇인지 아는가? 북의 지령을 받고 남한의 방송을 장악하려는 종북좌파를 색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이 100일 가까이 진행되는 데도 전혀 불순 분자의 폭력 책동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나만 헛고생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무렵 배 아나의 글이 떴다. '역시 폭력을 조장하는 불순분자가 있었군!' 이제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어 폭행의 배후를 찾아내면 나는 임무를 완수하는 거야! 즉각 노조 부위원장이라는 나의 직함을 이용해 탐문 수사에 나섰다. 마침 폭행이 일어났다는 아나운서 국은 내가 담당하는 편제부문 소속 부서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를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배 아나가 제보한 사건의 전모를 알아봤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폭행 사건이라 할 만한건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나운서들이 조직원 보호에 앞장서느라 그러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노조 부위원장인 내게는 알려 줄 텐데? 답답해하는 내게 한 후배가 그랬다. "얼마전에 서점 옆에서 선배 하나가 늦게 온 후배더러 '일찍 일찍 다녀.' 하면서 어깨를 몇번 친 적이 있죠. 아마 그걸 가지고 폭행이라 그러나봐요." MBC 조합원들의 집회가 이루어지는 공간은1층 회사 로비다. 로비 뒤에는 서점이 하나 있는데, 수업 듣기 싫은 아이들이 교실 뒤에 모여있듯, 집회 참석에 가장 열의가 적은 멤버들이 모이는 곳이 서점 앞이다. 거기서 누가 다른 사람더러 '일찍 일찍 다녀!'하고 훈계를 했다는 건, 화장실 담 뒤편에서 담배 피우던 고교생 하나가 다른 후배더러 '마, 공부 좀 열심히 해!'하고 잔소리하는 거랑 같다. 그냥 자기들끼리 개그하는 거지. 

 

당연히 나는 이게 노조원 폭행 사건의 전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배 아나운서 정도 되는 공인이 저 정도의 일을 침소봉대해 게시판에 글을 쓰고, 기자 정신의 화신인 이진숙 홍보국장이 그걸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 내가 알아내지 못한 진짜 폭행 사건이 일어났던 게 분명해... 아무리 알아내려 해도 알 수 없기에 포기하고 있었는데, 검찰이 법원에서 배 아나의 글을 인용할 때는 만세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천라지망과 같은 검찰의 정보망에 폭행 사건이 걸려들었군.' 이제 남은 건 그 폭행 사건의 범인과 피해자를 검찰이 찾아내어 세상에 까발리면 된다. MBC 노조가 얼마나 부도덕한 집단인지 밝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검찰에게 주어진 것이다. 제보자나 목격자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제보자는 누구나 다 아는 뉴스데스크의 앵커! 얼마나 공신력이 큰 인물인가. 배 아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만 봐도 게임 오버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검찰은 배 아나가 말한 폭행 사건에 대해 전혀 수사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그냥 배 아나의 글을 핑게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뿐이다. '이건 아니지! 폭행 사건이 있다잖아. 그걸 조사해보면 되잖아. 검찰이 그 사건을 밝혀내지 못하면, 기껏 용기를 내어 노조원의 폭행을 고발한 배 아나의 진심은 어떻게 되는거냐구!'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불현듯 날아온 미모의 여검사의 일격!

 

"피의자 김민식은 서늘한 간담회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김재철 사장의 퇴진 없이는 파업을 절대 풀지 않을 거라 말했습니다. 사실이지요?"

 

난 예쁜 여자가 말을 걸면,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본다. 한심한 놈이라고 흉봐도 소용없다.

 

이어지는 검사님 말씀.

"네, 파업이 100일이 넘었지만, 이들에게는 보다시피 파업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죄질이 극히 나쁘고, 재범의 우려가 농후합니다. 조합원들을 일터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파업 현장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합니다. 집행부 다섯명 전원을 반드시 구속하여 법질서의 엄중함을 보여줘야합니다."

 

구속의 위기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와! 저 이쁜 검사님도 내가 진행하는 서늘한 간담회를 들으시는 거야? 그럼 저 미모의 검사님이 나의 안티팬 1호? 나의 방송을 즐겨 들으시고 나를 오래 오래 곁에 두려고 구속영장을 친 거야? 그럼 이건, '아름다운 구속'? 아, 놔, 이 놈의 인기란...'  

 

하지만 미모의 검사님이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반드시 당신만은 잡아넣고 말겠어.'라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고나 할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중간첩 놀이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나보다. 노조의 불법 파업을 막고, 민주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신념 하에 노동조합에 위장취업했는데, 어쩌다 종북좌파로 몰려 구속영장까지 받게 된거지? 어쩌지? 이제라도 나의 정체를 고백해야하나?

 

"실은 저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조에 위장취업한 보수 우파입니다." 라고?

