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4.05.18 공짜로 동화 읽어주는 사이트 (3)
  2. 2014.03.03 네팔에서 제일 좋은 것? (4)
  3. 2014.01.09 인생에 정답은 없다 (2)
  4. 2014.01.08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는 법 (3)
  5. 2014.01.06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법 (6)
  6. 2013.12.19 아이를 위한 선물 (2)
  7. 2013.12.18 짠돌이 아빠의 육아법 (1)
  8. 2013.12.11 팬이냐, 훌리건이냐 (6)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육아 활동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의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방법이니까.

잠들기 전 '하루 20분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 이게 내가 하는 육아다. 물론 이게 매일 하기가 쉽지 않다. 난 가급적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저녁에 약속이 있으면 둘째가 잠들기 전에 집에 오기 쉽지 않으니까. 저녁 9시전에 집에 들어와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는 시기도 참 짧다. 

큰 애는 중학교 1학년인데, 책을 읽어주겠다고 해도 별로 반기지 않는다. 독서 교사들은 중학생이 되어도 부모님이 책 읽어주는 것을 권한다. 그게 부모와 아이 간의 소통의 한 방법이란다. 아이가 한글을 떼면, '이제 책은 직접 읽어.'라고 하는데 사실 한글을 읽는 것과 독서를 하는 건 아직 거리가 있기에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아이에게 책은 계속 읽어주는 게 좋단다. 

우리 집 둘째는 늦둥이다. 나이 마흔에 얻은 딸인데, 큰 애를 키워보니 알겠더라. '아빠, 놀아줘. 안아줘. 책 읽어줘.' 하고 보채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는 걸. 정말이다. '언제 다 키워.'하고 캄캄해도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그리고 아이는 훌쩍 부모의 품을 떠난다. 아이가 책 읽어달라고 할 때, 읽어주는 게 최고의 육아다. 어려서 익힌 책 읽는 습관, 인생을 사는데 그만한 밑천도 없으니까.

일하고 오느라 지쳐서 책을 읽어줄 힘도 없을 땐 어떻게 할까? 세상이 편리해지다보니 그럴 때도 다 방법이 있다. '올리볼리'라는 동화 사이트를 찾아가면 된다.

http://www.ollybolly.org/

여러 나라의 동화가 올라와 있고, 동영상으로 제작해 동화를 읽어주는 기능도 있다. 영어로도 읽어주고 우리말로도 읽어주니 영어 공부에 욕심나는 부모님들에게도 좋은 사이트일듯.

 

나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 도서관에 자주 간다.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하나다.

'민서야, 여기 이 많은 책을 마음껏 읽는게 다 공짜란다.

세상에는 공짜로 즐길 수 있는게 참 많아.

우리가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데 돈은 별로 필요가 없단다.

그걸 깨달으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겁이 나지 않아.

큰 돈 벌지 않아도 좋으니 무조건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기를.'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봄방학 2주간 딸과 함께 네팔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를 위한 초등학교 졸업선물이었지만, 지나고보니 아이 핑게로 내가 더 즐기다 온 기분이다.

 

꼼꼼이 짠 일정대로 2주 동안 아이와 함께 네팔의 하이라이트를 즐겼다.

 

박타푸르에 가서 14세기에 지어진 왕궁을 둘러보며 역사 유적도 탐방하고 

 

 

 

(물론 민지는 왕궁의 화려한 건축 양식보다 지나다니는 동네 개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지만...)

 

 

 

3200미터 높이의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에 올라 히말라야의 해돋이도 감상하고

 

 

(조카와 딸을 데리고 산에 오른 나를 보고 누가, '현지 셸파이신 줄 알았다'고 하더라...)

 

 

 

치트완 국립공원에서는 코끼리 등에 타고 정글 사파리하며 코뿔소랑 악어도 만나고

 

 

(아이들에게 자꾸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하고 묻는 건, 나를 현지인 가이드로 안다는 거?)

 

 

 

포카라에서는 사랑꼿에 올라 히말라야 설경을 보며 패러글라이딩으로 하늘을 날았다.

 

 

(민지에게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신 프랑스 할아버지 라이더.)

 

이 모든 액티비티를 마치고, 여행 마지막 날 야심차게 물어봤다.

"민지야, 그동안 네팔 여행 중 뭐가 제일 좋았어?"

"음....

 

 

잠 자는 거?"

 

 

엥? 이게 무슨 소리야. 내심 정글 사파리나 트레킹, 패러글라이딩을 예상하고 물었는데, 기껏 잠자는 게 제일 좋았다니...

 

여기엔 아이만의 사정이 있다. 민지는 대한민국의 초등학생답게 평소 밤 11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 일주일에 3번 가는 수학 학원의 경우, 수업 끝나는 시간이 밤 10시다. 학원 다녀와서 학교 숙제하고 누우면 밤 11시가 넘는다. 아침에는 7시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런데 네팔은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다. 수도인 카트만두에서도 매일밤이면 정전이라 저녁만 되면 할 게 없다. 안나푸르나 트레킹할 때 들르는 간다룩이나 푼힐 아래 산 마을의 경우, 해가 떨어지면 사방이 캄캄하다. 태양전지로 돌리는 전기는 너무 약해서 책 한 권 읽기 쉽지 않다. 그래서 네팔에 있는 2주 동안, 해가 떨어지면 잠자리에 드는 원시 시대, 자연의 삶을 즐겼다.

