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는 법

by 김민식pd 2014. 1. 8.

예능 피디로 일하다보면 모든 연예인들을 다 만난다.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등. 어느날 피디들끼리 모여 어떤 직업이 최고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는데, 그때 1등 먹은 연예인 직업이 개그맨이었다. 영화 배우 개런티가 대단하다 해도 1년에 끽해야 한 두 편밖에 못 찍는다. 아이돌 가수 인기가 좋다해도 직업 수명이 너무 짧다. (10대에 아이돌로 날리다 30대에 철없는 어른이 되어 사고치는 이들을 보면 특히 더 그렇다.) 버라이어티 쇼 MC 급 개그맨의 경우, 잘나가는 이들은 1년에 7,8개 프로그램은 거뜬히 해낸다. 방송 3사에서도 찾고, 케이블에서도 모시고, 심지어 행사 진행까지 뛴다. 백댄서나 밴드를 데리고 다닐 필요도 없고 그냥 마이크만 쥐어주면 언제 어디서나 관객을 즐겁게 해주니 이만큼 저비용 고부가가치의 직업도 없다. 요즘같은 예능 대세의 시대에 연예인 소득순위 상위권은 항상 개그맨들이 장악하고 있다. 어떤 피디가 그랬다.

 

"우리 아이는 크면 개그맨 시킬거야. 어려서부터 코미디언 영재 교육을 시켜려구. 영어 유치원 보내는 대신 팔도 사투리 가르치고, 수학 과외 대신 성대 모사를 가르치는 거지. 애 얼굴에 돈 투자할 필요도 없어. 그래야 나중에 자학 개그의 소재로 써먹을 수 있게. 돈 적게 들여서 크게 버는데는 이만한 직업이 없다니까."  

 

작년 봄 MBC와 KBS가 공동 파업을 벌일 때, 여의도 공원에서 집회가 끝나고 양사 피디들이 모여 차 마시며 사는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3,40대 피디들이 모여앉다보니 그때도 자연히 자녀 교육 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졌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 자리에서 '돈 잘 벌기로는 개그맨이 최고지 않나요?' 했더니, KBS 피디 한 사람이 그러더라. '그렇긴 한데 개그 콘서트 보면 개그맨으로 뜨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특히 메인 MC급 개그맨은 진입 장벽이 높아서 쉽게 들어갈 수도 없죠.' 하긴 지난 10년간 영화계 톱스타보다 더 변동이 적은게 톱 MC들이다. 한번 자리잡으면 엄청 오래하니까 그만큼 신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적다.

 

파업 중이라 그랬는지, 피디라는 직업에 대해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MB 정권 하에서 낙하산 사장들이 공영방송의 미래를 특히 어둡게 바꾸어놓았다. (어제 신문을 보니 이명박 하에서 언론장악을 주도하고 방송을 망친 이동관이 무슨 사이버대학 총장이 되었더라. 정말 개탄스럽다. 그 대학은 사이버 대학이냐 사이비 대학이냐. 총장을 그런 사람으로 뽑고 무슨 미래의 인재를 키운다고 하는건지...) 누가 사장이 되느냐에 따라 조직의 역량이 너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직장인의 미래는 한계가 있다.

 

그 자리에 모인 피디들이 이구동성으로 미래에 가장 전망 좋은 직업으로 뽑은 것은 창작자였다. 많은 아이들이 탈렌트가 되려고 하지만 실제 벌이가 더 좋은 건 드라마 작가다. A급 작가는 편당 2000만원 이상의 고료를 받는데 50부작을 집필할 경우, 1년에 10억도 너끈히 번다. 공중파에 한번 틀면 케이블에서 재방 삼방하면서 그때마다 재방료 꼬박꼬박 나온다. 해외 수출이라도 되면 판권료를 또 받는다. 가수는 몰라도 작사 작곡 하는 싱어 송 라이터의 수명은 참 길다. 젊어서 히트곡 몇편 작곡한 걸로 따뚯한 노후를 보내는 분들도 많다. 90세까지 사는 시대, 월급 생활자보다 인세 생활자가 더 전망이 좋다.

 

그렇다면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피디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는데, 목동에 사는 한 KBS 피디가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집 아들은 기타를 참 좋아합니다. 매일 기타를 붙잡고 사는데 심지어 잘 때도 침대에 누워 기타 코드 잡다가 기타를 안은 채 그대로 잠들기도 합니다."

와, 공부하다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는 얘기보다 더 부러웠다. 

"중학생인데 벌써 노래도 직접 작곡하고 그럽니다. 나중에 기타리스트나 작곡가가 되는 게 꿈이랍니다."

그 자리에 있는 피디들이 다 부러움의 탄성을 질렀다. 

"우리 애도 음악에 취미을 길러주려고 피아노도 시키고 바이올린도 시켜보는데 귀찮아 하기만 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던데... 도대체 비결이 뭔가요?"

"저는 집이 목동이지만, 아이에게 사교육은 전혀 시키지 않습니다. 저녁에 학원도 안 보내요. 그러니까 아이가 같이 놀 친구도 없고 늘 심심해하더라구요. 그래서 기타를 사다줬더니 바로 빠져버린 거에요. 이제는 기타 없이는 못 살아요."

 

진심 부러웠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이 있지만, 고수의 경지에 미치려면 먼저 미쳐야한다. 창작자는 아티스트라 무언가에 미쳐본 사람만이 가능한 직업이다. 어려서 부모가 짜주는 스케줄에 따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나중에 직장 들어가 또 누군가 시키는 일만 죽어라 한다. 어려서 혼자 놀아본 사람, 그러다 무언가에 빠져본 아이만이 자신의 평생 취미를 찾아낸다. 그런 아이가 진짜 창작자가 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아이가 많다.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 미술 학원, 음악 학원, 독서 교실, 등 학원 조리돌림 당하느라 정작 자신만의 여유 시간이 없다. 멍하니 있어봐야 하고 싶은 일도 생기는 법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바쁘니까 아이들이 가장 가까이하는 장난감이 손 안의 스마트폰이 될 수 밖에 없다. 짧은 시간 가장 센 자극을 즐기자니 게임이 최고의 취미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이런 건 다 옛날에는 한량들이 잘 하던 것이었다. 바쁘게 사는 이에게 예술의 영감은 깃들지 않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주려면 아이를 한가하게 해주어야 한다. 정말 심심해서 못 견딜 지경이 되었을 때, 아이가 하는 것이 아이의 진정한 취미다. 아이를 창작자로 키우려면,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시길.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반응형