 

검찰의 오버플레이 때문에 십수년 간 MBC내에서 암약해온 나의 정체가 여기서 드러나게 생겼군. 어쩐다?

 

딴따라 우파의 구속 위기, 3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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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MBC 면접 때 일이다. "김민식씨, 예능 피디를 지원한 이유는?"

"저는 광대입니다. 세 사람이 모이면 세 명을 웃기고, 열 사람이 모이면 열 명을 웃겨야 직성이 풀립니다. 기회를 주시면 수천만 시청자를 웃겨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김민식씨를 안 뽑으면?"

"그럼 다시 돌아가 친구들이나 가족을 평생 웃겨주며 살겠습니다."

 

그런 각오로 입사했다. 우리 시대의 광대가 되겠다는 각오로. 입사하고 줄곧 코미디를 고집하며 살았다. 드라마국으로 옮겼다고 해서 갑자기 진지해진 건 아니다. '내조의 여왕',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글로리아'까지 다 로맨틱 코미디만 연출했으니까. 노조 집행부가 되어서도 나의 역할은 광대다. 마이크를 잡고 조합원 앞에 서면 어떻게든 한번은 웃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광대의 소명이다.

 

조합원 업무 복귀 후, 사측에서 취하는 갖가지 보복인사와 작가 해고 등의 사태를 보며 우울해졌다. 김재철과 그 일당들의 행태를 옆에서 지켜보며 2년을 살아낸다는 것, 그 중 6개월은 파업으로 그중 6개월은 정직으로 보내며 내 속의 유쾌한 광대기질이 죽어가는 건 아닌지 심하게 우울했다.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싸움을 거친 후, 나는 광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현업 복귀 후, 나는 다시 코미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 어제 책을 한 권 읽었다. 커트 보네거트의 '마더 나이트'.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선전병 역할을 한 죄로 전범 재판에 회부된 미국 첩보원의 이야기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우울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유쾌한 이야기가 가능한거지?' 알고보니 커트 보네거트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경험한다. 수만명의 무고한 시민이 소이탄에 불에 타버린 현장을 눈으로 목도한 사람이다. 그런 생지옥을 겪고 살아나온 보네거트는 20세기 최고의 유머 작가가 된다. 

 

                               (저 얼굴에 가득한 웃음 주름을 보라! 저렇게 멋진 주름을 갖고 싶다.)

 

김중혁 소설가가 책 뒤에 쓴 추천사가 마음에 남는다.  "키득거리며, 땅을 치며, 땅에 떨어지는 배꼽을 부여잡으며, (너무 웃겨서 터지는) 눈물을 훔쳐가며 커트 보네거트를 읽었다. 웃으면서 입술을 앙다물었다. 세상에 무릎 꿇지 않고, 세상을 비웃어주어야만 내가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꼼수 팀을 볼 때마다 느낀다. 가카라는 공포스러운 존재를 만나고도 오히려 끊임없이 조롱을 일삼는 그들이야 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광대가 아닌가! 예전 광대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외줄타기를 했다면 우리 시대의 광대는 감옥 담장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생각해보면 데뷔작 '뉴논스톱'에서 짠돌이 양동근과 억척 또순이 박경림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가난했던 20대, 몸에 배인 나 자신의 짠돌이 습성 덕분이었다. 그래, 광대라면 오히려 시련에서 웃음을 길어낼 줄 알아야 하는 데, 이 정도 싸움으로 광대가 웃음을 잃어버린다면 진짜 광대가 아닌거지.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는 것은 제대로 된 코미디 연출가로 만들기 위한 운명의 배려일지도 몰라! 나를 더욱 큰 코미디 피디로 만들어줄 새로운 시련에 도전해야겠다. 그것이 진정한 광대의 길이니까.

 

 

다시 한번,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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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정직중인 기러기 아빠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가. 네, 혼자 잘 놀면서 보냅니다. 감기로 앓아 누워있기에는 가을 하늘이 너무 이쁘니까요. 아침에 일찍 집에서 나왔어요. 8시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해섭니다. 영화광이라 1년에 100편 정도 영화를 보는데, 거의 조조로 봅니다.

 

어제는 스텝업4 레볼루션을 봤어요. MBC 후배가 추천해준 영화였거든요. 전형적인 댄스 청춘영화입니다. 가난한 웨이터지만 댄서의 꿈을 꾸는 남자가 발레를 하는 부잣집 딸을 만나 사랑을 하는 이야기, 네, 딱 그림 나오죠. 어찌보면 내용도 없고 오로지 음악에 춤만 추는 영화인데 후배가 추천한 이유는 플래쉬몹을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6개월간 파업을 하면서 우리도 'MBC 프리덤'을 가지고 서울역에서, 잠실 롯데월드 앞에서, 광화문에서, 홍대 정문 앞에서 플래쉬몹을 벌였거든요.