(한국에 돌아와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민지가 했던 말.

"와, 여기 엘리베이터 안이 네팔 호텔 방안 보다도 밝아!")

 

나는 늙어서 새벽잠이 없다. 그러니 꼭 새벽 2~3시면 깨어 스마트폰으로 전자 책을 읽었다. 내겐 여행이 독서를 보충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아이는 매일 꼬박 12시간 씩 정말 잘 자더라. 그러니 '네팔에 와서 제일 좋은 건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거에요.'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밤에 늦게 들어온 아이를 아침마다 학교 가라고 깨우는 게 늘 미안했는데, 여행 와서는 마음껏 자도록 놔둘 수 있어서 나도 좋았다.

 

배낭 여행 와서는 하루 24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다. 늦게 일어나도 아쉬울 게 하나 없다. 아이랑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어쩜 내가 아이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2주간의 자유가 아닐까?

 

아이랑 여행을 다니며 다시한번 깨달았지만, 역시 육아는 부모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똑같은 걸 봐도, 부모가 느끼는 거랑 아이가 좋아하는 건 다를 수 밖에 없더라. 2주간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는 것.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아빠로서 내가 얻은 선물은 그게 아닐까 싶다.

신고
Posted by 김민식pd

앞에서 말한 뉴논스톱 캐스팅 뒷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정우성같은 특급 스타를 캐스팅하는데 실패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작가들과 회의를 했다. 신인과 스타 사이에 있는 누군가 없을까? 신인 중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특급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배우, 누구 없을까? 그랬더니 다들 '원빈'이 어떠냐고 물었다. 지금 원빈 말고, 13년전 신인 시절의 원빈. "원빈 좋네!" 정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섭외의 고수라 자부하는 부장님이 원빈을 논스톱에 스카웃하겠다며 소속사 대표를 만나러 갔다. 스타제이의 정영범 사장이 원빈을 발굴한 주역이었는데, 시트콤 출연제의를 듣고 흔쾌히, '부장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드려야죠.' 했다. 득의양양한 부장이 일어서려는데 문득 정영범 대표가 던진 말.

"그런데요, 원빈을 드리는게 부장님께 도움이 될까요?"

"무슨 얘기야?"

"원빈은 좋은 배우죠. 하지만 시트콤 연기와 잘 어울리는 배우는 아닙니다. 일일 시트콤에 나가 괜히 작품에 폐만 끼치고, 배우로서 아직 부족하다는 소리만 들을까봐 걱정입니다."

"어떡하지? 후배한테 원빈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리치고 왔는데?"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정영범 대표가 던진 이야기.

"부장님, 사실 저희 회사에 시트콤에 딱 맞을 친구는 따로 있습니다. 코미디 연기가 탁월하고 애드립이 뛰어난 친구죠. 그 친구를 데려가시면 서로에게 절대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누군데?"

"양동근이라고요."

 

한편 나는 논스톱 작가들과 함께 대본회의를 하고 있었다. 

"원빈이 들어오면 말이야, 러브 라인을 누구랑 엮어주면 좋을까? 이제니? 이재은?"

그때 부장님이 돌아오셨다. 

"캐스팅 끝났다!"

"와! 그럼 이제 원빈 출연하는 건가요?"

"아니, 원빈 말고. 양동근이라는 친구가 하기로 했어."

 

원빈을 캐스팅하러 가서, 양동근을 대신 데려왔을 때, 당시 피디와 작가들의 반응이 어떠했을 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솔직히 '우린 이제 망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양동근이 진짜 복덩이더라. '남자셋 여자셋' 이후 고만고만한 인물,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식상해지던 MBC 청춘 시트콤에 양동근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주인공이 된다.

 

 

양동근이 논스톱에 나와 그렇게 신나게 코미디를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출인 내가 초짜였기 때문이다. 난 시트콤 연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 매일 시청자의 자세로 촬영에 임했다. 배우에게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시키기보다 배우가 하는 연기를 보고 '재미 있다, 없다'만 말해줬다. 양동근같은 친구는 그 정도만 해도 알아서 막 이것저것 만들어주더라. 대본의 틀 안에서 놀 수 있는 배우를 만난 덕에 깨달았다. 연출은 배우에게 뛰어놀 너른 품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대본에 여백을 충분히 비워둔 상태로 촬영장에 나간다. 나만의 정답을 빽빽히 대본에 적어나가면 배우나 스태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어찌보면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것 아니면 안돼!' 그런 것도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답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답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나만의 답이다. 드라마 피디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방송 시작하고 나서 캐스팅을 후회하는 일이다. '역시 식상한데, 그때 신인을 쓸걸 그랬나?' '아, 그때 출연료를 따블로 주고라도 톱스타를 썼어야했어.' 이런 후회 의미없다. 작품을 하는 동안은 내 배우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달려야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머리속에 정답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와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성격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못이 있으면, 못으로 쓰고, 바늘이 있으면 바늘로 쓰면 됩니다. 그런데 서툰 목수는 굳이 못을 두들겨 가는 바늘로 만들려하고 바늘을 녹여 못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바늘이 있으면 바느질을 하고 못이 있으면 못질을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사물의 본래 성질을 존중하고 쓰임새대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고유한 성질을 존중해줘야 한다. 부모 마음대로 구부리고 두들긴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괜한 간섭으로 서로 피곤해질 뿐이다. 물론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 공부하는 심정으로 아이를 키워야한다. 부모 되기 쉽지 않다.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더라. 결혼한다고, 돈 번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더라. 아이를 키우며 부모로 살아보니 나를 키워준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되고, 그제야 어른의 마음을 알 것 같더라.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 아이를 문제삼기보다 나를 돌아본다. 나의 육아는 혹시 아이의 본래 성질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공부는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삼가고 또 돌이키는 마음으로 나를 돌아본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가 되는게 아니라, 그때부터 부모 공부는 시작이다. 내게 좋은 공부를 시켜주는 두 딸에게 감사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부모 말 죽어라 안듣는 아이를 대하는 법을 고민해보겠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육아일기를 써야지! 결심했는데 막상 실천은 참 어렵네요. 엊그제도 게임하다 엉뚱한 룰을 고집하는 민서랑 대판 싸웠다는... 마흔 일곱 나이에 일곱살 짜리 딸이랑 싸우고 있으니 나도 참...^^)

신고

'짠돌이 육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PD처럼 공부하게 하라  (0) 2014.01.20
미켈란젤로의 3가지 행운  (3) 2014.01.15
인생에 정답은 없다  (2) 2014.01.09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는 법  (3) 2014.01.08
스타를 만드는 육아법  (1) 2014.01.07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법  (6) 2014.01.06
Posted by 김민식pd

예능 피디로 일하다보면 모든 연예인들을 다 만난다.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등. 어느날 피디들끼리 모여 어떤 직업이 최고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는데, 그때 1등 먹은 연예인 직업이 개그맨이었다. 영화 배우 개런티가 대단하다 해도 1년에 끽해야 한 두 편밖에 못 찍는다. 아이돌 가수 인기가 좋다해도 직업 수명이 너무 짧다. (10대에 아이돌로 날리다 30대에 철없는 어른이 되어 사고치는 이들을 보면 특히 더 그렇다.) 버라이어티 쇼 MC 급 개그맨의 경우, 잘나가는 이들은 1년에 7,8개 프로그램은 거뜬히 해낸다. 방송 3사에서도 찾고, 케이블에서도 모시고, 심지어 행사 진행까지 뛴다. 백댄서나 밴드를 데리고 다닐 필요도 없고 그냥 마이크만 쥐어주면 언제 어디서나 관객을 즐겁게 해주니 이만큼 저비용 고부가가치의 직업도 없다. 요즘같은 예능 대세의 시대에 연예인 소득순위 상위권은 항상 개그맨들이 장악하고 있다. 어떤 피디가 그랬다.

 

"우리 아이는 크면 개그맨 시킬거야. 어려서부터 코미디언 영재 교육을 시켜려구. 영어 유치원 보내는 대신 팔도 사투리 가르치고, 수학 과외 대신 성대 모사를 가르치는 거지. 애 얼굴에 돈 투자할 필요도 없어. 그래야 나중에 자학 개그의 소재로 써먹을 수 있게. 돈 적게 들여서 크게 버는데는 이만한 직업이 없다니까."  

 

작년 봄 MBC와 KBS가 공동 파업을 벌일 때, 여의도 공원에서 집회가 끝나고 양사 피디들이 모여 차 마시며 사는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3,40대 피디들이 모여앉다보니 그때도 자연히 자녀 교육 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졌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 자리에서 '돈 잘 벌기로는 개그맨이 최고지 않나요?' 했더니, KBS 피디 한 사람이 그러더라. '그렇긴 한데 개그 콘서트 보면 개그맨으로 뜨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특히 메인 MC급 개그맨은 진입 장벽이 높아서 쉽게 들어갈 수도 없죠.' 하긴 지난 10년간 영화계 톱스타보다 더 변동이 적은게 톱 MC들이다. 한번 자리잡으면 엄청 오래하니까 그만큼 신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적다.

 

파업 중이라 그랬는지, 피디라는 직업에 대해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MB 정권 하에서 낙하산 사장들이 공영방송의 미래를 특히 어둡게 바꾸어놓았다. (어제 신문을 보니 이명박 하에서 언론장악을 주도하고 방송을 망친 이동관이 무슨 사이버대학 총장이 되었더라. 정말 개탄스럽다. 그 대학은 사이버 대학이냐 사이비 대학이냐. 총장을 그런 사람으로 뽑고 무슨 미래의 인재를 키운다고 하는건지...) 누가 사장이 되느냐에 따라 조직의 역량이 너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직장인의 미래는 한계가 있다.