 

 

http://youtu.be/Bl3JhUmOSc4  서울역 플래쉬몹

 

스텝업에서는 플래쉬몹을 레볼루션이라고 부릅니다. 감히 혁명이라니요. 하긴, 우리도 봄에 춤을 추며 세상을 바꾸려고 했었죠. 괴로운 6개월의 장기 파업 춤추고 노래하며 이겨보려 했죠. 하지만 여야합의를 믿고 올라간 조합원들, 8월 한 달이 다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고, 그동안 김재철 일당은 피디수첩 작가 전원 해고에 불만제로 불방에 아이템 검열에 외려 보복의 칼춤만 추었죠. 

 

영화를 보고 나와 서울 대공원으로 갔어요. 동물원에 가 홍학과 기린에게 인사한 후, 산림욕장으로 향합니다. 저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산책코스를 좋아합니다. 3시간 동안 혼자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아침에 본 영화의 내용을 복기해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세상을 바꾸겠다고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또다시 즐거운 기획 아이템이 떠올랐습니다. (곧 블로그를 통해 공개할 겁니다~)

 

 

사색의 숲에서 이런 저런 생각~ '그래, 사장을 바꾸겠다고 춤을 췄는데, 사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다시 춤을 춰야지. 나갈 때까지 춤을 추는 거야. 인디언 레인메이커처럼.'

 

 

 

선선한 가을의 초입에 계곡 바위에 앉아 집에서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습니다. '가을을 즐기러 왔으니 진짜 가을을 즐겨야지.'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테니까~ 그래요, 다시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합니다. 아내가 싱가폴에서 해외 파견 근무중이라 가끔 아이들을 보러 싱가폴에 갑니다. 갈 때마다 그래요. '한국에서 태어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싱가폴은 적도 바로 위에 있어 사계절이 따로 없어요. 백화점 안에 들어가면 가을이고 나오면 뜨거운 여름이고 그렇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건 큰 복이에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빨리 빨리 옷도 새 옷 갈아입고 이불도 새로 내고 그렇게 움직이다보니 한국 국민이 이렇게 부지런한가봐요. 자, 나는 다시 가을축제를 즐기러 갑니다.

 

 

 

어제 동물원 축제무대에서는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동호인의 날 행사가 열렸어요. 관악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회였죠. 아바의 히트곡 메들리를 관악으로 연주한 군포 윈드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흥겨웠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주제곡을 편곡한 베누스토 윈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즐거웠어요. 지휘자가 해적 모자를 쓰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 동호인들로 이루어진 멤버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무료 공연이 있어 즐거운 세상, 바로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국제관악제는 대부분 무료공연이니 가을 하늘 아래 흥겨운 브라스밴드의 연주를 즐기실 분들은 아래 싸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w2012.windband.or.kr/  아마 다음주 일요일의 가을 축제는 혼자 소래포구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서 여의도 너른들판에서 펼쳐지는 마칭밴드 연주회 관람으로 마무리할 것 같네요.

 

 

 

어제 하루 영화 5000원, 동물원 3000원, 교통비 2000원, 토탈 만원으로 나홀로 가을 축제를 즐겼습니다. 항상 짠돌이로 사는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이유는? 돈을 들여 즐기는 향락만 누리다보면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올 수 없거든요. 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지, 돈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번 한 주, 즐거운 축제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삶은 하루하루가 축제의 연속이니까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기원하는 흥겨운 굿판을 벌이러 나갑니다. 재처리 몰러 나간다~ 훠어이, 훠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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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피디에게 캐스팅은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내게는 나만의 캐스팅 노하우가 있다. 드라마 편집 기사를 만나면 항상 물어본다. ‘지난번 작품에서는 누가 잘했어요?’ 오케이 컷으로만 이루어진 방송본을 보고 배우의 진짜 실력을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편집자는 엔지 컷 수 십 개를 다 보며 작업하기에 배우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친한 편집자가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을 작업했기에 물어봤다. 혹시 그 작품에서 추천할 배우 없냐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윤상현!’ 하고 대답했다. 배우 윤상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난 그 말에 미간을 찡그리며, ‘그 좀 찌질하게 나오는 친구?’하고 의아해했다. 나는 윤상현의 전작들, ‘겨울새크크섬의 비밀을 보고 생긴 건 기무라 타쿠야 삘인데 좀 찌질한 캐릭터네?’했다. 그랬는데 편집자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찌질한 것 같은데, 자꾸 보면 그게 오히려 매력이에요.”