 

그 자리에 모인 피디들이 이구동성으로 미래에 가장 전망 좋은 직업으로 뽑은 것은 창작자였다. 많은 아이들이 탈렌트가 되려고 하지만 실제 벌이가 더 좋은 건 드라마 작가다. A급 작가는 편당 2000만원 이상의 고료를 받는데 50부작을 집필할 경우, 1년에 10억도 너끈히 번다. 공중파에 한번 틀면 케이블에서 재방 삼방하면서 그때마다 재방료 꼬박꼬박 나온다. 해외 수출이라도 되면 판권료를 또 받는다. 가수는 몰라도 작사 작곡 하는 싱어 송 라이터의 수명은 참 길다. 젊어서 히트곡 몇편 작곡한 걸로 따뚯한 노후를 보내는 분들도 많다. 90세까지 사는 시대, 월급 생활자보다 인세 생활자가 더 전망이 좋다.

 

그렇다면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피디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는데, 목동에 사는 한 KBS 피디가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집 아들은 기타를 참 좋아합니다. 매일 기타를 붙잡고 사는데 심지어 잘 때도 침대에 누워 기타 코드 잡다가 기타를 안은 채 그대로 잠들기도 합니다."

와, 공부하다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는 얘기보다 더 부러웠다. 

"중학생인데 벌써 노래도 직접 작곡하고 그럽니다. 나중에 기타리스트나 작곡가가 되는 게 꿈이랍니다."

그 자리에 있는 피디들이 다 부러움의 탄성을 질렀다. 

"우리 애도 음악에 취미을 길러주려고 피아노도 시키고 바이올린도 시켜보는데 귀찮아 하기만 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던데... 도대체 비결이 뭔가요?"

"저는 집이 목동이지만, 아이에게 사교육은 전혀 시키지 않습니다. 저녁에 학원도 안 보내요. 그러니까 아이가 같이 놀 친구도 없고 늘 심심해하더라구요. 그래서 기타를 사다줬더니 바로 빠져버린 거에요. 이제는 기타 없이는 못 살아요."

 

진심 부러웠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이 있지만, 고수의 경지에 미치려면 먼저 미쳐야한다. 창작자는 아티스트라 무언가에 미쳐본 사람만이 가능한 직업이다. 어려서 부모가 짜주는 스케줄에 따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나중에 직장 들어가 또 누군가 시키는 일만 죽어라 한다. 어려서 혼자 놀아본 사람, 그러다 무언가에 빠져본 아이만이 자신의 평생 취미를 찾아낸다. 그런 아이가 진짜 창작자가 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아이가 많다.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 미술 학원, 음악 학원, 독서 교실, 등 학원 조리돌림 당하느라 정작 자신만의 여유 시간이 없다. 멍하니 있어봐야 하고 싶은 일도 생기는 법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바쁘니까 아이들이 가장 가까이하는 장난감이 손 안의 스마트폰이 될 수 밖에 없다. 짧은 시간 가장 센 자극을 즐기자니 게임이 최고의 취미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이런 건 다 옛날에는 한량들이 잘 하던 것이었다. 바쁘게 사는 이에게 예술의 영감은 깃들지 않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주려면 아이를 한가하게 해주어야 한다. 정말 심심해서 못 견딜 지경이 되었을 때, 아이가 하는 것이 아이의 진정한 취미다.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려면,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시길.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신고

'짠돌이 육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켈란젤로의 3가지 행운  (3) 2014.01.15
인생에 정답은 없다  (2) 2014.01.09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는 법  (3) 2014.01.08
스타를 만드는 육아법  (1) 2014.01.07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법  (6) 2014.01.06
나중에 우길 것이다  (7) 2014.01.03
Posted by 김민식pd

나의 연출 데뷔작은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이다. 대학에서는 자원공학을 전공하며 석탄채굴학을 배웠고, 첫 직장에서는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치과에 세일즈를 다녔다. 나이 서른에 시트콤에 꽂혀서 피디가 되었는데 첫 연출작이 '뉴논스톱'이었다.

 

어떤 일을 맡았는데 그 일에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일에 도전할까? 열정이다. 난 열정을 가지고 논스톱 연출에 임했다. 나의 목표는 당대의 톱스타, 정우성 같은 이를 시트콤에 캐스팅하는 것이었다. '왜 시트콤에는 늘 신인만 나올까, 스타 캐스팅을 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까?' 정우성을 섭외하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그때 캐스팅의 달인이라는 어느 선배가 나를 불렀다.

"민식아, 너 요즘 시트콤에 정우성 캐스팅한다고 다닌다며?"

"네."

"그게 되겠냐?"

"선배님,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면 아주 불가능하기야 할까요?"

"민식아, 정우성 집 앞에 한번 가봐라. 너처럼 열정을 가진 피디가 열 명이 무릎 꿇고 앉아 줄 서 있을 거야. 넌 가면 줄 끝에 가서 서야돼. 열정만 갖고 되겠니? 그런데 말이야, 그 피디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지. 천하의 정우성도 5년 전, 10년 전, 영화 '비트'로 뜨기 전에는 무명의 신인이었다는 거. 방송사마다 프로필 들고 피디들 쫓아다녀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는 거. 민식아, 연출 초짜인 네가 해야 될 일은, 지금 톱스타인 정우성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5년 뒤, 10년 뒤, 제2의 정우성이 될 신인을 찾아서 키우는 일이란다."

 

그래서 100여명의 남자 신인 프로필을 뒤지고, 20명을 오디션 봐서, 1명의 신인을 뽑았는데 그게 조인성이었다.

 

 

스타와 신인의 차이는 NG에 대한 반응에서 온다. 신인의 경우, NG를 내면 주위 스태프들이 인상을 팍 쓴다. 가뜩이나 촬영 분량이 많아 걱정인데 초짜가 버벅거리면 '쟤 땜에 또 밤새겠네' 하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푹 나온다. 신인의 경우 NG를 내고 제일 먼저 눈 앞에 보이는 게 벌을 서는 한 남자다. 동시녹음의 경우, 마이크맨은 카메라 앵글 밖에서 음성을 픽업하기 위해 긴 장대같은 마이크를 양손에 잡고 팔을 치켜들고 서서 일한다. 감독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면 팔을 내리고 쉬지만, 엔지가 나면 계속 팔을 들고 있어야 한다. 이건 배우 입장에서 엄청난 압박이다. '저 사람은 나 때문에 벌서고 있구나.'

 

기죽은 배우는 이제 머리속이 하얘져서 다음 대사도 까먹기 일쑤다. 연기의 질은 리액션에서 나온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상대 배역이 대사하는 동안에는 상대방 연기에 집중하고 적절한 리액션으로 상대의 흥을 돋군다. 하지만 NG 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배우는 머리속에서 자신의 다음 연기를 궁리하느라 표정이 따로 논다. 그러기에 긴장할수록 감독의 NG 소리와 호통은 더욱 늘어간다. 신인이 촬영장에 나와 망하는 전형적인 연쇄반응이다. 체인 리액션 Chain reaction을 막으려면 리액션 체인지 Reaction change를 해야 한다. 배우를 향한 반응을 바꿔줘야한다. 배우에게 기를 불어넣는 체인 리액션이 필요하다. 그걸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감독이다.   

 

스태프들은 자연 감독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신인이라고 감독이 막 대하면 자연 스태프도 인상 쓰게 된다. 피디가 배우를 귀하게 여겨야, 스태프도 배우를 아끼고, 그래야 시청자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NG 후, 첫 반응이 중요하다.

 

2000년 당시 신인이던 조인성과 촬영 중, NG가 나면 나는 모니터 뒤에서 큰 소리로 배우의 주의를 끌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렇게 멋지고 잘생긴 친구가 심지어 엔지도 한번 안 내면 재수없어 정이 안 갈 텐데, 인간적 매력까지 배려해주시다니요!"

촬영장에 조인성이 나타나면 팬의 심정으로 달려나가 그의 멋진 자태를 칭송했다.

"야, 오늘 슈트빨 죽인다. 난 다음 생에 태어나면 조인성 코디가 되고 싶어. 이렇게 멋진 배우에게 이쁜 옷 마음껏 입혀보고 매일 매일이 얼마나 신나겠어?"

카메라 감독이 앵글 잡느라 조인성의 바스트샷을 잡으면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사내라면 저 정도는 생겨줘야하는 말이야. 도대체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뭘하신 거냐고!"

조명 세팅을 기다리는 동안, 촬영장의 긴장을 푸는데 감독의 설레발만한 게 또 없다. '

"어제 방송 끝나고 게시판 반응 봤니? 조인성이 박경림에게 눈길만 한번 줘도 다들 쓰러지더만! 오늘 고백하는 장면 나가면 다 죽었어!"

 

피디로서 나는 항상 배우와 사랑에 빠진 시청자들을 직접 연기한다. 끊임없는 칭찬과 격려로 배우에게 상기시켜줘야한다. 그가 얼마나 멋진 친구인지를. 연출이 먼저 사랑해야, 그 사랑을 받은 배우가 신이 나 열연을 펼치고, 그걸 보고 다시 시청자가 사랑에 빠진다. 그런 점에서 피디는 시청자의 사랑을 대신 전하는 몸신이다.

 

아이를 키워보니 부모가 되는 것은 피디가 되는 것과 같다. 나만의 스타를 키우는 일이다. 다만 한 자녀 가정의 경우, 데뷔작이 곧 은퇴작이라 부모 노릇은 그만큼 더 어렵다. 평생 초보 엄마로 살다 끝나는 것이다. 나는 마흔에 늦둥이 둘째를 낳은 후, 항상 주위에 둘째를 권한다.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 동생이기도 하지만, 초보 때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리턴 매치의 의미도 있다. 초보 부모는 초보 피디가 그랬듯이 열정을 가지고 작품을 대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부모의 열정이 아이에게 괴로움의 원천이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만큼 교육에 열정적인 분도 없었다. 다만 아버지의 열정에 비해 내 성적이 너무 초라한게 문제였다. 고등학교 시절 내신 15등급에 7등급, 성적은 반에서 중간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의대에 보내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나의 성적과 당신의 목표 사이의 간극은 당신의 열정으로 메우셨다. 성적표만 나오면 매를 드는 열정... 아버지는 이런 무시무시한 멘트로 나를 기죽였다. "부모가 교육상 아이를 때리다 애가 잘못 되면 (죽으면...) 그건 죄가 아니다." (그 시절에 아동 학대란 말은 없었다.) 당시 맞다 맞다 진짜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도망간 적도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팬티 바람에 매를 맞았다. 홀딱 벗고 도망갈 수는 없으니까. 팬티 바람에 매를 맞으며 고민했다. 맞다 죽는 게 나을까, 쪽팔려 죽는 게 나을까? 맞다 죽자고 결정한 것 같다. 한번도 팬티 바람에 도망간 적은 없으니까.