 

그 다음해 내가 공동연출을 맡은 드라마가 내조의 여왕이었다. 대본을 보고 캐스팅을 하는데, 극중 윤태준 사장 역할이 제일 난관이었다. 여주인공 김남주 씨를 극중에서 도와주는 재벌 2세 키다리 아저씨, 로맨스 느낌을 살려야하는 바람둥이이자 순정남, 여성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어 배우도 뜨고 작품도 뜰 수 있는 중요한 배역이었다. 잘 생기고 돈 많은 재벌2세지만 김남주에게만은 찌질한 백수로 보여 늘 태봉씨라고 놀림 받는 캐릭터였다. ‘언뜻 보면 찌질한 백수지만 알고 보면 매력남이라!’ 난 그 역할에 윤상현을 밀었다.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친구가 해서 잘 된 작품이 별로 없었는데요. 나이도 많은데 아직 안 뜬 거 보면 힘든 거 아닌가?’

 

 

 

뜬 배우와 안 뜬 배우로 나누는 게 아니라, 뜬 배우와 뜰 배우로 나눠야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을 만난다면 누구나 뜰 수 있다. 오랜 시절 신인들과 작업한 나의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을 만나면 뜰 수 있다는 거, 이건 배우에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직업을 찾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배우에게 딱 맞는 역할을 찾는 것이 캐스팅이라면,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찾는 것은 구직이다. 캐스팅할 때 PD의 자세는 멀티플라이어라는 책에 나오는 재능자석의 자세와 비슷하다. 멀티플라이어는 사람의 재능을 단순히 더하는 것이 아니라 몇 배로 끌어내는 사람을 뜻한다. (멀티프라이 multiply 배로 곱하다.)

 

멀티플라이어가 인재를 찾는 4가지 방법을 살펴보자. 첫째, 어느 곳에서든 인재를 찾는다. 둘째,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한다. 셋째, 재능을 충분히 활용한다. 넷째, 방해자를 제거한다. 누구나 멀티플라이어를 만나면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키울 수 있는데, 만약 멀티플라이어를 만나지 못한다면 재능을 발견해줄 누군가를 마냥 기다려야 할까? 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몇배로 능력을 발현하게 하는 스스로의 멀티플라이어가 되자.

 

첫째, 어느 곳에서든 인재를 찾는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경계를 무시한다는 뜻이다. 김태호 피디가 무한도전의 멤버를 처음 모았을 때, 비호감 열전이 아니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김태호는 호감이냐 비호감이냐로 출연자를 나누기보다 멤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살려 캐릭터를 쌓았다. 그 결과 무한도전은 각자의 성격이 분명한 출연자들의 캐릭터 코미디물이 되었다. 세속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찾아 재능으로 특화시키는 것, 취업 무한도전을 위한 첫걸음이다.

 

둘째, 감춰진 재능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른 일보다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 요청받지 않고도 하는 일이 무엇인가? 대가를 받지 않고도 기꺼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재능자석이 다른 이에게서 숨겨진 능력을 찾기 위해 던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자신의 재능을 찾아보자.

 

셋째, 사람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관리자의 목표라면, 우리 삶의 과제는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찾는 것이다. 취업의 기회가 제한된 현실에서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정우성을 쫓아다닐 때 10년 뒤 조인성을 키우는 마음으로, 누구나 가기 바라는 대기업보다 내가 키울 수 있는 중소기업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원빈 같은 인기직종도 좋지만, 양동근 같은 숨은 보배 같은 일자리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넷째, 멀티플라이어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방해자를 제거한다. 구직을 하는 데 있어 훼방꾼은 바깥에 있지 않고 주로 내 속에 있다. 취업에 방해되는 나쁜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것, 특히 어떤 일을 해보기도 전해 해도 안 될 거 괜히 지원했다가 마음의 상처만 입을 필요 없잖아?’하고 속삭이는 마음이 있다면 단 칼에 베어버리자. 될지 안 될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

 

인생의 행복, 단순하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일, 남보다 잘 하는 일, 이 세 가지를 일치시키면 된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드라마 피디가 된 건 나이 마흔 살의 일, 마흔이 되어서야 겨우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을 일치시켰다. 아직 남보다 잘 하는 일까지 일치시키지는 못했지만, 그건 남은 평생 노력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남보다 잘 하는 것은 천천히 해도 된다. 그러나 20대에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하고 싶은 일’, 즉 적성을 찾는 일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정하는 데 있으니까.

 

 

추신:

책을 보면 '멀티플라이어'의 반대말로 '디미니셔'를 든다. 어떤 조직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주위 사람들의 능력과 의욕을 떨어뜨리는 조직의 암적인 존재를 말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장은 조직을 초토화하고 경쟁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추락시킨 것도 모자라 일하겠다는 후배들 말리고 잘 하는 사람 자르고 특정 무용인만 집중 육성하더라. 조직을 살리는데 최우선 과제는 멀티플라이어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는 디미니셔를 제거하는 데 있다.

아, 오늘만큼은 정말 좋은 글만 쓰고 가려고 했는데, 또 끝내 참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나는 수양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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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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