   

작가가 되고 싶지, 의사는 죽어도 적성이 아닌데... 그럼에도 난 아버지의 고집으로 이과에 진학하고, 그 어려운 고등수학 2 문제를 풀어야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난 늘 죽을 상을 짓고 있었다. 남자 고교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냥하는 포식 동물이다. 무리 중에서 약한 놈은 정확하게 골라낸다. 그리고 그 한 놈만 죽을 때까지 쫓는다. 나는 그렇게 억센 경상도 남자 아이들의 밥이 되어 학교내 왕따가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괴롭히는 것도 힘들지만, 맞고 집에 가면 아버지가 못난 놈이라고 혼내는 게 더 힘들었다. "너 그 놈 찾아가서 맞은거 두배로 갚고 와. 그러기 전에 저녁밥은 없어." 

 

집요한 따돌림의 대상이 되니 학교 가기 싫어지고 그러니 성적은 더 떨어졌다. 성적표가 나오면 아버지는 '너의 열정이 나의 열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건, 내 열정의 부족 탓인가보다' 하며 다시 열정적으로 매를 드셨다. 열정은 방향이 중요하다. 열정은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이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산다면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아이를 내몰면서 열정을 종용하는 것은 폭력이다. 아버지의 열정에 데어 나는 늘 기죽어 살았다. 그랬더니 학교에선 왕따요, 집안에선 구박데기가 되더라.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하나?

 

제2의 정우성이라고 뽑았다면, 신인도 스타처럼 대접해야 하듯이, 바깥에서 사랑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집에서도 믿고 사랑해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해도, 여기 너를 믿고 사랑하는 1인이 있단다.' 하고 외치며 사는 것, 그것이 감독과 엄마의 일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신고

'짠돌이 육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는 법  (3) 2014.01.08
스타를 만드는 육아법  (1) 2014.01.07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법  (6) 2014.01.06
나중에 우길 것이다  (7) 2014.01.03
아이를 위한 선물  (2) 2013.12.19
짠돌이 아빠의 육아법  (1) 2013.12.18
Posted by 김민식pd

제레미 립킨의 '노동의 종말'을 보면 21세기는 인류에게 노동의 기회가 사라지는 시대다. 19세기에 시작된 산업 혁명의 결과, 인간의 육체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 20세기 정보 혁명의 결과, 정신 노동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힘든 육체노동은 기계에게, 단순 반복 작업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천국인가, 아니면 소수의 자본가가 생산 시설을 독점하고 대다수 인류는 실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옥인가.

 

21세기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직종은 무엇일까? 그것은 창작자다. 컴퓨터의 언어 정보 처리 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번역을 컴퓨터가 대신해주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도 소설을 대신 써주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커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글을 잘 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덕목이다. 취업도 마찬가지고, PD 공채도 마찬가지인데, 모든 구직 활동에 있어 첫 인상은 글로 시작한다.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쓰느냐, 논술을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이다. 글쓰기 공부의 기본은 어려서 몸에 밴 책 읽는 습관이다.

 

요즘은 심지어 독서와 논술도 학원에서 가르치던데 단기 속성 과정으로 엑기스 정리해주고 논술 모범 답안으로 아이를 길들이는 건 반대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독서 역시 괴로운 공부의 일종으로 느껴지게 하는 건 절대 반대다.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 취미여야한다. 돈들여 독서 학원 보내기 보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30분씩 책을 읽어 주는 것을 권한다. 그만한 독서 교육이 없으니까.

(멀리서 마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짠돌이, 애들 학원비 주기 싫으니까 저런다.' ㅋㅋㅋ) 

 

아이를 위해 줄 때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어야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다. 그러기에 나는 아이에게 시간을 선물로 준다. 매일 30분 책 읽는 시간, 그건 아이를 위해 아빠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민서는 걸핏하면 전화해서 묻는다.

"아빠, 언제 와?"

이렇게 찾아줄 때가 정말 고마운 거다. ^^)

 

하루 30분 책 읽어주기,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가 부모에게 뭔가 해달라고 조르는 시기도 잠깐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 딸 민지는 이제 자신의 방에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지 절대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유치원생 민서가 쪼르르 달려와서 '아빠 놀아줘' 하고 매달리는 순간, 나는 아빠로서 존재 의미를 찾는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쩌고 저쩌고 운운하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책을 읽어주는 이 순간을. 책장을 넘길때마다 빛나는 민서의 표정. 어설픈 개그에 자지러지는 민서의 웃음, 그 속에 짠돌이 아빠를 위한 구원이 있다.

신고

'짠돌이 육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법  (6) 2014.01.06
나중에 우길 것이다  (7) 2014.01.03
아이를 위한 선물  (2) 2013.12.19
짠돌이 아빠의 육아법  (1) 2013.12.18
70점 아빠를 꿈꾸며  (2) 2013.12.16
꼭 너같은 애 낳기를  (16) 2013.12.12
Posted by 김민식pd

87년에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일이다. 대학 신입 원서에 주소를 적는 난이 두 개가 있어 총무과 사무실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아저씨, 여기 이 빈칸은 뭔교?"

"거기다 시골 주소 적으면 돼."

"시골예? 전 시골 출신 아닌데예?"

"학생 집이 어딘데?"

"울산입니더."

아저씨는 황당한 얼굴로 날 쳐다봤지만 정작 당황한 건 나였다. '울산은 시골 아닌데? 농서나 호계가 시골이지, 울산은 도시인데?' (울주군 농서면이나 호계면에서 온 친구들에게 시골 출신이라고 놀리던 고교 시절이 새삼 후회되더라. 젠장) 나중에 알았다. 서울 사람에게는 서울 외 모든 도시는 다 시골이라는 걸.

 

서울 사람들은 정작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못하면서, 강남 강북 구분은 정확하더라. 강남 강북이 그렇게 다른가? 나같은 촌놈이 보기엔 다 같은 서울인데. 최근 들은 어떤 얘기로는 심지어 강남도 요즘엔 테남 테북으로 나뉜단다. 테헤란로 이남과 테헤란로 이북.

 

테헤란로 이남에는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직들이 산단다. 그들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해 아이들 공부에 모든 자원을 집중한다. 그게 대치동, 도곡동으로 대표되는 테헤란로 이남의 특징이란다.

 

테헤란로 이북에는 강남 땅부자들이 산단다. 강남 개발로 큰 돈을 손에 쥔 이들이라 굳이 공부에 올인하지 않는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그냥 유학보내면 되고, 갔다와서 취직을 못하면 저 좋아하는 카페 하나 차려주면 된다. 그게 압구정동 청담동, 테헤란로 이북의 정서란다. 나같은 촌놈은 절대 이해못할 이야기다, 테남 테북의 차이.

 

부모가 자녀를 교육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을 물려주는 일이 아닐까. 좋은 대학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이들은 아이를 입시 경쟁으로 내몬다. 이들은 자녀가 돈을 잘 벌기를 바란다. 한편 압구정 부모들은 공부에 올인하지 않는다. 공부는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만 하고, 여차하면 재산을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 들어가 겨우 연봉 2,3천(?)에 혹사당하느니 그냥 저 좋아하는 일 하고 살라고 한단다. (갈수록 요지경~)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외치며, 짠돌이로 사는 나, 사교육에 올인할 돈도 없고, 그렇다고 물려줄 빌딩도 없다. 그렇다면 나같은 아빠는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 

 

내 인생의 즐거움과 밥벌이의 원천은 학벌도, 재산도 아니다. 바로 책 읽는 습관이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해서 영업사원을 하던 내게, 방송사 피디라는 직업을 얻게 해 준 것도, 난관에 부딪힐 때 마다 친구가 되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준 것도 책이다. 이 고마운 취미는 심지어 돈 들 일도 별로 없다. (대학 시절 1년에 200권을 읽어 시립도서관에서 다독상도 받았는데, 도서관 애용하면 돈 한 푼 안든다.) 그래, 결심했어! 이렇게 좋은 '책 읽는 습관'을 나는 물려줘야겠어.

 

느낌표 '기적의 도서관'에 출연하신 적이 있는 허순영 도서관 관장님을 만나, 평생을 도서관 운동에 헌신한 독서 전문가에게 여쭤봤다.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기르게 해주려면 어떻게 할까요?"

"매일 30분씩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세요."

 

요즘 난 매일 밤 잠들기 전 아이에게 30분씩 책을 읽어준다. 짠돌이 아빠로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다.

 

(어느날 민서가 퀴즈를 냈다.

"아빠, 누구게?" 전날 읽어준 백설 공주 이야기가 재밌었나 보다.

"잠든 공주님을 깨우려면 아빠 왕자님이 뽀뽀를 해야겠네?")

 

(아이를 위한 짠돌이 독서 교실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신고

'짠돌이 육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중에 우길 것이다  (7) 2014.01.03
아이를 위한 선물  (2) 2013.12.19
짠돌이 아빠의 육아법  (1) 2013.12.18
70점 아빠를 꿈꾸며  (2) 2013.12.16
꼭 너같은 애 낳기를  (16) 2013.12.12
팬이냐, 훌리건이냐  (6) 2013.12.11
Posted by 김민식pd

나는 어려서 책읽기를 좋아해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글쓰는 직업은 배곯기 딱 좋다며 무조건 의대 진학을 고집하셨다. 적성도 안 맞고 성적도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아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내신등급은 15등급 중 7등급, 고3 1학기 중간 고사 성적이 50명 중에서 22등이었다. 아버지는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동기부여가 덜 된 탓이라며 매를 드셨다. '이게 다 네가 잘되라고 하는 거다. 어른 되면 알 거다. 내가 왜 이러는지.'

 

이렇게 살다가 맞아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 성적으로는 집 근처 지방대학에 입학해야 했는데, 대학 시절을 아버지와 보내는 것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울 입성을 목표로 죽을둥 살둥 공부했다. 학력고사 성적이 기적적으로 나와 50명 중 2등을 했다. 학교에는 '김민식이 컨닝했다더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성적으로 겨우겨우 한양대 자원공학과로 진학했다. 물론 적성이 맞지 않아 대학에서도 여전히 고생했지만 (공업 수학같은 과목은 거의 매번 F를 맞았다.) 그래도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때부터 1년에 200권씩 책 읽기를 습관화 한 덕에 요즘 피디로 먹고 산다.) 영어 공부를 겸해 원서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한때 수백권의 원서 페이퍼백을 모았다. 전공 수업 시간 강의실 뒤편에 앉아 혼자 프레드릭 포사이스나 스티븐 킹의 소설을 봤다. 전공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영어 소설을 많이 읽어 영어 실력이 늘은 덕에 외국계 회사로 취업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치과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영업이란 어디나 힘들지만 치과 영업은 정말 힘들다. 치과에 들어서는 순간 영업사원인게 티가 난다. 입가에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치과에 들어서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어느날 하루는 평소 잘 만나주지 않던 깐깐한 고객과 어떻게든 말을 터봐야겠다는 생각에 한껏 밝은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가 된통 혼이 났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 뭐 팔아먹겠다고!" 대기실 수많은 환자와 간호사들 앞에서 욕을 먹는데 정말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나이 스물 일곱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나의 적성은 문과였으니 그 방면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저녁에는 입시반 학원을 다녔다. 근무하는 짬짬이 영어 공부를 했는데 회사 동료들은 승진 시험 대비인줄 알았다. 난 이직을 준비한건데. 심지어 회사에서 자기 계발이라고 학원비 지원까지 받았다. 양심에 찔리진 않았냐고? 영업 현장에서 겪는 수치심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6개월을 공부해서 1995년 12월 외대 통역대학원 입시에 합격했다.

 

통대 합격 소식에 정말 기뻤다. 작가가 되지 못해도 상관없다. 번역 작가로 일하며 내가 좋아하는 영문 소설을 한국에 소개할 수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로 사는 아들을 걱정하실 부모님께 합격의 낭보를 알려드리려고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아버지, 저 통역대학원 합격했어요. 이게 정말 어려운 시험인데요, 한번에 붙었어요."

그러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것 봐라. 너도 마음먹고 공부하면 할 수 있잖아. 그 정신으로 수능을 한번 더 보자. 그래서 한의대를 가는 거야. 한의사는 정년이 없는 직업이니 지금 재수를 해서 마흔에 졸업해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야."

스물 일곱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룬 그 순간, 아버지는 나를 다시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의사가 되지 않는 한, 난 평생 아버지 눈에 부족한 자식일 수 밖에 없구나. 그래서 난 아버지를 포기했다. 아니, 아버지의 기대에 맞추고 사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내가 그 시절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항상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품고 있는 희망이 혹시 아이에게 폭력이 되지는 않는지. 내가 바라는 아버지의 자세는 팬으로 사는 것이다. 아이의 즐거운 삶을 응원하는 팬.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훌리건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팬과 훌리건의 차이? 선수가 매 순간 경기를 즐기기 바라면 팬이고, 무조건 이기기를 바라면 훌리건이다. 선수가 최선을 다했다면, 어떤 결과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성숙한 팬이다.

 

그런데 훌리건처럼 사는 부모도 있다. 아이들의 삶에 난입해서 심판이 불공정했다고 심판 폭행하고, 동료가 패스를 안 해준 탓이라고 아이들 친구 이간시키고 그러기도 한다. 심지어는 경기장에 난입해서 선수를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렇게 밖에 플레이를 못해! 넌 이것보다 더 잘 할 수 있잖아! 열심히만 하면 이길 수 있는데 왜 이 정도로 밖에 못하는 거냐.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그걸 알면 이렇게 나를 실망시키면 안되지."

 

 

 

딸들에게 최고의 팬으로 살고 싶다. 어떤 경기 결과든,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라 믿으며 살고 싶다. 팬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열띤 응원이다. 선수가 자신의 경기를 즐기기를 바라는 응원. 인생이라는 경기를 치루며, 아이들이 그 순간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진심을 다해 기원하며 사는 것, 그것이 아버지로서 나의 꿈이다. 

 

신고

'짠돌이 육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점 아빠를 꿈꾸며  (2) 2013.12.16
꼭 너같은 애 낳기를  (16) 2013.12.12
팬이냐, 훌리건이냐  (6) 2013.12.11
사위한테 잘해야겠다  (8) 2013.12.09
좋은 아빠를 꿈꾸며  (2) 2013.12.04
'청소부 토끼'를 보고  (2) 2013.11.27
Posted by 김민식pd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